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구판절판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사랑이 보답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말할 것이다.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84쪽

우리가 서로에게 매혹적인 유사성을 아주 많이 확인했음에도, 어쩌면 클로이는 제우스가 잔인한 일격으로 나한테서 끊어버린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3월 중순쯤, 그녀가 나에게 새 구두를 보여주었을 때였다. 어쩌면 구두를 가지고 그런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 현학적인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두라는 것은 미학적인, 따라서 그 연장선상에서 심리적인 차이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나는 몸의 어떤 부분, 또는 몸의 어떤 부분을 가리고 있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구두는 풀오버 스웨터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엄지손가락은 팔꿈치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속옷은 외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며, 발목은 어깨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87쪽

사랑은 자명하지 않다. 사랑은 우리가 생일을 기념하며 살아가는 문화에 의해서 해석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답을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클로이에 대한 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차의 오디오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나를 동일시했다고 해서 내가 그 현상을 자연스럽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 자신이 사랑을 한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특정한 문화적 시기, 어디에서나 감상적인 마음을 찾아내 숭배하는 문화적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사랑의 동기가 된 요인은 공동체 이전의 어떤 충동이 아니라 바로 사회가 아니었을까? 이전의 다른 문화와 시대에서라면 내가 클로이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을까? (현재의 문화에서 스타킹을 신고 싶은 충동이나 모욕을 당했을 때 결투로 맞서고 싶은 충동을 참으라고 가르치듯이)-126쪽

나는 앨리스가 말을 하고, 꺼진 촛불을 켜고,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가고, 얼굴에 흘러내린 금발 한 가닥을 손으로 빗어넘기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아 우리가 알 기회도 얻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치면 우리는 낭만적인 노스텔지어에 젖는다. 혅와는 다른 사랑의 삶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있었을 가능성 때문인지도 모른다.-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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