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그걸 여기 행해일지에 적어두거든. 그리고 오데사에서 군 감독에게 등본을 넘기면, 그 사람이 읍이든 어디로든 그걸 보내주게 되어 있어."
이런 대화들이 구세프의 마음을 옥죈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갈망이 그를 괴롭힌다. 물을 마셔보지만 시원치 않고, 고향 생각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고, 영햐의 날씨를 상상해 보지만 그 역시 아니다... - P68
인생은 아무런 유익도 만족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담배 한 모금 빨아들일 시간도 없이 헛되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앞을 보면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뒤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손해,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한 손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 인간은 이런 상실과 손해 없이는 살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왜 자작나무 숲과 소나무 숲을 베어버린 것일까? 왜 헛되이 농장을 놀리는 걸까? 왜 사람들은 항상 불필요한 일만 하는걸까? 왜 야코프는 평생 욕하고 투덜대고 주먹을 휘두르고 위협하며 아내를 모욕했을까? 이렇게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어 방금 전 유대인을 겁주고 모욕한 것일까? 도대체 왜 사람들은 서루서루 편안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를 못하는 걸까? 그로 인한 손해가 이렇게 큰데도 말이다! 얼마나 무서운 손실인가! 증오와 미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엄청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P140
그는 집으로 돌아오며 죽음은 유익만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도 되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며,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아도 된다. 무덤 속에서는 1년이 아니라 수백, 수천 년을 살게되니 만일 이 이익을 다 계산해 보면 아마 엄청날 것이다. 인간은 삶에서는 손해만을, 죽음에서는 이익만을 얻는 것이다. 물론 온당하지만, 어쨌든 서글프고 고통스러운 생각이다. 도대체 왜 이 세상에는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이 아무런 유익 없이 흘러간다는, 이토록 이상한 질서가 존재하는 걸까? - P141
원래 본성이 고독해서 조개나 달팽이처럼 자기 껍질 속으로 기어들려는 사람들이 세상에 제법 많거든요. 어쩌면 이건 격세유전 현상인지도 모르죠. 인간의 조상이 아직 사회적인 동물이 아니고, 외롭게 자기 굴에 살던 때로의 회귀라고나 할까요. - P148
우리 인생을 한 번 돌아보세요. 힘 있는 자들의 뻔뻔함과 게으름, 약한 사람들의 무지와 야만성, 주위를 가득 채운 상상하기도 힘든 가난, 비좁음, 장애, 방탕, 위선, 거짓...그런데도 모든 집과 거리는 고요하고 평안하죠. 도시에 사는 5만 인구 중 단 한명도 이런 현실 때문에 비명을 지르거나 큰 소리로 흥분하지 않으니까요. 음식을 사러 시장에 가고 낮에는 먹고 밤에는 자고 쓸데없는 소리들을 지껄이고 결혼을 하고 늙어가고 죽은 친적들을 순순히 묘지에 묻어주는 사람들만 보일 뿐이에요.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요. 삶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은 어딘가 무대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무대 위는 고요하고 평온하죠. 그저 말 없는 통계만이 몇 명이 미쳤고, 몇 양동이의 술을 마셔치웠고, 몇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주로 죽었다며 저항하고 있죠. 어쩌면 분명 그래야 하는건지도 모르겠어요.행복한 사람이 평안한 건 불행한 사람들이 말없이 자기 짐을 지는 덕분이라는게 명백하니까요 - P182
외롭게 사는 사람들은 항상 그 영혼 속에 기꺼이 이야기하고 싶은 무언가를 품고 사는 법이다. 도시의 독신남들이 단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사우나나 레스토랑을 다니고, 때로 목욕탕 일꾼이나 종업원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시골의 독신남들은 보통 손님들 앞에서 자기의 영혼을 쏟아놓는 법이다. 더욱이 창밖으로 잿빛 하늘과 비에 젖은 나무들까지 보이지, 이런 날씨에는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그저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듣는 것 외에 다른 할 일도 없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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