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깜깜한 그곳은 밤인것 같기도 했고 수묵화로 그린 세상인것 같기도 했다. 무당은 왕의 명령에 따라 액운을 물리칠 사당을 디자인하였다. 그녀는 두개의 사당을 디자인했다. 하나는 왕을 위한 것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높고 평평한 땅에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으로 파도가 들이쳐 벼랑 밑으로 쑥 들어간 지형에 체스판 같은 형태로 말과 장기들이 서 있는 사당이었다. 건물이 세워진 것은 아니기에 사당이라기 보단 기도와 제사를 드리는 장소라는 말이 더 적합했다. 무당의 사당은 늘 파도가 들이쳐 반쯤은 잠겨있었다. 어느날 왕은 무당의 힘이 신통치 않다며 그녀를 내쫓았다. 무당은 쫓겨나며, 내 사당을 왕을 위해 썼어야 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원래 파도가 늘 들이치는 험한 땅의 기운이 더 좋은데, 왕의 사당은 번듯한 곳에 지어야 해서 험한 땅에 왕의 사당을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세상은 회색빛이었다. 무당의 사당은 제국이 사라지고 그 시절의 사람이 모두 죽은 뒤에도 살아남았다. 요즘 사람들은 발전된 건축기술로 파도가 들이치는 바로 그 곳에 건물을 짓고 카페를 열었다. 사람들은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바깥의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무당의 사당에 파도가 밀려오고, 말과 장기들이 파도를 맞고, 그 물이 다시 거품을 일으키며 쓸려나가는 그 무섭고 기괴한 풍경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고 커피를 마시고선 훌쩍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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