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숙집의 칠십 먹은 노파는 옆방에 사는 딸 모자가 차를 마실 때 우연히 마치기라도 하면 험악한 표정으로 난로에 몸을 기댔다. 딸은 차 한 잔 케이크 한 조각 권하지 않았다. 노파는 밤이 되면 실이 드리워진 오래된 전기스탠드 아래서 몇 시간이고 트럼프 점을 봤다. 칠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점치고 싶은 미래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잔혹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P75
종전 후 일 년 반가량은 학교에 하루도 가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날그날 먹을 식량을 구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수수와 밀기울과 콩깻묵을 먹었다. 하지만 어릴 때 우리는 그러한 상황이 고생스럽다든가, 슬프다든가,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경험이 없어서 더 나은 삶을 상상할 힘도 없었던 것이다.내일의 운명을 불안하게 느낀 적도 없었다. - P171
아이는 살아남는 한 광폭하다고도 할 수 있는 에너지, 그 어린 생명을 불태우는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때는 천진난만한 명랑함으로, 어느 때는 무의식적인 잔혹함으로,어른도 무색할 정도의 교활함과 어른이 잃어버린 정의감과 솔직함을 지니고, 동시에 훼손되기 쉬운 순진하고 고운 마음씨를 지닌 채로. 어쨌든 그 에너지에 힘입어 살아남기를 바란다.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도 교사도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다. 부디 뻔뻔하게 살아남기를 바란다. 어린 시절을 사는 데 열중하길 바란다. - P180
같은 행위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볍게 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평생 잊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쇄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흘려보냄으로써 살아남는 사람도 있다. 교사가 우리를 키운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살아온 것이다. 저마다의 힘으로 저마다의 혼을 담아. - P189
나는 ‘어른스러운 여자‘를 어른이 된 여자 중에서 찾지 못한다. 그 ‘어른스러운 여자‘를 아이들 가운데서 종종 찾아낸다. - P200
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굴러다니던 논어를 봤어. 그 책에 ‘부모는 무리한다‘라고 쓰여 있었어. 그때부터 부모님을 거스른 적이 없어. 아무리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해도 경을 외우듯 ‘부모는 무리한다, 부모는 무리한다‘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 P202
우리는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어른스러운 면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특별히 어른스러운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아이 안에서든 아이의 혼과 어른의 혼이 함께 산다. - P203
대부분의 가정이 이미 부서진 것을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버티는 것이다. 게다가 꿈에서 깨어난 것은 우리들-아내와 남편이 아니라 아내뿐이다. 우리들이 아니라. - P306
나는 올드미스였던 경험이 없다. 덩그러니 재고로 남을 것이 두려워 첫 키스한 남자와 번갯불에 콩 볶듯이 결혼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나는 다나베 세이코의 책을 읽는다. 읽으면서 부득부득 이를 갈 정도로, 올드미스였다면 좋았을텐데, 생각한다.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올드미스라는 시기를 거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될 정도로, 올드미스에 관한 다나베 세이코의 이야기들은 매력적이다. - P320
내 친구들은 대부분 드센 시어미노아 노망난 친정아버지 때문에 지쳐 주저앉았다. 지금나는 여든의 고독이 두렵지 않다. 노망나는 것이 무섭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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