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앗짱은 부처 같은 엄마처럼 착했다. 그에 비해 나는 성질이 더러웠다. 성질은 평생 변하지 않으므로, 누구든 자기 성질이 불러들인 인생을 살게 된다. - P48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읽은 책은 다 쓸모없었다. 열세 살 소녀한테 안나 카레니나가 이해될 리 만무했다. 열세 살의 건방진 친구가 "나쓰메 소세키는 산시로, 그 후, 문의 순서로 읽는 거야" 하고 지껄이기에 시키는 대로 했는데, 소세키를 읽고 감동하려면 그에 걸맞는 인생이 필요했다. 시간만 허비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남자랑 노는 편이 훨씬 나았다. - P55
스물셋에 결혼한 상대는 생전 이사 한 안 해본 사람이었다. 23년간 찬장이 같은 곳에 있었고, 같은 곳에 젓가락이 들어 있었다는데, 그 젓가락 두는 곳도 모르는 무심한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이사를 스물 몇 번 했던 나는 23년간 같은 곳에 젓가락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기겁을 했다. - P85
사람과 사람이 붙는 건 고생스럽지 않지만 떨어지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쓰러진다. - P108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남자가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건 사노 씨가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에요. 모두 진실을 싫어해요. 진실은 말하면 안돼요.
왠지 부끄러웠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웠다. - P112
러시아인 친구가 한 명도 없으니 살아 ㅆ는 러시아인이 어떤지는 모른다. 체호프나 도스프옙스키의 등장인물이 기차 옆자리에 앉은 타인과도 속마음을 터놓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거나 큼직한 장화를 신고 성큼성큼 들어오는 모습에 나는 기겁을 했다. 소설이기 때문일까? 만들어낸 이야기일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 P130
햣켄은 시각 장애인인 미야기 미치오에게 "장님도 미인을 알아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마음이 뇌 부근에 있는 사람은 절대 묻지 않을 질문이리라. 미야기 미치오는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주변의 공기로 안다고 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못생겼다는 건 장님한테도 들킨다. - P167
나는 노인이 되어서야 내가 이 세상에 하러 왔는지 알았다. 이 세상엔 이렇다 할 볼일이 없다. 볼일은 없는데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이따금 아아, 살아 있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으면 좋은 거다. ‘그래서 어쩌라고?‘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 P168
나는 감정만 소비하고 머리는 전혀 쓰지 않았다. 머리로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 P195
부부는 안에서는 쉽게 깨지지만 밖에서는 아무리 찌르고 부서뜨리려 해도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 - P204
밤에 이혼하자고 했다가 아침이 되면 정기예금에 대해 의논하는 것이 부부다. 참으로 영문을 모르겠다. 그런데 부부는 영문을 모르는 게 좋은 거다. 부부에겐 과학이 필요 없다. 과학이 끼어들 틈이 없는 곳이 아직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든든하다. - P206
나는 아이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만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거기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힘을 얻고, 돈도 벌고, 상대를 지킬 마음도 생긴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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