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이야기 (무선) 문학과지성사 이청준 전집 20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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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7 / 10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는 영화 <밀양>의 원작이다. 종교나 절대주의를 비판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인간성을 이야기한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미의 인간 본성 말고,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인간적인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분노와 원망 혹은 저주에 가까운 부정적인 감정도 무척이나 `인간적인` 거니까. 섭리라는 거대담론이 인간적인 감정을 억압할 때, 그 속에서 답답해하고 몸부림치고 종국엔 ˝질식해 죽어가는 인간˝을 그려낸다. 섬세한 사람은 이 작품에서 5월의 광주와 80년대 신군부 체제를 읽어내기도 한다는데 깜냥이 모자란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책에는 <벌레 이야기> 외에도 여러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흰 철쭉>과 <숨은 손가락>이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흰 철쭉>은 가슴 아픈 분단 이야기를 몹시 서정적으로 풀어내었고, <숨은 손가락>은 흡인력이 대단했다. <불의 여자>나 <섬>처럼 분량이 10쪽 안팎인 너무 짧은 소설은 사실 이해가 잘 안 됐다.
설명하기 힘든 인간 내면에 천착했다. 또 (내용과는 별개로) 자연과 감정에 대한 묘사도 뛰어났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7점(읽으면 좋은 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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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 뇌과학이 알려준 아이에 대한 새로운 생각
신성욱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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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7 / 10

임신한 누나에게 선물로 줄 책을 고민하다 뽑아들었다. 육아를 다룬 서적은 넘쳐나지만 이 책만큼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접근한 것은 드물다.
책은 조기교육을 둘러싼 신화를 비판한다. 뇌는 3살 무렵에 완성된다, 언어를 배우는데 적절한 시기가 있다, 좌뇌와 우뇌가 다르다 등 수없이 들어봤고 상식처럼 통용되는 주장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이미 과학적으로 수명을 다 한 것이다. 그런데도 눈먼 언론과 사교육업체가 이를 퍼뜨리면서 제 잇속을 챙기고 있다. 그저 돈만 앗아가면 몰라도 아이에게 치명적 손상을 남길 수 있다. 과도한 조기교육으로 만성적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후천적 자폐가 생긴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내용이다. 학술적 내용을 다루지만 일반인도 이해하도록 글도 쉽게 썼다. 7점(읽으면 좋을 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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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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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6 /10

권정생. 이름이 낮익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뽑아들었는데, 세상에, 그 유명한 동화작가 권정생일 줄이야! 소설가가 쓴 산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권정생은 정말로 순수한 사람인 것 같다. 그의 글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묻어난다. 그런 문체로 민족의 슬픈 역사를 기록하고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일러준다. 세속화된 교회를 비판하고 환경파괴를 걱정하며 전쟁에 반대한다. 온갖 문제가 만연한 세태를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분석하다니, 모순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의 글에서는 그게 실현된다. 내 입장에서 보면 결론이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권정생은 당위와 강한 신념을 줄곧 드러낸다. 너무나도 자연적이고 순진한 이유에서 도출된 그 주장, 그리고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굳센 신념. 이 두 가지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자아내는 듯하다. 환경운동계의 거두라는걸 이참에 알았는데, 그럴 법 하다고 바로 납득해버렸다.

같은 산문집인데다가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최근에 읽은 <개인주의자 선언>과 비교가 된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논리적인 구조를 갖췄고 내 가치지향과 맞는 대안을 설득력 있게 피력하고 있다. 읽으면서 공감가는 대목이 참 많았다. 글의 중간중간에 인용되는 책들도 내가 이미 읽은 책이 많았다. 그런데도 다 읽고 났는데 글에 애착이 하나도 안 갔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고민했는데 <우리들의 하느님>을 펴자마자 깨달았다. 나는 경험을 존중한다. 뛰어난 천재가 머릿속으로 고안해낸 사상서보다는 역사적 순간에 있었던 이의 회고록을 더 보고 싶다. 비록 인간은 사고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나는 허무맹랑한 꿈 속의 이야기보다는 동물적인 경험과 감각이 겪은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따지고 보면 소설가의 산문집을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실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해서 전달할 수 있는 작가는 소설가밖에 없다. 나다니기 싫어해서 다양한 경험이 부족한 내 특성도 한몫 하리라.
소설가 김훈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을 쓰면서 읽은 책을 들이대는 것은 게으르고 졸렬한 수작일 테지만 나는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별수 없이 책을 들먹인다." 무릇 작가란 본래 자기 경험에 기반해서 글을 쓰는 사람인 게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들의 하느님>에는 작가의 경험이 빼곡히 깔려 있다. 단순히 정신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몸이 겪고 인생에 새겨진 깨달음과 교훈이 그대로 묻어난다. 비록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농업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은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라야 한다, 꼭 필요한만큼만 살생·개발을 해야지 축적해서는 안 된다, 승용차를 타지 말자, 군대를 없애버리자 등―에 쉽사리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웃지도 않는다. 수십 년 경험과 성찰이 뒷받침하는 그 순수한 주장을 존중하게 된다.

경험이 묻어나고 진정성이 담긴 근래 보기 드문 글이다. 딱 내 취향이다. 다만, 그 내용·주장이 (내 기준에서 볼 때) 지나치게 순진해서 다른 이들에게 추천할 거리가 못 된다. 문체가 아니라 담긴 내용의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얘기다. 애석한 일이지만 6점(언젠가는 도움이 될 교양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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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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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6.5 / 10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관계'다. 사법부 부패 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돈'이 아니라 '관계'다. 판검사들은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절할 수 없어서' 돈을 받는단다. '평판'에 민감하고 다른 이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원만한' 모습을 지키려는 판검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법부에 개인주의 문화가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꼈다. 그러던 찰나에 현직 판사가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개인주의자 선언>은 수필집이었다. 매체에 기고한 칼럼부터 개인SNS에 업로드한 글까지 모아서 한 권으로 묶었다. 그러다보니 꼭 '개인주의'에 대해서만 말한 것도 아니고, 꼭 법조계 이야기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직업이 판사일 뿐 그냥 사회에 대한 단상을 담담히 적은 글들이다. 다만 저자가 개인주의를 신조로 삼고 있으니 개인주의가 자주 나온다.
그러나 저자가 언급하는 '개인주의'는 우리 헌법이 모델로 하고 있는 서구의 사상 속 사회조직 원리이거나 우리 사회가 지향하기를 바라는 미래상으로만 등장한다. 좀 추상적이라고 느꼈다. 나는 더 직접적으로 집단주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병폐와 거기에 대한 개인주의적 대안을 기대했는데.

물론 그것이 저자의 실책은 아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모두 공감할만한 내용들이었고 차분한 어조로 설득력 있게 써내려갔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당시 등장한 책이나 영화 혹은 이슈로부터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또 오래 곱씹으면서 글을 다듬은 티가 났다. 사실은 내 기준에서 볼 때는 문장이 너무 긴데, 읽을 때 어색하지 않도록 배치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 느껴졌다. 실제로도 어색하지 않다(물론, 나였다면 문장을 나눴을 테지만).
그럼에도 몇몇 글은 필봉이 무디거나 기계적으로 모든 관점을 언급하려들거나 논지가 흐려서 두서없는 느낌이 났다. 아무래도 지면 제한이 있는 기고문과 의식의 흐름대로 쓰게 되는 SNS의 특징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단문 모음이 아니라 진지하게 구성된 책을 집필해주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저자는 지금처럼 글을 쓰고 독자들과 시시로 소통하는 것이 즐겁단다. 동시대의 인물로서는 드문 훌륭한 작가를 만났으되 기대와 어긋난 점이 많아서 아쉽다.
읽으면 좋을 양서(7점)지만 개인적인 아쉬움에 반점을 깎았다. 그럼에도 당대 사회문제를 다룬 수필/평론/칼럼집 중에서는 여태껏 읽은 것 중에 제일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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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제29대 고대원총 이음지기 지음, 김채영 그림 / 북에디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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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7 / 10

이번 리뷰는 인용으로 대신한다. 서문의 첫머리다.

"많은 사람이 대학원 사회에 문제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대학원생은 그저 '돈 걱정 없이 여유부리는 사람', '부모 덕에 취업난 모르고 책장이나 펼치는 사람'으로 비춰집니다. 그들이 대학원 생활의 어려움이나 일상적으로 겪는 암울한 현실을 토로해도 "네가 선택한 길인데 뭐가 불만이냐",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살면서 팔자도 좋다"는 식으로 누구도 관심을 갖고 공감해주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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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6-08-02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