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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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6.5 / 10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관계'다. 사법부 부패 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돈'이 아니라 '관계'다. 판검사들은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절할 수 없어서' 돈을 받는단다. '평판'에 민감하고 다른 이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원만한' 모습을 지키려는 판검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법부에 개인주의 문화가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꼈다. 그러던 찰나에 현직 판사가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개인주의자 선언>은 수필집이었다. 매체에 기고한 칼럼부터 개인SNS에 업로드한 글까지 모아서 한 권으로 묶었다. 그러다보니 꼭 '개인주의'에 대해서만 말한 것도 아니고, 꼭 법조계 이야기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직업이 판사일 뿐 그냥 사회에 대한 단상을 담담히 적은 글들이다. 다만 저자가 개인주의를 신조로 삼고 있으니 개인주의가 자주 나온다.
그러나 저자가 언급하는 '개인주의'는 우리 헌법이 모델로 하고 있는 서구의 사상 속 사회조직 원리이거나 우리 사회가 지향하기를 바라는 미래상으로만 등장한다. 좀 추상적이라고 느꼈다. 나는 더 직접적으로 집단주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병폐와 거기에 대한 개인주의적 대안을 기대했는데.

물론 그것이 저자의 실책은 아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모두 공감할만한 내용들이었고 차분한 어조로 설득력 있게 써내려갔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당시 등장한 책이나 영화 혹은 이슈로부터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또 오래 곱씹으면서 글을 다듬은 티가 났다. 사실은 내 기준에서 볼 때는 문장이 너무 긴데, 읽을 때 어색하지 않도록 배치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 느껴졌다. 실제로도 어색하지 않다(물론, 나였다면 문장을 나눴을 테지만).
그럼에도 몇몇 글은 필봉이 무디거나 기계적으로 모든 관점을 언급하려들거나 논지가 흐려서 두서없는 느낌이 났다. 아무래도 지면 제한이 있는 기고문과 의식의 흐름대로 쓰게 되는 SNS의 특징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단문 모음이 아니라 진지하게 구성된 책을 집필해주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저자는 지금처럼 글을 쓰고 독자들과 시시로 소통하는 것이 즐겁단다. 동시대의 인물로서는 드문 훌륭한 작가를 만났으되 기대와 어긋난 점이 많아서 아쉽다.
읽으면 좋을 양서(7점)지만 개인적인 아쉬움에 반점을 깎았다. 그럼에도 당대 사회문제를 다룬 수필/평론/칼럼집 중에서는 여태껏 읽은 것 중에 제일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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