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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잘쓰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6월
평점 :
점수 : 7.5 / 10
대학원에서 논문 쓰기, 즉 `연구`와 관련한 수업은 두 개다. 하나는 <설계론>이고 다른 하나는 <방법론>이다. <방법론>은 연구에 사용하는 기법으로 학문마다 다르다. 철학적 논증이나 수학적 증명일 수도 있고, 인터뷰나 설문 조사 혹은 통계자료 분석일 수도 있고, 화학 실험이나 동물 해부일 수도 있다. 반면 <설계론>은 연구가 갖춰야 할 형식이다. 주제 선정, 연구 목적, 가설 설정, 기대 효과 등 `인류의 지식 증진`이라는 학문의 궁극적 목적에 기여하기 위한 체계적이고도 기본적인 꼴을 다룬다. (여기에 더해 간단한 원고작성법까지 다룬다.)
이 책은 <설계론>에 대한 완벽한 가이드북이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주제 선정 고민부터 자료의 수집과 관리, 그리고 원고 작성까지 연구의 전 과정을 꼼꼼히 훑어나간다. 단순히 `이렇게 하면 된다`고 설명하는 게 아니라,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그것이 왜 안되는지를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설득한다. 아마도 풍부한 논문지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리라. 학위지원자(초보 연구자)가 범하기 쉬운 실수를 소개하고, 그 단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극복하려면 어떻게 바꾸면 되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방법론>은 기술적인 문제라서 배우고 연습하면 금세 따라잡지만, <설계론>은 지극히 유연하고 창의적인 작업이다. (그래서 연구자의 자질도 얼마나 독창적인 연구를 설계해내느냐에 달려있다.) 초보 연구자들이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설계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설계론>을 고민하는 연구자들을 깨우치고 인도할 중요한 이정표다.
감명 깊에 읽은 터라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 한번 읽어봐`하고 권하고(8점) 싶지만, 대학원생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할 수 없어서 0.5점을 깎았다. 무척 아쉽다.
ps. 이 책을 두고,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개념을 체계화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점에서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유용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출간 후 많이 팔려서(=일반인들도 많이 읽어서) 개정판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자료 수집과 관리 방법은 도서관을 방문해서 소장 도서 목록을 읽어보고, 참고문헌을 카드에 일일이 기입해서 관리하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DB(데이터베이스)와 검색이 일상화된 오늘날에는, 일반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적다. 오히려 연구를 진지하게 하려는 사람에게 더 울림이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