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또 모으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런 책, 예를 들어 북스피어에서 큰 맘 먹고 문고판으로 내고 있는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의 경우에는 야금야금 모아가고 있는데요, 참으로 흡족하기 그지 없습니다. 일단 판형이 참 깜찍하고 그 수록된 내용들이 죄다 제가 글을 쓰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마니아들은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수집하고 있는 이 시리즈, 에스프레소 노벨라를 소개할까 합니다.

 

 



 

아는 사람은 다多 알아!

마니아들이 더 좋아하는 에스프레소 노벨라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는 현재까지는 총 여섯 권이 나왔습니다. 시리즈의 첫 편 『집행인의 귀향』이 나올 당시 마포 김사장님의 서문을 통해 이 시리즈가 왜 나왔나 잠시 살펴보기로 합니다.

 

 

 

 

 

 

전집 명은 에스프레소 노벨라로 하자. 어째서 이런 이름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당신은 지금 에스프레소 노벨라 0호를 읽고 있다. 잡지로 치면 창간준비호쯤 될까. 본격적으로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까지 완벽을 기하려는 의도이니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기대에 어긋나거나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지적 바란다.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조율하여 출간 목록을 결정할 생각이다. 진초록의 잎들이 하나둘 보일 때쯤 전집의 일차분이 출간되면 전체적인 윤곽을 가늠할 수 있겠다.

전집과 문고본은, 항상 우리들의 로망이었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실현하게 되다니,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그만큼 걱정도 앞선다. 한국에서 문고본은 안 될 거라는 편견 때문이다. 이런 편견이 그저 편견일 뿐이라는 우리 생각에 당신이 동의해 준다면 크게 힘이 될 텐데. 흠,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당신더러 나서 달라고 하는 셈이 되는 거니까 모양새는 좀 이상하다만, 뭐 해석은 하기 나름이니까. (PP.6~7)

 

 

이런 식의 취지로 만들어진 문고본 시리즈입니다, 에스프레소 노벨라는. (흐흐) 그리하여 포문을 연 0호는 SF를 이야기할 때에 빠져서는 안 될 작가인 로저 젤라즈니의 중편소설 『집행인의 귀향』이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은 네뷸러 상과 휴고 상을 모두 수상한 대단한 작품인데요, 본래는 젤라즈니 중기 걸작 중편집 『내 이름은 레기온』에 실렸던 한 편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발간된 1호는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가 쓴 「위대한 탐정소설」입니다.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는 다른 이름, S.S. 반다인으로 더 유명하죠? 파일로 밴스 시리즈를 적은 바로 그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의 탐정소설에 대한 지식이 총망라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띠지의 말을 살피면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일지 바로 상상이 가능합니다.

 

 

 

탐정 소설은 일종의 게임인 동시에 스포츠이기도 하다.

따라사 작가는 독자에 대해 공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작가는 브리지 게임을 할 때 사기가 허락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속임수나 책략 따위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순수한 창의력만으로 독자의 의표를 찌르고 독자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심플 아트 오브 머더」는 하드보일드 하면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글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수많은 블러디 머더 시대의 추리소설가들을 이야기하며 ‘단 한 명’만을 진정한 일급 작가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탐정 소설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렇다.

수수께끼는 충분히 지적이지 못하고,

소설로서는 충분히 예술적이지 못하다.

지나치게 진부하고 실제 세상을 반영하지 못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밴 다인도 코난 도일도 아니라고 한 레이먼드 챈들러가 인정한 작가는 누구일가요? 아, 자기 자신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3호로 나온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일본의 대단한 대중소설 작가들이 한 번쯤은 탔다는 바로 그 나오키상의 나오키의 작법서입니다. 나오키상은 1935년 문에춘추의 기쿠치 간이 ‘대중문학의 역사를 바꾼 나오키 신주고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창설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자 그렇다면 나오키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책을 보면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아, 이어지는 나오키의 소설을 읽으면 더더욱 알 수 있고요. 때문에 전 잠시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읽었으니 나도 나중에 나오키상처럼 특급변소상을 ... ... 아, 출판사 사장님이 내줘야 하는 거니까 어디 모 김사장님이 내 이름으로 상 좀 ... ... (응?)

 

 

 

 

 

 

 

 

「공포문학의 매혹」은 공포소설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기라성과 같은 존재,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입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설명이 필요없는 공포소설 작가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누군가 설명을 원하셔서 덧붙이자면... ... 올해에 마침내 황금가지에서 전집이 모두 나왔습니다. 그거 사서 읽으세요. 와 정말 설명 쉽네. 아무튼 이런 러브크래프트가 쓴 이론서는 어떤 내용이냐, 수많은 문학작품 안에 드러난 공포를 다룹니다. 러브크래프트는 포를 중심으로 나누어서 그 전과 그 이후의 공포가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하는데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포가 창조한 유령은 기존 작가들 가운데 누구도 성취하지 못했던 그럴싸한 사악함을 획득했으며 호러 문학 영역에서 사실주의의 새로운 기준을 수립했다. 거기에 더해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과학적인 태도가 비인격적이고 예술적인 의도를 보조했다.~ P.69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 발간된 「탐정은 어떻게 진화했는가」는 오타쿠를 제외한 일반 추리소설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설지도 모를 작가 ‘도로시 L. 세이어즈’의 글입니다. 이 글에서 세이어즈는 추리소설이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러브크래프트가 포의 공포소설 이야기를 했다면, 세이어즈는 포의 추리소설 이야기를 하며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특히 포가 만든 탐정 뒤팽의 이야기를 하며 뒤팽이 나오는 추리소설을 크게 몇 가지로 분류하는데, 그 분류법이 참으로 감탄할 만큼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이 분류법은 현재에도 당연히 통용됩니다. 또 마지막에는 이런 멋진 말도 나옵니다. 이 말은 앞으로 추리소설 작가가 어떻게 소설을 써야할까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독자는 살인자를 추리하는 대신 작가를 추리한다. 그래서 작가의 후기작들은 초기의 역작에 거의, 혹은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다. 독자는 작가의 뮤즈와 결혼하고 이 결혼은 미스터리를 파괴한다.

언젠가 탐정 소설도 끝에 이를 때가 올 가능성이 확실히 있어 보인다. 그저 대중이 모든 트릭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남았고 그동안 새롭고 덜 경직된 공식들이 개발될 것이며 풍속 소설과 좀 더 가깝게 결합하고 모험 소설로부터는 더 멀리 떨어지게 될 것이다. 다분히 후자는 인류만큼이나 오래갈 것이고 범죄가 존재하는 동안 범죄 스릴러도 그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라. 언제나 그렇듯 더 고급 유형이 멸종 위협을 받기 마련이다. PP.84~5

 

 

 

이 인용문을 보면 세이어즈는 지극히 비관적인 전망을 이야기합니다만... ... 책을 읽으보면 글쎄요, 느낌이 좀 달라질 걸요?

 

  

 

이상 간단하게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를 소개해 봤습니다. 내용이 대강 저렇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설명할 것이 있다면 이 시리즈의 가격입니다. 이 시리즈는 처음에 말했듯 문고본입니다. 때문에 참 저렴합니다. 000호는 비싸서 7700원입니다만, 나머지는 3800원 4800원 뭐 이렇습니다. 하여 참으로 모으기에 기분이 가뿐합니다. 책장도 가뿐하고요.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당장 장바구니로 ㄱㄱㅅ?!

 

 

 

 

이상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를 자기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홍보하는 특급변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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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미스터리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누쿠이 도쿠로의 진화형 미스터리 미소짓는 사람

 

 

 

 

최근 북스피어에서 발간한 도로시 L. 세이어즈의 책 「탐정은 어떻게 진화했는가」에는 에드거 알란 포우가 ‘만든’ 여러 형식의 탐정소설이 나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the mistery of Marie Roget」로 에드거 알란 포우가 적은 르포르타주 형식의 단편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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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팽이 등장하는 세 번쩨 소설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는 모방작은 별로 없지만, 비평가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상점 여점원의 실종과 살인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 모음과 그에 대한 뒤팽의 언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자체에는 사건의 해결이 들어 있지 않고 기실 공식적인 결말도 없다. 물론 매우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실종은 실제 벌어진 사건으로, 장소는 뉴욕이고 메리 세실리아 로저스라고 하는 실존 인물이 모델이다. 필요한 만큼 각색을 하기는 했지만 신문 기사도 실제 기사다. 포의 글을 실은 신문은 감히 결론까지 발표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나온 이야기로는 포의 논증은 본질적으로 맞았다고 한다. 이 주장이 나중에 반박되기는 했어도 포는, 애당초 스스로 창작하지 않은 실제 문제라는 엄격한 시험에 자기 추리 기술을 쏟아 부은 소수의 미스터리 작가 사이에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PP. 30~31, 「탐정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위에서 인용한 그대로 이러한 형식의 소설은 소설가, 혹은 기자의 눈을 빌어 여러 목격자나 사건 관련자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이 외에도 잘 알려진 소설로는 미야베 미유키의 나오키상 수상작 『이유』가 있겠습니다. 저는 『이유』를 보고 매우 감명을 받아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는 지금까지 왔습니다. 르포르타주 형식은 아니지만 내년에 완성할 생각인 『흰 바람벽이 있어』 역시 그러한 느낌의 사회파 추리소설입니다. 때문에 이번에 출간된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짓는 사람』은 서점에 깔리자마자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반드시 이 책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누쿠이 도쿠로는 제가 수집하는 책 목록에 속한 작가는 아닙니다. 물론 누쿠이 도쿠로의 책은 대다수가 집에 있었기는 합니다만 주변에 워낙 누쿠이 도쿠로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기에 다 입양보냈습죠.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가 시점이 잘 바뀌는 책을 읽지 못하는데, 누쿠이 도쿠로의 최근 출간되었던 두 권의 책이 모두 이렇게 시점이 잘 바뀌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번 책에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반쯤은 또 사고 나서 남을 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 잘 둔 덕에 공짜로 얻어 읽었습죠. (흐흐) 그리하여 읽은 결과는? 오늘 새벽에 읽기 시작해서 결국 다 읽고 새벽 다섯 시 넘어 잤습니다. 와, 정말 재미나더군요?

 

 

 

 

 

표지를 벗기고 드러나는 다닥다닥 붙은 글자들은 소설의 처음 부분이다. 마치 신문을 보는 듯한 배치를 통하여 이 소설이 르포르타주 형식을 띤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이 이야기는 소설가의 시점으로 여러 이야기를 듣습니다. 시점이 바뀌기는 하지만 『난반사』나 『후회와 진실의 빛』만큼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이 두 작품을 재미나게 읽으신 분이라면 아무 무리 없이 이 책을 읽으실 수 있을 것이요, 굉장히 만족스러우실 듯합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한 남자가 체포됩니다. 남자의 죄목은 부녀살해, 것도 ‘자신의’ 부녀를 살해했습니다. 헌데 그 이유가 기괴합니다. “집에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해서” 자신의 부녀를 살해했다고 말합니다. 이것 참, 대체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이야기는 그 ‘왜’에서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그리는 누쿠이 도쿠로의 시점은 소설가이자 한 명의 독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모습은 누쿠이 도쿠로의 또 다른 책 『우행록』과 비슷하다고 하겠지만 훨씬 더 세련되게 다듬어졌습니다. 그 세련됨이 아슬아슬합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사회파 미스터리와 순문학의 중간 닿을 듯 말 듯하다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이 책의 띠지에 누쿠이 도쿠로의 이런 말이 실렸나 봅니다.

 

 

 

『미소짓는 사람』은 제 작품 중 ‘최고 걸작’이 아니라 ‘최고 도달점’에 이른 작품이에요. 미스터리로서 갈 수 있는 끝까지 가서, 이 이상 가면 미스터리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는 아슬아슬한 부분의 이야기라는 의미로 최고 도달점이라는 표현을 써봤어요, 미스터리의 틀을 넓히려는 시도를 해 본 거죠. 지금까지 아무도 읽은 적 없는 미스터리일 테니 처음에는 당혹스럽겠지만, 이런 미스터리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런 형식은 이미 에드거 알란 포우가 시도한지 한참이 지났으니 아무도 읽은 적이 없는 미스터리이다 라는 말은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누쿠이 도쿠로의 자신감은 작품을 흘러가는 방향을 쫓다 보면 과장이 아니라 당연한 자신감의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부분 부분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사람은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는 줄 알지만 실은 무엇 하나 모르는 것 아닐까. 당신의 이웃이 니토와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정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알았을 때는 이미 일이 터져 버린 뒤다. P.12

 

~ 하지만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남을 죽이는 인간에게 일 년을 기다리는 것보다 살인이 손쉬운 방법이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니토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다 보니 이해가 갔는데, 세상에는 살인이라는 금기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결여된 인간도 있다. 그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사태를 해결하는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하다. 죄악감이라는 억제 장치가 없으면 인간은 얼마든지 쉽게 결단을 내리는 법이다. P.154

 

~ 아무튼 너무나 니토답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싫어하는 걸 눈앞에 두면 변하는 걸까요. P.246

 

“최종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이 나는 건 픽션 뿐이에요.” (중략) ~살인귀는 물론 가까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실은 모른다고요.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남편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부모는요? 자식은요? 연인이나 친구의 생각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초능력자죠.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왜 살인범의 심리만은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걸까요?” P.326

 

~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해한 척하며 살고 있다. 자신들이 이해한 척한다는 사실조차 보통은 잊고 있다. 안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바로 불안해지니까. 그 눈속임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니토라는 존재에 우리는 이상한 흥미를 보였다. 전부 자신의 불안을 억누르고 싶기 때문이었다. P.338

 

 

누쿠이 도쿠로의 글은 예전보다 훨씬 찰집니다. 물론 제가 무척 좋아하는 미야베 미유키나 그 정신적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초석이 된 마쓰모토 세이초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 않나 하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도 하게 됩니다만, 저는 이 작품 덕에 많은 소스를 얻었습니다. 덕분에 내년에 출간할 책은 이보다 더 재미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누쿠이 도쿠로 식의 자신감을 가슴에 얻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자신감일까요?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목차의 의미가 새롭다.

 

 

이것 역시 또다시 별 다섯이군요.

큰일 났네. 오늘은 리뷰가 죄다 별 다섯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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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소녀 ㅣ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 별 생각 없이 학교를 가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어마어마한 미소녀를 봤습니다.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서 그대로 발을 멈추고 입을 떠억하니 벌리고 그 소녀만 바라봤더랬죠. 같은 학교의 동급생이었던 그 소녀는 후에 티비에 단역으로 몇 번 출연을 했습니다만 연기력이 영 형편없어서 결국 딱히 대단한 빛을 발하진 못했지만, 그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새록새록합니다.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지! 때문에 당시에는 와, 나도 저렇게 생기면 참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 책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더라고요.

 

 

 

 


 

"너무 예쁜 것도 죄악입니다."

얀 제거스의  『너무 예쁜 소녀 』

 

 

 

 

얼마 전 프리 뷰 서평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미리 보고 서평을 올렸었는데요, 그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무 보고 싶은 얀 제거스의 『너무 예쁜 소녀 』 http://cameraian.blog.me/130167465218

 

 

링크 글에 적은 대로 저는 이 책을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이 책을 것도 PDF파일로 받아서는 단숨에 읽어내렸습니다. (!) 동시에 출판사의 확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반 이상의 내용을 미리 공개하였고 그 내용은 결코 기대에 못 미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우 훌륭했으니까요.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해 봅니다. 한 마을에 소녀가 나타납니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무슨 댄서의 순정 같은 이 소녀의 특징은 딱 하나, ‘어마어마하게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마농은 정말 예뻤다.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으로 예뻤다. 마농의 미모가 얼마나 두드러져 보이는지는, 그녀 옆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와 상관없이 마농은 언제나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는데서 알 수 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이런 느낌을 받게 되고, 보면 볼수록 그 느낌은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 그녀가 자신의 미모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더 매력적이었다. 마농은 마을 광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무도회장을 지나칠 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농의 최대 매력은 천진난만한 순수함과 도도함이 묘하게 섞인 것이었는데, 도저히 일부러는 만들어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마농을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p.22)

 

 

 

 

프리뷰로 보았을 때에도 한 번 인용했던 부분인데요, 이 부분은 참 다시 읽어도 좋습디다. 정말이지 그렇습니다. 너무 예쁜 것은 죄악이란 말입니다. 어느 정도의 죄악이냐, 살인이 일어날 정도의 죄악입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꾸만 마농의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것도 정도를 지나친 끔찍한 살인사건입니다. 그 살인사건은 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 사건을 일으킨 것은 마농일까? 대체 이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척 잔인해. 사람들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가 없어. 사람들이 전부 혼란에 빠져 있어.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 같아.” (p.321)

 

 

이 소설을 읽는 재미 또 하나는 다양한 캐릭터입니다. 마농을 쫓는 과정에서 소설은 독일의 한 강력계 형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형사의 이름은 마탈러, PTSD로 인한 약간의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무기력하기 짝이 없지만 사건을 대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들은 가차없이 잘라냅니다. 진심으로 사건에 임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 대조적인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더불어 이 마탈러 형사의 팀이 또 매력적입니다. 이 소설은 자그마치 15권이 나온 시리즈의 첫 권 답게 마탈러 형사와 그 주변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그런 모습에 조금씩 빠져듭니다.

 

 

“자네는 거짓말쟁이야. 지금 나에게 한 말, 그거 거짓말이지. 아무것에도 관심 없고 자기 자신과 자기가 편한 것에만 관심 있는 사람처럼 말하지만 자네는 속물이 아니야. 속물이었다면 내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거야. 자네 업무여서 날 도와달라는 말은 아니야. 자네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건 자네가 내 친구라고 믿기 때문이야.”

사바토는 말이 없었다. 당혹스러워하는 빛을 숨길 수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친구’란 표현이 처음 언급된 것이다. 요리법을 서로 교환하고 좋은 동료였지만 구체적으로 친구라는 말은 해본 적이 없었다. (PP.271~2)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시점이 자주 바뀌는 소설에는 상당히 약합니다.

헌데 이 소설은 다릅니다. 읽는 맛이 있습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을 읽듯 맛있게 굴러갑니다, 소설이, 문장이, 마탈러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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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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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의 통과의례는 태양처럼 뜨거웠다.  

 

 

모방범을 본 때가 언제였더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5~6년 전이 아닐까 싶다. 워낙 두껍기에(드는 순간 젠장 ㅠㅠ) 이 책 천천히 읽겠지 싶어 느긋한 마음으로 1권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꽤 안 읽혀서 “천천히 읽겠구나, 그래 이게 해리포터도 아닌데...”했다가 1부였던가, 살인자들의 결말이 나고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어라 이거 뭐야. 뭐야. 뭐야??”하다가 그만 2권, 3권을 하루에 다 본 경악할 사건이 있었다. (ㅠ-ㅠ) 잠도 못 자고 다음 날 출근도 못 하고 그대로 3권까지 다 읽고 쓰러져 잤었다. 때문에 이번에도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무서워서 예약구매로 1권을 구입하고는 꾸욱 참으며 저 뒤에 모셔놨었다. (먼산) 분명히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책이 온 후에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모방범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왠 등장인물이 이렇게 많은지(ㄱㅡ;;;) 등장인물 소개할 동안에는 “머엉...”하고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헌데 등장인물 소개가 대략 끝나가는 140페이지쯤인가?? 를 지나자 갑자기 쑥쑥 읽히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려보자 새벽 두 시(ㅠㅠㅠ 내 출근은?? 내 출근은? ㅠㅠㅠㅠㅠ)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참고 내려놓고 자려는데 잠이 안 와서(이거 뭐냐고 ㅠㅠㅠ 이러는 게 어딨어 ㅠㅠㅠㅠ) 다시 벌떡 일어나서 새벽 4시까지 1권을 마저 읽고 매우 불안해 하며 잠이 들었다. 으아... 2권은 또 어쩌나 이러면서 읽는데... ... (ㅠㅠㅠ 이거 뭐임 ㅠㅠㅠ 나 미쳐 ㅠㅠㅠㅠ) 아 진짜 이러면 곤란하다. 때문에 말 그대로 모방범의 추억을 되새겨 버렸다. 모방범만큼이나 잘 읽히는데다 이 흡입력이라니. 내 새벽 돌리도(OTL) 내 출근 어쩌라고(OTL) 넌 해리포터가 아니야(OTL) 하며 결국 읽고 말았다고.  

 

한 중학교에서 남자애가 자살을 했다. 응? 근데 자살이 아니라고?! 왠 투서가 날아들고 학교는 혼란에 빠진다. 언제나 그렇듯 뭔가 작은 ‘거리’가 생기면 이야기는 커지기 마련이다. 또 그 ‘거리’를 무마하려 이야기가 동분서주하게 되어 있다. 특히 이 책에 있는 어른들은 “어떻게든 잘 무마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구멍 난 댐을 엊기로 매꾼다. 그러다 더 일을 키운다. 와, 저러다 어쩌려고?! 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 학교, 완전 무너지게 생겼다. 자, 그러면 이 상황은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또 이 상황은 “누가 이렇게 만들었고 그 책임은 누가 질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 의문에서 1권이 끝난다. 2권으로 바톤터치 완료!  

 

솔로몬의 위증 2편은 내 기준에서는 완벽한 청소년 소설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일단 1편과 달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객체가 중학생들이다. 한 반의 아이들이 직접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부딪히며 이 사건과, 사건에 얽힌 복잡다단한 이익관계와, 자신들의 생각과, 또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딪힌다. 이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다. 또 마음에 와닿는다. 사회란 무엇인가, 규칙으로 이루어진 인간들의 모임이다. 그렇다면 학교란 무엇인가, 그러한 ‘작은 인간들’이 모인 곳이다. 인간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서로 기대고 있는 人이라는 글자로 표현되듯 학교에서는 지리멸렬한 경쟁과 부대낌이 가득하다.

 

솔로몬의 위증 속 세상 역시 그러하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와 서로에게 부딪히며, 닿아가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끔 누가 누구를 죽이거나 상처입히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하여 2권에서는 모두가 상처입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삶은 ‘잘 사는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그 ‘잘 사는 삶’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미야베 미유키는 중학생의 눈을 통해 투명하면서도 잔인하게 그려낸다.  

 

2권을 읽으며 나는 골딩의 파리대왕을 떠올렸다. 파리대왕은 제목 그대로가 지옥의 마왕 중 한 명인 베알제붑을 뜻한다. 파리를 비롯한 온갖 곤충들을 다스리는 베알제붑, 그 파리대왕은 말 그대로 악의 상징이라 하겠다. 골딩은 이 책에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남자아이들의 삶을 통해 악이란 무엇이며, 그 악은 어디에 잠재되어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원시에 던져진 아이들은 점차 달라진다. 자신들이 무엇에 빠져드는지도 모른 채 악으로 스며든다.  그 과정과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은 닮았다.  악이 무엇인지 모른채 학교라는 무인도에서 헤매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발견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나는 이 진실을 알고 싶어 페이지를 하염없이 넘기다가 결국 또다시 새벽 네 시에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권을 들고 출근할 수 밖에 없었다.  

 

1992의 여름은 더웠다. 그 여름 한 중학교에서는 법정이 열렸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아이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지난 겨울에 일어난 한 ‘사건’ 혹은 ‘사건이 아닌 사건’을 검토해 나간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른들이 볼 때엔 우스꽝스럽고 이치에 닿지 않는 촌극이라 하겠으나, 이 작은 사회 ‘학교’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반 즈네프의 말을 빌린다.  

 

반 즈네프에 의하면 통과의례는 3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예전의 상태나 지위에 있던 자의 죽음, 새로운 단계에서 생(生)에 대한 적응을 위한 준비, 그리고 전개 등이 그것이다. 3단계는 의례 속에서 각 각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제1단계는 개인의 분리·격리를 나타내고, 흔히 죽음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제2단계는 추이·조정(調整)을 표현하며, 이 동안에 개인과 다른 사회 성원의 관계는 예전 지위의 관계도 아니고 새로운 지위에서 맺는 관계도 아닌, 중간적 성격을 띤다. 제3단계에서는 통합을 나타내는 의례를 행하며 개인이 예전의 단계에서 일정한 관문을 통과하여 새로운 사회적 지위나 상태를 획득한 사실이 공인된다. 

솔로몬의 위증은 이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1권에서는 사건을 통해 죽음을 다르고, 2권에서는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의 추이, 조정에 들어간다. 그리고 3단계에서는 법정을 통해 아이들 사이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진다. 때문에 이 소설은 미스테리 형식을 취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딸꾹질을 하면 갑자기 “워!” 소리를 질러 놀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뚝, 하고 멎는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런다고 해도 딸꾹질이 멎지는 않는다. 차라리 숨을 꾸욱 참고 목에 힘을 꽉 줘서 횡경막의 압박을 조절하는 편이 낫다. 딸꾹질을 낫게 하는 방법마저도 이렇듯 사람에 따라 다르다. 복잡하다. 딸꾹질이라는 사소한 것조차 이렇듯 사람에 따라 다른데 살인사건을 대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를까.  

 

여기, 솔로몬의 위증은 그 각기 다른 방식을 이야기한다.  

 

솔로몬의 위증이 살인을 다루는 방식이 스릴러처럼 쫒는 과정이냐, 아니다. 그렇다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본격 미스터리냐, 아니다. 여기서 살인을 다루는 과정이란 “왜?”의 이야기다.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이니라 그 행위의 뒤에 숨은 뜻을 찾아보는 과정 되겠다. 살인이라 함은 말 그대로 강력범죄다.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이되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코 저지르면 안 될 범죄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어떻게 처벌받는가. 그 처벌받는 형량은 죄질에 따라 다르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책에서 살인을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충격적으로 다룬다. 바로 단죄하는 자를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 아직 완벽하게 깨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어찌 보면 순수에 가까운 기준으로 단죄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끝은 참으로 아름답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한 장, 나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미야베 미유키가 우리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토록 긴, 8500장에 이르는 소설을 집필하였구나 생각하였다. 내가 보며 너무나 감명을 받은 그 문장은 제 3권 675장 둘째 줄에 적혀 있다. 궁금한 분들은 이 소설을 그냥 펼쳐 읽어도 되겠으나, 나는 이 소설을 1권부터 정독한 후 이 문장을 읽기를 권한다. 너무나 평범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난 후에 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수도 있는 완벽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나는 이 소설의 배경과도 같은 너무나 무더운 2013년의 여름, 어느 날 이 문장을 보며 일을 하다 살짝 눈시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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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거절술 - 편집자가 투고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
카밀리앵 루아 지음, 최정수 옮김 / 톨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엔 시간을 쪼개서 2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갑니다. 책 살 돈이 부족하기도 하고, 원하는 자료가 서점에 없는 경우가 많기도 하여 시간을 쪼개 정독도서관에 들릅니다. 정독도서관, 상당히 오랜만이에요. 한동안 집 근처 도봉도서관만 다녔거든요. 걸어서 40분, 왕복 한 시간 반거리라 운동하기 딱이었는데, 인테리어 공사를 해서 어쩔 수 없이 퇴근 길에 정독도서관에 들릅니다. 또 이번에 쓰는 소설의 무대이기도 해서 다니다 보면 예전에 못 보았던 것들이 무척 많이 보이더군요. 낯익은 것들 사이에 숨은 새로운 것들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자료로 쓸 책을 고르는 데에는 제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습니다. 원하는 책을 고르면 그 책의 목차를 보고 몇 부분을 먼저 읽은 후 그 부분 중에 집중적으로 파고들 주제와 관련된 책을 다시 찾는달까요. 그리하여 책을 몇 권이고 고르고 나면 다음은 제가 ‘그저 읽고 싶은’ 책을 고릅니다. 자료책이 세 권이라면 나머지 세 권은 심심풀이 땅콩에 십자말풀이 같은 책으로 세 권. 그리하여 이번에 고른 책 중 하나는 표지부터 빨간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소설 거절술』이었습니다.

 

아, 나도 당해봤어.

카밀리앨 루아의  『소설 거절술』

 

 

카밀리앨 루아의 『소설 거절술』은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와 닮은 꼴입니다. 서술 방식도 ‘살짝’ 닮았고 ‘조금’ 다릅니다. 이 책은 서간문을 모아뒀거든요. 것도 소설을 거절하는 편집자들의 서간문을요! 우와, 개중에는 제가 예전에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며 거절당해 본 방식도 수두룩해서 엄청 웃었습니다. (크크) 이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되는대로 펼쳐서 보여드리죠.

 

 

둘만의 비밀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몹시 당황스러운 일이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출판사에 투고하신 저자분들에게 편집위원회가

내린 결정을 알리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원고 검토서를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난

목요일에 그 서류봉투를 건네받았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제가 그것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좀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서류봉투를 열고 편집위원들의 검토 결과를 읽어봤어야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래서 편집위원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모릅니다. 대개 무명작가의 첫 소설은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지요. 편집위원들이 긍정적인 의견을

내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어요. 하지만 제가 이 편지를 쓰지

않으면 선생님의 원고 검토 결과는 의문으로 남을 겁니다.

 

제가 부주의로 서류를 잃어버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네, 저는 주의가 산만합니다.

제 상태가 이러니 저도 어쩔 도리가 없네요. 아, 서류봉투가

제 자동차 좌석 밑에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요! 그곳은 아직 뒤져보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제가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부탁드리는데, 선생님께서는 일단 가만히 계셔주세요.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마시고요.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저는 해고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의 이해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비밀을 지켜주시길 당부드립니다.

 

(pp.078~079)

 

 

묵묵부답 

... ...

(p.026)

 

 

하이쿠 

 

 

한 원고에서 튀어나온 불완전한 단어들,

양날검이 치켜올라가 베어버린다.

(p.88)

 

 

이 예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이 책을 펼치면 순간순간 “풋” 소리가 나오지 않고는 베기지 못할 소설 거절술이 가득합니다. 때문에 큰일났습니다. 이제 소설을 제가 어딘가 보내고 나면 첫 문장만 봐도 알 것 같아요. 아 그래서 이제부터는 제가 소설을 보낼 때 이 책을 함께 보낼까 합니다. 포스트잇을 추신을 붙여서요.

 

 

추신.

내 소설을 거절하려면 이 책에 없는 참신한 거절술을 써주시오. (煥)

 

 

... ... 음, 이건 혹시 『작가투고술』인가?

나 이거 주제로 한 편 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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