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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그해 여름의 통과의례는 태양처럼 뜨거웠다.
모방범을 본 때가 언제였더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5~6년 전이 아닐까 싶다. 워낙 두껍기에(드는 순간 젠장 ㅠㅠ) 이 책 천천히 읽겠지 싶어 느긋한 마음으로 1권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꽤 안 읽혀서 “천천히 읽겠구나, 그래 이게 해리포터도 아닌데...”했다가 1부였던가, 살인자들의 결말이 나고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어라 이거 뭐야. 뭐야. 뭐야??”하다가 그만 2권, 3권을 하루에 다 본 경악할 사건이 있었다. (ㅠ-ㅠ) 잠도 못 자고 다음 날 출근도 못 하고 그대로 3권까지 다 읽고 쓰러져 잤었다. 때문에 이번에도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무서워서 예약구매로 1권을 구입하고는 꾸욱 참으며 저 뒤에 모셔놨었다. (먼산) 분명히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책이 온 후에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모방범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왠 등장인물이 이렇게 많은지(ㄱㅡ;;;) 등장인물 소개할 동안에는 “머엉...”하고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헌데 등장인물 소개가 대략 끝나가는 140페이지쯤인가?? 를 지나자 갑자기 쑥쑥 읽히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려보자 새벽 두 시(ㅠㅠㅠ 내 출근은?? 내 출근은? ㅠㅠㅠㅠㅠ)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참고 내려놓고 자려는데 잠이 안 와서(이거 뭐냐고 ㅠㅠㅠ 이러는 게 어딨어 ㅠㅠㅠㅠ) 다시 벌떡 일어나서 새벽 4시까지 1권을 마저 읽고 매우 불안해 하며 잠이 들었다. 으아... 2권은 또 어쩌나 이러면서 읽는데... ... (ㅠㅠㅠ 이거 뭐임 ㅠㅠㅠ 나 미쳐 ㅠㅠㅠㅠ) 아 진짜 이러면 곤란하다. 때문에 말 그대로 모방범의 추억을 되새겨 버렸다. 모방범만큼이나 잘 읽히는데다 이 흡입력이라니. 내 새벽 돌리도(OTL) 내 출근 어쩌라고(OTL) 넌 해리포터가 아니야(OTL) 하며 결국 읽고 말았다고.
한 중학교에서 남자애가 자살을 했다. 응? 근데 자살이 아니라고?! 왠 투서가 날아들고 학교는 혼란에 빠진다. 언제나 그렇듯 뭔가 작은 ‘거리’가 생기면 이야기는 커지기 마련이다. 또 그 ‘거리’를 무마하려 이야기가 동분서주하게 되어 있다. 특히 이 책에 있는 어른들은 “어떻게든 잘 무마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구멍 난 댐을 엊기로 매꾼다. 그러다 더 일을 키운다. 와, 저러다 어쩌려고?! 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 학교, 완전 무너지게 생겼다. 자, 그러면 이 상황은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또 이 상황은 “누가 이렇게 만들었고 그 책임은 누가 질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 의문에서 1권이 끝난다. 2권으로 바톤터치 완료!
솔로몬의 위증 2편은 내 기준에서는 완벽한 청소년 소설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일단 1편과 달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객체가 중학생들이다. 한 반의 아이들이 직접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부딪히며 이 사건과, 사건에 얽힌 복잡다단한 이익관계와, 자신들의 생각과, 또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딪힌다. 이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다. 또 마음에 와닿는다. 사회란 무엇인가, 규칙으로 이루어진 인간들의 모임이다. 그렇다면 학교란 무엇인가, 그러한 ‘작은 인간들’이 모인 곳이다. 인간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서로 기대고 있는 人이라는 글자로 표현되듯 학교에서는 지리멸렬한 경쟁과 부대낌이 가득하다.
솔로몬의 위증 속 세상 역시 그러하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와 서로에게 부딪히며, 닿아가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끔 누가 누구를 죽이거나 상처입히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하여 2권에서는 모두가 상처입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삶은 ‘잘 사는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그 ‘잘 사는 삶’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미야베 미유키는 중학생의 눈을 통해 투명하면서도 잔인하게 그려낸다.
2권을 읽으며 나는 골딩의 파리대왕을 떠올렸다. 파리대왕은 제목 그대로가 지옥의 마왕 중 한 명인 베알제붑을 뜻한다. 파리를 비롯한 온갖 곤충들을 다스리는 베알제붑, 그 파리대왕은 말 그대로 악의 상징이라 하겠다. 골딩은 이 책에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남자아이들의 삶을 통해 악이란 무엇이며, 그 악은 어디에 잠재되어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원시에 던져진 아이들은 점차 달라진다. 자신들이 무엇에 빠져드는지도 모른 채 악으로 스며든다. 그 과정과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은 닮았다. 악이 무엇인지 모른채 학교라는 무인도에서 헤매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발견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나는 이 진실을 알고 싶어 페이지를 하염없이 넘기다가 결국 또다시 새벽 네 시에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권을 들고 출근할 수 밖에 없었다.
1992의 여름은 더웠다. 그 여름 한 중학교에서는 법정이 열렸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아이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지난 겨울에 일어난 한 ‘사건’ 혹은 ‘사건이 아닌 사건’을 검토해 나간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른들이 볼 때엔 우스꽝스럽고 이치에 닿지 않는 촌극이라 하겠으나, 이 작은 사회 ‘학교’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반 즈네프의 말을 빌린다.
반 즈네프에 의하면 통과의례는 3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예전의 상태나 지위에 있던 자의 죽음, 새로운 단계에서 생(生)에 대한 적응을 위한 준비, 그리고 전개 등이 그것이다. 3단계는 의례 속에서 각 각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제1단계는 개인의 분리·격리를 나타내고, 흔히 죽음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제2단계는 추이·조정(調整)을 표현하며, 이 동안에 개인과 다른 사회 성원의 관계는 예전 지위의 관계도 아니고 새로운 지위에서 맺는 관계도 아닌, 중간적 성격을 띤다. 제3단계에서는 통합을 나타내는 의례를 행하며 개인이 예전의 단계에서 일정한 관문을 통과하여 새로운 사회적 지위나 상태를 획득한 사실이 공인된다.
솔로몬의 위증은 이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1권에서는 사건을 통해 죽음을 다르고, 2권에서는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의 추이, 조정에 들어간다. 그리고 3단계에서는 법정을 통해 아이들 사이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진다. 때문에 이 소설은 미스테리 형식을 취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딸꾹질을 하면 갑자기 “워!” 소리를 질러 놀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뚝, 하고 멎는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런다고 해도 딸꾹질이 멎지는 않는다. 차라리 숨을 꾸욱 참고 목에 힘을 꽉 줘서 횡경막의 압박을 조절하는 편이 낫다. 딸꾹질을 낫게 하는 방법마저도 이렇듯 사람에 따라 다르다. 복잡하다. 딸꾹질이라는 사소한 것조차 이렇듯 사람에 따라 다른데 살인사건을 대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를까.
여기, 솔로몬의 위증은 그 각기 다른 방식을 이야기한다.
솔로몬의 위증이 살인을 다루는 방식이 스릴러처럼 쫒는 과정이냐, 아니다. 그렇다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본격 미스터리냐, 아니다. 여기서 살인을 다루는 과정이란 “왜?”의 이야기다.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가 이니라 그 행위의 뒤에 숨은 뜻을 찾아보는 과정 되겠다. 살인이라 함은 말 그대로 강력범죄다.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이되 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코 저지르면 안 될 범죄 중 하나다. 그렇다면 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어떻게 처벌받는가. 그 처벌받는 형량은 죄질에 따라 다르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책에서 살인을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충격적으로 다룬다. 바로 단죄하는 자를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 아직 완벽하게 깨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어찌 보면 순수에 가까운 기준으로 단죄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끝은 참으로 아름답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한 장, 나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미야베 미유키가 우리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토록 긴, 8500장에 이르는 소설을 집필하였구나 생각하였다. 내가 보며 너무나 감명을 받은 그 문장은 제 3권 675장 둘째 줄에 적혀 있다. 궁금한 분들은 이 소설을 그냥 펼쳐 읽어도 되겠으나, 나는 이 소설을 1권부터 정독한 후 이 문장을 읽기를 권한다. 너무나 평범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난 후에 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수도 있는 완벽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나는 이 소설의 배경과도 같은 너무나 무더운 2013년의 여름, 어느 날 이 문장을 보며 일을 하다 살짝 눈시울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