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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더 이상 모르겠어.
다른 사람과 같다는 게 뭔지,
행복이라는 게 뭔지.
p.415
가끔 그런 소설이 있습니다. 완벽하기만 했던 세상을 산산조각내버리는 소설요. 자신이 가진 패를 숨기지 않고 모두 보이며, 나에게도 그러하라고 말하는 소설이요.
저는 옛날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옛날 옛날 한 옛날에'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제 자신의 옛날 이야기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이야기가 싫고, 감추고 싶고, 그저 지금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발가벗겨졌습니다. 그 소설 안에는 제가 있었습니다. 저를 괴롭히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었기에 저는 괴로워했습니다. 나는 이 소설에게, 소설을 쓴 작가에게 소리 없는 질문을 던졌고, 한참을 울다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의 이름은 '그 누구도 너에게 살아도 좋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는 강렬한 한 마디였습니다. '살아있으라, 네가 원한다면 나는 이곳에 언제든지 있으니 나에게 기대라'는 진실된 속삭임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서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화차가 그러합니다. 사실 저는 화차를 요즘 나온 화차들이 아닌 붉은 표지의 책으로 봤습니다. 한 번 읽은 후 그 강렬함을 잊지 못해 다른 화차들을 찾아봤습니다.
저는 화차를 한 장, 한 장 읽으며 괴로워했고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고민의 끝에는 지금의 제가 있었습니다. 그녀와 같은 글을 적고 싶다는 감히 누구한테 말도 못하는 어마어마한 목표를 품은 제가요. 이후 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혼자 글을 쓰며 제 자신이 글을 쓰고 싶어하는 마음과, 제가 원하는 글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좌절하고, 방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저 자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손이 닿는 곳에는 언제나 이유가,
화차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저는,
또 한 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사랑하고 싶은 책,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을요.
이 책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인터넷으로 표지를 보았을 뿐입니다. 내용을 훑어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텅 빈 마음을 안고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게시판에 보였던 이유, 파란 표지에 끌려 몇 번이고 그 책을 기웃거리다 삼 주가 지나서야 마침내 손에 들었을 때와 같았습니다.
이유를 통해 상처를 드러내고, 다시 갈기갈기 찢고, 그 상처를 조금씩 치료해갔다면, 저는 이 책에서 저는 무한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닥쳐온 사랑에 저는 두려워 벌벌 떨었고, 눈물을 흘렸고,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누군가를 찾았습니다. 나를 사랑해줄, 그리고 내가 사랑할 누군가를.
오늘 저는 우연히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와 저는 아주 잠시, 스쳤을 뿐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옷깃을 스치듯 그렇게 서로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걸로 그만이었는데 이상하게 그와 저는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 사람도 겁쟁이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한참 바라보다 서로의 갈 길을 갔습니다. 평소 같으면 별 것 아닐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제 안에 있는 무언가가 꿈틀거렸고, 저는 알 수 없는 가슴저림에 괴로웠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입니다. 사랑을 잊은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사랑을 보여주고 사랑을 일깨웁니다. 사랑의 모든 것을 그립니다. 끔찍한 사랑, 달콤한 사랑도 모두 이 안에 있습니다. 운명같은 사랑도, 의미없는 사랑도 이 안에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미스터리로 풀어냅니다.
유리로 만든 성과 사탕으로 만든 왕자와 공주님들, 우리는 그 안에 있었고 행복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도 불행도 알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완벽하고, 빛났기에 세상 모든 것이 그러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만난 순간 나의 모든 것은 변했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완벽해 보이는 것들'은 내가 '그렇게 보이도록 생각한 것'이며, 나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작은 종이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내 머리를 잡고 반으로 자르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렇게 잘려져 나갈 종이인형이라는 사실을요.
진정한 사랑은 나를 일깨웁니다. 나에게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으라 합니다. 지금까지 신고 있던 굽 낮은 운동화를 벗고 하이힐을 신으라 합니다. 강한 힘에 이끌려 떨리는 처음 신는 높은 하이힐로 떠듬떠듬 걸으며 나는 발이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 울지만 당신은 듣지 않습니다.
당신은 앞을 보라고, 절망하고, 부딪히고, 다시 그곳에서 솟아오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나는 당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떠났고, 당신이 날 떠났을 때에, 나는 무너졌습니다. 당신을 찾았습니다. 홀로 남은 세상에서 나를 이끌어줬던 당신의 강인한 손을 찾았지만 이제 당신은 없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알던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이끌던 강한 손과 어깨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위축되어버린, 그런 당신은 결코 나의 사랑이 아니었고, 나는 이 때 다시 한 번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대신 내 두 발로 일어섰습니다.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신을 잊기 위해 나는 달렸고, 또 달려 지금에 도착했습니다.
사랑이 사라진 9월이란 시간 속에.
우리 모두 다 사실은 알고 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정겹고 낯익은 것들이 사라지고 미지의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p.411
모든 것이 끝난 나는 지금, 허무합니다. 그립습니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이라는 이름의 당신을 만나 지금 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아아, 야속한 당신은 갔습니다. 나를 이 허무한 새벽에 남겨두고 그렇게 떠났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당신을 두고 이제 또 누구를 만나 부딪히고, 싸우고, 제 발로 서 걸어가야 합니까.
그랬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랑하였고,
지금도 저를 떠난 이 책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이라는 낯선 이름의 당신을요.
문을 닫으면 또 시작된다.
밤이 낮으로 이어지고
오늘이 내일로 이어진다.
요리를 하고
일을 하고
웃고
화내고
무엇을 만들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회색 바다 위를 떠다니면서도
그런 환영의 일상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 밖에 뭘 할 수 있을까.
p.422
사진과 함께 보는 리뷰는 요쪽 :
http://cameraian.blog.me/130139322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