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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소녀 ㅣ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 별 생각 없이 학교를 가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어마어마한 미소녀를 봤습니다.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서 그대로 발을 멈추고 입을 떠억하니 벌리고 그 소녀만 바라봤더랬죠. 같은 학교의 동급생이었던 그 소녀는 후에 티비에 단역으로 몇 번 출연을 했습니다만 연기력이 영 형편없어서 결국 딱히 대단한 빛을 발하진 못했지만, 그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새록새록합니다.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지! 때문에 당시에는 와, 나도 저렇게 생기면 참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 책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더라고요.

"너무 예쁜 것도 죄악입니다."
얀 제거스의 『너무 예쁜 소녀 』
얼마 전 프리 뷰 서평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미리 보고 서평을 올렸었는데요, 그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무 보고 싶은 얀 제거스의 『너무 예쁜 소녀 』 http://cameraian.blog.me/130167465218
링크 글에 적은 대로 저는 이 책을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이 책을 것도 PDF파일로 받아서는 단숨에 읽어내렸습니다. (!) 동시에 출판사의 확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반 이상의 내용을 미리 공개하였고 그 내용은 결코 기대에 못 미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우 훌륭했으니까요.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해 봅니다. 한 마을에 소녀가 나타납니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무슨 댄서의 순정 같은 이 소녀의 특징은 딱 하나, ‘어마어마하게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마농은 정말 예뻤다.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으로 예뻤다. 마농의 미모가 얼마나 두드러져 보이는지는, 그녀 옆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와 상관없이 마농은 언제나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는데서 알 수 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이런 느낌을 받게 되고, 보면 볼수록 그 느낌은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 그녀가 자신의 미모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더 매력적이었다. 마농은 마을 광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무도회장을 지나칠 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농의 최대 매력은 천진난만한 순수함과 도도함이 묘하게 섞인 것이었는데, 도저히 일부러는 만들어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마농을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p.22)
프리뷰로 보았을 때에도 한 번 인용했던 부분인데요, 이 부분은 참 다시 읽어도 좋습디다. 정말이지 그렇습니다. 너무 예쁜 것은 죄악이란 말입니다. 어느 정도의 죄악이냐, 살인이 일어날 정도의 죄악입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꾸만 마농의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것도 정도를 지나친 끔찍한 살인사건입니다. 그 살인사건은 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 사건을 일으킨 것은 마농일까? 대체 이 사건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척 잔인해. 사람들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가 없어. 사람들이 전부 혼란에 빠져 있어.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 같아.” (p.321)
이 소설을 읽는 재미 또 하나는 다양한 캐릭터입니다. 마농을 쫓는 과정에서 소설은 독일의 한 강력계 형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형사의 이름은 마탈러, PTSD로 인한 약간의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무기력하기 짝이 없지만 사건을 대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들은 가차없이 잘라냅니다. 진심으로 사건에 임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 대조적인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더불어 이 마탈러 형사의 팀이 또 매력적입니다. 이 소설은 자그마치 15권이 나온 시리즈의 첫 권 답게 마탈러 형사와 그 주변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그런 모습에 조금씩 빠져듭니다.
“자네는 거짓말쟁이야. 지금 나에게 한 말, 그거 거짓말이지. 아무것에도 관심 없고 자기 자신과 자기가 편한 것에만 관심 있는 사람처럼 말하지만 자네는 속물이 아니야. 속물이었다면 내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거야. 자네 업무여서 날 도와달라는 말은 아니야. 자네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건 자네가 내 친구라고 믿기 때문이야.”
사바토는 말이 없었다. 당혹스러워하는 빛을 숨길 수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친구’란 표현이 처음 언급된 것이다. 요리법을 서로 교환하고 좋은 동료였지만 구체적으로 친구라는 말은 해본 적이 없었다. (PP.271~2)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시점이 자주 바뀌는 소설에는 상당히 약합니다.
헌데 이 소설은 다릅니다. 읽는 맛이 있습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을 읽듯 맛있게 굴러갑니다, 소설이, 문장이, 마탈러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