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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먼 소설/ 다산책방
앨런 라이트먼의 소설 [아인슈타인의 꿈]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칼비노가 '공간'을 두고 한 일을 라이트먼은 '시간'으로 구현해 낸 것이다. 물리학자이자 인문학자이기도 한 그는 실로 경이로운 내용과 접근으로 '시간'과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1991년 그를 찾아온 온갖 영감과 동기가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
이번에 다산책방에서 재출간되어 읽게 된 [아인슈타인의 꿈]은 '시간'과 관련된 상징적인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 꾸는 꿈의 수많은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과학과 문학의 절묘한 만남은 '시간'에 대한 1차원적인 인식을 뛰어넘어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선사한다.
시곗바늘은 평생 오른쪽으로 돌지만
시간은 결코 같은 궤도를 돌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특허 담당 공무원으로 지리한 일상 중 '시간'에 관한 꿈을 꾸고 연구에 빠져든다. '시간에 관한 꿈을 꿀 때마다 그럴듯한 시간의 본질이 하나씩 새로 나타났고, 그 가운데서 한 가지가 유달리 마음을 끌었다.'
소설 속에서 시간의 정의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가능성이 존재하는 시간들, 그 매혹적인 시간과 그 안의 수많은 삶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시간이 원이라는 세계,
불행하기 그지없는 이 사람들이
바로 시간이 원이라는 사실에 대한 유일한 실마리다. 마을마다 늦은 밤이면 이들의 신음이 텅 빈 거리와
발코니를 가득 메운다.(p24)
한 세계에 세 가지 차원이 존재하여 선택의 순간마다 세계가 갈라져 무수히 많아지는 세계,
기계 시간과 체감 시간이 존재하는 세계,
두 시간은 모두 참이지만,
두 참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p36)
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시간이 더디 흐르는 세계,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므로 모든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세계,
사람들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자기가 태어난 순간이, 첫 걸음마를 한순간이,
첫 열정의 순간이, 부모에게 작별을 한순간이 어딘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저마다 알고 있는 것이다.(p44)
인과관계가 없는 세계,
순간의 세계다. 진실의 세계다.(p48)
종말의 시간을 다 아는 세계,
시간이 한 시점에 들러붙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세계,
시간이 가만히 서 있는 세계,
시간이라는 것이 없는 세계,
기억이 없는 세계,
시간이 꾸준하게 흐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흐르는 세계,
미래의 단면이 잠시 보이는 이 세계에서는 모험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장래를 내다본 사람은 모험을
할 필요가 없고, 장래를 내다보지 못한 사람은 모험을
하지 않으면서 예지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p87)
움직이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세계,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계,
사람들이 단 하루만 사는 세계,
그의 삶은 토막토막 대화 속에 흩어지고,
사람들 기억에서 토막토막 사라진다.(p106)
시간이 감각인 세계,
사람이 영원히 사는 세계,
아무도 완전하지 않다.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p114)
시간을 질로 가늠하는, 존재하지만 측정할 수 없는 세계,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양으로 따져보고 분석하고
쪼개어보려고 한다. 이들은 돌로 변한다.(p119)
미래가 없는 세계,
시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차원이라 시간의 축을 따라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세계,
시간이 불연속적인 세계,
위대한 시계를 숭배하는 세계,
지역마다 시간이 다른 세계,
미래가 고정된 세계,
같은 것이 수없이 많은 세계,
과거가 바뀌는 세계,
새가 시간인 세계……
시간의 본질이 다른 수십 개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내가 속한 사회에서의 시간과 친숙한 공간에서의 시간과 내가 바라는 시간이 서로 다를 수도,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각의 세계에서도 순응하며 살아가기보다 모험을 떠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같은 시간의 본질 속에서도 누군가는 행복하고 누군가는 불행하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누군가는 그저 휩쓸려 살아간다.
시간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학적 접근에 인간의 본성을 고찰하는 인문적 통찰이 더해진 세계를 만나는 기쁨이 온몸에 차올랐다. 시간의 무게를 체감하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지금 이 순간을 한결 충만하게 만들어준 [아인슈타인의 꿈]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