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심리학개론 만화로 만나는 한학기 교과서
임현규 지음, 이주신 그림, 김청택 감수, 월붓 구성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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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심리학개론은 만만한 교과서(만화로 만나는 한학기 교과서)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학문의 토대가 되는 지식을 쉽게 전달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도록 만화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전문서는 부담스럽지만 흥미 위주의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 학문의 진면모를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사회평론아카데미에서 준비한 친절한 교과서이다. 이어 나올 경제학개론, 경영학개론 등도 관심 있게 살펴보면 좋을 듯싶다.


 

만만한 심리학개론/임현규 글/사회평론아카데미



우선 개론답게 심리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만화로 되어 있어서 한결 쉬운 점은 사실이지만 전문서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된 책이라 만만치 않다.

총 12+1강으로 <심리학이란 무엇인지>부터 <심리학의 진로>까지 구성되어 있다.

 

<제1강 심리학이란> 챕터에서 얕은 지식으로 알아왔던 심리학의 실체를 알고는 놀랐다.

교육학 쪽으로 배웠던 발달심리학, 학습심리학과 관심이 있는 사회심리학 그리고 흔히 알고 있는 임상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은 알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심리학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었다.


 

지각심리학 -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알아보는가

학습심리학 - 경험은 어떻게 행동을 바꾸는가

인지심리학 - 마음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가

발달심리학 - 아이와 어른의 마음은 다르다

성격심리학·심리검사 - 너와 나의 마음은 다르다

이상심리학 - 마음은 어떻게 아픈가

임상·상담심리학 - 마음을 치유하는 법

사회심리학 - 사람들 사이, 거기에도 마음이 있다

 

 


 

 

심리학의 시작은 1879년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 교수인 빌헬름 분트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내성법'을 활용했다. 이는 스스로의 마음을 조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정신활동은 철학자의 연구 대상일 뿐 과학적 연구는 어렵다고 여겨졌지만, 분트의 심리학 실험실 등 분트를 비롯한 심리학 개척자들에 의해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심리학,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론뿐만 아니라 경험적 증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자연과학에 비해 경험적 증거를 모아 가설을 검증하는 데 불리한 심리학은 다양한 인간 반응을 수집하고 통계를 이용하여 경향성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해야 한다. 이를 조작적 정의라 하는데 심리학에서는 같은 개념이라도 연구마다 조작적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고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연구한 여러 연구가 일관된 경향을 보일 때 비교적 확정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니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마음은 뇌에 있다. 그래서 심리학은 뇌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뇌 연구는 해부학적 구조 같은 아주 기초적인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뇌영상 기법 등 기술의 개발로 추상적인 정신활동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분야가 되었다고 하니 뇌연구가 얼마나 심리학에 지대한 발전을 가져왔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다. CT, EEG, MEG, PET, fMRI 등을 통해 살아있는 뇌의 활동을 측정할 수 있게 된 점은 의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뇌 영역별로 기능이 나뉘어있고 이를 찾아가는 과정은 노력의 산물이었다.

 


 

 

더 알아보기 코너에서 <'심리학' 하면 프로이트 아닌가요> 편을 보고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심리학과 전문가의 심리학의 간극을 알 수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시조로 마음속 욕구의 충돌이 인간의 행동 양식을 만든다고 보았으며, 특히 무의식적 욕구의 힘을 강조했다. 그리고 심리학 내에서는 주로 심리치료에 활용되며 철학, 미학, 문학 비평 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특히 현대 주류 심리학이 견지하는 인간에 대한 관점은 프로이트와는 매우 다르며, 대체로 프로이트의 주장에 비관적이고 거리를 두는 편이라고 한다. 프로이트 이론은 검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을 추구하는 현대 심리학의 조류와는 맞지 않다고 한다. 나 또한 심리학자 하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융을 먼저 떠올렸기 때문에 더 흥미를 가지고 읽은 코너였다.

 

관심이 있었던 인지심리학과 사회심리학 챕터를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노엄 촘스키의 비판이 기존 행동주의에 집중되었던 심리학의 방향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 인지 과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이끌어 '인지주의 혁명'을 이루었다. 심리학의 영역이 눈에 보이는 행동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속 활동 즉 주의나 기억 같은 것들을 연구하는 데까지 확장된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 행동을 다루는 다른 심리학 분야와는 다르게 사회심리학은 두 사람 이상이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심리 현상을 탐구하는 사회심리학은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관심이 많았다. 문화, 설득, 편견, 공격성, 친밀감 등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회심리학은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밝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진실을 파헤침과 동시에, 우리 행동에 어떤 요인들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 요인들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부정적 행동을 막고 긍정적인 행동을 늘리는 데 목적이 있다.

 

더 알아보기 코너 <긍정심리학>편은 현대인들이 주목할 만한 심리학 영역을 알려주고 있다.

심리학은 정신의 비정상, 즉 부정적인 측면을 오랫동안 집요하게 연구해왔는데 방향을 전환해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을 연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긍정심리학'은 인간의 강점과 장점을 밝혀내고, 어떻게 하면 개인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분야로,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이라 하기도 한다. 개인의 주관적 느낌과 행복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긍정심리학의 관점과 연구는 점점 주목을 받고 발전하고 있다.

 

종강에서 알아본 심리학의 진로는 사회 곳곳에서 활용될 수 있는 심리학을 보여준다.

범죄/법심리학, 산업/조직심리학, 건강심리학, 소비자/광고심리학 등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분야 모두에서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복잡하고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예전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있어서 정신건강 분야의 수요도 높아질 것이다.

 

만만한 심리학개론을 통해 전공자들이 배우는 진짜 심리학을 맛볼 수 있었다.

김만능 교수의 친절하고 재밌는 설명으로 정슬기 학생과 안우수 학생이 기초를 튼튼히 쌓아 심리학을 더 탐구하러 떠나는 것처럼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직접적인 경험이 되어 학과 선택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용어 해설과 인명, 용어로 분류된 찾아보기가 수록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그리고 현대인에게는 익숙한 이론과 검사들이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접하고 나니 수많은 학자들의 포기하지 않는 시행착오와 연구가 새삼 고맙다.

이어서 출간될 만만한 교과서 중 만만한 긍정심리학이 소개되어서 반갑다. 이번에 알게 된 '긍정심리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출간이 기다려진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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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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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가제본은 항상 설렘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글만으로 만나 오롯이 마음에 닿는 경험을 기대한다. 『호수의 일』 이 하얀 책은 '그대'라 불리길 원하는 작가님의 손 편지를 먼저 읽었으니 마음까지 한걸음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나기 시작한다.

 

호수의 일/이현 지음/창비

 


'정호정'

앞으로 불러도 뒤로 불러도 정호정.

『호수의 일』 주인공으로 대한민국 강북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이다. 집에서의 호정과 집 밖에서의 호정은 사뭇 다르다. 집에서는 사춘기라 그런가 여기는 까칠하고 시니컬한 큰딸이지만 집 밖에서는 쌀쌀맞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성격이 좋은 애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린다. 편한 친구이다. 그건 호정이가 좋아하는 자신이고 엄마는 모르고 알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는, 없게 된 자신이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호정의 반에 '강은기'가 전학 온다. 별다른 느낌 없던 그 애가 말을 걸어오고 서로 집이 가까워 자전거로 통학하는 그 애랑 마주치게 되면서 은기에게 관심이 가게 된다. 호정의 친구인 나래와 나래의 남자친구 보람 그리고 은기랑 점심을 같이 먹게 되면서 은기와 점점 더 가까워진다.

 

'강은기'

전학생. 낡은 폴더폰을 가지고 다니고 카톡을 안 하고 페이스북도 안 한다. 친구들이 물어보면 하고픈 대답만 하고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싫어하는 애들이 있다. 하지만 은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품은 애들.

어떤 질문은 그것만으로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아는 애들.

서로 품은 것을 알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지만 다른 이들과는 다른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 풋풋한 감정이 호정과 은기를 설레고 하고 지켜보는 나 또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들이 잡은 손, 따뜻한 온기를 서로에게 나누어주는, 잡은 손을 서로 놓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 소설은 호정이가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상담받는 형식으로 엮어진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의사는 때로 건성으로 듣는 것도 같고, 쓸데없는 걸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묘하게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러니까 정시가 맞았다기보다, 수시가 싫었던 거네요?" _313쪽

 

호정이는 중증 우울증으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호정이는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마음속에 숨겨놓은 채 얼어붙은 호수처럼 살아왔다. 그러다 자신처럼 상처 입은 영혼, 다 내놓고 보여주지 못하는 상처를 가진 은기를 만나서 마음을 조금씩 열고 다가가게 되는 데...... 사건은 아무런 예고 없이 닥친다. 그래서 대비할 수 없었다.

 

은기의 상처도, 호정의 상처도 다 어른들이 가한 상처이다. 그것도 가족들이 말이다. '처음이라 몰라서 그랬다'라는 흔히 하는 말에 '그게 왜 나야?' 비통한 마음마저 토해내지 못하는 호정을 보면서 미안하고 아프고 서러웠다. 나도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 온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른인데 왜 이리 서툰 게 모르는 게 많은 지.

호정이 부모는 빚을 지고 할머니 집에 애를 맡기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호정은 오갈 데 없는 채, 부모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곳에 내내 있어야 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부모와 고모, 삼촌 앞에서 자신의 생채기를 드러내지 못해서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 상처를 살피고 어루만지려 하는 할머니마저 아직은 마주할 수 없는 그 아이의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이다. 할머니도 원망이 가득한 그 시절 그곳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호정은 은기와의 시간이 끝났다는 걸 받아들인다. 은기의 아픔을 억지로 헤집어놓은 그곳에 자신이 있었기에.

 

은기의 아픔이 타인에게는 한낱 이야깃거리, 비난거리처럼 그려지기도 했지만 다들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조용했기에 미처 전해지지 못한 마음들에 대한 환기가 고맙다. 사실과 결과뿐만이 아니라 진실을 보고자 하는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마음들이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끈다.

 


 

봄이 오면 얼어붙은 호수가 스르르 녹듯이 호정은 은기를 만나 마음이 스르르 녹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온통 흔들렸기에 은기가 아프지 않기를, 슬프지 않기를 바라는 호정은 한 뼘 더 성장했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도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은기와 보낸 따듯한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단단해진 호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돌아돌아 은기와 호정 앞으로 성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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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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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를 잘 읽지 않는다. 평론서는 더욱이 읽어본 적조차 없다. 나에게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괜스레 문학평론가를 저어했다. 그리고 문예지를 기다리기보다는 단행본을 즐겨읽었다. 문예지를 통해 찾아가는 문학을 즐기기 보다 보여주는 단행본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음과 모음』에서 한 계절에 발표된 시와 소설을 각각 한 편 선정하여 그 좋음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시소'라는 코너를 마련하였다. 2021년 첫 번째 봄·여름·가을·겨울 시소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시·소설뿐만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는 특별하고 뜻깊다. 글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오면 독자는 읽고 해석하고 사유하고, 작가는 자식 같은 글이 소화되고 발산되어 회자되기를 원한다. 감동과 여운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 의도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작가 또한 독자의 반응을 알고 싶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런 부분에서 작가와 문학 평론가의 심도 있는 대화는 '시소'를 음미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문예지와 문학 평론가에 대한 호의를 가지게 되었다.


 

시소 첫 번째/자음과모음



2021년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나온 다양한 시, 소설 중 선택되어 계절을 대표하게 된 시 4편과 소설 4편은 딱히 계절감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소설을 즐겨 읽는지라 소설은 집중해서 읽어갈 수 있었다. 역시나 시는 생각처럼 그 짧은 글이 애를 먹인다.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인터뷰까지 읽어보고 다시 읽어야 빌려온 감성과 느낌으로 얕은 감동에 젖을 수 있었다. 시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번 찬찬히 읽어봐야 했다. 소설도, 시도 짧은 글일수록 더 어렵다. 그리고 볼수록 끝없이 빠져든다. 고르고 고른 문장 하나가 뿜어내는 빛에 압도된다.

 

8인 8색 작품 모두 제각기 다른 결들과 감성으로 그냥 지나가버린 것만 같아 인생 중 지우개로 지운 듯한 2021년을 우리 곁에 차곡차곡 쌓아준다. 사계절을 1년을 그렇게 선물한다. 고맙다.

 

8인의 작가 중 '최은영' 작가님만 안다. '시소'의 취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나름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에 무릎이 꺾기 전에 '이렇게 좋은 작가를 많이 알았네.' 기쁨에 팔짝 뛰어야겠다.

소설, 시 모두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관계, 자리, 사랑, 성장을 담고 있다. 같은 사람으로서, 같은 여성으로서, 같은 엄마로서, 같은 딸로서 경험의 공유를 떠나 공감하고 아파하고 더 나아가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공간이었다.

 

활짝 핀 꽃은 마르면서 작은 꽃으로 자랍니다.

그냥 배울 수는 없고요

보고 배워야 가능합니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안미옥 「사운드북」

 

나도 멀리서 보면 별 비슷할까요

그럼 뭐해요

평생 난 나를 멀리서 볼 수 없을 거 아닌가요

...신이인 「불시착」

 

나는 발이 없는 것만이 계속 자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

프레임 안으로 쉽게 미끄러진 다음

화면 바깥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김리윤 「영원에서 나가기」

 

진심으로와

사랑하다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멀었다

...조혜은 「모래놀이」

 

신기하게도 내가 다 아는 단어들인데도 작가의 손으로 나열하고 배열을 마친 시구는 다른 세상의 언어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가슴을 건든다. 그렇지 않냐? 고, 나는 이런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데 기뻤다.

말라버린 꽃을 시든 게 아니라 작은 꽃으로 자라는 시선을 같이 쫓을 수 있어서 기뻤고,

사랑이 절로 솟아나는 감정인 줄 알았는데 많이 보고 배워야 하는, 내가 키워야 하는 감정임을 알고 건조하던 마음이 촉촉해져서 기뻤다.

올려다볼 때는 반짝이는 별이었는데 내려다볼 때는 회색 먼지 뭉치를 굳힌 것 같은 돌, 운석처럼 멀리서 남이 볼 때는 별처럼 반짝여도 멀리서 나를 볼 수 없는 내가 느끼는 착잡함, 불안감, 생경함, 혼란을 무심하듯 툭 투정 부리듯 툭 내비치는 글에서 위로받았다.

「영원에서 나가기」는 형태, 시간, 성장, 영원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작품으로 형태가 온전한 영원을 바라는 마음을 비우고 그냥 흐름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시선이 청아하다.

진심과 사랑 사이의 간격, 매번 헷갈리는 그 틈을 고민하고 있어서 와닿는 시였다.

 

소설 「답신」은 이모가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5월의 맑은 날, 스물세 살이 된 조카에게 투영시킨 자신에게 속삭이는 듯한 고백이 담담하게 펼쳐지는 데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결핍된 애정 속에서 서로에게 집중했던 두 자매의 사랑과 희생이 진실되지 못한 이방인 때문에 계속되지 못한 고통이 그려진다. 그리고 언니와 조카 그리고 나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조카와 주고받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인사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언니에 대한 나의 또 다른 사랑 표현이었다. 부디 세 사람 모두 행복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소설 「프리 더 웨일」은 살아남고자 키워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기혼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 시스템의 폭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집단의 차별과 배제를 그리고 있는 현실성이 강한 소설이다. 싱글맘인 수경은 등단을 한 소설가이나 데뷔작 외에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고 생계유지와 딸 양육이라는 현실 앞에 학습지 회사에 취업을 한다. 기혼 여성 채용에 불만을 가진 내부 직원들의 비난, 험담, 성추행 등을 철저히 외면하고 회사 다른 직원들과 교류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만 한다. 수경뿐만 아니라 딸아이 또한 어린이집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부당한 대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버티는 두 모녀의 모습은 아프고 암울하고 폭력적이다. 수경은 오롯이 품어주던 남편 우상우가 보여주던 다정함이 그립다. 대책 없는 낙관과 무방비한 희망이었대도. 좋은 날, 좋은 기분을 알지 못한다. 그 고백이 씁쓸한 이유는 그녀의 미래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함부로 위로조차 건넬 수 없어서이다.

 

미안하고 슬펐어요. 온 힘 다해 키워낼 거지만, 사랑으로 돌볼 테지만, 이 작은 아기에게 먼 훗날 나를 묻거나 태워달라고 할 생각을 하면……

엄마가 되어 엄마가 걸어온 삶을 다시 살고, 아이를 남겨둔 채 깊고 어두운 땅 아래로 홀로 묻혔다. 죽어서도 무서웠을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이 슬픔이 끝끝내 지속되는 거구나. _369쪽

 

벌써부터 시소 두 번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만난 8인의 작가들이 앞으로 전해줄 이야기에 귀 쫑긋 기울이면서 천천히 그날을 기다려볼 것이다. '시소' 그 적당한 만남으로 행복한 날이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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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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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종말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소혹성(소행성)의 충돌이 가장 흔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 역시 소혹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종말이 선언되고 네 사람이 남은 한 달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들여다보는 네 사람은 행복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남으려 애쓰거나 지구 멸망을 바라는 망한 인생의 표본 같은 이들이다. 남은 한 달 동안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멸망이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나기라 유 지음/한스미디어


☆ 초등학생 때는 실연으로,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학교폭력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아 SOS 신호를 보내는 에나 유키

- 지구에게 지금 당장 폭발해서 인류를 멸망시켜 주세요.

교내 카스트제도에 순응하여 친구 심부름을 하면서 지내던 유키는 지구 멸망 선언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들이 당황하자 인류 멸망 폴더에 '유쾌' 파일을 처음으로 추가했다. 어떤 즐거움이나 구원이 아닌, 어두운 환희로 유쾌한 감정을 먼저 느낀 유키를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곧 현실을 자각하고 '부조리'와 '분노' 파일을 추가한다. 나 또한 믿지는 않지만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을 총동원하여 애원하다가 원망하다가 또다시 매달릴 것이다.

 

☆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부모의 애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메지카라 신지

그는 젊어서부터 주먹을 쓰면서 살아가는 시시한 인생이다. 마흔의 그가 스무 살 때 심장 바로 위에 새긴 이름을 새긴 여자, 에나 시즈카를 찾아간다. 지구 멸망을 앞두고 그가 보고픈 유일한 존재, 마지막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그녀를 찾아 떠난다. 지구가 사라지는 그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건 선택일 수가 없다.

 

☆ 신지를 떠나 홀로 유키를 낳고 키울 수밖에 없었던 에나 시즈카

시즈카는 자신처럼 어두운 시절을 겪은 신지를 이해하고 진정 사랑하지만, 자신을 때리는 신지가 아이마저 때리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를 버리고 아이를 선택한다. 그렇게 떠나왔던 신지가 찾아와 위험에 처한 아들을 구해준다. 같은 엄마라 그녀의 선택과 결단 그리고 그 선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깊이 공감되었다.

 

이렇게 완전체가 된 신지, 시즈카, 유키 세 가족은 유키가 짝사랑하는 후지모리 유키에가 가고 싶어 하는 Loco 콘서트를 넷이서 보러 간다.

 

☆ 이 시대의 가희, 아이돌 Loco

<마지막 순간>의 주인공 Loco는 아름답고 실력 좋은 아이돌이지만 이는 소속사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일 뿐이었다. 야마다 미치코는 록 음악을 좋아하고 마을 친구들과 즐기면서 밴드 활동을 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지구에 소혹성이 충돌하는 그 시간에 고향 마을에서 콘서트를 열기로 한다.

 

 


 

지구의 멸망이 선언되고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다양하다. 결코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거나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분노하거나 끝없이 눈물만 흘리거나 아무 일이 없다는 듯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개인적인 발산이 이제는 사회 전체로 퍼져 강도, 방화, 살인이 일어나 가정을 무너뜨리고 마을을, 도시를 불태운다. 지구가 멸망하기도 전에 인류끼리 서로를 없애려는 듯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다 같이 죽는다는 결말은 이렇게나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인가? 마음을 할퀴는 듯 매서운 바람이 불지만 다행히 세상도 소설 속 이야기도 가혹하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주위를 돌보면서 가슴속에만 품었던 마음, 말들을 털어놓는다.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멸망 선언 전에는 암담했던 내일이 따스한 빛으로 다가오는 묘한 설렘이 전해진다.

 

 

담담히 자신의 심정을 말하는 유키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보다 나는 내가 훨씬 좋아졌어.

예전 세상은 평화로웠지만 언제나 어렴풋이 죽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지금은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앞으로 열흘밖에 없어.

슬프고, 무섭고, 최악이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 괜찮게 변한 것 같아.

세상이 그대로였다면 오래 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런 마음은 모른 채로 죽었겠지.

어느 쪽이 나은 걸까?"

 

멸망을 말하면서 희망과 꿈을 말하게 되는 이 모순 속에서 자신을 좋아하게 되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있는 이 순간만을 생각하면서 나아가는 사람들이 보내는 마지막 한 달이 우리를 설레게 하고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을 전한다. 우리는 아직도 현실 저 너머에서 샹그릴라, 퍼펙트 월드, 엘도라도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그곳이 바로 그곳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한 달 이상은 남았을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사랑하고 표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괜시리 마음이 촉촉해진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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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괴물로 가득 찬 날 삐딱한 K의 재습기 2
강경수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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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보는 강경수 작가님!

삐딱한 K의 재습기 시리즈 2번째 권 <학교가 괴물로 가득 찬 날>을 만나보았습니다.

 

삐딱한 K들이 직접 겪을 만한 일상 속 이야기와 개성강한 캐릭터 그리고 신나는 랩까지 재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잘 갖춰진 시리즈입니다. 강경수 작가님 특유의 삽화가 한층더 생생하게 이야기를 표현해줍니다.


학교가 괴물로 가득 찬 날/강경수/위즈덤하우스

 


<학교가 괴물로 가득찬 날>은 평소 싸움대장으로 친구들을 약골이라 무시하고 빵 심부름을 시키는 유식이가 괴물 학교로 변해버린 학교에서 거꾸로 괴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등장부터 끝까지 랩과 함께 하는 유식이의 모습에 힙합에 심취한 아들이 흥미를 보이네요. 역시 재미와 유머 포인트를 잘 잡아내는 강경수 작가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재미있어야 습관을 기를 수 있어요. 삐딱한 K의 재습기 슬로건에 부합하네요. 아무리 좋은 글, 좋은 가르침일지라도 결국 읽어야 전달이 가능하죠. 재밌게 독서 습관, 생활 습관을 기를 수 있는 적당한 시도가 되어줄 희망이 보입니다. :)

 


 

괴롭히던 입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으로 바뀐 유식이는 그동안 자신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죠. @.@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유식이의 다짐은 과연 지켜질까요?

라임을 맞춰서 어느 상황이든 랩을 구사하는 유식이와 그를 잘 표현한 삽화가 눈에 띕니다. 특히 괴물로 변해버린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눈물의 랩을 선사하는 유식이와 유식이 손에 들린 마이크, 그 랩에 맞춰 춤추고 디제잉하는 괴물들의 모습은 참회의 시간을 어둡고 무겁게 그리지 않아 유식이의 변화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합니다. 유식이의 반성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는 끝까지 보면 알 수 있겠죠. 


반성, 사과 그리고 다짐까지 눈물과 함께 했던 유식이의 괴물학교 체험기를 읽고 친구들과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놓칠 수 없는 매력 * 삐딱한 K의 단어장 *

책 읽기 전 알쏭달쏭한 단어까지 정리해주는 센스.

친근한 어투로 설명되어 있어서 눈에 더 쏘옥 들어온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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