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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언 이야기 -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한 시간 ㅣ 높새바람 54
리언 월터 틸리지.수잔 엘 로스 지음, 배경내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2년 12월
평점 :
새해 첫날 의미 있는 책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어 가슴 벅차다.
리언 이야기/리언 월터 틸리지 지음/수잔 엘 로스 콜라주/바람의아이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30년 넘게 관리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리언 월터 틸리지'의 이야기와 '수잔 엘 로스'의 콜라주가 어우러진 《리언 이야기》다.
주인공 리언은 백인 존슨 씨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소작농으로 사는 가정의 둘째 아들로 1936년에 태어났다. 8명의 형제와 신심이 깊은 부모님을 가족으로 둔 리언은 성장하는 동안 많은 차별과 폭력을 겪었다. 리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 인권, 평등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겨준다.
책 속 시선이 머무는 그림을 작업한 수잔 엘 로스는 딸이 리언 틸리지 씨의 연설을 듣고 온 후 들려준 이야기에 감동받고 그를 찾아가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지 않겠냐고 권했다. 리언 씨가 녹음해 준 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받아 적어서 만든 책으로 그가 말한 바를 그대로 살리고 존중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콜라주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 관한 책, 소설, 실화 등을 읽어보고, 리언이 살았던 고향까지 방문하였다고 하니 수잔의 진심에 감복하게 된다.
얇은 두께의 책 한 권에 담긴 한 흑인의 자유를 향한 갈망과 실천의지는 강건하고 거대하여 우리를 압도한다. '유색인'이나 '껌둥이'로 불리며 이유 없이 차별받고 폭력 당하면서도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조차 못 했던 할아버지-아버지 그리고 리언의 어린 시절은 처참하고 끔찍했다.
리언은 "왜 이 미국 땅에서는 우리 흑인들이 잘해 봤자 항상 2등이어야만 하는지……" 물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한 질문이었다. 부모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거야 원래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런 거지.
흑인들은 그렇게 살게끔 되어 있어.
우린 결코 백인과 동등해질 수 없어."
리언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나갔다. 그래서 읽는 우리는 그 행간에 담긴 상처, 슬픔, 고통을 더 깊게 새기게 된다.
학교생활에서 겪은 차별과 폭력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편견을 읽을 때는 인간에 대한 회의감에 치를 떨다가도 그 시대에도 흑인을 동등하게 대해주는 백인 부부 이야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였다.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백인 전용 공간과 제도들에 대한 이야기 중 제도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부분에서 변화를 향한 기대와 기운을 예감할 수 있었다. 흑인에게 음료수를 파는 곳에서 산 음료수와 살 수 없게 금지된 곳에서 구한 음료수와는 의미가 달랐다. 맛이 아니라, 어디에서 그 음료수를 구했는지가 중요했다는 문장이 크게 와닿았다.
리언의 열다섯 살 생일날에 벌어진 비극은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흑인 사회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백인들의 태도는 그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백인들은 자기 아이들한테 흑인은 감정을 느끼지 않고 영혼이 없으니까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고 가르쳤다는 글을 읽으면서 불과 100년이 채 되지 않은 과거라는 사실에 소름 끼쳤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평등, 인간의 존엄성, 인권은 이런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 자유와 민주의 땅, 미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결정하는 게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어.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이 우리가 기꺼이 몸을 던진 이유였단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어."
비폭력 행진으로 흑인 인종차별을 극복하고자 힘썼던 그 시대 변화의 한복판에 있던 리언의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향한 의지와 소망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리언 이야기'가 가진 힘이 온 세계에 퍼져나가길 바란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