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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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대인의 우수한 능력을 다루는 서사에 익숙하다. 핍박과 박해를 이기고 끝끝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국한 민족이 중심 인식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이야기들 속 진실을 찾아가는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를 살펴봄으로써,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차별'과 '공정' 담론을 비추어보고자 한다.

기독교도가 유대인을 창조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을 창조했다. 정의길 저자는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는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없는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대인, 발명된 신화 /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저자는 진실이라 알려진 사실의 기둥을 하나씩 부숴가면서 '만들어진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신화'를 면밀히 톺아보고 있다.

 

시작은 이스라엘의 기원을 파헤치는 작업부터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성서'다. 성서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력을 줬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성서의 내용에 바탕을 둔 이스라엘의 기원설은 붕괴되었다. 하지만 대중의 의식, 특히 보수적 기독교계 안팎에서는 여전히 정설이다.

 

그렇다면 야훼 유일 신앙에 바탕한 유대교와 성서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진실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1943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신의 영감'에서 성서 비평 허용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비판적 성서 연구는 폭넓게 수행되었고, 이는 성서의 역사성 부정하는 결과로 모아졌다. 성서 고대 이스라엘이 아니라 페르시아 헬레니즘 시대 때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추방, 유배, 유랑, 이산, 박해, 귀환.

유대인 하면 떠오르는 상징어들이며, 이스라엘 건국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의 근원으로 각인되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당해 지중해 전역으로 이산된 게 사실일까? 유대사를 근거를 들어 유대인의 추방은 자발적이며 기원 전후 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유대교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이교를 믿던 현지인들의 개종이라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 공동체의 확산을 주제로 유대인을 혈통상 단일민족이라 보는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 유대인을 하나의 민족이라 가정한다면, 저자의 말대로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작품 <베니스의 상인> 속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유대인이다. 서구 기독교 문명 세계에서 쓰인 [유대인 = 고리대금업자]라는 프레임에 대해 강요인지 선택인지 설득력 있게 접근하고 있다.

중세 말기에 유대인들이 스스로 요청하여 형성된 자치구역인 게토 그리고 유대인의 특수한 사회적 위치에 대한 서술은 자연스레 게토로 대변되는 멸시와 천대 속의 유대인과 신흥 중산층으로 발돋움한 궁중 유대인의 양극화를 수용하게 하였다.

 


 

이제 여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는 유대인 음모론의 최고봉 <시온 장로 의정서>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당시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를 폭로하는 사실적 기록물로 받아들여져 반유대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해 박해가 심해지자 동유럽 유대인들은 서유럽과 미국으로 집단 이주를 하였다. 서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가 격화되어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귀결되었다. 이는 또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시오니즘을 촉발하게 되었다.

 

드디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현지 주민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필연적 결과물이었다. 유대인이 기독교도에 맞서기 위해 정체성을 확립한 것처럼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이방에서 온 유대인이 새로운 집단으로 출현하자 그에 맞서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민족으로서의 자각이 그것이다.

 

점령하고 있던 영국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랍 주민의 주장 모두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분할하여 두 국가 해법을 내놓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유대인 국가는 수립되고 난민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민족의 독립 국가 수립은 좌절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우경화되어 '유대 민족 국가 기본법'이 통과되었다.

 

"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조국이며,

그들은 배타적 자결권을 지닌다.

"

 

 

정의길 저자를 따라 유대인의 신화를 살펴보았다. 유대인의 정체성은 과연 스스로 형성한 것인가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다. 그리고 배타적 민족주의에 의해 피해 받은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이 배타적 자결권을 주장하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차별'과 '공정'에 대한 진정한 해답을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책이다. '우리'를 정의하기 위해 '저들'을 만들어내는 모순을 행하지 말자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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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허스토리 - 여성과학자 대백과 사전
애나 리저.레일라 맥닐 지음, 구정은 외 옮김 / 학고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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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허스토리>는 과학사에 숨겨진 여성의 이름을 찾아가는, 힘겹지만 벅찬 여정을 통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책이다.

 


사이언스 허스토리/애나 리저 & 레일라 맥닐 지음/학고재


 



 

<사이언스 허스토리>는 잊힌 여성과학자들을 수면 위로 올리는 목적 외에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환기를 게을리한 반성 또한 담고 있어 더 눈길이 간다.

 


과학의 역사에서 여성들이 한 일이 누락된 것은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잊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하는 것 또한 행위를 통해 이뤄진다. 증거가 폭넓게 존재할 때조차 자연의 연구에 여성들의 기여를 간과한 것은 태만함 때문이기도 하다. (17쪽)

 


약자로서 시대의 편견과 차별에 굴복하지 않고 개인적 명예를 넘어 여성 흑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권리를 확대하는데 이바지한 과학사 속 여성과학자들의 업적과 기여에 무관심했던 나는 날카로운 비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변화는 힘을 얻어 계속될 것이다.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고대에도 여성과학자가 있었나?" 천문학, 점성술 분야와 이집트 여성 의사를 알려주니 깜짝 놀랐다. 당연하고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역사에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남긴 경우가 드물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어느 분야나 힘겨웠다. 특히 과학 분야는 '여성성', '감성'을 표면으로 내세워 여성학자들의 능력을 폄하하고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천문학, 산과에 집중되었던 분야들이 해부학, 식물학, 간호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 대부분은 남자 동료의 조력자, 비서로 인식되거나 감정적 글쓰기로 아마추어적인 '숙녀들의 과학'으로 폄하되거나 인종 차별을 겪기도 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남성 과학자들 이야기도 등장해서 그들의 업적 이면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가 아는 과학의 역사의 순수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과학의 역사적 순간에 존재했지만 기록되지않은 수많은 여성과학자들을 만나면서 솔직히 놀랐다. 그럴거라는 상상과 확실한 현실은 다른 것이었다. 안타깝고 화가 나면서 고마웠다.


 

"천문학에서 (여성 계산원의) 능숙한 실행, 세부사항에 주의를 아끼지 않는 인내심, 빠른 이해력 등이 재차 돋보였다. 그들에게 명성을 안겨준 이런 요인들은 주부이자 가정 관리자 능력의 더 넓은 표현일 따름이다.

과학의 세계에서 여성들은 얼마나 뛰어난 성과를 거뒀든 남성의 경쟁자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남성들의 일을 보완하고 확장하며 때로는 협력자로 제안하고 계획하여 그들의 일을 완성할 수 있게 도왔다."

[뉴잉글랜드 매거진]

 

 

'최초'의 수식어를 달았던 여성과학자 뒤에는 잊히거나 왜곡되거나 지워진 수많은 여성들이 존재했다. 업적에 지대한 공헌을 하거나 본인의 업적임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은 어떨까.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성과학자들은 억압받고 차별받고 무시당하면서도 그들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그리고 연대하여 미래세대들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학교를 세워 인재를 키우고, 제도 마련을 위해 투쟁하고 목소리를 내었다.


 

 

 


<사이언스 허스토리> 저자들은 잡지 레이디 사이언스 공동창립자이자 공동 편집장인 애나 리저와 레일라 맥닐이다. 이들은 이 책을 통해 과학의 역사 속에 숨겨진 여성과학자들의 서사를 꼼꼼하게 그려냈다. 그들의 인생을 통해 과학을 사랑하고 지식을 탐구해온 여성들의 유구한 시간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부정하고 폄하하고 지운 구조적·제도적인 힘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 글을 마주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당부한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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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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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게 묶은 머리, 반듯하게 편 허리, 오롯이 손에 든 책에 꽂힌 시선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평온한 시공간. 정여울 작가의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만나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정여울 산문/ 한겨레출판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에 오직 작은 부분만을 살아낼 수 있다면, 그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_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에서

 

정여울 작가는 이 문장이 던지는 화두가 '문학이 왜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아름다운 대답처럼 들린다고 했다. 문학을 통한 다채로운 상상과 감정이입을 통해 '나만의 편협한 삶'에 갇혀 있는 자신을 구원해 준다고. 그래서 문학이 너무 멀고, 거창하고, 심오하고, 다가가기 힘든 그 무엇으로 느껴지는 우리와 문학 사이의 가교 역할을 기꺼이 해내고 있다.

 

 

정여울 작가가 우리 손을 잡아서 이끌어준 문학은 시리도록 아름답고 무참히 슬프면서도 삶의 면면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비춰주었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마음이 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여유와 섬세한 감각은 문학을 좀 더 친숙하게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문학을 사모하는 마음이 담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그 무게에 압도되어 어느새 공명하게 된다. 문학을 통해 인생을 명징하게 톺아보는 일은 이야기의 힘을 오롯이 누리는 시간이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뿜어내는 다채로운 삶의 빛깔로 둘러싸여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감사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나 개인의 감정과 고통을 넘어 수많은 문학 작품 속 처절하고 치열한 실체를 갖춘 그것을 만나고 나면 개인의 현재를 마주 볼 수 있음을 정여울 작가는 진심 어린 문장으로 전한다.

 

주제별로 심혈을 기울여 선정했을 작품들 목록을 살펴보면서 언제 다 읽지 싶어 난감하면서도 행복하다. 이미 읽은 책들도 정여울 작가의 정제된 글로 만나니 모르는 책처럼 새로웠다. 그래서 궁금해지고 호기심이 인다.

 

 

 

 

모모가 자기 삶이라는 소중한 장작을 태워 피워올리는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그 따사로움으로 크로노스의 시간에 저당잡힌 오늘을 풀어줄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노란 표지의 모모 책을 펼쳐들고 모모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이야."

 

일상 속 '문학적인 순간'을 가슴 뭉클한 일화로 전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의 멘토이신 문학평론가 고 황광수 선생은 힘겨운 투병 끝에 건강을 회복하여 시인 김정환 선생을 오랜만에 만났다고 한다. 김 선생은 70대의 황 선생에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프랑스어판으로 선물하셨다. "난 불어도 못하는데 왜 이걸 주는 거야?" "그러니까 오래오래 살아달라고." 김 선생의 마음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문학을 향한 끝없는 사랑으로 맺어진 이 끈끈한 우정, 끝까지 눈부신 문장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놀라움 그리고 기쁨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그 마음에 그저 감명받을 수밖에 없었다.

 

 

달빛이 너무 탐나

물을 길러 갔다가 달도 함께 담았네.

돌아와서야 응당 깨달았네.

물을 비우면 달빛도 사라진다는 것을.

_ 이규보 <영정중월>

 

우리는 '상황'을 뛰어넘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이규보의 한시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야생사과> 속 공간에서 한줄기 빛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상황의 마법에 걸려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오랜 습성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함을 정여울 작가는 적확한 작품과 문장으로 펼쳐 보인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얻고 누릴 수 있는 수많은 가치와 깨달음은 <문학이 필요한 시간>으로 회귀한다.

부끄러움의 소중함과 조용한 배려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자비를 가르쳐준 존재와 자비를 배운 존재의 완벽한 하모니로 거대한 사랑을 실현한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논제로섬 게임을 SF 공간을 배경으로 그려낸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들은 인간답게 더 나아가 더 나은 존재로 성장시켜준다.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사소 바다>,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처럼 다시 쓰기로 원작이 가진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글로 재탄생하는 이야기의 멈추지 않는 생명력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연대와 공감이 있는 문학은 더할 나위 소중하다.


문학을 통해 우리의 상처를 치유받고, 잠재력을 찾아보고, 단련하고 성장하며, 위로받고 꿈꿀 수 있음을 정여울 작가는 섬세하고 다정한 문체로 속삭인다. 문학을 저어하는 이들에게 문학이 밝혀주는 길의 찬란함을 나누어주는 가교로서 움츠렸던 날개를 펴 힘찬 날갯짓을 시작하기를 응원하고 있다. <문학이 필요한 시간>, 한층 더 충만한 삶을 열어주었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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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밖에 네오픽션 ON시리즈 5
최도담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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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밖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라면? 문학 읽기의 대표적 방법을 대입해 본다면 90%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공감한다. 10%는 현실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두려움이다. 최도담 작가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 흡입력이 강한 문장으로 이야기에 집중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최도담 장편소설/네오픽션/자음과모음



 

 

「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인내심이다. 」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봄날>이라는 상큼한 제목으로 시작하는 글의 시작이라 보기에는 거리가 있다. 소설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조손가정을 배경으로 복수와 증오 그리고 이를 허무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라경은 어린 시절 계부로부터 본인은 성적 학대를 받고 엄마는 폭력을 당했다. 이혼 후 엄마는 죄책감과 자책감에 무너졌고, 기어이 사랑하는 딸과 엄마(할머니) 앞에서 햇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찬란했던 빛은 그녀를 흡수하였다.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곪아 기어이 고름이 터졌다. 그렇게 상처의 무게는 더욱더 무거워져 라경과 할머니의 인생을 짓눌렀다. 서로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던 두 사람. 그 슬픈 삶은 어떤 목적에서 교차되고 갈라진다. 소설을 읽으면서 서로에게 최선의 앞면만 보여주고 싶어 했던 두 사람이 떠나지 않아 먹먹한 마음이 지속되었다. 라경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할머니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모두가 이해되고 공감되었다.

 


 


악은 되돌아왔다. 더 크고 더 악랄하고 더 잔혹한 악이 사라진 악의 자리를 채웠다. 라경이 느꼈을 무력감과 절망감을 나도 글 너머에서 똑같이 느꼈다.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전개로 무력한 자신을 탓하고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는 라경이 아니라 제자 상하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대응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어른 라경이 그려졌다. 과거가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않으면 과거는 과거로 남을 수 없다. 라경은 자신 같은 현재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하에게 손을 내민다.

 

 

"그 사람을 죽이고 싶어요."

"우리 죽이지는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자."

"죽이는 거 말고 다른 건 다 싫은데."

"그럼 죽일까?"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고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라고 뜻풀이되는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정의'는 귀한 듯하다. 약자, 소수자의 정의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짓밟히고 왜곡되는 경우는 빈번하게 목도하지만, 반대는 흔치 않다. 소설 속에서도 악은 사회적 제도와 법 안에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그래서 라경은 직접 그를 벌하기로 결심한다. 왜 피해자가, 약자가, 개인이 직접 심판해야 하는지 개탄스러웠다. 라경과 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죽이려 했던 놈이 의문의 사고로 죽었다.

 

 

나쁜 놈을 죽이는 사람의 이름을 '연'으로 지은 작가의 센스가 마음에 든다. 연을 끊다. 확실한 결과를 보장하던 그가 라경의 의뢰를 실패한 진짜 이유를 쫓다 마침내 마주한 진실 앞에 가슴이 미어졌다. 라경과 할머니 영혜가 서로의 존재 하나로 버텨온 삶 자체는 가엾고도 아름다웠다. 떠나는 이가 남겨진 이를 위해 살피고 살펴 엮어놓은 인연의 고리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십자수를 놓듯 촘촘하게 완성한 끝은 라경만은 다른 삶,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해. 행복해야 다 괜찮아진다." 

 "지금도 행복해." 

 

 

라경같은 존재가 없길 바라지만, 있다면 부디 그 곁에 할머니처럼, 지나처럼 삶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건강한 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라경의 달라진 삶을 응원한다. 부디 행복하기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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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장지 얍! 책 먹는 고래 38
노명숙 지음, 기미르 그림 / 고래책빵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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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장지뱀,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의 뱀이었다. 뱀목 장지뱀과의 파충류로 몸길이 7~9cm, 꼬리 길이 10cm인 작고 깜찍한 뱀이었다. 아무르 지방에서 처음 발견되어 아무르장지뱀으로 불리는 이 뱀이 주인공인 동화책이 출간되었다.

 <아무르장지 얍!> 주문 같은 제목에 호기심이 생긴다.

 


 

아무르장지 얍!/ 노명숙 글/ 기미르 그림/ 고래책빵


 


실물과 똑같이 생긴 아무르장지뱀 여러 마리가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는 앞표지 그림은 평온하고 즐거워 보인다. 뒤표지 그림은 비장한 표정으로 다른 장지뱀들을 바라보는 장지뱀 한 마리와 꼬리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거나 힘을 주며 외치는 듯한 장지뱀들 모습에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노명숙 작가는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 겪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이 글을 썼다. 인간 중심의 사고와 이기심이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잘 풀어내고 있다. 이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인간만이 공동체를 이루고 감정을 나누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좁은 시선에서 벗어나 지구 안 모든 생명체들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다정한 마음이 담겨있는 책이다. 지구상 동물들의 '수호천사'를 꿈꾸는 노명숙 작가의 소원이 이 글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도 스며들기를 기대해 본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은 80억 명이 넘는다. 이런 인구 폭발은 지구 생태계 변화를 야기했다. 지나친 도시화는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로 이어졌다. 그리고 늘어난 인간의 식량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들도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동화의 시작도 인간의 활동으로 파괴된 마을을 떠나 새로운 터전으로 향해야만 하는 장지뱀들의 고군분투기다. '드론'을 '새'로 안 장지뱀들은 갑자기 쏟아진 농약에 할아버지 장지뱀들을 떠나보내고 큰 결심을 한다.

 

무지개학교 화단으로 이사를 가기로 한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을 떠나기로 한 대단한 결심이나 만만치 않은 길이 앞에 놓여 있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수로를 건너야 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험난한 고생길이었다. 그렇게 장지뱀들은 화단에 터를 잡고 무지개마을을 만들었다.

 



 

소중한 곳을 떠나와 자리 잡은 무지개마을에 익숙해져가는 장지뱀들이 그려진다.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이지만, 학교에 마을이 있기에 새벽이나 저녁에 움직이고 낮에는 낮잠을 자거나 쉬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 본능을 바꾸는 모습에 슬프고 미안하며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을이 학교 화단에 있으니 무지개학교 학생과 마주치게 되고 장지뱀들의 비밀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

"아무르장지 얍!"

이 주문은 무슨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일지…

 



 


이 장지뱀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처럼 다른 동물들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좋겠다.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본 단순히 작고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잘 전달하고 있다. 미처 살피지 못했던 부분을 자신의 입장처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환기도 잊지 않고 있다. 다른 동물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명하여 채식을 하는 토미와 그런 토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유연한 부모의 모습은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조명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토미에게 고마움을 갚은 메뚜기를 보면서 어린이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 지도 궁금하다.

 

넘치는 상상력으로 장지뱀들의 세계를 따뜻하게 그려낸 수호천사 노명숙 작가의 진심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쟐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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