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지음/ 한겨레출판


 


한겨레 하니포터 7기 9월 신간도서 목록 중 <일터의 죽음>이라는 가제의 책이 있었다. '산업 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산재의 구조적 원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당연히 알아야 할, 읽어야 할 책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그것도 사고로 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터에서 매일 일어나는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는 일이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목숨을 빚진 자로서 사고로 잃은 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어떤 꿈을 꾸었으며 그를 잃고 살아가는 남은 이들의 삶을 알아야 하기에 책을 펼쳤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 안전할 권리 등을 주제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인 신다은 저자는 그동안 모은 지식을 이 책에 담으면서 2가지 목표를 세웠다.

 

1. 그나마 알려진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

그 기저에 기업 조직의 어떤 관습과 인식이 있는지 탐구하는 것

2. 연간 800여 명에 달하는 산재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왜 공개되지 않으며

이를 드러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아보는 것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산재 사망사고를 보도 내용대로 받아들인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고로 일터에서 노동자가 죽었다'라는 사실과 매번 되풀이되는 '피해자의 과실' VS '사측의 안전 관리 소홀' 변명 같은 원인 분석을 보았다.

한 사람,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을 귀한 목숨이 허망하게 떠나버린 그 자리를 그냥 흘깃 보고 떠나버렸던 것이다. 아프고 안타깝지만 한걸음 뒤에서 남의 일이라는 방어 기제가 결국은 이름 없는 죽음을 만드는 일을 거든 게 아닌가 싶었다.

 


 


 


 

신다은 저자는 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평택항 이선호 씨 등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설명하였다. 이는 관련자의 위법사항을 수사하여 처벌하는 데 집중하는 현재의 산재 조사와 수사와는 결을 달리한다. 사고마다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원인을 밝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워 다른 사고를 방지·대비하는 게 목적이다.

산재가 일어나면 은폐하거나 사적으로 보상하는 '공상'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설사 수사를 한다 해도 제대로 처벌받은 이도 없고 사고를 촉발한 구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조사도 없다. 정확한 원인이 빠진 분석으로는 또 다른 사고를 부를 뿐이다. 저자의 설명 덕분에 산재 사고에 대한 접근과 인식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산재가 일어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알게 되니, 사고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고를 은폐하고자 하는 기업을 상대로 유족들이 대응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해 보였다. 그렇기에 연간 800여 명의 산재 사망자가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사고는 연간 1,2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산재를 유형별로 분류하여 구조적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섯 가지 유형들을 살펴보면서 '안전'을 일부 부서나 일부 전문가의 영역에 한정 지어 책임을 부가하는 현 모습이 언제 어디서든 산재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듯하여 불안하고 안타깝고 분통 터졌다.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것이 더 비극적이다."

낸시 리브슨, <CAST 핸드북 : 사고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방법>

 

 

 

그렇다면 산재 위험은 왜 숨겨지는 걸까? 기업, 정부 기관, 노조, 언론까지 4가지 영역으로 산재의 원인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는 사회 구조적 배경을 정리해 주었다. 산재를 둘러싼 소통의 부재가 드러났다.

 

기업 조직의 안전 관리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생산과 안전이 대립하는 경우 기업 조직의 무관심 그리고 안전 관리를 특정 부서에만 맡겨놓는 구조가 소통의 부재를 부른다.

 

또, 산업안전감독관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노동부와 현장에서 서로 다른 상황도 소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처벌과 예방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처벌과 원인 분석, 대안 제시가 함께 발맞춰가야 효과가 클 것이다.

 

안전한 일터를 구축하는 데 노조의 역할은 중요하다. 현장의 업무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도 노조도 산업안전에 대해 최근에야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노조 스스로 체계적인 역량 강화는 물론 노조 활동폭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도 거론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말이 잘 알려진 소수의 사건들은 용기를 낸 동료들과 그들을 돕고 보호하는 노조와 시민단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수사 정보 유출을 이유로 유족들에게는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한 구조 속에서 유족들은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같은 사고가 다른 사람에게도 발생하지 않으려면 무슨 조치가 취해졌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원할 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토록 힘겨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다니. 온당 유족이라면 죽음에 대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과 배려가 필요한 시기에 투사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무참하게 다가온다.

 


 


 

 

 

생산을 목표로 하는 기업. 하지만 생산량, 납기에 우선하여 그 일터에 나와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게 기업이다. 그리고 몇 단계로 내려가는 하도급이나 원ㆍ하청의 안전 관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안전에 관해 누구나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정부 기관이 주도적으로 노동안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환경 개선과 인식 변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더 많이 물어야 한다. "왜?" 깊이 공감한다.

 

유족, 동료, 산재 활동가, 노조, 산업안전감독관, 안전관리자, 시민단체 등 다양한 창구로 조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저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산재와 안전 관리를 좀 더 면밀하게 지켜봐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다.

 


누구나 태어나 한번 죽는다. 죽음의 무게는 똑같다. 그 죽음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면 이는 살인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나.

스쳐 지나가는 뉴스가 아닌, 서사를 부여해 '노동자의 귀한 목숨이 스러진 중대한 사건'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죽은 이를 추모할 수 있고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

 

김용균 씨, 김 군, 이선호 씨, 김다운 씨, 정창우 씨, 김재순 씨, 남현섭 씨…… 책 속에서 만난, 안타깝게 스러진 분들의 이름을 되뇌어 본다.

 

이름 없는 죽음을 밝히는 악전고투에 힘을 실어주는 걸음을 함께 하고자 기억하려 한다. 살고자 일하는 터전에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퇴근할 수 있는, 존중받는 사회는 우리의 관심과 연대가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경민 #지켜야할세계 #사전서평단 #다산북스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신작

 

지켜야 할 세계/ 문경민 장편소설/ 다산북스



 

 

문경민 작가의 신작 『지켜야 할 세계』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30년 차 국어 교사 정윤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켜야 할 세계』는 특히 그가 쓰러지기 전 마지막 한 해를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가제본이라 도입부만 볼 수 있어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의 죽음을 알고 읽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더 아리고 먹먹하게 다가와 중간중간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그가 지켜야 할 세계는 무엇일까?

어릴 적 헤어졌던 장애를 지닌 동생인지,

좋은 교사가 되고자 마음먹고 들어선 학교인지,

학교에서 만난 동생과 비슷한 학생 시영인지.

그가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켜내고자 했던 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정윤옥, 그를 두고 고집스럽고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라 이가 있고, 단단하고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라는 이도 있다.

내가 지켜본 그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옹골찬 사람으로 자신의 바람과 기대를 부정하는 현실의 시선과 잣대에 상처 입으면서도 의연하게 나아가는 이었다.

 


사범대에 진학하였으나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동기들과는 달리 '교사'를 꿈꾼 정윤옥. 자신이 겪었던 교사와는 다른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한 그였기에 교직 생활이 순탄치 못했으리라.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대학교를 거쳐 청운을 품고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었을 그를 감히 헤아려보면 가슴이 지끈거린다.

 

 

윤옥이 어릴 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제 서른 초반의 어머니가 홀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독해져야만 했던 산동네 생활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대신해 장애를 가진 동생을 돌보느라 집에 매어버린 어린 딸이 눈에 밟혔으리라. 지호한테도 나으리라 생각했고, 그보다 윤옥이 살고 어머니가 살고자 힘들게 떠나보냈건만 마음의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윤옥이 시영 학생을 보면서 챙기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의 기저에는 눈물 그렁한 눈으로 헤어진, 떠나보내버린 동생 지호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가 시영을 계속 자신의 그늘에 두려고 하는 행보가 고등학교 관리자에게 거슬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학부모들이 작성한 '수업 관찰 분석 보고서' 내용으로 보아 입시에 전념해야 할 고2 학생을 담당하고자 하는 게 탐탁지 않은 것이라 예상되어 씁쓸하였다.

 



국어 교사로서 지식의 전달과 이해를 위해 쉼 없이 수업 내용과 교수법을 고민하는 윤옥을,

가족 같은 존재였던 수림 엄마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부쩍 수척해지시고 멍든 얼굴에 다리까지 저는 어머니를 보고 충격받은 윤옥을,

목사에게 떠나보낸 동생 지호를 찾아가서 비참한 진실을 마주하고 부서져내린 대학생 윤옥을 만나는 내내 그가 지켜야 할 세계에 대해 생각이 깊어져만 간다.

 

그가 걸어온 굴곡 깊은 인생길에 남들은 어쩔 수 없다고 다독일지라도 그는 인정할 수 없는 건 무엇이었을지. 부러지더라도 날선 삶의 태도를 잃지 않았던 윤옥이 보낸 마지막 한 해가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을까 염려가 되면서도 그가 지닌 투지를 알기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 같더라.

정말로 그런 걸까.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어쩔 수 없다.

이 문장으로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자책과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며 괜찮다고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두려워졌다.

 

문경민 작가가 정윤옥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지켜야 할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본책으로 치열하게 촘촘하게 지켜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웰다잉프로젝트, #봉봉, #씨네21북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환상만화앤솔로지

 


'만화'라는 장르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이면서도 그에 걸맞은 평가를 못 받지 않나 싶어 아쉬웠다. 그런데 요즘에 웹툰이 크게 각광받고 있어 좋으면서도 오락성과 재미에 치중하면 어쩌나 염려도 된다.

하지만 이번 하니포터 7기 활동 도서로 수령한 <웰다잉 프로젝트> 덕분에 노파심에 불과하는 걸 또다시 깨닫는다. '만화'가 뻗어나간 가지가 많으니 제각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해주면 될 뿐이다.




웰다잉 프로젝트/ 봉봉 글·그림/ 씨네21북스/ 한겨레출판


 

 


'웰다잉'

고령화 시대가 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예전처럼 기다리는 '죽음'이 아니라 준비하는 '죽음'으로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결국은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생각의 변화가 일었다.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함께 하면서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떠나가는 이에게도, 남겨진 이들에게도 이해와 수용, 치유의 시간이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만화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식은 결이 다르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환상만화 앤솔로지답게 '죽음'조차 상품화하는 자본시장의 추악한 면을 담고 있는 <웰다잉 프로젝트>가 표제작이다. 이를 필두로 총 6편의 작품들이 기이한 사회 현상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고등학생인 큰 딸은 '불쾌하다'라고 책을 중간에 덮었다. 그만큼 이 만화에서 담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우매는 예 상보다 끔찍하고 지독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가 빛나는 게 아닐까.

 

 

 

『웰다잉 프로젝트』 - 「웰다잉 프로젝트」 중


 

 

<ANA> 아직은 싱그럽고 푸르른 잎사귀 같은 십 대의 눈앞에 그려진 인공 자궁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처참한 사건들이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이어서 <웰다잉 프로젝트>는 원하는 대로 죽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이 과정을 방송하는 리얼리티쇼를 배경으로 좋은 죽음, 아름다운 죽음, 완벽한 죽음을 맞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걸어가는 허황된 길을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죽은 단칸방 할아버지. 사람들이 보이는 지나친 반응에 그 마지막의 여운이 마음 깊숙한 곳에 이르기 전에 흩어지고 씁쓸함만 남았다. 그래서 아이의 '불쾌하다'라는 평에 오히려 안도하였다. 그 느낌을, 기분을 잘 간직하여 사회의 기이한 현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멈춰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본다.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주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편리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웰다잉 프로젝트> 역시 만화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집이다. 6편의 작품이 소재로 삼은 상황과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행태는 독자인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웰다잉 프로젝트』 - 「붉은 여왕」 중



 

인공 자궁, 유전자 조작, 성형 수술 등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체의 신비로운 영역까지 다룰 수 있게 된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으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이를 악용할 것인지. 만화는 기술 발달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들을 다양하게 엮어내고 있다. '그럴 수 있지.'에서부터 '어떻게 이럴 수가!'까지 우려를 넘어 기술을 금하는 게 옳지 않나 싶을 정도의 일들이 벌어진다. 윤리적인 영역과 경제적 이유로 인한 선택권 박탈 같은 보편적으로 야기되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백업 인공 자궁, 미수령 아이 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펼쳐졌다.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역사 흐름상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철저하게 예측분석되어 악용되지 않도록 사회적 구성원들과 합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만화를 통해 인공 자궁, 유전자 조작, 성형수술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이 제공하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신은 변기>, <마지막 비행>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어리석음을 괴이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안과 밖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명백한 시선차는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보고 듣고 맞다고 판단한 정보가 모래처럼 허물어지기 쉬운 토대 위에 쌓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작은 마음, 간단한 일부터 시작되어 종교가 되거나 시대의 아픔과 분노에 일어선 투사가 되어버렸다.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강렬한 욕망이 이 기막히고 어이없는 상황을 긴장감 넘치게 고조시켰다.

 

 


『웰다잉 프로젝트』 -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 중


 

 

그리고 결이 다른, 말랑말랑한 만화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가 있어서 앤솔로지가 더 풍부해졌다. 검고 끈적한 작품들 속에서 말랑하고 촉촉하게 안아주는 만화가 있어서 무거워진 마음에 날개를 달아준 듯 가벼워져 생기가 돌았다. 봉봉 작가의 센스가 아주 탁월하다. 물론 이 만화 또한 우울한 상황의 청년을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엔딩이라 너무 좋다. 편안하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를 다시 읽을 정도로.

 

기이하고 어둡고 불쾌한 상황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우리를 떠올리게 되는 힘 있는 환상만화 앤솔로지 <웰다잉 프로젝트>였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일찍 준비 없이 보내버린 이와 똑같은 이를 마주한다면? 기억이 나지 않아 그리워할 추억조차 없는 소중한 이와 똑닮은 자신을 마주한다면? 상실의 무게는 짊어진 자들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무겁든 가볍든 아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진정한 애도를 통해 떠난 이와 진심 어린 안녕을 고하고 나서야 아파서 뭉그러뜨렸던 삶의 주름을 펴고 찬란한 오늘을 시작할 수 있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이희영 저/ 창비출판


 

 

이희영 작가의 신작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열여덟 살 고등학생 2학년 '선우진'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에서 사라진 후 십삼 년 터울이 지는 동생 '선우혁'이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십삼 년 차 쌍둥이. 닮아도 너무 닮아 한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코앞에서 보는 듯한 형제. 이렇게 닮은 형제는 십여 년의 시간을 흘려보내고서야 마주하게 된다.

 

 

"시간의 파도에 모든 것이 마모되는 건 아니다.

나무에 새겨지는 나이테처럼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이 존재했다.

추억과 사랑, 그리움 같은 것들……."

 

 

형이 죽기 전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여느 때보다 형의 존재를 깊이 느끼게 된 혁이는 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형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교감 선생님, 형의 친구 수민이 형, 그리고 메타버스 가우디 게임 속 공유 친구 곰솔까지 형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형을 입체화시켜가는 과정에서 혁이는 깨닫게 된다. 형은 추억하는 이들 속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비밀은 그림자 같은 게 아닐까? 세상에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잖아. 오히려 빛이 밝을수록 그늘도 선명하고, 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잖아.

비밀도 때에 따라서는 많아졌다 적어졌다, 심각해졌다 가벼워졌다 하겠지.

......

세상에 모든 비밀이 나쁘기만 하겠냐?

비밀과 거짓은 좀 다르잖아. 말하기 싫은 것과 남을 속이는 건 엄연히 구분해야 해."

 

 

우리는 상대방이 보여주는 면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받아들여 상대방을 인식한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두고도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진이의 표현대로 제삼의 눈이며 온점일 그 무언가는 사람을 다채롭게 한다.

풍성하면서도 외롭고, 보편적이면서도 비밀스럽게 만드는 내가 느끼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타인을 만나는 기적 같은 인연이 따스하고 내밀하게 그려진다.

 

 

서로 다른 시간, 하지만 같은 그리움에 대한 두 화자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편의 소설로 결말 되는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편지' 형식으로 풀어내는 과거의 인연과 비밀,

'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로 소통하며 친밀감을 쌓아가는 현재의 인연과 비밀.

 

 



 

 

선명한 추억 없이 막연한 슬픔과 그리움이 자리 잡았던 형의 자리에 형의 소중한 인연들이 말해준 형에 관한 조각들이 각기 다른 색채로 채워지고 잊고 있었던 형과의 마지막을 기억해 낸다.

 

"행복이 그러하듯 불행의 씨앗 역시

너무 작고 보잘것없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발아해 뿌리를 내리면,

폭풍우가 치는 바다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돼."

 

 

이 소설은 떠난 이에게 제대로 안녕을 고하지 못한 이들이 화자이다. 너무 어렸던 동생 선우혁뿐 아니라 죽음의 원인을 자신이라 여기며 미안해하는 친구 곰솔이 있다. 아무도 몰랐던 형과 곰솔의 신비로운 공간 가우디 내 'JIN의 정원'에서 둘이 조우하면서 비밀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기다리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그 기분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충족감은 같을 것이다. 선우진을 떠나보내고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어버린 선우혁과 곰솔. 더는 '귤'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을, 자신으로 인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을 전하는 소설의 마지막을 덮으며 새콤하고도 달콤한 귤 향기를 맡았다. 절로 반응하는 몸에 기분이 좋아졌다.

 

 

"귤을 좋아하면 겨울이 즐겁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상실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고민이 잘 녹아있다. 떠난 형이 남아있는 이들 기억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별명이 '도깨비바늘'인 도운이도 활달하고 붙임성 좋은 학교 내 모습과 메타버스 속 강태공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뜻밖의 사건으로 밝혀지는 진실은 마음을 아리게 했다. 다들 별다른 의미 없이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상처를, 슬픔을 감춘 채 애쓰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를 배려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하루를 애쓰며 살아가는 이에게는 충전할 공간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 할 이가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서로의 온점이 따뜻하게 반응할 무언가를 지닌 존재가 곁에 있다면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단단히 다질 수 있는 온기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돌고 돌아 진실을 마주하고 아픔을 수용하고 떠난 이에게 안녕을 고하고 다시 찬란한 하루를 수놓아갈 추억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이희영 작가의 다정한 위로이자 응원이다. 그리고 남들은 볼 수 없는, 어쩌면 이해시킬 수 없는 고유한 세계인 백의 공간을 마주하게 해준, 받아들이게 해 준 지침서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 한 사람, 독보적인 글솜씨를 선보이는 작가, 최진영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책 제목인지 작가 소개인지 헷갈릴 정도로 적확한 표현이다.

 


단 한 사람/ 최진영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한겨레 하니포터7기로서 가제본으로 받아 읽어본 작품, <단 한 사람>

작품 분량 1/3밖에 되지 않아 이제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끝나버렸다. 아쉬움보다는 갈증이 커서 구매했다. 목화와 미수와 천자 그리고 나무의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도하였다.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

그것은 한 사람의 일이었다.

 

 


숭고하다 해야 할까? 가혹하다 해야 할까?

대물림되는 능력은 축복인지 형벌인지 저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오직 한 명만을 구할 수 있는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앞에 놓인 세 여인의 수용과 납득은 달랐으며 결의와 저항 역시 차이를 보였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 그리고 손에 움켜쥔 정보가 달랐기 때문일까. 그들의 성향이 달랐기 때문일까.

 


꿈꾸는 것처럼 소환되는 구원의 일 자체가 경이롭고 놀랍기도 했지만, 세 여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로 인한 변화와 태도 또한 짧은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도 마음 언저리에 걸렸다.

 

 



 

 


프롤로그부터 장엄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일들로 채워진다. 두 생명이나 한 생명처럼 서로의 뿌리가 하나로 얽힌 두 나무. 유구한 세월 동안 서로가 가까워지길 원했던 두 나무가 마침내 하나가 된 듯하였으나 아주 작은 인간이 한 나무를 베어버렸다.

 

 


수수께끼처럼 남은 그루터기.

그와 같은 죽음은 처음이었다.

그처럼 강제적인 죽음은.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이별 또한 아니었다.

훼손이었다. 파괴였다. 폭발이자 비극이었다.

- 프롤로그 | 나무로부터 | 19쪽

 

 

자연이 자연에게 부여한 생명을 거두어들이는 흐름과 순환의 이치를 거스른 인간의 행위가 이 거대하고도 슬프고도 거룩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일어났으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겪은 미수와 복일 가족의 고통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지독했다. 갑작스러운 금화의 실종은 한 가족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 이 수수께끼도 책을 구매하게 한 요인이었다.

 

미수와 복일의 다섯 아이들.

일화-월화/금화/목화-목수.

각기 다른 성정의 아이들에 대한 짤막한 글을 통해 구축된 가족은 그즈음 흔한 평범한 모양새였다. 자신을 제하고는 어울리는 이가 있다 생각하여 누구하고든 이어지고 싶어 했던 금화가 사라지게 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어진 이들만 남은 가족 곁에 금화 대신 죄책감만 남았다.

 

증명할 수 없으나 존재하는 것 편에서는 소환되어 단 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된 세 여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자신이 짊어진 일에 대해 받아들이는 방법도, 명령을 내리고 복종을 강요하는 존재를 부르는 이름도 다른 이 세 여인의 인생 이야기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계절에 온몸이 달아오르게 하였다가 소름 돋게 만들었다. 믿음, 신앙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품은 채 부정하는 나이기에 악의 없이 잔인한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이, 의문이 깊어져 갔다. 소설 끝 목화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그가 깨달으면 나 또한 깨우칠 수 있을까. 단 한 사람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야 풀릴 마음이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

부활한 나무.

시간을 초월한 생명.

무성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 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