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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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준비 없이 보내버린 이와 똑같은 이를 마주한다면? 기억이 나지 않아 그리워할 추억조차 없는 소중한 이와 똑닮은 자신을 마주한다면? 상실의 무게는 짊어진 자들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무겁든 가볍든 아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진정한 애도를 통해 떠난 이와 진심 어린 안녕을 고하고 나서야 아파서 뭉그러뜨렸던 삶의 주름을 펴고 찬란한 오늘을 시작할 수 있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이희영 저/ 창비출판


 

 

이희영 작가의 신작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열여덟 살 고등학생 2학년 '선우진'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에서 사라진 후 십삼 년 터울이 지는 동생 '선우혁'이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십삼 년 차 쌍둥이. 닮아도 너무 닮아 한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코앞에서 보는 듯한 형제. 이렇게 닮은 형제는 십여 년의 시간을 흘려보내고서야 마주하게 된다.

 

 

"시간의 파도에 모든 것이 마모되는 건 아니다.

나무에 새겨지는 나이테처럼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이 존재했다.

추억과 사랑, 그리움 같은 것들……."

 

 

형이 죽기 전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여느 때보다 형의 존재를 깊이 느끼게 된 혁이는 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형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교감 선생님, 형의 친구 수민이 형, 그리고 메타버스 가우디 게임 속 공유 친구 곰솔까지 형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형을 입체화시켜가는 과정에서 혁이는 깨닫게 된다. 형은 추억하는 이들 속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비밀은 그림자 같은 게 아닐까? 세상에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잖아. 오히려 빛이 밝을수록 그늘도 선명하고, 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잖아.

비밀도 때에 따라서는 많아졌다 적어졌다, 심각해졌다 가벼워졌다 하겠지.

......

세상에 모든 비밀이 나쁘기만 하겠냐?

비밀과 거짓은 좀 다르잖아. 말하기 싫은 것과 남을 속이는 건 엄연히 구분해야 해."

 

 

우리는 상대방이 보여주는 면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받아들여 상대방을 인식한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두고도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진이의 표현대로 제삼의 눈이며 온점일 그 무언가는 사람을 다채롭게 한다.

풍성하면서도 외롭고, 보편적이면서도 비밀스럽게 만드는 내가 느끼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타인을 만나는 기적 같은 인연이 따스하고 내밀하게 그려진다.

 

 

서로 다른 시간, 하지만 같은 그리움에 대한 두 화자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편의 소설로 결말 되는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편지' 형식으로 풀어내는 과거의 인연과 비밀,

'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로 소통하며 친밀감을 쌓아가는 현재의 인연과 비밀.

 

 



 

 

선명한 추억 없이 막연한 슬픔과 그리움이 자리 잡았던 형의 자리에 형의 소중한 인연들이 말해준 형에 관한 조각들이 각기 다른 색채로 채워지고 잊고 있었던 형과의 마지막을 기억해 낸다.

 

"행복이 그러하듯 불행의 씨앗 역시

너무 작고 보잘것없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발아해 뿌리를 내리면,

폭풍우가 치는 바다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돼."

 

 

이 소설은 떠난 이에게 제대로 안녕을 고하지 못한 이들이 화자이다. 너무 어렸던 동생 선우혁뿐 아니라 죽음의 원인을 자신이라 여기며 미안해하는 친구 곰솔이 있다. 아무도 몰랐던 형과 곰솔의 신비로운 공간 가우디 내 'JIN의 정원'에서 둘이 조우하면서 비밀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기다리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그 기분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충족감은 같을 것이다. 선우진을 떠나보내고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어버린 선우혁과 곰솔. 더는 '귤'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을, 자신으로 인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을 전하는 소설의 마지막을 덮으며 새콤하고도 달콤한 귤 향기를 맡았다. 절로 반응하는 몸에 기분이 좋아졌다.

 

 

"귤을 좋아하면 겨울이 즐겁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상실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고민이 잘 녹아있다. 떠난 형이 남아있는 이들 기억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별명이 '도깨비바늘'인 도운이도 활달하고 붙임성 좋은 학교 내 모습과 메타버스 속 강태공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뜻밖의 사건으로 밝혀지는 진실은 마음을 아리게 했다. 다들 별다른 의미 없이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상처를, 슬픔을 감춘 채 애쓰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를 배려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하루를 애쓰며 살아가는 이에게는 충전할 공간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 할 이가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서로의 온점이 따뜻하게 반응할 무언가를 지닌 존재가 곁에 있다면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단단히 다질 수 있는 온기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돌고 돌아 진실을 마주하고 아픔을 수용하고 떠난 이에게 안녕을 고하고 다시 찬란한 하루를 수놓아갈 추억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이희영 작가의 다정한 위로이자 응원이다. 그리고 남들은 볼 수 없는, 어쩌면 이해시킬 수 없는 고유한 세계인 백의 공간을 마주하게 해준, 받아들이게 해 준 지침서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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