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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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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는 장르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이면서도 그에 걸맞은 평가를 못 받지 않나 싶어 아쉬웠다. 그런데 요즘에 웹툰이 크게 각광받고 있어 좋으면서도 오락성과 재미에 치중하면 어쩌나 염려도 된다.
하지만 이번 하니포터 7기 활동 도서로 수령한 <웰다잉 프로젝트> 덕분에 노파심에 불과하는 걸 또다시 깨닫는다. '만화'가 뻗어나간 가지가 많으니 제각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해주면 될 뿐이다.
웰다잉 프로젝트/ 봉봉 글·그림/ 씨네21북스/ 한겨레출판
'웰다잉'
고령화 시대가 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예전처럼 기다리는 '죽음'이 아니라 준비하는 '죽음'으로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결국은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생각의 변화가 일었다.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함께 하면서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떠나가는 이에게도, 남겨진 이들에게도 이해와 수용, 치유의 시간이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만화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식은 결이 다르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환상만화 앤솔로지답게 '죽음'조차 상품화하는 자본시장의 추악한 면을 담고 있는 <웰다잉 프로젝트>가 표제작이다. 이를 필두로 총 6편의 작품들이 기이한 사회 현상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고등학생인 큰 딸은 '불쾌하다'라고 책을 중간에 덮었다. 그만큼 이 만화에서 담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우매는 예 상보다 끔찍하고 지독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가 빛나는 게 아닐까.
『웰다잉 프로젝트』 - 「웰다잉 프로젝트」 중
<ANA> 아직은 싱그럽고 푸르른 잎사귀 같은 십 대의 눈앞에 그려진 인공 자궁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처참한 사건들이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이어서 <웰다잉 프로젝트>는 원하는 대로 죽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이 과정을 방송하는 리얼리티쇼를 배경으로 좋은 죽음, 아름다운 죽음, 완벽한 죽음을 맞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걸어가는 허황된 길을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죽은 단칸방 할아버지. 사람들이 보이는 지나친 반응에 그 마지막의 여운이 마음 깊숙한 곳에 이르기 전에 흩어지고 씁쓸함만 남았다. 그래서 아이의 '불쾌하다'라는 평에 오히려 안도하였다. 그 느낌을, 기분을 잘 간직하여 사회의 기이한 현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멈춰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본다.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주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편리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웰다잉 프로젝트> 역시 만화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집이다. 6편의 작품이 소재로 삼은 상황과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행태는 독자인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웰다잉 프로젝트』 - 「붉은 여왕」 중
인공 자궁, 유전자 조작, 성형 수술 등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체의 신비로운 영역까지 다룰 수 있게 된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으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이를 악용할 것인지. 만화는 기술 발달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들을 다양하게 엮어내고 있다. '그럴 수 있지.'에서부터 '어떻게 이럴 수가!'까지 우려를 넘어 기술을 금하는 게 옳지 않나 싶을 정도의 일들이 벌어진다. 윤리적인 영역과 경제적 이유로 인한 선택권 박탈 같은 보편적으로 야기되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백업 인공 자궁, 미수령 아이 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펼쳐졌다.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역사 흐름상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철저하게 예측분석되어 악용되지 않도록 사회적 구성원들과 합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만화를 통해 인공 자궁, 유전자 조작, 성형수술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이 제공하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신은 변기>, <마지막 비행>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어리석음을 괴이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안과 밖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명백한 시선차는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보고 듣고 맞다고 판단한 정보가 모래처럼 허물어지기 쉬운 토대 위에 쌓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작은 마음, 간단한 일부터 시작되어 종교가 되거나 시대의 아픔과 분노에 일어선 투사가 되어버렸다.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강렬한 욕망이 이 기막히고 어이없는 상황을 긴장감 넘치게 고조시켰다.
『웰다잉 프로젝트』 -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 중
그리고 결이 다른, 말랑말랑한 만화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가 있어서 앤솔로지가 더 풍부해졌다. 검고 끈적한 작품들 속에서 말랑하고 촉촉하게 안아주는 만화가 있어서 무거워진 마음에 날개를 달아준 듯 가벼워져 생기가 돌았다. 봉봉 작가의 센스가 아주 탁월하다. 물론 이 만화 또한 우울한 상황의 청년을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엔딩이라 너무 좋다. 편안하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를 다시 읽을 정도로.
기이하고 어둡고 불쾌한 상황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우리를 떠올리게 되는 힘 있는 환상만화 앤솔로지 <웰다잉 프로젝트>였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