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페스토 Manifesto - ChatGPT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SF 앤솔러지'
김달영 외 지음 / 네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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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에이아이(Open AI)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가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2022년 11월 공개부터 커다란 화제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기존 챗봇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능력으로 전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십 대 자녀는 수행과제시 #챗지피티 사용을 금한다고 학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말을 전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현상을 살펴보면 우려할 만하다.

연일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챗GPT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걱정이 되던 나는 흥미로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챗GPT와 소설가가 함께 쓴 SF 단편집 『매니페스토』였다.

 

 

 

매니페스토/ 네오픽션/ 자음과모음


 


 


  
챗GPT의 속이 마냥 궁금한 나처럼 호기심이 동한 작가 7인이 모였다. IT 개발자, 이공계 교수, 변호사, 스포츠인, 기자, 창작 강사, 북한이탈주민까지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이들이 섭외되었다. 각자 시행착오를 통한 챗지피티와의 협업으로 특색 있는 SF 경단편 앤솔러지를 선보였다.

 

 

'인간 - ChatGPT' 첫 공동 집필 소설집

 

 


앤솔러지의 매력은 단연 공통 주제로 다양한 결과 맥락의 소설들을 한 권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니페스토』역시 7편의 SF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SF 주제답게 메타버스, 기후 위기, 외계인, 챗봇, BCI, 꿈, 타임슬립 등을 소재로 상상력을 펼쳤다.

 


각 작가별로 단편 - 협업 후기 - 협업 일지 순으로 지면이 채워졌다. 작가마다 챗지피티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생각의 차이는 다소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원하는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어려움이었다.

'차라리 내가 직접 쓰고 만다!'라고 표현한 작가도 있었다. 협업 후기와 일지를 통해 챗지피티를 사용하여 입맛에 맞는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힘겨운 여정을 함께 하면서 AI의 오늘과 미래 그리고 AI와 인간의 공존에 대한 생각과 질문이 커져갔다. 아직은 머리 좋고 일 처리 빠른 비서진으로 부리는 인간의 적확한 명령어가 필요하지만,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AI는 분명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 SF 앤솔러지는 SF 소설을 읽는 즐거움과 챗GPT를 알아가는 재미, 2가지를 취할 수 있어 더 알찬 작품집이다. 그리고 챗지피티 협업 작업을 해본 작가들의 에세이에 담긴 메시지들이 인상적이다.

ChatGPT를 이용해 원고를 늘이면 늘어난 매수에 대한 원고료는 누구에게 지불해야 하는지 고민도 해보고, 심야 시간에 유독 사용자가 몰려, 접속하려면 대기하라는 문구가 자주 인내심을 시험했다고 한다. 지금의 AI를 인간의 실재적 동반자로 인정하는, 그래야 함을 깨닫는 과정이었다는 회고도 있었다. 그리고 챗지피티를 사용해서 쓴 소설을 다시 챗지피티로 하여금 평가하게도 하였다. 첫 공동 집필 작업이기에 막막하지만 한편으로는 작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게 다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SF 소설은 챗지피티를 통한 결과물을 담았기에 살짝 미흡하거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협업일지를 통해 이 글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수고를 알기에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인간 - ChatGPT 공동 집필 첫 작품집

 

 


책 제목이 된 <매니페스토>와 <감정의 온도>, <오로라>가 SF 소설로 짧으면서도 완성도가 높게 다가왔다. 감정적으로 교우한 작품은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이었다. 기후변화로 도시 일부가 침수된 2053년의 인천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0년 전 대해일로 동생 희망을 잃은 해모수는 잠수부로 바다에 침수된 도시를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늘은 10년 전 희망이가 사라진 바로 그날이었다. 처음으로 사고 날짜에 잠수한 해모수는 심상치 않은 AI 경보 문구를 듣게 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단단해진다. 그리고 희망이에게 벌어졌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SF로 그리는 대부분의 미래가 유토피아로 그려지지 않지만 결코 디스토피아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오늘의 우리가 경계하고 주의하며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지금의 ChatGPT는 부적절한 일부 표현에 대해 잠금장치가 되어있는 상태이지만,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결과물의 차이가 놀라웠다. 협업에 참여한 작가들은 지금의 챗지피티는 미흡하지만, 내일은 다르리라 내다보았다.

 


새로운 시대에 변화의 물결에 몸소 뛰어들어 수고한 작가들 덕분에 궁금했던 챗지피티 머릿속을 상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 흥미로운 친구인 것은 사실이다.

Hi,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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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마마 - 100일의 사투 네오픽션 ON시리즈 9
배준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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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배준 작가님

[시트콤] 책 속에 가득한 작가님만의 독특한 코드에 접속한 이후, 다음 작품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던 이에게 복이 있나니, 큰 복을 받았다.

 

 

 

호환마마 : 100일의 사투/ 배준 장편소설/ 네오픽션/ 자음과모음




긴 침묵을 깨고 나온 신작

[호환마마 : 100일의 사투]

믿음과 기대만큼 아찔한 긴장과 몰입감을 더해 마지막 깨달음에 닿는 숨 가쁜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이야기는 조선 시대 경복궁을 배경으로 범 한 마리가 궐 내에 침입하여 일으킨 천재지변을 다루고 있다. 범에게 물려 죽은 이들이 창귀가 되어 돌아다니면서 궁은 아비규환에 빠진다. 이 모든 일은 맹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질 때 시작한다.

 

창귀 ?鬼, 범에게 물려 죽은 귀신으로 범에게 해를 입은 자는 그 즉시 인격을 상실하고 창귀로 변한다. 창귀에게 물려도 창귀가 되고, 범에게 긁히거나 물려도 창귀가 된다. 이러니 순식간에 창귀가 늘어나게 되어 궁은 창귀의 울음소리와 인간의 비명과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지옥, 살아서 경험하는 끔찍하고도 참혹한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었다.

 

이 참상을 꿈이라 믿고 싶은 조선의 왕 이청.

이제 조선의 운명은 왕인 이청의 손에 달렸다.

어찌해야 하는가?

가출했다 돌아온 세자 이신이 가지고 온 서역의 꽃 '피아리수'가 눈에 띄었다. 영험한 주술이 걸려 있어 그 기운이 냄새를 맡은 자를 지켜준다는 꽃.

 

"세자가 나고 자란 집에

독하디독한 천재지변이 들이닥칠 것이다."

 

 

서역의 용한 점쟁이는 조선의 천재지변을 예고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피아리수 꽃을 주었다. 세자는 오랜 방랑을 접고 궁으로 돌아가 궐의 주인인 왕 이청에게 바쳤다.

 

 

 

 

영상으로 호러물, 고어물을 보지 못하는 나는 각광받는 'K-좀비' 작품들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호환마마 : 100일의 사투]는 무협소설이면서 장르물로서 '킹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킹덤' 역시 보지 못했기에 좀비와 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무협이 비슷하다 느낌 정도이다. 묘사가 상세하여 활자가 영상으로 전환되어 눈앞에서 생생하게 진행되었다.

조선의 운명을 건 사투, 바로 전까지 동료였어도 아차 하는 순간 창귀가 되어 되려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싸움, 이 무참한 변이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읽는 이의 몸과 마음도 짓밟는다. 왕과 착호갑사 삼인방이 범과 맹렬히 싸울 때는 숨을 죽이고 기도하였다. 나 또한 그 안에서 울부짖고 달리고 싸우는 듯했다.

 

 

'100일의 사투'라는 부제를 보고 들었던 나의 단순한 상상을 깨뜨렸다. 범과의 치열한 싸움은 맞지만 #타임리프 설정으로 범이 궐 내에 침입한 하루가 반복된다. 하루가 반복될 때마다 피아리수 꽃송이도 하나씩 시든 채 떨어진다. 아~ 조선의 왕 이청은 참혹하고 끔찍한 하루를 반복하면서 범을 죽일 방도를 찾는다. 하지만 간절히 지켜야 할 한 가지가 계속 발목을 잡는다.

 

 

 

하루가 100번 반복되다 보니 작가는 적절한 편집으로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반복되는 내용은 과감히 삭제하여 작품의 흐름이 늘어지지 않아 집중하게 된다.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가? 새로 맞이한 오늘마다 이청이 시도하는 방도들을 좇아가면서 이청의 고민과 선택을 독자는 판단하게 된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의 왕으로서, 아버지로서 이청은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범과 100번의 싸움을 기꺼이 치루지만……

 

 

 

 

소설의 시작과 끝은 이어져 있다. 소설에서 흐르는 시간은 짧디짧다. 하지만 끝없이 길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소설은 조선 시대 신분제 최상위에 위치한 '왕'이 자신의 고집을 접고 아들 '세자'의 선택을 존중하게 되는 성장을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타임리프를 활용하여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험난한 여정이 담고 있다.

왕이자 부모로서 세자에게 품은 기대와 바람이 얼마나 크고 무거울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세자 이신은 천재지변을 걱정하여 돌아왔지만 다시 떠나려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왕 이청은 특별한 방식으로 깨닫게 된다. 100번을 반복하고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 그는 다시 한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자식을 품 안에 두려는 아비의 아집을 내려놓고 자식이 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부모가 되어보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하지만 부모라면 감당해야할 몫일 것이다.

 

 

 

 

[호환마마 : 100일의 사투]

조선의 왕 이청의 성장뿐 아니라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느낄 수 있어서 여운이 더 진한 작품이다. 창귀들이 내는 울음소리의 의미를 잊지 못할 것 같다. 가슴 찢기는 고통을 안겨주지만, 짜릿한 전율과 긴장감을 이겨낸 이에게는 다정하고 설레는 반전의 마지막을 선물처럼 선사한다.

 

독자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배준 작가 덕분에 흥미진진한 시간은 기본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진실이 밝혀진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바로 [호환마마] 속으로 들어오길 추천한다. 펼치는 순간 대혼란에 빠진 경복궁 한복판에 서 있을 테니 정신만 챙기자.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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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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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강석희/ 창비교육




<꼬리와 파도> 책 제목을 보고는 무슨 의미인지 유추할 수 없었다. 파도는 대충 감이 오는데 꼬리는 뭐지? 와닿지 않았다. 궁금증을 안고 책을 읽어나가다 이 문장에 이르렀다.

"꼬리는 정말로 파도가 됐다."

 

무경과 현정과 서연 그리고 예찬의 목소리가 꼬리에서 꼬리로 전달되어 파도를 일으켰다. 이 파도는 평범과 보통의 세계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상처받았던 아이들에게 변화의 시작이 되어주었다. 상처입었던 또다른 이들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던 학교, 어른을 향해 기꺼이 자신의 목소리를 더해 힘을 보태준 것이다. 나, 너가 아닌 우리가 되는 연대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 아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감싸주었다. 그렇게 <꼬리와 파도>는 이어졌다.

 

 

 


 

- 제 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수상작 -

'성장'에 내포된 의미들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가정, 학교, 사회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로 세상에 잘못을 외쳐 드러내고 바로잡으려는, 주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은 성장했다. 성숙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원인이 되었던 이들은 과연 변했을까? 그들 또한 성장하고 변할 거라 믿고 싶지만, 20세기의 열여섯, 열다섯 이야기와 21세기 열여섯 이야기가 가슴시리게 닮아있었다.

 

그렇다면 20세기에 일렁였던 꼬리의 파도는 사라진 것일까? 의미가 없는 것일까? 많은 것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건 아니었다. 이 꼬리의 파도가 21세기 열여섯 선이와 미주에게 밀려왔으니까 또 그렇게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꼬리가 사라지는 날을 떠올리며 웃어본다. 무경과 지선, 현정과 미란과 서연, 예찬과 종률 그리고 선이와 미주까지 다정하게 눈길을 마주치며 밝은 웃음을 나누는 그 날, 생각만으로 온몸에 온기가 차오른다.

 

 

성장한 사람인 '성인'인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다각적으로 잘 드러난 작이었다. 어른이 마땅히 짊어져야하는 역할을 소수만이 감당해나가는 부끄러운 현실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상처입은 아이들이 믿고 따랐던 어른에게 폭행을 다행하는 사실이다. 그들이 입은 상처를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위로해주던 다정한 입과 손이 그들에게 폭행과 추행을 저지르는 탐욕스런 입과 손으로 변하는 순간의 공포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믿음에 배신당해 산산조각난 마음을 이어붙을 수 있게 만드는 게 가능할까? 그 끔찍한 고통을 기꺼이 나눠지려는 친구들이 있고, 제방식대로 온기를 나눠주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면 '다음'이 올 거라 믿고 싶다.

 

 


 

이야기는 어른이 된 무경이 체육교사로 있는 중학교에서 시작되는데 의미있고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힘겨웠던 학창시절을 보낸 학교로 돌아와 상처입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응원하며, 학교를 변화시키려 씩씩하게 나아가는 단단한 무경이 빛나보였다.

 

온라인수업 중 특정 제스처를 한 여학생을 대상으로 욕설과 비속어가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 '응징(남학생들의 표현)'하는 일이 벌어진다. 담임 선생님의 미온적인 대처와 불성실한 남학생들의 사과에 분노한 여학생 선이와 미주는 체육교사 박무경을 찾아갔다. 그들을 맞은 무경은 "잘 찾아왔어. 제대로 찾아왔어."라며 다독여준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도록. 그리고 염려하는 선이와 미주에게 "괜찮아. 나한테는 친구들이 있거든."라 안심시킨다. 

 

 

"우리가 지켜 줄게. 혼자서는 못하지만

우리가 되어, 너를 지켜줄게."

 

 

 

학교폭력, 스쿨미투, 데이트 폭력, 운동부 사제 간 폭력

우리의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학교'라는 곳에서 입에 담기조차 힘겨운 추악한 범죄, 사건들이 벌어졌다. 마땅히 이를 수면으로 끌어올려 제대로된 마무리를 해야하는 데도 안위와 평판 등을 이유로 덮기에 급급한 이들의 모습에서 피해자들은 더 큰 상처와 고통, 외로움을 겪는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는 무경처럼, 현정처럼, 예찬처럼 그렇게 세상에 외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다같이 나아가는 단단한 걸음이 파도가 되어 우리의 발을 적시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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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애니 라이언스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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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애니 라이언스 장편소설/

안은주 옮김/ 한스미디어




이렇게 예쁜 옷을 입고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우리를 만나러 왔어요.

마음이 촉촉해지는 이 책으로 많은 분들이 위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소설 평점(★★★★★)

 

 

 

 

"늙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저항하고,

달갑지 않은 피부를 벗어내듯

옆으로 치워버릴 것이다."

 

 

 

85세 할머니 그리고 죽음을 다루는 소설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이리도 유쾌하고 신선하게 풀어낸 작가 애니 라이언스의 저력에 감탄했다. 유도라와 로즈 그리고 스탠리 삼인방을 따라다니며 같이 웃고 울고 놀라다 보니 어느새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 끝나있었다. 솔직히 책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 두께에 놀란 나는 페이지터너로 계속 넘어가는 책장에 또 한 번 놀랐다. 80대 할머니 할아버지와 열 살 소녀의 조합은 상상외로 신선하고 아름답고 다정했다.


 

 


 

 


삶을 어떻게 살지 선택해왔듯이 어떻게 죽을지도 선택하겠다는 유도라 허니셋. 그녀가 실행하고자 하는 '죽음'은 남다르다.

 

내 죽음이니까. 내 방식대로.


주문처럼 되뇌는 유도라의 결의에 찬 모습을 소설 속에서 마주할 때마다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갔다. 하지만 시린 슬픔으로 가슴이 아렸다. 집안으로,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그녀는 외롭지 않다 말하지만, 온기를 품어본 적이 없는 그녀이기에 부정하는 것이요, 외면하는 것이리라. 이런 유도라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사람들과 부대낄 수 있도록 다가서는 이들이 있어 감사했다. 타인에게 벽부터 치는 유도라지만 진심으로 친절을 베푸는 로즈와 스탠리에게는 조금 달랐다. 그렇게 세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현재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와 비슷한 내용인 유도라의 추억이 회상처럼 펼쳐진다. 1940, 50년대 과거 이야기와 2018년도 현재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독자는 '유도라 허니셋'이라는 인물에 더욱더 빠져들게 된다.

 

그녀의 일생을 톺아보는 일은 개인의 삶이 결코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다. 아버지 앨버트 허니셋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전쟁터로 떠나야만 했다. 결국 전쟁은 유도라 가족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아버지는 전사하고, 어머니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상처가 너무 커서 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본 적 없고 어머니는 돌봐주지 않는 환경에서 동생 스텔라는 가족의 골칫거리로 자랐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인공 유도라는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였다.

"아빠가 없는 동안 네가 씩씩하게 지내면서 엄마랑 아기를 돌봐줘야 해."

- 앨버트 허니셋

 




 

읽기 전에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삶'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된다. 죽음은 우리의 삶이라는 소중한 여정에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관계 속에서 두려움 없이 맞이하는 '좋은 죽음'을 말하고 있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랑, 웃음, 눈물, 희망,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권한다.

 


유도라는 가족들이 다 떠나고 홀로 남은 후에는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며 살아왔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들인 반려묘 몽고메리와도 냉랭하다. 노화로 점점 일상이 불편하고 힘겨워지자 '삶의 주도권'이라는 선택으로 '자발적 안락사'를 신청한다.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동안만이라도, 삶을 선택해 주시겠어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 클리닉 레벤스발의 닥터 그레타 리버만(p.167)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유도라. 자신의 행복, 기쁨, 사랑보다는 가족의 평온을 우선시했던 유도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베아트리스도, 동생 스텔라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유도라였다. 유도라는 선택했다고 하지만, 나는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상호 작용이 일어나야 하는데 유도라의 선택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유도라는 점점 외부와는 단절된 채 내부로 침잠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매일 선글라스를 끼고 수영장을 찾아 삼십 분 동안 수영을 하는 시간이 예전 유도라에게는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추진력과 목적의식을 갖게 해주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물속에서의 느낌일 뿐 풀장에서 나오면 현실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발적 안락사' 병원에 연락하고는 이렇게 적었었다.

 


 

 


하지만, 유도라가 달라졌다!

회색이었던 그녀의 세상은 소녀 로즈가 형용색색 찬란한 빛으로 물들이면서 달라진다. 스탠리와의 우정은 동년배들과의 교류로 이끈다. 유도라의 세상에 온기와 웃음 그리고 친절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로즈와 스탠리와의 우정이 삶의 활력이자 목적이 되어준 것이다. 사람과 있으면 긴장되고 불편했던 그녀가 마음을 열고 다시금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는 삶의 소중한 부분을 잘 비추고 있다. 발끝부터 차오르는 따스함이 온몸을 감싸고 올라왔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고 우리에게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한 우리는 그 여정을 따라야 한다고.

- 유도라 허니셋(p.322)

 


 

 


"유도라 할머니! 아직 살아 있어요?" - 로즈 트레위드니(p.496)

 

소설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로즈'였다. 너무나 사랑스러우면서도 통찰력이 있는 로즈. 그런 로즈의 현실적인 상처는 더 도드라져 보였다. 용감하고 배려심 넘치는 로즈일지라도 친구들에게 입은 상처는 깊고 쓰라릴 것이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외면하고픈 모습을 보인다. 이런 로즈를 위해 유도라와 스탠리는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빛나는 로즈의 웃음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 아이가 가진 풍부하고 섬세한 감성이 독특하고 유쾌하게 표출될 때마다 가슴은 따뜻해지고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삶을 사랑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친구에게 친절을 베풀 줄 아는, 멋진 이들이 들려주는 '좋은 죽음 이야기'는 '좋은 삶' 이야기였다. 다정하고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유쾌한 사는 이야기 속에서 죽음은 평온하였다. 천천히 마음을 담아 안녕!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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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서 배워라 -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 여정
해나 개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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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서 배워라/ 해나 개즈비/ 창비




우리나라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낯설다. 하지만 OTT라는 플랫폼을 타고 다양한 문화와 예술,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오늘날에 약간의 생경함은 오히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게 넷플릭스에서 해나 개즈비의 <나네트>를 만났다. 쇼 내내 그가 말한 대로 긴장감을 조였다 풀었다 강약 조절하면서 분위기를 압도했다. 강렬한 조우만큼 아쉬움이 큰 짧은 쇼 타임이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줄 두툼한 책을 마주했다.

 

 

 

 

선천적 기질과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해안에 있는 작은 섬 태즈메이니아의 문화와 정치와 사회 그리고 관습 안에서 형성된 후천적 성격이 '해나 개즈비'로 발현되는 여정을 담고 있었다.

 

"액체가 분필에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코미디쇼에서도 느꼈지만, 활자로 만나는 그는 한층 더 독특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다층적인 면모를 보였다.

 

첫 번째 책 시핀 소폰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이층 침대에서 자는 언니의 발이 달랑거리며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세상을 만나고 바라보는 방법을 보여주는 듯 여겨졌다.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 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이 발꾸러기에게 했다. 그래서 이 발이 더 이상 밤에 자신을 찾아오지 않게 되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실감에 빠졌다고 한다. 저런, 발꾸러기가 이렇게나 부러울 수가.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그 발꾸러기는 맞장구치면서 잘 들었겠지.

 


 

"괜찮았다.

나는 언제나 한참 있다 보면 괜찮아진다.

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남들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뿐이다."

 

 

 

 

1998년 웨스턴의 커밍아웃

생뚱맞았지만 왠지 해나 개츠비 다웠다.

"너는 레즈비언"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풍경에 더해진 한 문장의 무게가 고스란히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70세 이하의 첫 성인 친구에게 커밍아웃할 기회를 안전한 장소에서 선물 받았지만 해나는 받지 않았다.

 


 

 


해나 개즈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태즈메이니아 출신과 뚱뚱한 몸 그리고 레즈비언으로 드러냈다.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웃음을 주던 그는 이제 코미디를 그만둬야 되겠다고 했다. 반의적인 표현으로 달라진 그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여자들은 안 웃겨. 하지만 당신은 예외야!

당신은 웃겨, 그러니까 당신은 괴짜야.

 

 


 

 


태즈메이니아를 떠나고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까지 7여 년의 방랑 시절도,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주최한 신인 코미디언 대회인 로 코미디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어서도, 경력의 정점에 있을 때조차 충만한 행복감과 안정감을 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대에서 타인에게 펀치라인을 날리며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자신은 연애도 잘 안 풀리고, 즐겁게 쇼를 마치고 만족감과 자신감에 도취된 상태에서 피드백을 받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가 언어로 표현하기 싫어하는, 수치심의 밑바닥에 파묻혀 열심히 휘저어야 들출 수 있는 성추행, 강간의 트라우마도 있다.

 

감정을 정제한 듯 최대한 절제한 표현에서도 해나의 내밀한 상처와 고통이 느껴져서 울컥하면서 읽고, 같이 분노하면서 읽었다. 그러다가도 피식 웃어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는 천상 코미디언이다.

코미디 동료에게도, 다른 레즈비언에게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 부모에게도 그리고 엄마에게도 피드백을 받거나 부정 받는 상황에서도 해나는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에 열심이다. 바로 농담이다. 이 지치지 않고 뿜어내는 생명력에 압도당한다. 멋지다!

 

 


"내가 제일 후회하는 게 뭔지 아니?

내가 널 이성애자처럼 키운 거야.

네가 바뀌길 바란 거 같아. 세상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엄마가 네 친구가 되어줬어야 했는데 못 했지. 나를 용서 못 할 것 같다."

해나 개즈비의 엄마의 말

 


<차이에서 배워라>

그가 코미디 페스티벌 무대에서 항의 시위 이벤트로 벌이는 동료들의 결혼식 축사에서 쓴 것처럼 배제의 부당함에 깊이 공감한다. 배제가 개인에게 가져온 파장을 조근조근 짚어주는 그의 섬세한 통찰력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인간이 동료 인간을 배제할 권리가 있는가?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성숙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힘들고 어려울 수도 혹은 거북하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찍어내는 인형이 아닌 이상 우리 인간은 다 다르고 다양하다. 반려견 더글라스가 전하는 온기뿐 아니라 우리가 발휘하는 인간애에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다양성은 우리의 힘입니다.

차이는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해나 개즈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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