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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평점 :
그의 음악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루시드폴의 에세이 《모두가 듣는다》
모두가 듣는다/ 루시드폴/ 돌베개
가수 루시드폴이 전하는, '음악'으로 느끼고 귀 기울이는 세상을 조우하고 차오르는 만족감에 빠져든다. 음악을 향한 그의 진심과 집중과 귀 기울임은 세상을 듣는 행위로 귀결되어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이번 에세이에는 지난 수년간 작업과 녹음 틈틈이 남겨둔 기록인 녹음 수첩뿐 아니라 새 음반 <Being-with>를 위한 라이너 노트가 수록되어 루시드폴의 음악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 <Being-with>의 '소리'로 떨어져 있는 우리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기분을 감각할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음악' 듣기에 유독 약하다.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귀로 들어오는 선율을 체화하지 못한다. 같은 노래라도 들을 때마다 처음 접한 노래처럼 들을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그래서 루시드폴 산문집 《모두가 듣는다》의 인도로 닿게 된 세계는 별세계였다. 갓난아이처럼 내가 모른다는 것도 몰랐던 세상의 소리를 듣고 공간을 감각하고 그 안에서 그의 말처럼 춤추고 호흡하였다. 그러면서 그가 찾고자 하는, 갈구하는, 전하는, 뿌리는 '음악'과 '노래'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에 젖어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BGM으로 그의 앨범을 틀어놓았다. 글로 해석해놓은 그의 음악은 어떤 걸까? 이런 과정을 거쳐 맺은 열매의 소리는 어떨까? 궁금해서 들으면서 읽었다. 모듈러 신시사이저로 모은 식물의 노래(Moment in Love, Dancing with Water), 공사장 소리를 미분하여 고통받는 지구(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노래(Mater Dolorosa, Being-with), 떠나간 가족을 위한 노래(Transcendence, Being-with), 기존에 내가 알던 노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눈을 뜨는 듯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는 '음악은 무엇인가'에 몰두하던 사유를 차츰 '무엇이 음악이 되는가'로 돌리는 흐름을 보여준다. 듣는다, 귀 기울인다.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한 삶이자 음악이자 노래를 들려준다.
우리는 듣는 만큼 보고, 듣는 만큼 느낀다.
- 모두가 듣는다, p.29
세상의 소리는 듣고자 하는 이만 듣는다. 그는 들리지 않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는 이들에게 아무리 "세상은 듣지 않는다" 해도 함께 사는 타자의 몸짓을 애써 듣고, 보려는 사람도 우리 곁에는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애쓴다. 그리고 그 스스로도 분명 존재하지만 누군가는 듣지 못하는 소리를 길어내는 수고를, 마음을 기꺼이 하여 음악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들어보자고, 귀 기울여보자고 권하는 그의 음악으로 들리지 않았던 나무의 소리도, 바다의 소리도, 지구의 고통 어린 울음도, 바람 소리도, 희귀질환을 앓는 환우의 통증도, 공사장의 소음까지도 다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그는 "노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노래는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너머, p.155) 이야기가 된 노래는 어떤 힘을 가지게 될까?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움을 만난다는 건 루시드폴의 말처럼 커다란 축복이다.
필름과 테이프를 내려놓지 못하는 동시대의 음악가, 농부, 작가, 화학자 루시드폴이 만든 노래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나를 기울여 세상과 하나가 되어 춤추는 일, 표면에 부유했던 나를 내면 깊숙한 곳으로 끌어당기는 일, 벅차오르는 행복이자 아름다움 그 자체이지 않을까.
인도 출신 음악가 안수만 비스와스는
'듣는다는 건 세상과 함께 춤을 추는 일'이라고 했다.
다 함께 춤출 수 없는, 말하기 중독에 빠진 세상이 온건 아닐까.
그런 세상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한 건 듣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듣지 않는 말은 쌓이고, 말이 쌓이면 썩는다.
- 나를 기울이면, p.58,9
시간은 그저 흐를 뿐이고, 인간이 나눈다. 이제 떠나가는 2023년과 떠오르는 2024년의 어느 지점에서 루시드폴의 음악과 사진과 깊이 있는 사유로, 세상의 소리에 나를 기울여보는 아름다움을 누려볼 수 있어 행복한 내가 보내는 초대장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우리, 귀 기울여봐요. 들을 수 있어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