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소설집/ 한겨레출판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한 시간이었다.

동년배 작가가 시대의 비극을 노래한 단편선은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쳤다. 무난한 하루를 보내는 나는 마냥 미안하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깊이 패인 현대사 굴곡을 '장르 문학'으로 감싸 안아 환기시키고 있다. '전혜진' 그만의 방식으로 폭력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는 한 걸음을 토해낸다. 그가 그리는 공감과 연대의 길에 많은 이들이 동행하기를 바라며 <바늘 끝에 사람이>를 권한다.

 

7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평범한 우리네들이 겪은 역사 속 잔혹한 폭력에 상상의 힘을 더해 생생하게 뚜렷하게 담아내었다.

 


/바늘 끝에 사람이

- 제 손으로 땀 흘리고 일하는 노동자를 정당하게 대우하는 사회는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가

 

 

“만약 내가 세상이 말하는 투사라면,

나를 투사로 만든 것은 바로 세상이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7만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기권을 아득히 벗어난 곳인 우주 궤도 엘리베이터의 카운터웨이트, 그곳에 회사의 복귀 명령에 따르지 않고 홀로 남은 '나'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자 김진숙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몸을 기계로 바꾸고 또다시 능률을 위해 기계로 바꿔 사이보그가 되어 회사에 예속되는 결과에 이른 노동자의 처절한 삶 어디에도 기본적인 인권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노비도 아니고, 회사 소유물도 아니고,

일 시킬 때만 전원 넣고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기계도 아니잖아요."

- 회사 후배 주안의 말

 


 

 

'농성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한 일'

역사 속 수많은 사람이 했던 이야기를 소설 속 나는 다시 한다. 우리 모두 사람이라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안나푸르나

-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길은 무엇일까

 

"닫힌 교문을 열며"

 

안나푸르나,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봉우리.

네팔 말로는 '풍요의 여신'이라는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 아래 새겨지듯 선명한 희고 뾰족한 산봉우리에 잠든 선생님을 추억하는 이들의 직업은 선생님이다. 담임 선생님으로 한 학기 동안 시간을 보냈지만, 그가 보여준 참교육에 대한 열의는 제자에게 오롯이 새겨져 있다. 먹먹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글이었다.

 

 


/할망의 귀환, 단지

- 제주 4.3, 우리는 어느 만큼 이해하고 있는가

 

제주 4.3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연좌제처럼 족쇄가 되어 말하지 못하고 삭혀야만 했던 아픔과 고통은 애끓는 분노가 되었다. 전혜진 작가는 이를 고전 설화와 무당과 접목시켜 호러 미스터리로 제주도민의 애통한 마음과 분노를 표출하였다. 오싹하면서도 피맺힌 그들의 한에 가슴 저려, 끝내는 오열하였다. 국가 권력 아래 자행된 잔인한 폭력에 무참히 짓밟힌 생명들이 가여워서, 모르고 지내온 시간이 미안해서.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 인간의 기본 도덕이 무너지는 세상, 전쟁의 참상은 그 어떤 생각보다 잔인하다.

 

읽으면서 몇 년 전 개봉했던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 떠올랐다. 펜 대신 총, 칼을 들고 학교가 아닌 전쟁터로 향해야 했던 학도병의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혔는데 글로 만나는 학도병 이야기는 신성한 존재가 등장하여 악랄한 죄를 범한 인간을 벌하니 숙연해졌다. 새삼 인류가 저지르는 크나큰 범죄인 전쟁의 무게가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그 수라장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창백한 눈송이들

공군 내 성범죄를 다룬 이야기다.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가해자는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은 비상식적인 상황이 계속되었다. 결국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것은 바로 귀신들이었다. 죽은 여군들.

 


"여군을 추행했을 때는 술 먹고 그럴 수 있다더니,

유리창을 박살 내고 자기들끼리 치고받은 것은 문제가 된다니. "

 


 

 


/너의 손을 잡고서

- 살아남는 것이 고통이라 말하는 국가폭력 생존자의 고백을 이제는 우리가 짊어져 덜어주어야 마땅하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팽배하던 시절에는 살기 위해 광주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숨겨야 했다.

 

"산 사람의 몸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의 온기를 실감하면서."

 

 


 


 

한 권의 책에 이토록 깊이 팬 상처들을 담고자 한 전혜진 작가의 용기와 패기에 새삼 감복하였다. 단편이지만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장르화하여 독창적인 결말로 토해낸 기염이 대단하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는 힘과 용기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감과 연대를 전하는 <바늘 끝에 사람이>, 널리 읽히길 바란다.

 


한겨레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의 소년 어제의 소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4
범유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답게 산다'


어쩌면 사는 내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줄 아는, 단단한 사람이 진정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까지도 사람마다 다양한 제약과 굴곡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는 바를 꿈꿀 수조차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내일의 소년 어제의 소녀/ 범유진/ 자음과모음




 

<내일의 소년 어제의 소녀>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하여 'OO 다움'으로 주변의 제약을 받는 열네 살 아이들이 이를 이겨내고 자기가 원하는 걸 꿈꾸고 이루기 위해 꿋꿋이 나아가는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열네 살 중학생 김태웅은 엄마와 함께 간 원주 성황림에서 조선으로 타임 슬립하게 된다. 그리고 동갑내기 얼자 김금원을 만난다.

태웅은 사고로 사랑하는 아빠를 갑자기 떠나보내고 아빠와 한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하던 중 학교에서 사건이 터지고 만다.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해. 엄마를 지켜 줘.

남자 대 남자의 약속이야."

- 아빠와 한 약속 -

 

 

'강한 사람' = '남자답고 물리적인 힘이 센 사람'

태웅은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욱이 중학생이 되어 한 반이 된 최민석은 '남자답지 못하게'가 말버릇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남자애들을 괴롭혔다. 다들 최민석의 행동을 싫어했지만 괴롭힘을 당할까 무서워 맞서지 못했다. 그런 최민석에게 태웅은 비밀을 들키고 말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민석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태웅은 민석에게 맞섰다. 민석이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올곧은 하은이를 모함하기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웅은 성공하지 못했고 민석은 태웅의 바지를 억지로 벗기고 치마를 입혔다. 그 뒤로 태웅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태웅을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다는 성황림으로 데리고 간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 남서당에 묶인 태웅의 소원 종이 -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테레오타입에 사로잡혀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일의 소년 어제의 소녀> 속에 나오는 수많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처럼 'OO 다움'은 정답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이자 족쇄일 뿐이다. 남자답다고 하는 행동들은 소인배가 하는 한심한 행동으로 응당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었다.

 


태웅은 조선으로 타임 슬립하여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도 수없이 남자답지 못한 자신을 다그치고 자책한다. 하지만 금원은 그때마다 옆에서 계속 힘을 북돋아 주고 응원한다.

 

 


"나는 네가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해.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이미 강해.

그리고 친구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키는 게 아니라, 서로 돕는 거지."

 

 

 

 

 


 

 

물리적인 힘의 세기로 남자다움을 뽐내려는 것은 '폭력'이며,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헤쳐나가고 서로 돕는 것이 용기이며, 진정한 강함이라는 메시지를 판타지를 활용하여 잘 살려내고 있다.

타임 슬립뿐 아니라 이무기 설화로 태웅이네 집안 이야기를 엮어낸 부분과 역사 속 인물인 김삿갓과 김금원을 모델로 하여 매력적인 호감 넘치는 등장인물들로 조선시대의 생생한 민간 이야기를 풀어낸 부분이 인상적이다. 신분에 의해 제한이 있던 조선시대에 재능은 넘치나 하필 '여자'로 태어나서 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던 금원이 태웅 말처럼 한 번 사는 인생이니 후회 없이 살고자 하고픈 일들을 이루고자 힘쓴다.

 

 

"당연한 건 없어. 다 바뀐단다.

그 변화를 만들어 가는 거도 사람이지.

능력껏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좀 바뀌지. "

 

 

금원이, 태웅이, 하은이처럼 자신이 하고픈 일을 이루고자 노력해나가는 이들이, 불의에 대항하여 잘못을 일깨워주는 이들이, 남들의 시선에 "그게 어때서?" 당당히 대응할 수 있는 이들이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것일 테다. 멀리 보이는 그들이지만 태웅이 성장한 것처럼 누구도 가능하다는 다정한 응원이 전해진다.


 

"내가 미래의 너를 찾아냈어, 금원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성평육' 《내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낯선 사람 -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김도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선 사람/ 김도훈/ 한겨레출판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만들어낸

그 불운하지만 용감한 종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종은

고통 속에서 천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고결한 꿈이 있었다.

그 종은 모순 덩어리였고 개인적이었고

싸움을 좋아했고 때로는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선의와 사랑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마지막 경의를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경의는 언젠가는 잊히고 시간의 모래 속으로 사라져 가겠지만

적어도 한 번은 이렇게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인류에게 바친다."

- 미셸 우엘베크의 소립자 중


 

 

8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오늘날, 디지털로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오늘날, 가장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이라 말할 수 있는 오늘날이다. 그런 지금 <낯선 사람 -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를 읽는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자 한다.

 

김도훈 저자는 누군가에는 낯선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는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찬란한 영광의 찰나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낯설지만 비범한 스물여섯 명의 삶은 우리에게 정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은 왜 낯선 사람일까?

 

읽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나의 좁은 식견과 관심 그리고 건망증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낯선 사람>에 소개된 인물 대부분이 불편한 점을 가지고 있다. 사회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거나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어 그들의 정체성이 가시화될 때 불편하고 마땅치 않은 느낌에 대중화되지 못하고 '낯선 사람'으로 남은 것 같다.

 

 


 

 

 

 

스물여섯 명의 삶을 통해 우리는 김도훈 저자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우리에게 알려주고픈 이들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그가 고민하는 지점들을 함께 살펴나가면서 왜 그가 그토록 이들을 애정하고 미워하고 경의를 표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김도훈 저자는 역사, 정치, 경제, 영화, 음악, 건축 등 걸친 여러 가지 부문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연관된 인물들을 선정하였다. 작가의 말에서 피력한 바와 같이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결점 때문에 논쟁의 한가운데 휘말려 든 매혹적인 인간들을 말이다. 단 한 번,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절정의 순간을 산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읽으면서 그의 경의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였다. 그리고 '낯선 사람'에서 이제 '들어본 사람', '알게 된 사람'으로 딸깍 변하는 시점이기에 그가 표하는 우려나 걱정, 한계 그리고 추앙을 나 자신의 시점에서 다시 들여다볼 필요성도 느꼈다.

 

◈ 치치올리니의 세계에 치치올리나가 있었다.

◈ 손기정의 꿈은 히틀러의 치어리더에 의해 영원히 기록됐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딜레마다. 혹은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운 딜레마다.

◈ 킹카들의 세상에서 결국 퀸카는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 누구든 '나'로 살자!

◈ 마일즈에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특성일 따름이다.

- 낯선 사람 중 인상 깊은 문장들

 

 

 

 

 

아래 발췌한 김도훈 저자의 글이 내 진심을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낯선 사람>을 언제까지 낯설게 느낄 건지 묻고 있는 듯하다.

 


 

한겨레 하니포터 6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일은 없고요? / 이주란 소설집/ 한겨레출판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우리는 주변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의 만난 적 없는 이들과도 제각기 다른 농도와 색채로 인연을 쌓는다. 그냥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여 자연스레 교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특별히 마음이 가는 이도 있다.

 

 

 


<별일은 없고요?> 소설집은 우리네 인생에서 스쳐가는 만남과 인연을 다정하게, 소중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관계에서 상처를 입거나 지쳐서 떠나고픈 이와 별다른 말없이 그를 품어주는 이가 나오는 이야기들이 다정한 온기가 되어 내 손을 꼬옥 잡아주는 느낌이다. 사람이 사람을 품어주는 건 어찌 보면 힘들지만 또 어찌 보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집 속 다양한 인연들이 늘여뜨려 얽히고설켜 짜낸 직물처럼 한 줄이 어려운 시기도 있을 테고 한 작품이 뚝딱 완성되는 찰나도 있을 것이다.

 


<별일은 없고요?>는 내밀한 감정 표현이 마음에 뭉글한 위로를 건네는 소설집이다. 8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전하는 단단한 메시지가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은영과 은영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와 비슷한 느낌을 지닌 이들이라 더 깊이 공감하며 읽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는 가졌던 것을 잃었다기보다는 원래 없는 사람들이었고

삶 속에서 어떤 이야깃거리를 발견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듯하다.

그래서 몇 마디 한다고 하는 게 늘 싱겁기만 한 그런 사람들이었고,

은영 씨의 그런 점이 나는 좋았다."

- 사람들은 - 

 

 

나도 그런 싱거운 점이, 무던한 점이 그리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점이 좋았다.

 




 

 

8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각 인물들 간의 내막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지 않다. 맥락으로 유추하거나 토막 토막 던져진 조각들을 잘 연결하여 인물들 간의 역사를 가늠할 뿐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뿌연 바닥이 감정을 진하게 하기도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하기도 할 듯하다. 대부분 이야기에 '죽음'이 등장한다. 인물들은 이로 인해 상실과 상처를 입어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갈등과 긴장의 해소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왜인지 자주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마음이란 게 반쪽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런 저라도 이젠 좀 괜찮을까요?

앞으로는, 앞으로는 정말 좀 다를까요?"

- 이 세상 사람 -

 

 

네, 앞으로는, 다음에는 행복할 거라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만나서 먹고 웃고 떠들다가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다음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또 그렇게 잘 살아갈 게 분명하다. 내 목소리인지 작가의 목소리인지 모를 다정한 목소리가 등줄기를 쓰다듬어 주는 듯했다.

 

 


 


한겨레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심포차 심심 사건 네오픽션 ON시리즈 10
홍선주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다다다. 괴물이다, 괴물을 잡자. 우다다다다."

 

 

심심포차 심심 사건/홍선주 장편소설/ 네오픽션/ 자음과모음




 

마음을 살피는 소설 『심심포차 심심 사건』은 시작부터 우리의 마음을 부여잡고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주인공 류용찬(떳떳할 용 庸, 빛날 찬 燦)이 소설의 무대인 '심심 심야포차(審心深夜布車)'를 발견하고 그 빛 속으로 뛰어드는 찰나, 우리도 안도의 숨을 깊게 몰아쉬게 된다.

 

 

"누가, 누가 나를 이 악몽에서 빼내줘요, 제발!"

 

 

주인공 용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듯 밝은 빛으로 그를 구해준 그곳으로, 따뜻한 온기로 그를 부르는 듯한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제부터 우리는 작가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나는 다 읽은 후에야 소설 곳곳에 숨겨진 홍선주 작가의 영리한 의도를 알아차렸다. 생각 없이 읽다가는 작가의 페이스에, 용찬의 심리에 휘둘리게 된다. <심심포차 심심 사건>은 '추리 소설'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 드라마 <심야 식당>을 떠올리게 하는 심심포차에서 용찬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십 대 후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지닌 인상 좋은 주인 '서프로'와 다른 손님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느끼고 부러워하게 된다.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는 그이기에 따뜻한 요리가 온몸에 퍼지는 포근함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손님들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사건 이야기 모두가 다시 누릴 수 없는 행복과 평안이었다. 심심포차는 곧 문을 닫을 예정이라 그렇게 류용찬의 행복한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심심포차 심심 사건』은 총 여섯 번의 방문으로 구성되었다. 전직 검사 출신인 서 프로가 운영하는 포차에는 순경, 형사, 검사 등이 주로 방문한다. 보통 술집과는 다르게 음악 없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자신들이 해결했던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방문할 때마다 사건에 대한 내막을 듣고 진실을 추리해나가는 작은 재미가 있고, 소설 전반에 걸쳐 조각을 맞춰나가야 하는 큰 사건이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추리 소설 마니아로서 이렇게 다정한 추리 소설을 추천할 수 있어서 기쁘다. 작은 사건들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힌트를 얻어 풀리지 않던 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기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경험하게 된 결핍과 소외, 폭력은 온전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데 있어 큰 저해 요인이 된다. 보육원에서 자란 용찬은 '괴물'이라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을 때 제대로 보호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해 결국 자기만의 세계로 숨어들었다.

 

외출 시 용찬이 항상 챙겨 다니는 물건 3가지가 있다. 가죽 장갑, 텀블러, 수저통!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싫다는 이유라는데 앞에서 서술된 어린 시절 이야기 때문에 과하다 느꼈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살아가는 방식이자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아니, 혼자여야 했다."

 

 



 

 

드디어 심심포차 영업 마지막 날, 대반전의 막이 올랐다. 맞춰가던 퍼즐 그림이 윤곽을 드러내고 몇 조각 남지 않았을 때의 흥분처럼 기분 좋게 읽어나갔다.

서 프로가 진심으로 용찬을 대했기에 용찬도 서 프로가 그에게 한 일까지 다 받아들이고 오히려 감사와 염려의 말을 전하는 훈훈한 마무리가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 나눈 이도, 자신을 믿어준 이도, 자신을 위해 정성 가득한 음식을 만들어 준 이도, 자신조차 의미 없이 여긴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 이도, 자신을 위한 파티를 기획해 준 이도 모두 서 프로였다.


"그리고…… 나를 단죄하고

나에게 다른 삶을 살라고 조언해 준, 유일한 사람."

 


 

그렇기에 '심심포차를 나서던 언제나처럼, 만족스럽고 행복했다.'라는 용찬의 진심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살의 중요한 부분이 크게 결핍된 그가 죗값을 치르고 이름처럼 당당하고 빛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눈에 살짝 맺혔던 물이 카랑카랑한 서 프로의 웃음소리에 날아가 버렸다. 끝까지 유쾌한 서 프로와 동료들의 끈끈한 우정과 신념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