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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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민 #지켜야할세계 #사전서평단 #다산북스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신작

 

지켜야 할 세계/ 문경민 장편소설/ 다산북스



 

 

문경민 작가의 신작 『지켜야 할 세계』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30년 차 국어 교사 정윤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켜야 할 세계』는 특히 그가 쓰러지기 전 마지막 한 해를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가제본이라 도입부만 볼 수 있어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의 죽음을 알고 읽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더 아리고 먹먹하게 다가와 중간중간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그가 지켜야 할 세계는 무엇일까?

어릴 적 헤어졌던 장애를 지닌 동생인지,

좋은 교사가 되고자 마음먹고 들어선 학교인지,

학교에서 만난 동생과 비슷한 학생 시영인지.

그가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켜내고자 했던 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정윤옥, 그를 두고 고집스럽고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라 이가 있고, 단단하고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라는 이도 있다.

내가 지켜본 그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옹골찬 사람으로 자신의 바람과 기대를 부정하는 현실의 시선과 잣대에 상처 입으면서도 의연하게 나아가는 이었다.

 


사범대에 진학하였으나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동기들과는 달리 '교사'를 꿈꾼 정윤옥. 자신이 겪었던 교사와는 다른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한 그였기에 교직 생활이 순탄치 못했으리라.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대학교를 거쳐 청운을 품고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었을 그를 감히 헤아려보면 가슴이 지끈거린다.

 

 

윤옥이 어릴 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제 서른 초반의 어머니가 홀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독해져야만 했던 산동네 생활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대신해 장애를 가진 동생을 돌보느라 집에 매어버린 어린 딸이 눈에 밟혔으리라. 지호한테도 나으리라 생각했고, 그보다 윤옥이 살고 어머니가 살고자 힘들게 떠나보냈건만 마음의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윤옥이 시영 학생을 보면서 챙기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의 기저에는 눈물 그렁한 눈으로 헤어진, 떠나보내버린 동생 지호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가 시영을 계속 자신의 그늘에 두려고 하는 행보가 고등학교 관리자에게 거슬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학부모들이 작성한 '수업 관찰 분석 보고서' 내용으로 보아 입시에 전념해야 할 고2 학생을 담당하고자 하는 게 탐탁지 않은 것이라 예상되어 씁쓸하였다.

 



국어 교사로서 지식의 전달과 이해를 위해 쉼 없이 수업 내용과 교수법을 고민하는 윤옥을,

가족 같은 존재였던 수림 엄마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부쩍 수척해지시고 멍든 얼굴에 다리까지 저는 어머니를 보고 충격받은 윤옥을,

목사에게 떠나보낸 동생 지호를 찾아가서 비참한 진실을 마주하고 부서져내린 대학생 윤옥을 만나는 내내 그가 지켜야 할 세계에 대해 생각이 깊어져만 간다.

 

그가 걸어온 굴곡 깊은 인생길에 남들은 어쩔 수 없다고 다독일지라도 그는 인정할 수 없는 건 무엇이었을지. 부러지더라도 날선 삶의 태도를 잃지 않았던 윤옥이 보낸 마지막 한 해가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을까 염려가 되면서도 그가 지닌 투지를 알기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 같더라.

정말로 그런 걸까.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어쩔 수 없다.

이 문장으로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자책과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며 괜찮다고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두려워졌다.

 

문경민 작가가 정윤옥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지켜야 할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본책으로 치열하게 촘촘하게 지켜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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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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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프로젝트, #봉봉, #씨네21북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환상만화앤솔로지

 


'만화'라는 장르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이면서도 그에 걸맞은 평가를 못 받지 않나 싶어 아쉬웠다. 그런데 요즘에 웹툰이 크게 각광받고 있어 좋으면서도 오락성과 재미에 치중하면 어쩌나 염려도 된다.

하지만 이번 하니포터 7기 활동 도서로 수령한 <웰다잉 프로젝트> 덕분에 노파심에 불과하는 걸 또다시 깨닫는다. '만화'가 뻗어나간 가지가 많으니 제각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해주면 될 뿐이다.




웰다잉 프로젝트/ 봉봉 글·그림/ 씨네21북스/ 한겨레출판


 

 


'웰다잉'

고령화 시대가 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예전처럼 기다리는 '죽음'이 아니라 준비하는 '죽음'으로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결국은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생각의 변화가 일었다.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함께 하면서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떠나가는 이에게도, 남겨진 이들에게도 이해와 수용, 치유의 시간이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만화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식은 결이 다르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환상만화 앤솔로지답게 '죽음'조차 상품화하는 자본시장의 추악한 면을 담고 있는 <웰다잉 프로젝트>가 표제작이다. 이를 필두로 총 6편의 작품들이 기이한 사회 현상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고등학생인 큰 딸은 '불쾌하다'라고 책을 중간에 덮었다. 그만큼 이 만화에서 담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우매는 예 상보다 끔찍하고 지독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가 빛나는 게 아닐까.

 

 

 

『웰다잉 프로젝트』 - 「웰다잉 프로젝트」 중


 

 

<ANA> 아직은 싱그럽고 푸르른 잎사귀 같은 십 대의 눈앞에 그려진 인공 자궁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처참한 사건들이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이어서 <웰다잉 프로젝트>는 원하는 대로 죽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이 과정을 방송하는 리얼리티쇼를 배경으로 좋은 죽음, 아름다운 죽음, 완벽한 죽음을 맞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걸어가는 허황된 길을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죽은 단칸방 할아버지. 사람들이 보이는 지나친 반응에 그 마지막의 여운이 마음 깊숙한 곳에 이르기 전에 흩어지고 씁쓸함만 남았다. 그래서 아이의 '불쾌하다'라는 평에 오히려 안도하였다. 그 느낌을, 기분을 잘 간직하여 사회의 기이한 현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멈춰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본다.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주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편리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웰다잉 프로젝트> 역시 만화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집이다. 6편의 작품이 소재로 삼은 상황과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행태는 독자인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웰다잉 프로젝트』 - 「붉은 여왕」 중



 

인공 자궁, 유전자 조작, 성형 수술 등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체의 신비로운 영역까지 다룰 수 있게 된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으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이를 악용할 것인지. 만화는 기술 발달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들을 다양하게 엮어내고 있다. '그럴 수 있지.'에서부터 '어떻게 이럴 수가!'까지 우려를 넘어 기술을 금하는 게 옳지 않나 싶을 정도의 일들이 벌어진다. 윤리적인 영역과 경제적 이유로 인한 선택권 박탈 같은 보편적으로 야기되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백업 인공 자궁, 미수령 아이 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펼쳐졌다.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역사 흐름상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철저하게 예측분석되어 악용되지 않도록 사회적 구성원들과 합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만화를 통해 인공 자궁, 유전자 조작, 성형수술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이 제공하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신은 변기>, <마지막 비행>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어리석음을 괴이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안과 밖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명백한 시선차는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보고 듣고 맞다고 판단한 정보가 모래처럼 허물어지기 쉬운 토대 위에 쌓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작은 마음, 간단한 일부터 시작되어 종교가 되거나 시대의 아픔과 분노에 일어선 투사가 되어버렸다.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강렬한 욕망이 이 기막히고 어이없는 상황을 긴장감 넘치게 고조시켰다.

 

 


『웰다잉 프로젝트』 -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 중


 

 

그리고 결이 다른, 말랑말랑한 만화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가 있어서 앤솔로지가 더 풍부해졌다. 검고 끈적한 작품들 속에서 말랑하고 촉촉하게 안아주는 만화가 있어서 무거워진 마음에 날개를 달아준 듯 가벼워져 생기가 돌았다. 봉봉 작가의 센스가 아주 탁월하다. 물론 이 만화 또한 우울한 상황의 청년을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엔딩이라 너무 좋다. 편안하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를 다시 읽을 정도로.

 

기이하고 어둡고 불쾌한 상황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우리를 떠올리게 되는 힘 있는 환상만화 앤솔로지 <웰다잉 프로젝트>였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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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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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준비 없이 보내버린 이와 똑같은 이를 마주한다면? 기억이 나지 않아 그리워할 추억조차 없는 소중한 이와 똑닮은 자신을 마주한다면? 상실의 무게는 짊어진 자들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무겁든 가볍든 아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진정한 애도를 통해 떠난 이와 진심 어린 안녕을 고하고 나서야 아파서 뭉그러뜨렸던 삶의 주름을 펴고 찬란한 오늘을 시작할 수 있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이희영 저/ 창비출판


 

 

이희영 작가의 신작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열여덟 살 고등학생 2학년 '선우진'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에서 사라진 후 십삼 년 터울이 지는 동생 '선우혁'이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십삼 년 차 쌍둥이. 닮아도 너무 닮아 한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코앞에서 보는 듯한 형제. 이렇게 닮은 형제는 십여 년의 시간을 흘려보내고서야 마주하게 된다.

 

 

"시간의 파도에 모든 것이 마모되는 건 아니다.

나무에 새겨지는 나이테처럼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이 존재했다.

추억과 사랑, 그리움 같은 것들……."

 

 

형이 죽기 전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여느 때보다 형의 존재를 깊이 느끼게 된 혁이는 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형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교감 선생님, 형의 친구 수민이 형, 그리고 메타버스 가우디 게임 속 공유 친구 곰솔까지 형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형을 입체화시켜가는 과정에서 혁이는 깨닫게 된다. 형은 추억하는 이들 속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비밀은 그림자 같은 게 아닐까? 세상에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잖아. 오히려 빛이 밝을수록 그늘도 선명하고, 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잖아.

비밀도 때에 따라서는 많아졌다 적어졌다, 심각해졌다 가벼워졌다 하겠지.

......

세상에 모든 비밀이 나쁘기만 하겠냐?

비밀과 거짓은 좀 다르잖아. 말하기 싫은 것과 남을 속이는 건 엄연히 구분해야 해."

 

 

우리는 상대방이 보여주는 면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받아들여 상대방을 인식한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두고도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진이의 표현대로 제삼의 눈이며 온점일 그 무언가는 사람을 다채롭게 한다.

풍성하면서도 외롭고, 보편적이면서도 비밀스럽게 만드는 내가 느끼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타인을 만나는 기적 같은 인연이 따스하고 내밀하게 그려진다.

 

 

서로 다른 시간, 하지만 같은 그리움에 대한 두 화자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편의 소설로 결말 되는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편지' 형식으로 풀어내는 과거의 인연과 비밀,

'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로 소통하며 친밀감을 쌓아가는 현재의 인연과 비밀.

 

 



 

 

선명한 추억 없이 막연한 슬픔과 그리움이 자리 잡았던 형의 자리에 형의 소중한 인연들이 말해준 형에 관한 조각들이 각기 다른 색채로 채워지고 잊고 있었던 형과의 마지막을 기억해 낸다.

 

"행복이 그러하듯 불행의 씨앗 역시

너무 작고 보잘것없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발아해 뿌리를 내리면,

폭풍우가 치는 바다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돼."

 

 

이 소설은 떠난 이에게 제대로 안녕을 고하지 못한 이들이 화자이다. 너무 어렸던 동생 선우혁뿐 아니라 죽음의 원인을 자신이라 여기며 미안해하는 친구 곰솔이 있다. 아무도 몰랐던 형과 곰솔의 신비로운 공간 가우디 내 'JIN의 정원'에서 둘이 조우하면서 비밀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기다리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그 기분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충족감은 같을 것이다. 선우진을 떠나보내고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어버린 선우혁과 곰솔. 더는 '귤'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을, 자신으로 인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을 전하는 소설의 마지막을 덮으며 새콤하고도 달콤한 귤 향기를 맡았다. 절로 반응하는 몸에 기분이 좋아졌다.

 

 

"귤을 좋아하면 겨울이 즐겁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는 상실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고민이 잘 녹아있다. 떠난 형이 남아있는 이들 기억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별명이 '도깨비바늘'인 도운이도 활달하고 붙임성 좋은 학교 내 모습과 메타버스 속 강태공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뜻밖의 사건으로 밝혀지는 진실은 마음을 아리게 했다. 다들 별다른 의미 없이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상처를, 슬픔을 감춘 채 애쓰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를 배려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하루를 애쓰며 살아가는 이에게는 충전할 공간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 할 이가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서로의 온점이 따뜻하게 반응할 무언가를 지닌 존재가 곁에 있다면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단단히 다질 수 있는 온기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돌고 돌아 진실을 마주하고 아픔을 수용하고 떠난 이에게 안녕을 고하고 다시 찬란한 하루를 수놓아갈 추억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이희영 작가의 다정한 위로이자 응원이다. 그리고 남들은 볼 수 없는, 어쩌면 이해시킬 수 없는 고유한 세계인 백의 공간을 마주하게 해준, 받아들이게 해 준 지침서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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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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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독보적인 글솜씨를 선보이는 작가, 최진영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책 제목인지 작가 소개인지 헷갈릴 정도로 적확한 표현이다.

 


단 한 사람/ 최진영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한겨레 하니포터7기로서 가제본으로 받아 읽어본 작품, <단 한 사람>

작품 분량 1/3밖에 되지 않아 이제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끝나버렸다. 아쉬움보다는 갈증이 커서 구매했다. 목화와 미수와 천자 그리고 나무의 이야기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도하였다.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

그것은 한 사람의 일이었다.

 

 


숭고하다 해야 할까? 가혹하다 해야 할까?

대물림되는 능력은 축복인지 형벌인지 저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오직 한 명만을 구할 수 있는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앞에 놓인 세 여인의 수용과 납득은 달랐으며 결의와 저항 역시 차이를 보였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 그리고 손에 움켜쥔 정보가 달랐기 때문일까. 그들의 성향이 달랐기 때문일까.

 


꿈꾸는 것처럼 소환되는 구원의 일 자체가 경이롭고 놀랍기도 했지만, 세 여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로 인한 변화와 태도 또한 짧은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도 마음 언저리에 걸렸다.

 

 



 

 


프롤로그부터 장엄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불가사의한 일들로 채워진다. 두 생명이나 한 생명처럼 서로의 뿌리가 하나로 얽힌 두 나무. 유구한 세월 동안 서로가 가까워지길 원했던 두 나무가 마침내 하나가 된 듯하였으나 아주 작은 인간이 한 나무를 베어버렸다.

 

 


수수께끼처럼 남은 그루터기.

그와 같은 죽음은 처음이었다.

그처럼 강제적인 죽음은.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이별 또한 아니었다.

훼손이었다. 파괴였다. 폭발이자 비극이었다.

- 프롤로그 | 나무로부터 | 19쪽

 

 

자연이 자연에게 부여한 생명을 거두어들이는 흐름과 순환의 이치를 거스른 인간의 행위가 이 거대하고도 슬프고도 거룩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일어났으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겪은 미수와 복일 가족의 고통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지독했다. 갑작스러운 금화의 실종은 한 가족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 이 수수께끼도 책을 구매하게 한 요인이었다.

 

미수와 복일의 다섯 아이들.

일화-월화/금화/목화-목수.

각기 다른 성정의 아이들에 대한 짤막한 글을 통해 구축된 가족은 그즈음 흔한 평범한 모양새였다. 자신을 제하고는 어울리는 이가 있다 생각하여 누구하고든 이어지고 싶어 했던 금화가 사라지게 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어진 이들만 남은 가족 곁에 금화 대신 죄책감만 남았다.

 

증명할 수 없으나 존재하는 것 편에서는 소환되어 단 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게 된 세 여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자신이 짊어진 일에 대해 받아들이는 방법도, 명령을 내리고 복종을 강요하는 존재를 부르는 이름도 다른 이 세 여인의 인생 이야기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계절에 온몸이 달아오르게 하였다가 소름 돋게 만들었다. 믿음, 신앙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품은 채 부정하는 나이기에 악의 없이 잔인한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이, 의문이 깊어져 갔다. 소설 끝 목화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그가 깨달으면 나 또한 깨우칠 수 있을까. 단 한 사람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야 풀릴 마음이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

부활한 나무.

시간을 초월한 생명.

무성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 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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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반짝이는 정원
유태은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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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반짝이는 정원/ 유태은 그림책/ 미디어창비


 

 

유태은 작가의 신작 <사이 는 원>은 포근히 감싸주는 책이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큰 바탕을 이뤄 어른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하는 환경과 관계를 짤막한 글과 부드럽고 편안한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싹만큼 작았던 내가 아주 커다란 할아버지의 정원에서 할아버지가 꽃과 나무를 가꾸는 시간을 공유하였다. 흙냄새를 맡고 작은 곤충을 구경하면서 할아버지가 가꾸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자연을 느끼면서 사랑을 듬뿍 받았다.

 

 


 

새싹이 자라 해바라기만큼 자랐을 때는 할아버지가,

나무만큼 자랐을 때는 내가 이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내 아이가 새싹만큼 작았을 때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성장하는 나를 지켜보고 나이 드는 할아버지를 살피면서 두렵고 무섭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씩씩한 나를 응원하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우리는 이 무언가를 추억과 사랑이라고 부른다.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꽃을 볼 때마다 피어나 나를 지켜주고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최근 읽은 김달님 작가의 에세이집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

"이제는 네가 기억하는 것들이 너를 지켜준다는 것을."

 

결이 비슷한 책들을 연달아 읽어서 마음의 울림이 더 커졌다. 나는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추억이라고 할만한 기억이 없다. 대신 할머니들과는 추억이 있다.

음식에 관한 추억. 그래서인지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약과와 외할머니께서 요리해 주셨던 오징어무 초무침 보거나 만들 때면 어린 시절의 나와 할머니가 함께 요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할 수 있겠다 싶은 일들은 맡겨주셨던 할머니 덕분에 반죽을 밀대로 쭈욱 밀거나 칼집 낸 약과를 뒤집어 모양을 내어 자랑스럽게 가져다드렸던 나를, 칭찬해 주셨던 할머니를 기억해 내고는 빙그레 행복의 미소를 짓는다.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기억은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반짝이는 사랑과 추억과 행복은 그렇게 소복이 쌓여 그리움이 되더라도 슬픔을 이겨낼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당당히 손을 내밀어 문을 열고 또 다른 시작을 꿈꿀 수 있게 돕는다.

 

 

 

 

 

작가의 모란꽃 화분과 콧노래가 따라오는 할아버지의 반짝이는 사랑처럼 지금 우리를 감싸주는 자신만의 사랑과 추억을 기억하고 소중히 여겨야겠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귀한 추억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리라.

 

식물이 가득한 그림책이라 보면 절로 편안해진다. 부드러운 그림체와 편한 색감 그리고 행복한 웃음 띤 할아버지와 손녀를 보면 누구라도 상냥하고 다정해질 것만 같다. 우리 아이들과 계속 계속 보고 싶은 <사이 는 원> 그림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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