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한 미식가 - 나를 돌보고 남을 살리는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초식마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건한 미식가/ 초식마녀 글 ·그림/ 한겨레출판



유튜브를 보지 않는 1인이라 저자 '초식마녀'를 알지 못한 채 [비건한 미식가]를 읽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비건'이라는 길을 걷게 된 진솔한 마음과 요조 작가, 가족, 지인들과의 현실에서 겪게 되는 생생한 비건 라이프를 엮어낸 글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유튜브 채널을 방문해 책 속 레시피를 영상으로 만나보고 소소한 일상을 보는 등  '초식마녀'에게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녀는 모르고 나 혼자만의 착각이지만.



어쩌다 비건 요리 유튜버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글을 읽다 보면 '비건'에 대한 의지는 생애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 비건을 결심했을 때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는 빨간약을 먹은 네오가 된'(227쪽) 것 같았다는 문장에서 그 결심의 무게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와 존중보다는 가족, 마을, 사회 등 공동체적인 화합과 관계를 더 중시 여기고,  다양한 개인을 고려한 선택보다는 평균 ·보통이라 칭하는 다수의 편의를 고려한 결정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비건을 지키며 살아가는 길은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주변에서 듣는 말들 대부분이 아이들이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 부모님께서 직접 재배하셔서 보내주시는 무농약 채소들로 요리한 음식들을 어렸을 때부터 접해서인지 고기반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채소, 생선, 고기 등 해주는 대로 "잘 먹겠습니다."로 시작해 "잘 먹었습니다."로 끝나는 식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서 초식마녀 비건 레시피를 식탁에 접목시키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아이라 예상대로 김치 칼제비는 반응이 좋았다. 마라 크림 떡볶이도 마라탕에 익숙해진 아이들 입맛에 잘 맞았다. 대체로 친숙하고 적은 재료라 준비가 쉽고, 간편한 레시피라 뚝딱뚝딱 요리하기도 쉬워서 누구나 한 끼 채식 밥상을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쉽다! 맛있다! 그리고 지구를 위하는 작은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게 괜스레 배시시 웃음 짓게 만든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의 '이 정도'를 맡는 것, '만만한' 실천용 비건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을 담당하는 초식마녀는 비건 유튜버로서 마음가짐과 자세, 목표뿐 아니라 '비건'을 소재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읽다 보면 식사 자리나 술자리 옆자리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게 된다. 


유튜브 영상에 달리는 댓글에 대한 의연한 태도(새로운 공동체를 예견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려 하는 대인배), 

비혼-비출산-비건, 자신을 '비정상 인간'으로 바라보지만 이해하고픈 마음의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엄마에 대한 마음, 

'동네 친구'가 된 20년 친구가 비주류 입맛으로 살아오는 길에 대해 비건이 되어서야 그 마음을 살피고 무심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다른 입맛을 반기고, 같은 식탁에 편히 마주 앉게 되기까지 필요했던 긴 시간,

부모님댁에서 키우던 반려견 하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많은 시간과 마음과 비용을 들인 동생과 함께 장례식을 치러주고 나서야 먹는 채식 한 끼,

'채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시선들에 대한 날카롭고 깊이 있는 메시지와 '돈'을 위해서는 학대 ·살상을 허용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공장식 축산 등 자연을 착취하는 산업과 이에 대해 눈 감는 개인에 대한 뼈 있는 한마디 등 가벼운 일상부터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묵직한 주제까지 다채롭지만 뿌리는 하나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돈 없이, 착취 없이 평등하게 사랑하고 사랑하는 삶. 극단적인 육식에, 동물을 학대·착취 ·살상하는 산업에 반대하는 활동인 비거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 선입견, 거부감이 이 책을 통해 희석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어간다. 




글과 그림을 활용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낸 초식마녀의 [비건한 미식가]를 통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조금은 비껴 우리의 식습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초식마녀의 귀여운 캐릭터로 전해주는 돼지들의 끔찍한 현실이 진짜 거짓말이 되는 그날은 갑자기 찾아오는 마법이 아니다. 가축 행성에서 다시 태어나지 말고 천국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초식마녀의 기도가 마음 언저리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나를 채우고 남과 나누는, 사랑을 품은 식탁에서 모두가 환대 받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내일을 그리는 우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한겨레 하니포터 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