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래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
레나 엘러만 지음, 마라이케 암메르스켄 그림,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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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은 어디일까요?

그건 위대한 고래의 비밀이란다.

자, 우리 같이 찾으러 가보자."

 

 

 

 

큰 고래와 작은 고래가 헤엄치는, 신비로운 바다가 그려진 아름다운 표지의 그림 동화책 《작은 고래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을 소개합니다.

 

 

 

 

이 그림책은 바다 본연의 색과 태양에 물든 붉은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큰 작품입니다. 글 밥은 다소 많은 편이라 아이 혼자 읽기보다는 부모와 같이 읽으면서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길 추천합니다. 고래들의 모험을 따라 눈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문구들만으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 아이가 성장할수록 고민이 커집니다. 이 책은 그런 부모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고마운 책이네요. 큰 고래는 작은 고래의 질문에 직답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곁을 지키며 인도해 줍니다. 힘들어 포기하려는 작은 고래를 다독이고 응원하여 함께 모험을 계속해 나가는 큰 고래를 통해 참부모를 배웁니다.

 

 

"가자. 다른 곳도 보여줄게.

괜찮아. 겁내지 마.

용기를 내면 상을 받을 거야.

또 다른 걸 보여줄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된 둘의 모험은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위해,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하기 위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고난과 좌절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느낄 두려움과 망설임도 그리고 이를 이겨내고 나아갈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성취에 대해 아름답고 행복하게 그려냅니다. 부드럽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고래의 꼬리지느러미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시선을 뺏기게 됩니다.

 

 

 


 

"이겼다! 내가 이겼다!"

 

 

큰 고래는 자신이 여행했던 멋진 곳들을 작은 고래와 같이 다니면서 소개해 줍니다. 비밀의 섬, 무지개, 모험의 배, 산호초, 해마의 숲, 옛날 전설 속 물에 잠긴 도시, 고래의 합창 장소, 고요의 만까지.

가는 곳마다 감명받아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곳"이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작은 고래에게 "기다려."라고 말하고 또 다른 장소를 보여주는 큰 고래는 작은 고래에게 마지막 수영 시합에 져주는 아량을 보여주네요. 작은 고래는 마무리까지 완벽한 하루를 선사한 큰 고래 덕분에 "인생에서 제일 멋진 날"을 보냈답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제일 멋진 곳을 못 찾은 게 다행이에요.

내일 같이 더 찾아볼 수 있잖아요."

 

 


 

 

오늘 모험을 떠난 곳이 별이 되어 까만 하늘을 수놓은 밤, 우리는 비로소 위대한 고래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고래가 전하는 아름답고 따스한 깨달음 덕분에 책 읽는 내내 아이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을 나눴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곳은 우리가 함께 행복한 곳이란다.

이게 위대한 고래의 비밀이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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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고래책빵 고학년 문고 7
박서영 지음, 윤지경 그림 / 고래책빵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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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만세!"

 

 

탑골공원에 함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1919년 3월 1일, 빼앗긴 주권을 되찾으려 수많은 군중들이 만세 운동에 나선 역사적인 그날을 기록한 외국인이 있었다. 바로 석호필, 독립선언문에 기록하지 못한 민족대표 34인 프랭크 스코필드였다.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박서영 지음/ 고래책빵

 

 


고래책빵 고학년 문고 7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는 한국을 조국보다 사랑하여 일본에 억압받는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프랭크 스코필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시오.

내가 도와주던 소년 소녀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맡아주시오.'

- 프랭크 스코필드 묘비명 -

 


 

 

묵직한 감동을 전하는 프랭크 스코필드의 이야기는 박서영 작가의 상상력과 펜 끝에서 피어났다.

장난기 가득한 개구쟁이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아버지처럼 어려운 이웃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의젓한 청년을 거쳐 생명을 구하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는 프랭크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며 장난을 치던 프랭크가 여행을 다니면서 넓은 세상을 마음속에 품게 되고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현실에 분노할 줄 아는 용기를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인상 깊게 읽었다.

 

어렸을 때는 자신의 뜻대로만 하는 무섭고 고집스럽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였지만,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고자 하는 큰 뜻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면서 프랭크의 삶도 변하게 된다. 프랭크는 살아가는 길 위에서 만나는 멋지고 좋은 어른들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런 끈기와 의지 그리고 노력은 가난과 장애를 딛고 뚜벅뚜벅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까지 간 프랭크였기에 낯선 이국땅에서 소아마비로 장애를 가지게 된 몸으로도 수의사가 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난과 장애를 딛고 세균학으로 우뚝 선 그는 당당한 거인 같았다.

 



 

 

어린 시절 추억이 얽힌 나라 '한국'으로 초청받은 일이야말로 운명 같다. 주저 없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코리아를 도와주기로 한 그의 결단은 우리 민족에게는 크나큰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나라에 와서 의사로서의 후배 양성뿐 아니라 3.1운동, 제암리 예배당 사건, 수촌리 마을 방화까지 일제의 잔혹한 만행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선 그는 조국보다 한국을 사랑한 우리의 영웅이자 독립투사였다.


 


 

 

아름다운 한국을, 자유를 갈망하는 한국을, 독립의지로 불타오르는 한국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여 목숨을 바쳐 도와준 의로운 인물,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를 만나 가슴 뭉클하였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석호필'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지은 그의 사랑과 희생을 우리 마음에 깊게 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래책빵 고학년 문고 7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를 통해 박애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찬란한 시간이었다.

 

 

"당신은 한국 사람 같은데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겠소. 일이 필요하면 일을 줄 거요.

만약에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목숨도 줄 수 있으니,

이렇게 창문으로 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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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식탁 -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
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부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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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나는 마트에 가지 않기로 했다."

 

쉰 살에 약초학을 전공하여 약초원에서 진료를 보는 저자는 채취인이다.

 

"채취만으로 정말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채취 강습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365일 야생식만 먹는 실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자연과 동고동락한 시간을 기록한 일지를 《야생의 식탁》으로 출간하였다.

 

 

 

야생의 식탁/ 모 와일드 지음/ 부키출판


 


자연 파괴와 기후 변화를 염려하면서도 블랙 프라이데이에 지갑을 여는 수많은 이들에 기함하여 그날부터 실험을 시작한 모 와일드. 이 야심찬 행보가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기존에 EIDF <최초의 만찬>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강렬해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년간 로컬푸드만 먹고살아보기'에 도전하는 5인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보다 더 깊숙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머무르는 자연에서 채집한 것들로만 사계절을 살아내겠다는 당차고 호기로운 이 도전의 끝이 무척이나 궁금한 나로서는 이 여정을 함께 걸을 수밖에 없었다.

 


 


 

 

활자를 통해서라도 자연을 향한 경외와 공존을 간접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귀중한 자산을 남겨준 모 와일드 저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제는 누구가 실감하는 위기 속에서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그가 찾고자 하는 답 그리고 가능성을 보여준, 생생한 삶의 기록이었다. 글과 함께 수록된 세밀화는 그가 발견한 자연을 우리 삶 속으로, 눈앞으로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채취 전문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풀과 열매, 버섯들이 등장했다. 이름만으로는 생소한 푸성귀들이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과정을 접하면서 깊은 곳에서 감사와 애정이 솟아올랐다. 자연에 예민해지는, 민감해지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여 자신의 사이클을 맞춰나가는 저자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무심코 지나쳐버린 네가 이렇게나 멋지고 귀한 존재였구나. 자연의 은총이었구나. 무지한 자의 눈에만 쓸데없이 웃자란 잡초였을 뿐, 너는 놀라운 기능을 품고 있구나. 하루에 1,2번은 걷는 마을 하천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생명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름 없는, 불필요한 잡초가 아니라 다른 생명에게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생명이었다는 사실에 머리가 띵! 해졌다.

 

 

저자가 기억하는 지도, 식량 지도라고 말하는 그 지도를 떠올려보았다. 우리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맛집 지도와 비교되면서 '음식', '먹거리'의 의미와 무게에 관해 생각이 깊어졌다. 맛집 순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과 오늘의 자연이 허락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모와 맷을 오버랩되기도 하였다. 내 안에서 음식을 대하는 자세와 가치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야생식 실험을 위해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① 오로지 야생식만 먹는다.

② 일 년 동안 다양한 서식지를 돌아다니며 현지 식량을 구한다.

③ 돈은 쓰지 않는다. 모든 식량은 채취, 사냥, 선물, 물물교환으로 얻거나 내 기술과 교환한 대가여야 한다.

④ 야생 조류의 알 대신 유기농으로 풀어키운 암탉의 달걀을 섭취한다.

⑤ 물물교환으로 염소젖을 구할 수 있다.

⑥ 냉동, 건조 또는 보존처리한 야생식도 섭취한다.

 

얼마나 꼼꼼하게 야생식을 지키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저자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2번만 예외사항을 두었을 뿐이다. 그의 결심과 절제에 절로 탄복하였다.

 

 

"음식은 가장 사소하면서도 가장 큰 선물이다."

 

 

그가 채집하고 섭취하는 일련의 과정은 자연의 관대함과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수많은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지나친 소비를 되돌아보게 된다. '인류세'가 아닌 '공생세'를 향해 우리가 뚜벅뚜벅 나아가는 내일을 그려본다.

 

 


 

 

저자의 기록 속에 녹아있는 자연과의 교감, 자연으로의 회귀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1여 년의 시간 속에 함께 한 동료와 지인들의 교류는 저자가 왜 그토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위대함을 지키고 이어주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삶의 통찰은 깊은 공감과 함께 사고하는 힘을 길러준다. 구석기 시대 도구인 손도끼와 돌칼로 토끼, 까마귀, 사슴의 가죽을 벗겨내는 의식 같은 작업이나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 솔라스탈지아에 대한 글처럼 말이다.

 



 

 

국적, 성별, 나이, 식습관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은 성스러운 생명 탄생의 환희를 베풀었고, 자연이 선사한 음식들은 주위와 나눌 수 있는 아량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단순히 야생식 가능 여부를 궁금해한 것을 뛰어넘어 저자의 몸과 정신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야생식을 끝내고 '정상' 생활로 돌아가려는 시점에 두려움을 내비치는 모 와일드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대지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사람은

생명이 지속되는 한 견딜 수 있는 힘의 여유분을 발견한다."

-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해 지금 당장 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책  《야생의 식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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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이너스 2야 - 제2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41
전앤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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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넘치는 그림체와 문장으로 당당하게

 <우리는 마이너스 2야> 

외치는 청소년들이 수놓아진 책을 만났다.

 



우리는 마이너스 2야/ 전앤 장편소설/ 사계절출판

 



제21회 사계절문학 대상 수상작으로 현 고등학교 교사인 전앤 작가의 소설이다. 학생과 함께 한 많은 시간이 탄탄한 토대가 되어 청소년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와 이해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에 자신을 찾아가는 흔들리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잘 담겨있다.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절로 떠오르는 입시보다는 '관계' 그리고 '인생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유쾌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세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상황은 결코 즐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홍미주, 김세아, 김세정.

갑작스러운 세아의 죽음으로 묶인 인연이 세 청소년들의 곪은 상처와 슬픔을 어떻게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인지 기대된다. 자신들이 결정하지 않았던, 어른들이 과거에 한 선택이 가져온 오늘의 혼란과 아픔 그리고 분노를 제각기 다른 방패 뒤에 숨어 견뎌내는 세 아이들. 그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 거듭나는 여정을 시작하고자 하는 찰나 가제본은 끝났다. 야속한 이 단어를 괜스레 흘겨보고는 웃고 말았다. 

"NEXT U"

 


 


 


 

- 홍미주

"어떻게 하면 그런 거짓말쟁이 낙인이 딱 찍히니?"

 

충만했던 유년 시절이 끝나버렸다. 엄마, 아빠라고 믿고 함께 살아온 이들이 이모, 이모부라니. 진짜 엄마, 아빠 집으로 돌아왔지만 너무나 다른 환경은 미주에게 큰 혼란으로 다가온다. 화가 나는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화를 풀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 지루하고 뻔한 시간을 견디고자 했던 미주의 거짓말은 그를 유령으로 만들어 버렸다.

 

 

- 김세아

"오늘 네가 주번이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어느 무리 안에 있든 항상 조용히 웃고 있던 세아가 죽었다. 그런데 죽은 세아가 미주에게 빌려줬던 돈 오백 원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 진짜 돈이 아닌 기억으로 돌려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세아는 미주한테 계속 찾아온다. 세아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궁금해지던 찰나 말했다.

"세정이 친구가 되어 줘."

 

 

- 김세정

"오래 살기요. 약속했어요."

 

세아의 이란성 쌍둥이로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당한 아픔을 일부러 과장된 행동과 웃음으로 감춘 채 살아왔다. 자신의 눈앞에서 세아가 죽었다. 그 후 미주가 다가온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기억은 미주를, 우리를 움츠려들게 한다. 미주는 자신을 불 꺼진 상점처럼 느낀다고 했다. 전구를 가는 법은 간단하지만, 아주 잠깐 용기를 내면 되지만, "감전될까 봐 무섭다"라는 미주의 말에 가슴이 저릿저릿하였다.

"마이너스 1과 마이너스 1을 합치면 마이너스 2"라는 미주에게 "마이너스가 꼭 나쁜 거야?" 되묻는 세아의 말에 흠칫했다.

 

 

유령처럼 살아가면서도 혼자되는 게 무서운 미주가 세아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될 가능성이 열렸다. 이미 죽었지만 세정의 상처를 모른 채 미워하고 싫어한 지난날을 자책하며 떠나지 못하는 세아를 외면하지 않은 다정하고 따뜻한 미주와 어린 시절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만 겅중 자라버린 아이 같은 세정이가 함께 하는 내일이 찬란하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다음 이야기가 우리에게 선사할 귀한 마음을, 인연을 상상하며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을 돌아보았다. 곁에 있는 이와 온기를 나누는 오늘이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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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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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지음/ 한겨레출판


 


한겨레 하니포터 7기 9월 신간도서 목록 중 <일터의 죽음>이라는 가제의 책이 있었다. '산업 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산재의 구조적 원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당연히 알아야 할, 읽어야 할 책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그것도 사고로 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터에서 매일 일어나는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는 일이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목숨을 빚진 자로서 사고로 잃은 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어떤 꿈을 꾸었으며 그를 잃고 살아가는 남은 이들의 삶을 알아야 하기에 책을 펼쳤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 안전할 권리 등을 주제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인 신다은 저자는 그동안 모은 지식을 이 책에 담으면서 2가지 목표를 세웠다.

 

1. 그나마 알려진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

그 기저에 기업 조직의 어떤 관습과 인식이 있는지 탐구하는 것

2. 연간 800여 명에 달하는 산재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왜 공개되지 않으며

이를 드러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아보는 것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산재 사망사고를 보도 내용대로 받아들인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고로 일터에서 노동자가 죽었다'라는 사실과 매번 되풀이되는 '피해자의 과실' VS '사측의 안전 관리 소홀' 변명 같은 원인 분석을 보았다.

한 사람,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을 귀한 목숨이 허망하게 떠나버린 그 자리를 그냥 흘깃 보고 떠나버렸던 것이다. 아프고 안타깝지만 한걸음 뒤에서 남의 일이라는 방어 기제가 결국은 이름 없는 죽음을 만드는 일을 거든 게 아닌가 싶었다.

 


 


 


 

신다은 저자는 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평택항 이선호 씨 등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설명하였다. 이는 관련자의 위법사항을 수사하여 처벌하는 데 집중하는 현재의 산재 조사와 수사와는 결을 달리한다. 사고마다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원인을 밝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워 다른 사고를 방지·대비하는 게 목적이다.

산재가 일어나면 은폐하거나 사적으로 보상하는 '공상'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설사 수사를 한다 해도 제대로 처벌받은 이도 없고 사고를 촉발한 구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조사도 없다. 정확한 원인이 빠진 분석으로는 또 다른 사고를 부를 뿐이다. 저자의 설명 덕분에 산재 사고에 대한 접근과 인식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산재가 일어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알게 되니, 사고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고를 은폐하고자 하는 기업을 상대로 유족들이 대응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해 보였다. 그렇기에 연간 800여 명의 산재 사망자가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사고는 연간 1,2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산재를 유형별로 분류하여 구조적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섯 가지 유형들을 살펴보면서 '안전'을 일부 부서나 일부 전문가의 영역에 한정 지어 책임을 부가하는 현 모습이 언제 어디서든 산재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듯하여 불안하고 안타깝고 분통 터졌다.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것이 더 비극적이다."

낸시 리브슨, <CAST 핸드북 : 사고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방법>

 

 

 

그렇다면 산재 위험은 왜 숨겨지는 걸까? 기업, 정부 기관, 노조, 언론까지 4가지 영역으로 산재의 원인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는 사회 구조적 배경을 정리해 주었다. 산재를 둘러싼 소통의 부재가 드러났다.

 

기업 조직의 안전 관리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생산과 안전이 대립하는 경우 기업 조직의 무관심 그리고 안전 관리를 특정 부서에만 맡겨놓는 구조가 소통의 부재를 부른다.

 

또, 산업안전감독관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노동부와 현장에서 서로 다른 상황도 소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처벌과 예방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처벌과 원인 분석, 대안 제시가 함께 발맞춰가야 효과가 클 것이다.

 

안전한 일터를 구축하는 데 노조의 역할은 중요하다. 현장의 업무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도 노조도 산업안전에 대해 최근에야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노조 스스로 체계적인 역량 강화는 물론 노조 활동폭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도 거론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말이 잘 알려진 소수의 사건들은 용기를 낸 동료들과 그들을 돕고 보호하는 노조와 시민단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수사 정보 유출을 이유로 유족들에게는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한 구조 속에서 유족들은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같은 사고가 다른 사람에게도 발생하지 않으려면 무슨 조치가 취해졌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원할 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토록 힘겨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다니. 온당 유족이라면 죽음에 대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과 배려가 필요한 시기에 투사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무참하게 다가온다.

 


 


 

 

 

생산을 목표로 하는 기업. 하지만 생산량, 납기에 우선하여 그 일터에 나와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게 기업이다. 그리고 몇 단계로 내려가는 하도급이나 원ㆍ하청의 안전 관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안전에 관해 누구나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정부 기관이 주도적으로 노동안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환경 개선과 인식 변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더 많이 물어야 한다. "왜?" 깊이 공감한다.

 

유족, 동료, 산재 활동가, 노조, 산업안전감독관, 안전관리자, 시민단체 등 다양한 창구로 조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저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산재와 안전 관리를 좀 더 면밀하게 지켜봐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다.

 


누구나 태어나 한번 죽는다. 죽음의 무게는 똑같다. 그 죽음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면 이는 살인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나.

스쳐 지나가는 뉴스가 아닌, 서사를 부여해 '노동자의 귀한 목숨이 스러진 중대한 사건'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죽은 이를 추모할 수 있고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

 

김용균 씨, 김 군, 이선호 씨, 김다운 씨, 정창우 씨, 김재순 씨, 남현섭 씨…… 책 속에서 만난, 안타깝게 스러진 분들의 이름을 되뇌어 본다.

 

이름 없는 죽음을 밝히는 악전고투에 힘을 실어주는 걸음을 함께 하고자 기억하려 한다. 살고자 일하는 터전에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퇴근할 수 있는, 존중받는 사회는 우리의 관심과 연대가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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