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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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다/ 린 틸먼/ 돌베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린 틸먼이 간병, 돌봄에 관한 자전적 에세이 <어머니를 돌보다>를 집필하였다. 어머니를 11년 동안 돌보면서 겪었던 일들 중점으로 노인 환자를 대하는 사회시스템과 가정 돌봄으로 달라진 삶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저자가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의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감정을 담아내는 일은 나에게도 낯설고 불편하다. 하지만 <어머니를 돌보다>는 오히려 그 점이 독자의 신뢰를 얻고 린 틸먼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닿을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저자는 신랄한 모녀 관계를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도 언니들과 기꺼이 돌봄의 주체가 되어 장장 11년의 시간을 좋은 딸로 살아간다. 그리고 영리하고 경쟁심이 강하고 현실적이던 어머니가 '질병'과 '노화'로 순종적인 존재로 변하는 시간 속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의료진, 간병인, 지인, 선생님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집중하고, 메모하기도 하였다. 너무 어린 시절 접한 상실은 제대로 수용하고 애도할 수 없어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리고 홀로 삼 남매를 키워낸 엄마에 대해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며 자랐다. 하지만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비로소 엄마의 희생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그런 대단한 엄마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허물어지신다. 어긋나기 시작하는 엄마의 신체 곳곳이 안타깝고 야속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린 틸먼의 <어머니를 돌보다>는 탄생하는 순간 죽음의 열차에 올라탄 우리 모두가 눈여겨 들여다볼 지침서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치료받으면 낫는 평범한 수순이 아닌 노인 환자와 가족들의 현실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방법의 나열이 아닌 그 방법이 도출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정보를 좀 더 깊숙이 받아들일 수 있다. 활자에 머무르는 정보에서 공감하고 이해하여 습득하는 정보로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병의 시작은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병인 줄 알아야 적절한 치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린 틸먼의 어머니 또한 적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의료진과 병원의 태도는 신뢰를 높이고 라포를 형성하기보다는 무성의하고 무심하거나 또는 권위적이라 충격이었다. 저자가 계속 말하는 환자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절로 새기게 된다.

 

 

대변인은 전문가와 의료종사자에게 맞서야만 한다.

 

 

간병은 육아와는 결이 다르다. 간병을 육아와 비슷할 거라 생각한 저자 또한 점차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육아는 간병보다 더 열려있다. 아이는 자라나 자립하게 되지만, 노인은 점점 더 쇠약해져 의존하게 된다. 또, 육아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간병은 더 한정적이다.

요양병원이 아닌 가정 돌봄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요구된다. 저자와 언니들은 상주 '간병인'을 고용함으로써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 간병인에 대한 내용이 이 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고 민감한 사항이었다. 선입견, 계급 및 문화 차이 그리고 불법 노동자 착취 문제 등 사회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할 예민하고 무거운 부분임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자신의 껄끄럽고 불편했던 경험을 사실대로 명시함으로써 고통과 분노를 이겨냈다.

 


 


 


 

린 틸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또 한 가지는 호스피스 케어에 대한 정보 제공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프로그램을 전문가가 환자나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린 틸먼은 비난이 목적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을 위해 가정 호스피스 케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죽음'에 더 집착하고 몰두하게 된 저자의 행보를 쫓으면서 그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절절히 느꼈다.

 

 

"그러나 의학계에 종사하는 우리 대부분은

몸의 쇠약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른다."

 

 


어머니를 돌봤던 시간은 린 틸먼을 타인의, 주변의 고통에 깨어있게 만들었다. 그 시간을 보낸 사람이기에 지각하고 반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어머니가 싫었다.

★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냥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했다면 나는 24층에 있는 어머니 아파트의 여러 창문 중 하나에서 몸을 내던졌을 것이다.

☆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양심에 의해 등 떠밀렸다. 그건 그렇게까지 끔찍한 일은 아니다.

★ 어머니와 관련해서는 나는 죄책감을 느낀 적이 결코 없다.

내가 어머니에게 내주는 것은 어머니가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 많았다.

☆ 어머니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함으로써 짊어지게 된 책임감의 정서적·심리적 무게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것이었다.

 

린 틸먼의 거침없는 감정 표현은 차마 인정할 수 없어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날것을 대신 표출해줘 위로받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그가 존경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발병부터 죽음 그리고 이후까지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감정 그리고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가 불편하고 당혹스러움을 딛고 밝힌 모든 것들을 이제 우리가 인지할 시간이다. 우리의 존엄한 삶과 존엄한 죽음을 위한 발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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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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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클로이 쿠퍼 존스/ 한겨레출판


 


책 제목이 이지 뷰티, 쉬운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어려운 아름다움도 있을까?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철학 교수인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보샌켓이 주장한 '쉬운 아름다움'과 '어려운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의 미학,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 삶을 대하는 자세 등 자신을 성찰한다. 1여 년의 시간에 걸쳐 아름다움에 관하여 생각하고 나약한 구경꾼이었던 스스로를 벗어나려는 시도와 의지를 기록한 작품이다.

 

철학 교수이자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인 저자 클로이 쿠퍼 존스는 선천성 희귀질환인 천골무형성증을 지니고 태어났다. 몸집이 왜소하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그녀를 대하는 타인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반응과 견해, 시선을 담고 있다. 대부분 클로이의 본질이 아닌 외면, 장애에 머무르는 편협하거나 왜곡된 시선이었다. 친절이나 배려 또한 그녀를 배제한 자신의 세상에 머무른 것들이라 그녀는 존중받았다는 느낌보다는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토로했다.

 

 


 

 

읽는 내내 잘게 쪼개지고 부서지다가 클로이에 의해 다시 모아지고 아름다움에 의해 다시 뭉쳐지고 나를 사랑하는 자신에 의해 온전한 나로 다시 빚어지는, 황홀한 경험을 했다.

 

"다른 장소에 다른 식으로 존재하고 싶은 갈망이 느껴졌다."

 

철학과 동료인 제이와 가진 술자리에서 그녀를 앞에 두고 벌인 충격적인 토론에서 시작된 책은 1여 년 후 친구 링컨의 생일파티에서 카일의 무례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이 기간 동안 여행을 반복하면서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에 몰두한다.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떠난 공간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의 예상치 못한 접촉과 교류는 클로이를 뒤흔든다.

 

 


 

 

갈등이 있던 늦깎이 제자가 권했던 비욘세 콘서트를 보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꺼이 보내주었던 밀라노행. 구상했던 여행과는 다른 여정이었지만, 기존의 자신을 부수는 계기가 되어준 여행이었다. 쉬운 아름다움이라 치부했던 아름다움이 어려운 아름다움으로 현재의 절대성을 보여주고 '지금 여기에 있는' 상태로 끌어당기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방어적인 태도로 안전지대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던 그녀가 현재를 인식하게 된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인간의 고통을 마주하기를 원치 않으면서

왜 예술 작품에서 인간의 고통을 마주할 때는 미학적 즐거움을 얻는가? "

 

 

박사논문 작성을 위한 캄보디아행.

클로이는 평생 남들처럼 진짜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기에 현실 경계선 바깥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툭툭 기사 체트라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되면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체트라가 자신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고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는 진정 어린 배려를 보여주었기에 더 뼈아픈 경험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를 통해 과거에서 탈피하여 움츠렸던 날개를 펼치려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클로이의 가족들. 부모님, 남편 앤드류와 아들 울프강. 클로이와 너무 닮은 아빠와 클로이를 현실 세계에 자리 잡게 양육해 준 엄마와 클로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남편 그리고 클로이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리하고 따뜻하고 섬세한 아들.

클로이 곁에 이런 가족들이 있어주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영혼을 짓누르는 현실에서 탈출구를 찾을 때 너는 어디로 가니?"

 

탈출구를 술이나 다른 여자에게서 찾은 아빠를 보고 자란 그녀는 '중립의 방'으로 들어간다.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곳이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침잠할 수 있기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녀가 일상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 모욕을 떠올려보면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재 속에서 진실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이토록 영민하고 똑똑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움츠려들 수밖에 없게 만든 주변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아름다움을 갈구하여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쉼 없이 살피는 각고의 노력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오면 기꺼이 도전하는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눈에 보이는 장애로 콜린이나 카일처럼 무례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타인들을 만나는 일이 있지만, 어느새 단단해진 그녀의 내면은 자신을 억누르거나 탓하지 않고 현재를 당당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펜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아름다움에 관해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철학자이자 이야기꾼인 클로이 쿠퍼 존스의 <이지 뷰티>를 만나 아름답고 충만한 삶을 선물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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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 1부 : 공중에 떠 있는 집 1~2 세트 - 전2권 스토리 D
E. S. 호버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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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 1. 공중에 떠 있는 집/ E.S. 호버트




평점 : ★★★★★

나만의 한줄평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용기의 판타지이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있는 이안과 친구들의 모험을 응원한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온몸을 타고 흐르던 짜릿함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청소년 판타지 소설로 온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구축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설렘을 다시 퍼트릴 판타지 소설의 태동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 - 공중에 떠 있는 집

짜임새가 탄탄한 이 소설은 태초부터 존재했으며 위험과 변화의 순간에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사랑과 용기 그리고 신뢰'에 대한 서사를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열 살의 소녀 이안 켄튼.

엄마는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이사를 다니면서 이안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딸인 이안을 아들로 키우고 있다. '이안'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고자 하는 엄마 클레어가 털어놓지 못한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친구 한 명 없어 외로움을 느끼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이안은 자신을 다독이며 이 상황들을 감내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이안은 처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우정, 지혜, 믿음, 용기, 사랑 같은 것들이라 말해줘도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을 지키려다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리며 "네! 저는 믿어요." 대답할 수 있었다. 이 믿음은 이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소중한 가치다. 또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도 삶의 온기를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 시리즈는 총 5부작이다. 시리즈의 문을 연 [1부. 공중에 떠 있는 집]은 이 소설의 세계관과 등장인물을 그려나가는 여정이다.

 

'퍼머루트'라는 신비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구성으로 기대되는 판타지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상상력 넘치고 탄탄한 흐름으로 절로 빠져드는 서사는 온몸을 긴장하게도 하고, 짜릿하게도 하며, 가슴 저미게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 스펙트럼을 선사한다. 주인공 십 대 친구들과 숨 가쁘게 뛰다 보니 어느새 2권으로 이루어진 [1부. 공중에 떠 있는 집]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아직은 곳곳에 공백이 존재하여 더 매력적이다. 1부를 읽자마자 이안과 친구들의 모험과 성장을 다룬 [2부. 나무의 비밀 문]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는 폴로와 라이톤이 등장한다. 특별한 초능력을 지닌 라이톤은 폴로에게 도움을 주며 서로 사이좋게 살아갔다. 그러던 중 폴로는 라이톤에게 두려움을, 라이톤은 폴로에게 귀찮음을 느끼게 되면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폴로도, 라이톤도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라이톤들이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에서만 존재하기로 합의하였다. 모든 이들이 찬성한 것은 아니지만 참담한 전쟁을 끝내야만 했기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분리된 폴로는 기억을 잃고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평온할 것만 같은 인간 세상은 예언 속 '단 하나의 아이'를 노리는 라이톤 블락의 등장으로 큰 혼란에 빠진다. 이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아이, 예언 속 룩스가 정말 이안일까? 이안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진실은 블락의 잔인한 공격이 진행되면서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네가 어디에 있건,

너 스스로 어떤 생각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에서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선택을 한다. 휴버트, 클레어, 토미와 앨런, 클로드, 콜비 등 사적이든 정의를 위해서든 그들은 모두 진심으로 고민하고 선택을 한다. 그 하나하나의 선택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이안과 진, 비비스는 세상의 혼란을 멈추기 위해 중대하고도 위험한 선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작은 몸집 안에 봉인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기어이 해내고야 만다. 서로를 진심으로 믿고 함께 손을 맞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는 이 작은 영웅들의 성장담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이제 막 라이톤이 된 이안. 예언 속 룩스가 되기 위한 힘겨운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고통받았던 이안을 테오도라는 위로하고 격려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특별한 거란다.

그 특별함이 너를 지켜줄 거란다."

 

 


라이톤들의 특별한 다섯 가지 능력과 문화 그리고 신기한 장치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장면을 눈앞에 펼쳐지게 한다. 세 칸짜리 계단, 모나크, 그리피스 등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가 구축한 판타지 세상은 활자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만나고 싶게 만든다. 얼마나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세상이 그려질 것인지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조용히 바람의 소리를 듣다 보면

슬픔이나 안 좋은 감정들이 바람에 흘러가 버리고,

따뜻함, 사랑 같은 좋은 감정들이 찾아올 거야."

 

 

 

숨 가쁜 갈등과 대치 속에서도 이안을 향한 부모님-휴버트와 클레어-의 깊은 사랑이 바람의 소리로 전해지는, 다정한 판타지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 1부. 공중에 떠 있는 집을 만나 기쁘지 그지없다.

 

 

 

 


 

이번 이야기는 자신이 위대한 전설 속 '룩스'라는 사실을 각성하는 이안이 핵심이다. 이안의 자기희생적인 선택으로 수많은 폴로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선택의 밑바탕에는 이안이 부모님께 받은 사랑이 깔려 있을 거라 믿는다.

<보이지 않는 도시 퍼머루트> 1부. 공중에 떠 있는 집은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와 사랑을 인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안과 악명 높은 블락 죠 헤프너의 아들 콜비의 예상치 못한 공조는 '사랑과 희생'을 더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안이 안전하다고 느꼈던 '공중에 떠 있는 집'과 '테오도라 대번포트' 그리고 미지의 검은 정체 '피터' 등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남아있어 더 흥미로운 기다림이 될 것 같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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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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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래버/ 한겨레출판


 


아일랜드와 영국. 강대국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일랜드 땅에서 벌어지는 한 가문의 비극을 거장 윌리엄 트레버는 <운명의 꼭두각시>라 불렀다. 이제 우리는 그 서사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윌리 퀸턴의 선택을 목도할 시간이다.

 

 


"내 존재의 모든 세부, 내 몸의 모든 혈관,

내 모든 친밀한 부분이 눈을 감고 쓰러지게 만든

그 부드러움으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낯선 이들이 아픈 데는 없는지 묻곤 하는 얼굴을 가진 금발의 파란 눈의 소년, 윌리는 아일랜드인과 영국인의 결합으로 결속된 집안인 퀸턴 가문의 장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혁명군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이는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복종을 진압하기 위해 파병된 영국 군대 '블랙 앤드 탠즈'의 무참한 폭력이 자행되는 빌미가 된다.

 

 



 


윌리는 그렇게 아버지를, 여동생들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가여운 아이였다.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혈육, 어머니는 비극에 침잠하여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술에 기대게 된다. 한순간에 닥친 비극의 칼날은 여린 소년이었던 윌리를 주저앉힌 듯싶었지만 어느 날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왔다. 과연 이 사랑은 윌리를 안정시킬 수 있을까?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부디 그들을 위로하소서!

 

 


 




 

윌리, 메리앤, 이멜다의 시점에서 서술된 이야기들은 같은 결을 지니면서 어긋난 그들의 인생처럼 가슴을 저며온다.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뜬 소년과 소녀 앞에 놓인 현실은 무겁거나 추악하여 어른에게도 버거운 짐을 감당해야 하는 그들이 한없이 애처롭다.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보이지 않는 실로 조종당하는 윌리는 가문을 붕괴시킨 원수에게 기어이 복수의 칼날을 겨누고 떠나버린다. 그가 떠난 킬네이를 지키는 그의 아내와 딸.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다 딸 이멜다는 미쳐버렸다고 한다.

 

 


 

 

윌리엄 트레버 작가는 난도질당한 삶들을 그만의 감각적인 문체로 나열한다. 그림자의 피조물인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암흑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고 진실이 하나둘 맞춰지게 된다. 처참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성인의 고요한 세계의 은총 안에 머무를 수 있음을 감사하는 세 사람의 모습으로 소설이 끝난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지난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잔혹한 운명의 손짓으로 부서져버린 한 가문의 비극 앞에서 부정하듯 눈을 감았다. 가족을, 사랑하는 이를, 함께 하던 이를 떠나보낸 그들의 감정선에, 선택에 빠져들어 삶을 관조해 보게 된다. 아름다운 문장이 지닌 힘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 <운명의 꼭두각시>이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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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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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를 정도로 요즘 현실을 묵직하게 담고 있는 장편소설

<그리고 봄>

 

그리고 봄/ 조선희/ 한겨레출판

 


 

대통령선거 이후 1년을 오롯이 담아낸 작가의 필력에 혀를 내둘렀다. 4인 가족을 사계절을 대표하는 화자로 내세워 각자의 생각과 입장을 그려내어 독자는 자신의 입장을 잠시 내려놓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지식인으로서, 기자로서, 어른으로서 정치적 선택으로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고 반성하고 후세대에게 자신들이 소중하게 지켜오고 믿는 가치를 유산으로 남기고자 강의(?) 하는 부모 세대와 정치에 크게 관심 없이 자신들의 문제에 몰입하는 20대 자녀 세대가 부딪치면서 튀는 스파크와 갈등을 숨죽이면서 지켜보았다. 과연 작가는 소설 속 녹록지 않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본문을 탐닉했다. 시원하고 호탕한, 정직하고 적절한 표현들에 감탄하면서 읽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다시 봄이 됐다.

 


'우리 시대의 집단 우울증을 치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작가의 소망처럼 내 마음을 긁어대는 표현들이 많았다. 왜 이리도 지난한지, 지리멸렬한지…… 답답한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요즘을 예리하게 묘사해 준 소설 <그리고 봄> 덕분에 현실을 정확하게 마주하였다. 그렇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1년이네. 10년은 된 거 같아."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사회라 믿으며 사회가 더 이상 험해지지 않도록 자정 노력에 힘쓰는 어른의 모습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데로 가지는 않을 거야."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잘 지키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숨 고르기를 말하고 있다. 멈춤을 통해 서서히 혐오 팬데믹에서 벗어나는 그날을 그려보게 된다.

 

 


 


 

현실의 존재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그리고 봄>안에서 영한, 정희, 하민, 동민의 동상이몽은 우리네 삶을 여과 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와 이태원 참사같이 굵직한 사건사고를 주인공 가족 범주에 자연스럽게 포함시켜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지금 이야기임을 인지시킨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통보여서 더 혼란스러웠던 하민의 커밍아웃, 당황스러운 동민의 정치적 행보와 인디밴드 활동을 위한 가출을 겪으면서 정희 부부는 또 한 번 성장하고 변화한다. 자신의 옳고 그름만을 내세우지 않고, 자식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는 응원자로 물러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녀의 온전한 독립을 인정하는 순간 가족 모두가 자유로워졌다. 그렇기에 생각은 달라도 말은 편하게 하는 동민처럼 마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부모 세대의 부모들은 서구화에 저항한 마지막 세대였다면 부모 세대는 디지털 문명에 저항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문장이 가슴을 저민다. 십 대 아이 둘을 키우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이 눅진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무거운 마음이 문장을 만나 요동쳤다.

책을 저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오늘날 영한은 동민이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있다. 정희는 강의 대신 책이냐고 하지만 각자 할 수 있는 한도 내의 최선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런 노력 끝에 접점이 있으리라.

 


 

"네 사람에게는 네 개의 앵글이 있다.

서로 딴 데를 본다면 말을 섞기 힘들 것이다.

다만 고개를 돌릴 줄 안다면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것 아닐까. "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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