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 YA! 24
설재인 지음 / 이지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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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설재인!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그는 요즘 십 대들의 현주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활기록부'를 특유의 필력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탄생시키고야 만다.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 설재인 지음/ 이지북





한창 입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큰아이 덕분에 '생기부'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즘이라 더 와닿은 제목과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가 된 여러 사건들과 맞물려 올해 일부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 또한 이 소설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주었다.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 소설은 독단적인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근미래인 2030년, 정부는 '전 국민 생애 궤도 추적제'를 시행한다. 면접이나 상견례, 심지어는 동호회에서조차 상대의 생활기록부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제도화한 것이다. 단순하게 학폭을 저지르고도 잘나가는 연예인들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적극 찬성하고, 이 제도는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단 몇 줄의 기록.

교사의 관찰로 남겨진 이 기록은 사람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렸다. 과거의 기록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 기록의 진정성이나 전후 사정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소설 속 상황이건만, 상상 만으로도 두렵고 끔찍했다. 

절대적인 기준이나 판단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데, 생기부 기록이 낙인처럼 삶 전반을 뒤흔든다니.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가. 더욱이 그 기록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면 당사자는 억울하고 통탄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설재인 작가는 이런 상황을 쌍둥이 고교생의 기발한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똑똑했으나 권력자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씁쓸한 과거에 잡혀사는 아버지 성호형 씨는 자신을 닮은 영리한 쌍둥이 남매 다 함·다정에게 '가늘게 오래 살자'를 강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정이 전교에서 유일하게 수학 시험 100점을 받았다. 칭찬받고 싶었던 마음이었건만, 다함과 아버지의 질타에 풀이 죽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버지 호형 씨가 깨어나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입원하고야 만다. 


입원비와 간병비 등 이런저런 경제적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쌍둥이가 선택한 일이 바로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이다. 원체 똑똑한 이들은 중3 때 타임머신을 발명했고 이를 이용하여 생기부 기록을 수정한다는 발상이다. 


어렵고 중요한 사항인지라 의뢰인 선정부터 신중하게 접근하는 다함 ·다정과 함께 시간 여행을 하며 다양한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다섯 번의 의뢰를 조사하게 된다. 의뢰인의 말과 과거 상황을 직접 보고 듣고 판단하여 생기부를 수정하게끔 유도한다. 


생기부가 수정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의뢰인들을 보니 다함 ·다정 따라 덩달아 뿌듯해졌다. 무언가 좀 더 옳은 각도로 바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버지 호형 씨를 좌절하게 만든 이와 얽힌 다른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소설은 점점 더 묵직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부끄럽지만 뉴스에서 접했던 현실의 사건들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부모를 내세워 생기부를 채워나가거나, 거짓말과 소문으로 불합리한 결과를 유도하기도 하는 만행과 폭력이 펼쳐진다.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 소설에서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 망설이는 사람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말을 건네거나, 뜬금없이 사랑 고백을 하거나, 의뢰를 거절하는 등일 뿐이다. 하지만, 의뢰인들의 사연과 그 시절에 실제 있었던 일들을 조사하는 과정들을 통해 다함·다정을 비롯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 


쌍둥이 남매는 의뢰를 처리하면서 타인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우리가 잊고 지내온 혹은 외면해온 도리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그게 바로 용기라고 생각해요.

다들 자기한테 득 되는 사람 아니면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는 세상에서 혼자 도리를 다하는 거요.

그게 용기고 선의라고 생각해요."




"세상 어딘가 제가 절대 풀지 못한 방정식이 남아 있다는 게 

괴로웠어요. (…)

제가 풀지 못한 게 아니라고. 

애초에 제대로 된 방정식이 아니었던 거라고. (…)

문제를 푸는 것보다 문제의 오류를 찾아내는 게 

훨씬 어렵고 또 세상을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오늘 우리를 보는 눈빛들을 마주하는데, 

처음에는 화가 났어. 휠체어 때문에 오래 걸리는 거, 

백두산 할아버지가 귀가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크게 말씀하시는 거,

그런 것들은 두 분한테는 어쩔 수 없는 거잖아. (…)

그런데 왜 그렇게 티 나게 기분 나빠하는 거지? 

왜 면박을 주는 거야? (…)

나는 그렇게 상처를 줬던 적이 없을까? (…) 

별로 상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는지."




다함 ·다정의 생기부 수정단 활동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현재가 변했다. 그리고 쌍둥이가 시작한 날갯짓이 관형 씨, 백두산 할아버지에게 번져나갔고, 이제는 아버지 호형 씨까지 이어질 것 같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 소설이 그리는 큰 그림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개인의 '생기부'로 시작해 세상의 '사연'으로 초점을 맞추는 설재인 작가의 아름다운 시선에 깊은 동감의 한 표를 던진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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