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길었던 날
카테리나 사르디츠카 지음, 최지숙 옮김 / 그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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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길었던 날/ 카테리나 사르디츠카 지음/ 그늘





동유럽 신화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 

카테리나 사르디츠카 작가의 소설 <밤이 길었던 날>은 그 생경한 동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고대 신들을 믿는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다. 친숙하지 않아 더 이끌린다. 낯선 폭력과 억압 그리고 뒤틀린 인간관계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그 안에 잠재된 진실을 쫓게 된다. 








오랜 세월 대대손손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폐쇄적으로 살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다. 유치원에서 낮잠을 자던 아이들 중 네 명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코로춘'이라 부르는 동짓날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단 '한 아이'만 빼고. 이제 이야기는 그 아이들이 왜 사라졌는지를 밝히고 돌아오지 못한 '한 아이'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얼마나 두렵고 험난할지 어느 누가 섣불리 입에 담을 수 있으랴.



친구들이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도라 로트너는 사라진 네 명의 아이들, 소냐 포레스, 톰 해틀러, 아스트리드 말러, 막스 말러와 친했다. 아이들이 사라지던 그날도 함께 있었지만 남겨진 아이였다. "가운데 침대에서 자고 있던 아이, 다른 아이들이 당한 일에 대해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던" 아이였다. 그런 그녀 앞에 죽었다고 믿었던 친구, 아스트리드가 12년 만에 다 자란 모습으로 나타났다. 소냐, 톰도 그날 함께 돌아왔다, 막스만 빼고.



여기 있느니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나았으니까!




이제 침묵을 강요당했던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여 끔찍하고도 잔혹한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홀로 돌아오지 못한 막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진실을 쫓는 아스트리드와 친구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부모조차 포기해버렸던 아이들이 스스로 깨어나 비열하고 잔혹한 악에 맞서는 서사는 큰 울림이 되어 마음에 새겨졌다. 






선과 악, 전통과 관습, 성장과 어른 등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이 책을 읽는 내내 꼬리를 물었다. 



이제 잠자리에 듭니다. 악령들은 저희에게 닿을 수 없으므로 저희는 깨어날 것입니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즈두하크와 노즈니차처럼 서로가 있어 우리가 인식하는 존재들이 있다. 노즈니차는 악몽을 만들어내고 즈두하크는 그걸 막는 존재라고 한다.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우리가 이와 반대되는 '선'을 갈망하지 않을 것이다. <밤이 길었던 날>의 즈두하크 아스트리드처럼 '선'은 모진 고난과 역경을 겪고 이를 이겨내면서 성장해나가고 깨어난다. 그 험난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고뇌하는 아스트리드를 보면서 뜨거운 무언가가 온몸에 차올랐다. 








악은 한없이 비열하고 이기적인 행보로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데 선은 이를 막기 위해 온 자신을 던져 맞섬으로써 숭고한 가치를 지키고자 한다. 그렇기에 악의 그림자는 끊어져도 선의 그림자는 이를 따르는 용기 있는 자들로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공포로 뒤덮여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도 아스트리드와 톰과 도라는 두려움의 실체에 한발 한발 다가서는 용기 있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기어이 두려움을 마주하고 이겨내어 더욱더 단단하게 일어섰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했던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이어졌다. 도라의 말처럼 고대의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왜곡된 가치관을 지닌 채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시간이 흘러 몸이 커졌다고 어른이 아니다고 한 톰의 엄마 발레리아 말처럼 경험과 그 경험으로 쌓인 깨달음과 지혜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리라. 아스트리드와 톰과 도라처럼 말이다. 



동지 그 후 열두 밤 동안 이어진 숨 가쁜 모험을 함께 하며 두려움과 용기 그리고 사랑과 용서에 대해 깊은 여운을 느꼈다. 아스트리드가 자신 안의 공포와 악마를 직접 마주하고 깨달은 진실이 깊이 새겨졌다. 깨어나라. 당당히 두려움에 맞선 이들여, 항상 함께 걸어가리니.



매력 넘치는 이색적인 소설 <밤이 길었던 날>이 선사하는 서늘한 공포를 이겨낸 자만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리라. 열대야에 잠 못 드는 여러분께 주저 없이 추천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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