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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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프레데리크 그로/ 책세상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수치심이 맞나? 싶은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표지에 그려진 에곤 쉴레의 그림에도 마음이 끌렸다. 뒷모습은 앞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게 '수치심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저자인 프레데리크 그로는 프랑스의 철학자로 '수치심'에 대해 왜 쓰고자 했는지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수치심'이 가지는 위치는 엄청났고 복잡했고 폭넓었다. 역사적 사실과 저서로 뒷받침되어 서술되는 '수치심의 세계'는 실로 놀라웠다. 

'세상에 대한 수치심'이 고결한 분노로 발현될 때 우리는 불복종할 힘을 가지게 된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순수한 분노로 정화된 수치심은 한계를 느끼는 감정이기에 언제나 변화를 향한 부름인 것이다.



저자는 수치심을 다양한 경로로 탐색한다. 그의 고찰이 들려주는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원인(사회적 가난, 정신적 치욕, 육체적 불결), 수치심에서 비롯된 태도(멸시, 분노, 혐오), 수치심을 받아들이기 힘겨운 이유를 비롯하여 야기하는 상황으로 수치심을 분류하여 논하고 있다. 좀 더 수치심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며, 다양한 근거와 예시들로 이해를 돕기 때문에 복잡한 수치심의 면면을 탐구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당연히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지만, 이토록 찬찬히 들여다볼만한 생각과 재능이 없는 나였기에 저자 프레데리크 그로가 보여준 '수치심' 도식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우리 인간은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식하고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심'은 큰 두려움이자 공포가 되는 것이리라. 


"헝가리 정신분석학자 임레 헤르만은 매달리는 원초적 본능을 '애착 욕구'의 구체적 지시대상 같은 것으로 가정하고, 단단히 매달릴 의욕을 꺾어놓는, 털의 결핍이 우리 종에 모든 불행(불안, 죄의식, 수치)의 모태가 되는 음험하고 지속적인 불안을 초래했다고 상상했다. 수치심의 번민은 버림받았다는 감정, 무리로부터 허공에 버려졌다는 슬픔,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오고, 끈이 끊기고, 닻이 풀렸다는 감정에서 온다. - 우울 95~96쪽




'수치심'을 다룬 학자들 중 공자와 플라톤이 있다. 

그들은 수치심을 관망의 태도, 더불어 살기, 행복 추구를 위한 중요한 윤리적 자질로 받아들였다. 공자는 움츠림, 조심성, 신중함… 이것을 수치심으로 받아들였다. 수치심은 각각의 윤리적 힘을 제 고유의 본질 속에 지켜주며, 실제로 공정하고 공손하고 진지해지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플라톤은 "선한 인간을 인도하는 원칙은 추한 행동과 연계된 수치심, 그리고 아름다운 행동과 연계된 명예 추구다."라 말했다. 그는 수치심에 많은 힘을 부여한다. 그것이 함께 살아가기를 가능하게 만들고, 지혜를 요약하고, 용기를 준다고 말한다. 수치심은 구체적 위험 앞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의 공적 이미지를 변질시킬 수 있을 무엇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란다.







저자는 윤리적 수치심, 외상성 수치심, 철학적 수치심, 교차적 수치심, 계통적 수치심, 혁명적 수치심 등을 다루고 있다. 성폭행, 강간, 사회적 가난, 흑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이 수치심을 유발하는 배경이 된다. 구분되어 명명되는 수치심에 관한 사유를 읽다 보면 어느새 수치심의 본질에 대해 조금씩 가까워진 느낌이다.



"분노란 우리를 향한 또는 우리 가족을 향한 공개적 멸시, 부당한 멸시를 마주하고 공개적 복수를 바라는 비통한 욕구다." - 아리스토텔레스 







수치심을 느끼지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타인의 자리에 서 보게 하거나 가능한 다른 세상들을 고려해 보게 하는 움직임이 바로 상상력인 것이다. 이런 상상력을 좌절시키려는 시도들 앞에서 서 있는 우리는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올바른 자가 느끼는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수치심을 분노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무구함의 반대는 죄의식이 아니라 '통찰력'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통찰력이 있어 불의가, 불공정이 어떻게 법과 사법기관과 교회의 지지를 받는지 본다." - 계통적 수치심, 226쪽



프레데리크 그로는 우리에게 '수치심'의 본질적인 힘을 일깨워준다. 그 여정을 함께 하면서 만난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감흥 하지 못한 채 덮어버렸던 작품들을 이제는 새로운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수치심'을 단순히 부끄러움으로 아는 이들에게 더 넓고 복잡한 '수치심'을 보여준, 놀라운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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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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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소설집/ 한겨레출판



서수진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200페이지 분량의 두께에 8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강렬한 빛을 토해내는 태양이 자리한 하늘 그리고 그 빛을 고스란히 비추는 바다 그 사이에 나무를 둔 언덕에 앉은 두 사람의 뒷모습. 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 표지이다. 해는 지기 전 찬란하게 빛나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 순간을 지켜보는 두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깜깜한 뒷모습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골드러시]의 책장을 넘겨 두 사람의 마음을 좇기로 하였다. 



[올리앤더] 이후 두 번째 조우다. 이번 역시 호주를 배경으로 한국인이 주인공인 소설이 대부분이다. 한국'을 떠나 '호주'라는 생경한 나라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모습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허무함이 읽혔다.


길 끝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신기루였다.

눈을 감고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골드러시, 58쪽





서수진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글이 머금고 있는 감정은 결코 가볍거나 밝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직진으로 달려와 내 것이 되어 호흡하듯 당연하게 책장을 넘겼다. 감정의 결이 비슷한가? 생각하기도 했다. 


서수진 작가는 미묘하고 작은 어긋남을 특유의 문장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마치 배우가 말보다 눈가 떨림이나 살짝 흘리는 시선 처리로 더 깊은 감정과 내용을 전달하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호흡과 장면을 구성하고 있다. 



봉지를 열었다. 작고 까만 조약돌 세 개. 

그게 다였다. 그는 조약돌을 쥐고 눈을 감았다.

- 캠벨타운 임대주택, 53쪽



그녀는 자신이 광산을 뒤흔든 것처럼,

그래서 광산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했다.

- 골드러시, 79쪽







호주에서 이주해 제2의 삶을 꿈꾸는 등장인물들은 익숙한 모든 것 대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생각과는 달리 녹록지 않은 현실에 지쳐간다. 한마음이 갈라져 틈이 생기고 외로워 힘겨워들 한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희망이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한 채 찌그러진 풍선 속에서 사그라들고 그만큼 등장인물들도 생기를 잃어간다. <골드러시>의 진우와 서인처럼, <졸업 여행>의 승수처럼. 



호주 안의 한국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세대의 이야기와 선택하지 않은 하지만 떼어낼 수 없는 딱지처럼 여기는 후대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이민 와서 자리를 잡기까지 지난한 시절을 보냈을 부모 세대들이 나온다. 

다니엘의 아버지는 청소업체 대표로, 임대주택을 청소하러 갔다 마찰이 생긴 여성을 고소하려 한다.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한국인을 호주 내 한국인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임대주택 이민자로 만들기 위함이다.(캠벨타운 임대주택)

중국인 고객 덕분에 부동산 에이전트로 자리 잡은 혜선은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명절을 챙기는 등 중국인에 대해 호의적이다. 하지만 딸이 중국계 남자친구를 사귀고 홍콩 지지 반중 시위가 벌어지는 요즘 혼란스럽다.(헬로 차이나)

식당을 비울 수 없어 일정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딸의 모습이 마냥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클로이의 아버지는 한인회 임원이다. 그는 일식당을 운영하는데 일본인이 운영하는 진짜 일식당으로 비치기를 원해 한국어 사용을 금한다.(한국인의 밤)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호주에서 자란 후대의 모습들도 비추고 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한국인끼리 불쌍하다고?

- 캠벨타운 임대주택, 49쪽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친숙한 세대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없거나 진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한국'보다는 지금 여기서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서수진 작가의 독특한 미장센은 흡입력이 강하다. 그거다 싶은 갈등이나 원인이 힘을 잃고 상상치 못한 경우의 수가 펼쳐진다. 


<입국심사>의 유미는 입국하기 위해 미국인 남자친구와 진실한 연인의 모습을 강조하지만 분위기는 냉랭하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남자친구가 말하자 입국이 허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유미는 자신보다 먼저 심사를 시작하여 진짜 부부라 수차례 설명하고 있는 아랍인 부부를 뒤로 한 채 나오게 된다. 

거부당한 자로서 미국 땅을 밟은 유미는 미래 자체를 차단당한 채 현재의 진지한 사랑을 만나러 갈까? 당혹스러우면서도 쓰린 글이었다.



<외출 금지>의 은영과 희율이 이별을 하고 헤어지려는 순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별 초기를 떠올려보면 얼마나 버거울지 상상하기조차 싫다. 지리멸렬한 상태로 감정의 찌꺼기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되씹어야 할 시기에 사랑이 기록된 공간에 함께 갇힌 전 연인들이라니.


미안해, 내가 미안해.

우리 산책 나가자. 산책은 괜찮잖아.

그들은 손을 잡고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를 걸었다.

- 외출금지






<배영>은 소설집에서 <입국심사>와 함께 배경이 호주가 아닌 작품이다. 오랜 세월 동거를 한 연인인 여진과 우현은 첫 캠핑을 떠난다. 


물 위에 누웠다. 달이 저 높이에서 하얗게 빛났다.

……

달이 사라졌다.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차고 외로웠다.

이 기분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배영, 225쪽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하지 않은 채 이어나가야 하는 관계만큼 시리고 외로운 건 없을 거다. 차라리 혼자라면 당연히 따라오는 그림자라고 감당하겠지만, 함께인데 외로우면 그 덩어리는 부풀기 마련이니까. 


서수진 작가가 모아 소중히 한 권에 담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보듬아주는 우리들의 눈길에, 손길에 빛나는 순간을 다시 꿈꿀 수 있는 이들을 눈을 감고 떠올려본다.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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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학, 위기의 편의점을 살려라!
김나영 지음 / 생각학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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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자녀들에게 경제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주식이나 용돈을 통한 경제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돈'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을 터부시하던 옛날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부터 금융과 경제에 관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육이 일상에서 이루어지니 그 효과가 더 크다. 이렇게 이론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직접 부딪쳐 경제에 대해 알아가는 친구들을 [경제수학위기의 의점을 살려라!]에서 만나볼 수 있다. 



경제수학, 위기의 편의점을 살려라!/ 김나영 지음/ 생각정원




이 책은 자신들의 아지트, 행복편의점이 사라지게 둘 수 없었던 무지개 중학교 5총사들이 '경제수학'을 토대로 행복편의점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힘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경제수학'은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수학적 개념과 방법론을 학습하는 과목으로, 경제학에서 수학이 어떻게 활용되고 적용되는지를 배우고 탐구한다. 수학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아이들에게 좋은 답이 되어줄 책이다. 






무지개 중학교 5총사가 '경제수학'으로 행복편의점 사태를 해결하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일상 속 '수학'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소중한 공간을 뜻을 함께하는 좋은 친구들과 지켜내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고 있다.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각자의 재능을 잘 활용하여 놀라운 실행력과 추진력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배움이 시험과 성적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문제를 이해하고 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적절히 사용되니 학습동기부여가 되고, 수학적 역량과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안성맞춤인 책이다. 더욱이 편의점 모디슈머 레시피 콘테스트,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 유치,  '5인 5색' 브랜딩과 SNS, 웹 소설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홍보 등 현실적인 대응책들이 펼쳐져 재미를 더하고 있다. 







현직 중학교 사회 교사인 김나영 저자는 <최강의 실험경제반 아이들>, <세계시민이 된 실험경제반 아이들>로 친숙하다. 2009년부터 경제동아리 '실험경제반'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경험이 잘 녹아있는 책들로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은 책이었다.


특히 이번 [경제수학위기의 의점을 살려라!] 책은 김나영 선생님 주도의 수업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경제수학'의 개념들을 이용하여 행복편의점을 살리고 이를 인정받아 CEO에 올라 경영까지 참여하는 점이 의미가 크다. 





편의점의 이윤을 합리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자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활동들이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제·경영·수학 개념들이 체득되었다. 이야기 서사를 통해 개념을 접하고, 나영 샘이 짚어주신 <경제경영학 미니 강의>와 <경제 속에 숨은 수학>으로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다. 







인플루언서, 무인편의점, 밀키트, 펀슈머, 모디슈머, 크라우드 펀딩, 웹 소설, 디토 소비 등 지금 주목받고 있는 이슈들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주독자층에게 높은 관심과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주 접하는 이야기나 아이템들이 나오고 또래들이 주인공이 되어 경제·경영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에 고무될지 않을까. 


'실험경제반 아이들'의 확장판이자 실생활 적용판'으로 경제수학수학적 사고력과 논리력 그리고 경제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변화의 주체로 성장할 우리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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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사회 - 안전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범죄의 모든 것
정재민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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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달라졌다. 범죄가 더 이상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 이야기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무차별 범죄가 늘어나게 되면서 범죄에 대한 불안을 일반인들도 쉽게 느끼게 된 것이다. 


범죄사회/ 정재민 지음/ 창비



이번에 출간된 <범죄사회>에서 정재민 저자는 '범죄를 사회적 문제로 접근하여 바라보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함'을 명확하게 풀어내고 있다. 


[알쓸범잡] 방송 이후 듣게 된 일반 시민들의 범죄 대응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을 반영해서 분야별로 한두 개씩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Q1. 과학수사는 어디까지 발전했는가

Q2. 판사의 형량은 왜 낮을까

Q3. 교도소는 감옥이 아니다

Q4. 범죄의 원인은 무엇인가

Q5.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범죄예방 시스템은 현실화될 수 있나

Q6. 사는 듯 사는 삶을 위한 입법





판사, 법무부 심의관, 국제전범재판소 연구관 등 법과 관련된 다양한 직종에서 활동한 이력이 통찰과 사유로 이어져 우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법'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이미지 대신 다양한 예시를 들어 핵심 내용을 잘 짚어준다. 그리고 법조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진지하게 피력한다. 범죄를 줄이기 위한 대응책을 모색하고자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범죄대응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으로 제시된 분야들이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과 비슷하여 더 빠져들어 읽었던 것 같다. 정재민 저자가 실제 사건을 예시로 들어 설명해 주니 설명이 뇌리에 쏙쏙 박혔다. 


과학수사 발전 분야에서는 미숙한 과학수사의 예시로 든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나 우리나라의 DNA 분석기술이 인정받게 된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 '웰컴투비디오' 아동성착취물 다크웹 등 잘 알려진 사건 외에 법대생이었을 당시 특강을 한 변호사가 변론했던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군검사시 JSA 김훈 중위 사망사건 등을 들어 과학수사의 발전을 잘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에 따라 생길 신종 범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를 예측하고 그에 걸맞은 과학적 수사기법을 서둘러 마련하는 프로세스가 제도화될 필요를 피력하였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분야는 '판사의 형량은 왜 낮을까'이다. 관심이 가는 사건의 판결을 보면 정말 민심이나 여론에 못 미치는 형량인 경우가 많아 답을 찾고자 꼼꼼히 읽었다. 






형사재판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오해를 줄여주었고, 판사로서의 고뇌가 느껴지는 문장들도 많아 양형에 관한 저자의 심적 부담이 전해졌다. 재밌게 시청한 드라마 '천 원짜리 변호사'에서 접했던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을 되새겼다.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 이 세 가지 모두를 증명해야 하는 검사와 정의로운 판결과 양형을 내려야 하는 판사 모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정재민 저자는 판사의 형량과 시민들의 형량 사이에 괴리가 큰 이유를 여섯 가지나 들어 설명하고 있다. 여러 이유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기존 판결들의 관성의 힘이

상당히 강하다 와 강력한 처벌이 범죄를 막지 못한다는 명제가 엄벌주의보다 과학적 ㆍ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양형에 영향을 미친다이다. 

양형을 현실화하는 방법으로 형량을 특별히 높일 필요가 있는 범죄에 대해서는 그 범죄의 법정형을 상향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도소는 감옥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법무부에 와서 교도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얻었다고 한다. 그의 다양한 이력은 다각적 관점에서 법의 영향력을 체감하게 했고 이 책에 잘 녹아 있었다.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살짝 엇나가는 듯하지만 범죄자들이 퇴소 후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논점에는 동의한다. 노르웨이와 독일의 교도소, 유엔 구치소 등 다른 나라의 상황까지 살펴보며 범죄 재발률을 줄이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제도적 지원과 변화가 필요한지 말하고 있다. 


판결로 정해지는 형량은 책임주의의 관점에서 엄정하게 정하되, 대신 가석방은 수형자의 재범 가능성을 좀 더 면밀하게 심사해서 현재보다 적극적으로 확대 실시해야 한다. 


정재민 저자는 일일이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는 방대한 작업 대신 학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전반적인 범죄의 원인을 개관하고 있다. 범죄 경제학, 범죄 생물학, 범죄심리학, 범죄사회학. 그리고 더 나아가 경제·정치·사회적 환경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까지 두루 살펴본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의 환경과 구조를 바꾸는 것임을 강조한다. 





마무리는 범죄를 막는 일이다. 범죄 예방 시스템과 입법을 통한 '정의'를 말한다. 전과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힘쓰는 '특별 예방' - 보호관찰, 전자팔찌, 화학적 거세, 조현병 치료 -의 현실과 효과 그리고 한계를 살펴보면서 추가적인 대응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 범죄의 현황과 범죄 대응 시스템에 대한 정확하고 자세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진정 어린 글을 통해 범죄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판사, 법무부 심의관, 국제 전범재판소 연구관 등 법조인으로서의 시선에. [알쓸범잡] 패널로서의 시선이 더해져 전문가로서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법이 수호하는 '정의'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범죄를 판결하는 사법의 관점에서, 범죄를 예방하는 입법의 관점에서 범죄를 억제하여 오늘날 사회구성원들이 느끼는 범죄에 대한 불안을 줄여나가는 방안들을 다루었다. 

사회적 관심과 노력, 변화를 통해 정재민 저자가 갈망하는 '사는 듯 살 수 있는 사회'가 한발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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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의 무능한 탐정들 두 번째 원고
김혜빈 외 지음 / 사계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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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의 무능한 탐정들/ 두 번째 원고/ 사계절




사계절 출판사의 두 번째 원고 시리즈 <하지의 무능한탐정들>을 만났다. 2023년에 등단한 새로운 작가 5명을 만났다. 세로로 살짝 긴 직사각형의, 얇은 두께의 책 속에 세상을 향해 떠들고 싶은 게 많은 소설가들의 틈새를 비추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한 권으로 각양각색 인물들을 만나 인사하고 이야기 듣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섯 소설가가 포착한 사회 속 낙차, 그 사이에 머무르는 존재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로 알 수 있듯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발산하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작가가 선보이는 인물에 집중하고 좇아가면서 그를 공감하고자 애쓰게 된다. 자연스레 읽으면서 앞으로 가 제목과 작가 이름을 다시 보고 와 읽게 되는 작품들이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작가를 기억하게 되었다. 










'늑대 인간'을 소재로 하여 타인과의 쌍방 소통에 관한

사유를 담고 있는 [솔리터리 크리처 * 김혜빈] 작품으로 문을 열었다. 

기억 속 '현아' 대신 '명우'로 다시 나타난 이십여 년 전 친구. 그와 만남을 가지면서 주변과 자신의 변화를 자각하게 되는 과정을 서서히 그리고 있다. 혼자가 될 생각은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늑대 인간 명우를 곁에서 지켜본 덕분에 '나'는 변화를 잘 소화할 수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진실을 대면할 힘도 필요하잖아요?"



흥미로웠다. 외로워서 늑대 인간이 된 이들이 동족과 소통하고자 여행하고 다가가는 모습이. 그들이 짖는 하울링이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메아리처럼 울려 서로에게 닿기를, 그리고 힘차게 내달려 만나기를 고대하였다. 








call : 안 은밀한 대화


떠나버린 이의 뒷모습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을 무겁지 않게 그려낸 [정원사 * 김사사] 작품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등장인물 영이, 해조, 승수 모두 '가족이 떠났다'라는 상실을 안고 있다. 동생이, 언니가, 남편이 떠난 이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엮어 가족 비슷한 느낌으로 연대하며 일상을 공유한다. 서로를 알게 되는 계기가 독특하고, 서로를 대하는 거리나 마음가짐이 느슨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딱! 적당했다. 그래서 그들을 지켜보는 내내 편안했다.


소설 속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이 마냥 밝지 않건만, 그 공기가 건조하지 않아 작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담담하게 아픔을 그려내 적당한 정도를 유지하는 김사사 작가의 완급 조절에 반했다. 











[권능 * 공현진]은 헤아리기 힘든 소설이었다. 초희 이모와 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가장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인물은 '엄마'였다. 그토록 친절하고 신실하다는 신자가 보여주는 공감력과 배려는 작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초희 이모의 지나친 집착과 날카로운 말과 행동은 감정이 무겁게 실려있어 공감하기는 힘들어도 그 사람의 상처 입은 속내를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싫다, 밉다, 나쁘다, 미쳤다 등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엄마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사이에 낀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독자로서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표제작인 [하지의 무능한 탐정들 * 하가람]은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했다. 이혼 소송 중인 호정과 추리소설가 지망생 기우는 탁구장에서 알게 되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기우는 탁구를 하고 싶어 탁구장에 갔지만, 기본기를 배우다 지쳐 그만두었다. 남들과 랠리를 주고받기를 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진짜인데요. 진짜 탁구요."



기우는 무능한 탐정들이 나오는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소설을 쓴다. 호정은 제도가 보장해 주는 관계의 평온함 혹은 평온함이라 믿었던 것들을 결혼 생활이라 생각했다. 기우가 바라는 진짜 탁구와 호정이 바라는 관계가 결국에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 주고받는 랠리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려나. 아무려나. 호정과 기우의 이야기는 시작되었으니 지금은 외롭지 않으리라.






[이주 * 신보라]는 어려웠다. 이토록 타인과 긴밀하게 연결되거나 결합되었다 분리된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주와 나는 한 사람 같다. 그만큼 가깝고 잘 아는 것 같다. 또 극진히 챙기고 사랑한다. 하지만 부정하고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창피해하고 불쌍하게 여긴다. 양가감정을 느끼는 관계, 떨어지기 힘든 관계 같다. 함께 있으면서 한 사람은 허기를 느끼고 있고, 다른 사람은 계속 먹고 있는 광경은 지독히도 이질적이다. 그들의 연대를, 공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어려웠다. 




외로움에 대한 여러 글을 읽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한 공간에서 아니면 자기 공간에서 편한 자세로 원하는 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족들이 보였다.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다. 소소한 일상이 빛나는 시간으로 마음에 채워진다.

[하지의 무능한 탐정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외로우니까." 이 말의 무게에 눌렸던 가슴이 새살이 차오르듯 봉긋 솟아오른다. 혼자가 아닌 우리로 존재하는 지금을 감사하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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