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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골드러시/ 서수진 소설집/ 한겨레출판
서수진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200페이지 분량의 두께에 8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강렬한 빛을 토해내는 태양이 자리한 하늘 그리고 그 빛을 고스란히 비추는 바다 그 사이에 나무를 둔 언덕에 앉은 두 사람의 뒷모습. 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 표지이다. 해는 지기 전 찬란하게 빛나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 순간을 지켜보는 두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깜깜한 뒷모습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골드러시]의 책장을 넘겨 두 사람의 마음을 좇기로 하였다.
[올리앤더] 이후 두 번째 조우다. 이번 역시 호주를 배경으로 한국인이 주인공인 소설이 대부분이다. 한국'을 떠나 '호주'라는 생경한 나라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모습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허무함이 읽혔다.
길 끝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신기루였다.
눈을 감고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골드러시, 58쪽
서수진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글이 머금고 있는 감정은 결코 가볍거나 밝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직진으로 달려와 내 것이 되어 호흡하듯 당연하게 책장을 넘겼다. 감정의 결이 비슷한가? 생각하기도 했다.
서수진 작가는 미묘하고 작은 어긋남을 특유의 문장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마치 배우가 말보다 눈가 떨림이나 살짝 흘리는 시선 처리로 더 깊은 감정과 내용을 전달하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호흡과 장면을 구성하고 있다.
봉지를 열었다. 작고 까만 조약돌 세 개.
그게 다였다. 그는 조약돌을 쥐고 눈을 감았다.
- 캠벨타운 임대주택, 53쪽
그녀는 자신이 광산을 뒤흔든 것처럼,
그래서 광산이 완전히 무너져내린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했다.
- 골드러시, 79쪽
호주에서 이주해 제2의 삶을 꿈꾸는 등장인물들은 익숙한 모든 것 대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생각과는 달리 녹록지 않은 현실에 지쳐간다. 한마음이 갈라져 틈이 생기고 외로워 힘겨워들 한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희망이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한 채 찌그러진 풍선 속에서 사그라들고 그만큼 등장인물들도 생기를 잃어간다. <골드러시>의 진우와 서인처럼, <졸업 여행>의 승수처럼.
호주 안의 한국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세대의 이야기와 선택하지 않은 하지만 떼어낼 수 없는 딱지처럼 여기는 후대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이민 와서 자리를 잡기까지 지난한 시절을 보냈을 부모 세대들이 나온다.
다니엘의 아버지는 청소업체 대표로, 임대주택을 청소하러 갔다 마찰이 생긴 여성을 고소하려 한다.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한국인을 호주 내 한국인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임대주택 이민자로 만들기 위함이다.(캠벨타운 임대주택)
중국인 고객 덕분에 부동산 에이전트로 자리 잡은 혜선은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명절을 챙기는 등 중국인에 대해 호의적이다. 하지만 딸이 중국계 남자친구를 사귀고 홍콩 지지 반중 시위가 벌어지는 요즘 혼란스럽다.(헬로 차이나)
식당을 비울 수 없어 일정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딸의 모습이 마냥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클로이의 아버지는 한인회 임원이다. 그는 일식당을 운영하는데 일본인이 운영하는 진짜 일식당으로 비치기를 원해 한국어 사용을 금한다.(한국인의 밤)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호주에서 자란 후대의 모습들도 비추고 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한국인끼리 불쌍하다고?
- 캠벨타운 임대주택, 49쪽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친숙한 세대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없거나 진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한국'보다는 지금 여기서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서수진 작가의 독특한 미장센은 흡입력이 강하다. 그거다 싶은 갈등이나 원인이 힘을 잃고 상상치 못한 경우의 수가 펼쳐진다.
<입국심사>의 유미는 입국하기 위해 미국인 남자친구와 진실한 연인의 모습을 강조하지만 분위기는 냉랭하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남자친구가 말하자 입국이 허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유미는 자신보다 먼저 심사를 시작하여 진짜 부부라 수차례 설명하고 있는 아랍인 부부를 뒤로 한 채 나오게 된다.
거부당한 자로서 미국 땅을 밟은 유미는 미래 자체를 차단당한 채 현재의 진지한 사랑을 만나러 갈까? 당혹스러우면서도 쓰린 글이었다.
<외출 금지>의 은영과 희율이 이별을 하고 헤어지려는 순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별 초기를 떠올려보면 얼마나 버거울지 상상하기조차 싫다. 지리멸렬한 상태로 감정의 찌꺼기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되씹어야 할 시기에 사랑이 기록된 공간에 함께 갇힌 전 연인들이라니.
미안해, 내가 미안해.
우리 산책 나가자. 산책은 괜찮잖아.
그들은 손을 잡고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를 걸었다.
- 외출금지
<배영>은 소설집에서 <입국심사>와 함께 배경이 호주가 아닌 작품이다. 오랜 세월 동거를 한 연인인 여진과 우현은 첫 캠핑을 떠난다.
물 위에 누웠다. 달이 저 높이에서 하얗게 빛났다.
……
달이 사라졌다.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차고 외로웠다.
이 기분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배영, 225쪽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하지 않은 채 이어나가야 하는 관계만큼 시리고 외로운 건 없을 거다. 차라리 혼자라면 당연히 따라오는 그림자라고 감당하겠지만, 함께인데 외로우면 그 덩어리는 부풀기 마련이니까.
서수진 작가가 모아 소중히 한 권에 담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보듬아주는 우리들의 눈길에, 손길에 빛나는 순간을 다시 꿈꿀 수 있는 이들을 눈을 감고 떠올려본다.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