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함정 - 가질수록 행복은 왜 줄어드는가
리처드 레이어드 지음, 정은아 옮김, 이정전 해제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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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독감에 걸릴 확률도 낮으며 수술 후 회복력 또한 높다고 한다. 도대체 행복이란 감정이 무엇이기에.행복은 살아있는 동안 살아갈 동기를 주며, 살아갈 힘을 주는 대단히 유익하고 꼭 필요한 감정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이룰 경제적인 부를 쟁취했을 때 가장 확실하고 눈에 띄는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행복감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목표를 '물질의 소유'로 잡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오류로, 현대사회는 생활수준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행복해 미치겠다는 사람보다는 행복하지 못해 살아갈 힘이 없다는, 혹은 '행복이 다 무슨 말장난이냐' 매일매일이 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로 넘치니 참으로 아리송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도대체 행복이 무엇인지, 또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인 감정인지에 대해 궁금했다.  

 

저자는 경제적인 만족이 주는 행복은 아주 일시적이며, 습관화되면 무뎌지고 더이상 경제적인 부유만으로는 행복의 감정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증거로 역사상 최고의 소득수준을 자랑하는 선진사회에서는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 범죄율 역시 최고의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소득이나 경제적인 부가 주는 행복은 일정 수준을 도달하면 더 많은 부, 더 많은 성장을 지속적으로 주입해야 하는 마약과 같은 중독성 행복감만을 제공한다. 경제성장이나 부가 주는 행복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도대체 인간은 행복을 위해 다른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먼저 저자는 인간의 욕구 조절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보통 한 인간이 평생 느끼는 욕구라는 것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욕구 외에도 비교와 외부효과에 의해 조정되는 욕구가 태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광고'는 인간을 끊임없이 불만족스럽게 하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욕구하도록 하며 비교불안을 조장한다. 소유에 의해서만 인간의 품질이 규정되는 사회라고 해야 할까. 저자는 이러한 거짓 행복에의 유혹에서 벗어나 좀더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행복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기본적인 도덕성, 공감능력, 연민, 신뢰성 등의 감정은 일평생 한 인간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한다. 지금보다 순위에 덜 집착하는 합리적 균형감각이 인간에게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인생을 경쟁의 사투장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진 사람들은 소외되고, 위협이 되며 따라서 이긴 사람들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는 불안한 공동체가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외부효과에 휘둘리는 갈대형 인간이 아닌, 내면의 감정에 풍요로움을 간직한 지속형 인간의 필요성은 다른 무엇보다 전 인류의 행복감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지금과 같은 경쟁의 제로섬 게임은 전인류에게는 공공의 악이다. 우리가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란 물질적인 부가 충만한 사회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불가능한 탁상공론일 수 밖에 없다. 다같이 잘사는 사회란 내면적 풍요로움이 보장되는 사회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은 지당하고도 옳다. 그렇기에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나에게 걸림돌이 있었다면, 반복되는 저자의 주장이 조금 지루했다. 조금 더 깔끔하고 쌈빡하게 요약정리 할 수는 없었을까.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필요성은 무시할 수 없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도대체 살아갈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소유한 것으로 내 존재 자체를 비관해 왔거나 다른사람을 판단해 왔던 사람이라면, 혹은 말초적인 감정으로만 행복에 대해 오해해 왔던 사람이라면 좀더 과학적이고 통계적이며 논리적인 행복에 대해 이 책의 논의에 귀기울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제공해야 하는 '복지'에 의심스러운 눈길을 갖은 사람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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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5월 신간도서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산다는 것이 이미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개인의 존재는 정치를 떠나서는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혹여, 난민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까요?  

 

 

정치에 대해 생각해본 5월에 이어, 6월 주목신간으로 먼저 프랑스에서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가르친다는 장 미셸 지앙의 <문화는 정치다>가 눈에 띕니다. 예술인들, 혹은 문화계 종사인들은 보통 보수주의자인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걸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또, 한편으로는 문화계 종사자들이 설 자리를 마련하고 유지하려면 보수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쓴 목수정 씨가 역자라니 더더욱 욕심이 나네요.  

 

 

 

 

헉! 소리가 나도록 아름다운 이곳, 이곳이 진정 도서관이란 말입니까? 아, 보는 순간 바로 사랑에 빠지고 말 도서관의 모습을 그저 책으로만 보는 것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이 책에 실린 도서관들의 실제 모습을 보고나면 내가 즐겨 찾곤하는 우리동네 도서관이 쓸쓸해질지도 모르니까요... 고독과 비밀의 공간,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을 가슴속에 새겨두고 싶은 책벌레, 책도둑, 책쟁이이기에 이 책을 욕심내 봅니다. 

 

 

    

 

저자는 1991년부터 2008년 까지를 낙관의 시대로 보고, 세계 경제 위기 이후인 2008년 이후를 불안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안과 낙관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는데,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불안이 낙관으로 바뀔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당장은 그럴 가능성이 없어뵙니다. 이 불안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저는 내일을 생각할 때면 아이가 가슴에 돌덩이처럼 걸리곤 합니다. 아이에게 내가 살아왔던 시절의 희망을 물려줄 수 없게 될까봐 진정 불안한 시대입니다. 불안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오늘이 있기까지 지나온 자취인 전환과 낙관의 시대를 간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네요. 

 

 

   

저는 기독교도입니다. 가톨릭 신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역사이고, 사실은 사실이며, 그리고 믿음 또한 믿음이다. 편한 논리이죠? 책을 읽을수록 내 종교에 의문이 실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믿음을 포기할 수 없어 이런 편한 논리로 무장하곤 합니다. 어쨌든 사실은 사실입니다. 종교가 정치와 추악한 동맹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불편하지만 확인하렵니다. 

 

 

  

 

 

마지막으로 쓸쓸한 책 한 권 추가합니다. 인도의 작가로서 '세계화'에 대한 에세이를 싣었습니다. 커다란 눈망울 만큼 세계화를 바라보는 그녀의 글이 쓸쓸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계화에 대해 균형감각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들, 꼭, 읽었으면 싶은 책입니다. 물론 저도 꼭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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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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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국가는 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며, 국가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동의 이익에 대한 공평한 분배를 집행하는 기관이며,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쓸 의무가 국가에게는 있다. 적어도 국가란 일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하는 이기적 공동체가 아니며,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착취하기 위한 도구일 수도 없다. 더불어 국가라는 무형의 관념을 위해 국민 개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국민학교 시절 대통령의 사진이 걸린 교실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단일민족 백의민족 따위로 치장된 애국심에 고취된 교육을 받았다.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보다는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를 먼저 고민하라고 배웠다. 따라서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안녕과 평화와 발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최근에 하게 된 것이고, 그 이전의 국가관이란 따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우리 민족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이므로 개인은 당연히 집단을 위해, 즉 국가공동체를 위해 희생되어질 성질의 '것'이라고 습관처럼 생각했다. 개인이 국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아주 발칙한 혹은 불온한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해왔다. 

그러나, 그러나, 생각이 달라졌다. 국가는 당연히 국민 개개인의 평화와 안녕과 발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개개인은 또한 국가에 자신의 평화와 안녕과 발전과 행복을 위해 무엇인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유시민. 그를 싫어하게 된 것은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직에 있을 때의 말발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대통령도 장관도 빛나는 말발 때문에 욕을 먹던 시절이었다고 기억한다. 국민을 위해 더 나은 국가를 만들라고 뽑아놓은 대통령과 장관이 어지럽히는 뉴스가 날이면 날마다 모든 것은 그들의 말발 탓이라고 외치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먼 일처럼, 내 한 몸 편키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국가와 내 행복은 직결된다는 것을 잊고서. 부르주아지도 아니면서 마치 부르주아지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그러던 어느날 잔치는 끝났다. 열정과 신념 빼고는 아무것도 없던 비주류 대통령이 투신하던 날. 땡볕 아래 불타오르던 아스팔트 광장을 눈물로 매우던 그날. 그 모든 것은 끝났다. 내 한 몸의 평화는 결코 내 한 몸에서 시작되는 것도,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가려진 진실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되었고, '것처럼'을 내 인생에서 빼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책이 필요했다. 유시민의 이 책 또한 그래서 읽게 되었다. 그의 국가관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더이상 정치에서 비주류로 지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훌륭한 국가에서 개인의 훌륭한 삶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서문에서는 훌륭하다는 의미가 다소 모호했지만, 8장, '국가의 도덕적 이상'을 읽을 때 쯤에는 그 훌륭함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돌아가야 할 것을 마땅히 돌려받는 사회 공동체라면 응당 훌륭한 공동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평한 사회적 배분이 가능한 공동체 안의 개개인의 삶의 질 또한 훌륭하다고 할 것 까지는 없으나 적어도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 유시민 대표도 밝히고 있지만 사실 국민은 이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관념보다는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을 실현시켜줄 정치인과 정부를 원한다. 실제적인 삶의 행복에, 정치적 사상적 옳고 그름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민 개개인이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훌륭한 삶을 상상하기에는 현실적인 고통은 너무 크고,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능한' 정치인에 목이 마른 것이다. 여기서의 '유능'이란, '나를 잘 살게 해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실체적 유능을 말한다. 민중이 원하는 것은 공동체의 행복을 우선해 나 개인의 행복 실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이 행복한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9장, '정치인에게는 어떤 도덕법이 요구되는가'를 읽으며 나는 유시민 대표가 이 책을 진보세력과의 연합에 목적을 두고 썼다는 확신을 얻었다. 보수주의와는 달리 진보주의는 말 그대로 진보한다.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런데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공인된 지배적 사유습성을 바꾸려하는 시도는 불온한 것으로 본다는 베블런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진보적이라는 것은 탄력적이라는 말과도 비슷한것이 아닐까. 진화와 전진은 한가지 사상만을 고집해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연합하고 섞여야 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집단이 진정한 진보집단이 아닐런가 하는 생각도 가능하다.  

유 대표는 베버의 말을 인용해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 세가지로 열정과,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강조했다. 자신의 정치철학을 피력한 것이라고 보는데, 국민들이 연합정치를 정치적 권력욕이 아닌 진정한 책임의식으로 볼 수 있도록, 연합에도 발빠른 계산보다는 진정성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말발보다는 글발이 멋진 유시민 대표다. 정제된 그의 글은 그가 철학이 있는 정치인 임을 보여준다. 명예욕에 눈 먼 이론가이거나, 권력욕에 눈이 먼 정치꾼이 아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를 국민을 위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책임의식과 자신의 이론과 자신의 정치활동에 대한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성찰하는 균형감각을 지닌 정치가 유시민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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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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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라는 책 제목은 마치 연애 심리학 내지는 실연극복 심리학 정도의 내용을 상상하게 한다. 더불어 야릇하게 다리를 포갠 표지그림 마저도 지하철에서 책을 펴들고 앉기에는 민망한 정도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자본주의시대에 무수한 유혹과 욕망으로 부터 피로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인문학서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보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진정 필요치도 않은 물건에 대한 욕심을 고민했기 때문에, 그러한 고민들이 삶에 피로를 더 해준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았기 때문에 이 책을 욕망할 수 밖에 없었다. 

 

강신주, 그는 참으로 친절한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였다. 고전을 읽기에 도움을 받고자 선택했던 책이었다. 고전 서평서도 아니고, 개론서도 아니며 참고서도 아니었던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 에서는 내가 생각한 종류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지만 한가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강신주는 참 친절한 철학자로구나.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 그 생각은 더 깊어졌는데, 읽기에 수월하지 않을 보들레르, 짐멜, 부르디외, 좀바르트, 보드리야르 등등의 인문학자들의 책들을 참으로 친절하고도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고전에 대한 도움은 <철학이 필요한 시간>보다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에서 더 구체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지금 시대에 이 땅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혹은 행복으로 알아라' 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 남녀차별과 신분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가 아니라 성차별, 계급차별이 없는 것처럼 포장된 현대에 또, 노력하면 누구나 잘 살수 있다는 논리의 자본주의 나라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라는 뜻의 말이였는데, 나는 진정 그것이 감사한 일인줄 알고 성장했다. 그리고 게으름과 낙오는 죄악이므로 부지런히 노력하고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하나의 거대한 구조화된 구조, 구조화하는 구조 아비투스인줄도 모르고. 가능성의 장으로서의 미래를 믿으면서. 

 

이 책을 읽으며 막연하게 뜬구름 잡듯이 눈치를 채고 있는 자본에 대한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자 덜컥 겁이나기도 한다. 산업자본이 개인을 노동자와 동시에 소비자로 만들고, 노동자도 소비자도 산업자본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 지금, 산업자본으로부터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막연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소비 협동조합을 주장하기도 하고, 자본주의에 종속된 삶을 거부하는 이들이 지역화폐 우동인 '레츠'를 고안하고 실제로 '레츠'를 사용하는 공동체들도 있다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업자본으로 부터 무엇보다 자유스럽고싶지만, 취업을 거부하고 소비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어쩌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고작 내가 한다는 것이 우리 아이는 종속된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하는 막연한 생각뿐이고,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할까하는 데는 우왕좌왕할 뿐이다.  

 

아직은 더 많은 책들을 읽고 자본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산업자본을 이길 대안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겠다는 결론 밖에는 없다. 그렇기에 부르디외라든가, 보들레르, 하비, 벤야민 등등의 저술들을 읽어볼 용기를 이 책을 통해 얻었다. <꾸리찌바 에필로그>와 <녹색평론> 등에서 보았던 지역화폐 '레츠'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또, '사용가치'와 '기호가치'를 헷갈려하지 않는 소심한 소비자가 되겠다는 결심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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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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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사들을 찾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책이란 무엇인지,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책은 그들에게 어떤 것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만큼 책을 좋아하는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어떤 것들인지... 이런류의 북멘토를 찾는 기획은 많다. 요즘처럼 독서가 '대세'인 때는 더더욱.  

  이 책 역시 그러하다. 각계의 명사들을 만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 외에, 내가 이 책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서재였다. 서재는 보여지는 '무엇'이다. 그 무엇은 서재 주인의 지식임은 말할 것도 없고, 서재 주인의 세월이기도 하고, 심성이기도 하며, 욕망이기도 하다. 책에 미친 사람들은 안다. 서재라는 보물창고의 의미를. 그들의 서재를 보면서 어떤 어떤 책들이 꼽혀있는지를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법학자 조국의 서재에서는 공지영의 <괜찮다 다 괜찮다>, 박완서의 <오래된 농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발견했다. 그가 왜 감성의 법학자인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자연주의 살림꾼 이효재의 서재에서는 만화방만큼이나 많은 만화책더미를 본다. 세상에나! 그녀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꿈을 꾸는 듯한 아련한 포근함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나에게도 딱히 서재라고 이름하긴 뭣한 공간이 있긴 하다. 일단은 거실을 서재로 꾸민 셈인데, 책은 거실 외에도 공부방, 주방, 침실 할 것없이 침범하고 있다. 서재라고 이름한 거실만으로는 책을 다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이라면 발에 치일 정도로 여기저기 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히 언제 어느 순간에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것이, 이 책의 멘토들과 닮은 점이라고 나 혼자 뿌듯하게 웃어본다. 또 나는 책을 읽을때 꼬리물기를 통해 다음 읽을 책을 고르는 편이다. 예를 들면, 교보문고 사장인 김성룡의 서재를 볼 때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읽을 책은 <공감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이런식의 꼬리물기 독서법은 이 책에 등장하는 북멘토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갖은 독서습관이다. 이 또한 나를 무척이나 흐뭇하게 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이들의 서재를 통해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산재해 있는 책들을 분류하는 법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은 한 때 책을 출판사별로 분류했다고 한다. 그래야 색깔별로, 혹은 디자인 별로 보기 좋게 정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솟대예술가 이안수는 딱히 책을 분류하지 않는다고 한다. 피가 돌듯 순환하는 책등의 제목을 보면서 그대로 또한 하나의 책으로 느낀다고 한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분류법이냐. 내가 책을 분류하지 못하는 것은 낭만보다는 게으름이것만 그냥 그런대로 낭만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누군가 나에게 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준다면 '중독'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겠다고 생각했다. 한 권에 책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책'이란 물건에서 평생을 놓여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꼭 드는, 마음을 울리는 단 한 권의 책은 그 다음 책으로,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며, 그렇게 이어진 책들은 결국 '내'가 되고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만난 멘토들은 모두 어린시절부터 글자에, 책에 매료된 공통의 기억을 갖고 있다. 제법 풍족했던 어린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말 할 것도 없고, 가난으로 책 한권 변변히 살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도 모두 한 글자라도, 한 권이라도 더 읽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유년을 보냈다. 그들은 중독된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을 책에서 만난 것이다. 그 세상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 본 사람은 평생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요즘 아이들, 독서교육 열풍이지만 딱히 독서교육 이랄 것이 없다. 아이를 중독시킬 그 한 권의 책을 만나게 해주면 그걸로 평생 그아이는 책에서 놓여날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멋지고 폼나는 서재는 갖지 못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나만의 서재. 이 책을 읽고나자 나의 공간, 나의 서재가 더더욱 소중해지고 나를 중독시켜준 '책'들이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된다. 나는 평생 중독된 채로 살아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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