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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남도답사 일번지, 개정판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책이 출판된 것은 1993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18년 전이다. 그런데, 책 좀 읽었다는 나는 이 책을 이제서야 겨우 완독했다. 책이 재미없었거나, 지루했던 것도 아닌데 유독 이 책과는 인연이 쉽게 닿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대출하기를 서너번. 옆구리에 끼고만 다니거나, 책상에 올려놓기만 하다 반납하곤 했다. 역사를 무척이나 지루하게 공부했던 세대이기 때문인지, 꼭 읽어야겠다라는 욕심보다는 게으름이 앞섰다. 그런데 이번 개정판을 받고서는 게으름보다는 욕심을 앞세워 보았다. 그동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인지, 여러 책을 읽으며 역사가 지루하고 한물간 옛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인지 아는만큼 느끼고, 느낀만큼 보인다는 서문부터 가슴이 설랬다. 느끼고, 보리라. 보고, 느끼리라 다짐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느끼고 보리라던 나의 전투적인 책읽기는 인간의 손때보다 더 더러운 것이 없다라고 강변하는 첫번째 남도답사기, '강진과 해남' 에서 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지루하더라도 힘을 내보자라는 다짐이나, 지난 역사와 그 흔적들을 꼭꼭 기억속에 눌러담아 어디가서 아는체 좀 해보자는 얄팍한 술수가 전혀 필요없는 책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토록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이 책이 역사서라거나 문화재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고나서 줄줄이 꿰는 문화재쯤은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이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느끼는 법이라는 저자 유홍준의 주장대로,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역사 속의 문화재들은 수학여행 시절 겉으로만 훑었던 부여나 경주, 혹은 관광지로 전락하고 만 유적지 뿐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답사란 가서 인증사진 찍고 돌아오는 정도일 뿐이었다. 나는 딱 그만큼 경험했기에 딱 그만큼 느꼈을 뿐이고, 느낀만큼 보았을 뿐이었다.
3년전 안동 하회마을에서 민박을 하였다. 기와지붕이 ㅁ자 모양으로 모여있고, 마당 한가운데에는 장독들이 있었으며, 뒷마당으로는 대청마루까지 있었던 집이었다. 때마침 처마 밑으로 떨어지던 빗방울과 마루에 모여앉아 먹던 삼계탕, 그리고 병산서원 입교당 마루에서의 시원한 바람에 맞춰 흔들리던 나무들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관광지와 유흥지, 여행지를 다녀오고서는 기억할 수 없는 그런 포근한 느낌을 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는 동안 곳곳에서 느꼈다.
가람배치니, 상하구도 원형구도 그런것들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적 지식이나 미를 보는 감각이 후져서 이론적으로나 지적으로는 많이 달리지만, 문화재를 답사하고 유적지를 느끼는데 지식은 필요하지 않다라는 생각을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된 것이다. 어디가서 아는 척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느낄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문화재를 볼 때에도 그런 관점이어야 한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남에게 으스대기 위하여 치장한 것이 아닌, 사용자의 편의에 입각하여 배치된 것이라는 당연한 슬기를 문화재를 통해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꼭 필요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오랜세월 그토록 유명했고,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인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다. 답사를 통해 지식을 얻을 것이 아니라, 답사를 통해 지적인 눈을 키워야 할 것이었다. 답사를 통해 사랑을 배워야 할 것이었다. 인간과 자연을 조화롭게 사랑할 줄 알았던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치장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줄 아는 고고함을 배워야 하는 것이 답사인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한번 우리의 답사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또 한편으로는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유적지의 관리인들이 책이 출판된 후 끊이지 않는 관광객들로 유적지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는 대목에서는 당장이라도 책을 따라 답사를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자제해야겠다 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유적지가 몸살을 앓는 이유는 그곳을 찾았던 많은 이들이 답사객이 아니라 관광객이었기 때문에 남긴 불찰이 아니었을까 한다. 답사객이라면 마땅히 산들바람처럼 그곳을 스쳐가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녀온 흔적은 내 마음에만 남기고 말이다.
1993년에 첫 간행된 책이므로 지금 읽기에는 답사처의 환경과 가는 길 등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내가 읽은 이 책은 새로 개정되어 출판되었다. 그렇기에 읽기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다만 비전문가로서 혹은 책이 쓰인 시기의 여러가지 상황에 어두워 고개를 꺄우뚱하게 되는 장면이 없지 않았으나, 위에 말한 것처럼 지식을 얻기 보다는 지혜를 얻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무엇인가 표나는 결과를 얻겠다는 생각부터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저자는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조화를 거스르고 있는 현대의 건축물들을 '생각이 퍽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건축물'이라고 표현했다. 생각이 가난한 사람들은 배려나 사랑보다는 남의 눈을 의식해 겉치장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자연을 훼손하고 당장의 편리함만을 생각한 현대의 건축물들은 자연을 훼손한 자리에 인공의 자연을 만들어놓고, 그것이 세련됨이며 디자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격이란 그런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읽기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이어서 2권 3권을 욕심내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