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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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새벽의 약속>은 작가 자신과 홀 어머니와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이다. 로맹가리가 작가로 어느정도 탄탄한 자리를 확보하고,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서 회상하는 어린시절로 부터 어머니가 죽기까지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는 이 이야기가 어느정도나 사실일까 무척 궁금하다. 자전소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에 기인한 것일테지만, 분명 어느부분은 작가의 창작이 개입하였을 것이고, 의도된 창작이 아니라도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그리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에 사실의 정도가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커다란 줄기,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과 어머니가 아들에 기대하는 삶(시인이 될 것이라던지, 외교관이 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를 넘어 거기에 돈 후앙, 카사노바를 바라는 어머니라니!) 이라던가, 로맹가리가 어머니에게 기댔던 부분들은(어머니가 자신에게 기대했던 삶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서 어머니의 그늘 또한 벗어나지 않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맹가리의 필체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교차한다. 로맹가리는 본명이 아닌 여러가지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즐겼다. 이런 필명을 붙이는 버릇은 어려서 어머니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그만큼 로맹 가리에게 어머니란 넘어설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전체적으로 로맹가리의 회상이 쉽게 읽힌 책은 아니다. 특히나 로맹 가리가 프랑스 공군으로 참전한 2차대전의 이야기를 그린 제3부는 그의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필력이 감당 안될만큼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저 가끔씩 튀어나오는 의외의 사건에 시선이 잡히는 정도였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로 출연했던 조정석은 나이많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어머니를 뵐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어머니의 장수를 소원하는 내용의 인터뷰로 시선을 끌었다. 아들에게 어머니란 넘어서야 하지만, 차마 넘어설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에게 아들은 애인과 같은 존재이다.  세상 어떤 남자가 그토록 무조건적으로 나를 완벽하게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싶을만큼 나를 완전하게 추종하는 연하의 남자. 

그러나 가끔 나는 생각한다. 언제고 완전하게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은 이 아들은 자라고 자라 나를 잊겠지. 언제 어느때 무엇을 하건 머릿속에서 떠나보내지 않던 엄마라는 존재를 그저 그렇게 잊어가겠지. 그리고 그렇게 잊어가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믿는다.

로맹 가리의 최초의 그리고 최종의 사랑 이야기인 <새벽의 약속>을 읽으며 언젠가는 나를 넘어 훨훨 날아가는 내 아들의 뒷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힘들지만 조금씩 그 아이의 도약을 위해 떠나보내는 연습을 벌써부터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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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을 가다 - 복지국가 여행기 우리시대의 논리 16
박선민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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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국고로 연수를 떠나는 국회의원이나 공무원, 또는 공사의 직원들을 볼때면 의아스럽다. 단기간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몇일간의 이른바 '연수'를 통해 배울 것이 뭐있겠나, 그저 관광을 떠나면서 듣기좋게 '연수'라 이름하는 것이겠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열흘간의 연수를 통해 책까지 내놓은 이가 있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국민의 세금으로 그 멀고먼 스웨덴까지 다녀와서는 책까지 내는 뻔뻔함이라니, 라고 생각할 뻔 했지만 그의 이력과 여행의 변을 담은 서문을 읽고나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얼렁뚱땅 여행기는 아닐것이라는 방향으로.

지은이는 세아이이의 엄마이며, 2004년 부터 줄곧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가난한 이들의 삶이 아리다고 했다. 해서 좋은세상을 꿈꾸며 정말 열심히 일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있노라 했다. 그런이라면 적어도 관광을 연수로 포장하는 배짱은 없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여행기라지만 어디가 좋더라 뭐가 맛있더라, 따위의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여행기는 물론 아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기를 적은 문화탐방기도 역시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를 살펴본다는 것은 식문화와 문화시설을 빼놓고는 말할수 없다. 식문화와 문화시설은 그들의 생활모습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스웨덴의 복지 시스템을 살펴보는 것이 주 목적인만큼,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의 복지국가 탐방기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가 고백하고 있듯, 열흘간의 일정중에 오고가는 시간을 제하고나면 일주일.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발바닥에 땀나듯 뛰어다니며 인터뷰 해본들 고작 일주일이다. 일주일의 시간은 한나라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살펴보고 그에대해 무엇인가 배웠다고 말하기는 짧아도 너무 짧았다. 일단은 그것이 '단기연수'에 대해 갖고 있는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주진 못했다.

그러나 보편복지를 국가가 망하는 지름길로 폄하하며, 잘못된 정보를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남발하는 보수 신문들의 보도를 인터뷰를 통해 꼭집어 줄때는 그야말로 속이다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일부의 신문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년 정기구독이면 끼워주는 상품으로 이 책을 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신문을 구독하다보면 '끼리끼리만 알면 뭐하는가'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작 알고있는 사람들끼리만 알고 씹어댄대서 도대체 달라질 것이 무엇일까 하는 체념 아닌 체념이 일기도 하는 것이다. 정작 알고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은 두눈 두귀를 다 가리고 있는데 말이다.

이미 알고있듯이 스웨덴은 세금을 많이 걷고 걷은 세금의 대부분을 복지에 쓴다. 또한 스웨덴의 복지는 빈곤층을 겨냥한 시혜가 아닌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국가이다. 그러나 복지천국,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스웨덴이더라도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비교했을때 불편한 점이 있으며, 그것을 없애가기 위해 노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믿음직 하다.

 

대선을 앞둔 우리의 정치계에서는 '복지'에 대한 공약이 그야말로 난립의 지경이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후보 모두 북유럽식의 교육을 통한 생산적 복지를 약속하고 있지만, 그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왠일인지 나는 그들이 거는 공약의 삼분의 일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큰그림만 강조하지 말고, 그 약속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세세한 밑그림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일할 수 있는 자에게는 고용을, 일할 수 없는 자에게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이 실천될 수 있도록, 그전에 세금에 대한 문제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세금을 걷을 것이고, 걷어진 세금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이 먼저 선행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현 스웨덴의 집권당인 우파 연합은 복지 제도의 축소가 아닌 유지를 약속했기에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진보주의자 박선민의 전언을 전하며, <스웨덴을 가다>를 읽고난 개인적 소견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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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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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을 좋아한다. 처음 읽었던 그녀의 소설 <달려라 아비>부터 그녀의 글이 좋았다. 첫눈에 반했다고 할까, 톡톡 터지는 글투도 좋지만 알알이 알갱이가 터지고 난 후에 은은히 감도는 씁쓸한 맛에 묘하게 끌린다.

'비행운'.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그 의미가 궁금했다. 행운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飛行할 運數라는 뜻일지도 몰라.

 

 

내가 사는 동안, 내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누군가가 몹시 아팠을 수도 있겠다는 아픈 각성을 떠올리는 첫 이야기 '너의 여름은 어떠니'를 거쳐, 벌레가 살지 못하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지당한 이야기를 마치 내 팔뚝 위로 벌레가 기어가듯 절절하게 묘사해 낸 '벌레들'까지 읽고 났을 때, '비행운'의 제목을 가진 글은 언제쯤 등장할 지가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 목차를 살펴볼 때, 미처 '비행운'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기억났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살펴보았지만 역시 '비행운'의 제목을 가진 글은 없었다. 이쯤에서 飛行할 運數일지 모른다는 추측은 지워버렸고, 여기 실린 글 전체가 행운이 없는 혹은 행운을 놓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인가보다 싶었다.

 

 

'물속 골리앗'을 읽을 즈음엔 라오스의 고원으로부터 이름을 땄다는 태풍 '볼라벤'이 왔다.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태풍이 육지로 상륙할꺼라고 호들갑을 떨어가며 아이들 학교까지 휴교를 했던 바로 그날 이었다. 어마어마한 태풍이라던 볼라벤은 내가 사는 이곳 수도권에서는 그다지 큰 위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서남쪽 지역에서는 제법 큰 상흔을 남겼다고 했다.

도서관에 틀여박혀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때, 역시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는 '물속 골리앗'을 읽으며 창밖으로 골프장의 철골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책 속의 홍수와 바람에 흔들리는 철골 소리의 묘한 조화 속에서 나는 물 무덤 속으로 자꾸만 침잠해 가는 한편으로, 부모를 잃고 물에 떠내려가는 사춘기 소년은 죽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성우 속에서 수영을 가르쳐준 아버지와 녹색 테이프에 돌돌 말려 떠내려가며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던 어머니의 기억으로 그아이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때때로 '사랑의 기억'이 밥보다 더 큰 힘이 되니까.

김애란이 말하는 비행운의 의미는 非幸運도 飛行運도 아닌 飛行雲이라 생각한것은 50대의 청소 노동자가 등장하는 '하루의 축'을 읽으며 였다.

 

 

관제탑 너머론 이제 막 지상에서 발을 떼 비상하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중력을 극복하는 중일 테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얼마 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안도의 긴 한숨 자국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비행운이라 부르는 구름이었다.(176쪽)

 

특히나 마지막 이야기 '서른'을 읽으며 내가 이용당했다는 허탈보다, 내가 누군가를 이용했다는 아픔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서른 중에서)

 

 

김애란의 새로운 이야기 여덟편을 읽으며 깨닫은 것은 책 속엔 눈물이 있다는 것이였다. 울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않아도 도처에 울 일은 쌓이고 쌓였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이유는 위로 또한 책 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울지 않는 방법 또한 책 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자신이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캄보디아에 갔을 때 '나약 따'라는 호텔을 알았더라면 두려움없이 그곳에서 하룻밤 잘 수도 있었으련만. 그랬다면 나는 누구를 만났을까 를 생각할 즈음엔 김애란이 이 책에서 말하는 '비행운'은 飛行雲, 飛行運, 그리고 非幸運 모두라는 것을 알았다.

 

 

소설의 마무리는 때때로 해설가의 해설로 이어지곤 하는데, 그것이 왜 필요할까가 항상 궁금하다. 작가 자신도 해설하지 않는 것을 굳이 해설가가 나서서 해설해 줘야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해설가는 작가가 작품을 썼을 당시의 심리, 정황 등을 해석할 만큼 적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 따위가 나는 항상 궁금하다. 이 책의 해설편을 읽으며 건진 것 하나는 김애란 이야기의 중심이 '飛行雲을 동경할 수록 非幸運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기는 해설가도 부지런히 쓸 수있는 幸運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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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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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책을 읽는다. 천천히 읽다 보면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문득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 때가 있다. 일 년 365일 가운데 그런 기쁨이 찾아오는 일은 단 몇분이나 몇 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빨리빨리 건너뛰면서 읽는다면 단 몇 분, 몇 초의 그 기쁨조차 만나지 못할 것이다.(8쪽)

 라고, 책은 시작한다. 나는 이 몇 줄의 문장을 읽으며, 정말 그렇다라고 깊은 공감과 함께 행복을 느꼈다. 정말 그렇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이렇게 책을 읽고있는 이 순간의 기쁨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참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말 그대로 많이, 수시로 책을 읽는 편이다. 누구인가를 기다릴 때도, 전철을 기다리거나 이동할 때도, 근무 중에도 틈이 날 때마다, 혼자 밥을 먹게 되면 언제나,  그리고 아주 가끔은 길을 걸을때도 책을 읽는 나는 책을 늘 가깝게 두고 읽는 편이다. 자주 읽다 보니 양적으로도 많이 읽는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책들은 내용이 서로 얽히고 설켜 나중에는 이 책과 저 책의 내용을 마구 뒤섞어 기억하기도 하고, 책의 제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책의 의미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텍스트를 스쳐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때면 한번씩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책이 좋아 책을 읽는 것인지, 단순히 문자 중독인지 나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중독이 된 채로 쫓기듯이 빨리 그리고 많이 책들을 읽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속독술의 유의미를 알지 못한다는 야마무라 오사무는 읽어치우는 급급한 독서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평론가들의 독서 안내나 독서 일기에서 권하는 '빨리 그리고 많이 읽는' 독서에 대해 반대하는 것인데, 진정한 독서란 정보습득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이뤄낼 수 없는 진득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속독술을 배우거나 배워야 할 필요를 느껴본 일은 없지만, 어쨌거나 나도 모르는새에 책들을 빨리 많이 읽어치우는 독서를 지향하고 있었다. 단지 읽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는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 이상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된다. 비단 읽는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빨리'를 외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소르라치게 놀라곤 하는 경험 역시 자주있다. 나는 물같이 평화롭고 유유한 사람이고 싶은데 실제의 나는 어째서 그렇지 못한가 까지 <천천히 읽기를 권함>을 통해 생각을 뻗치게 된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은데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없다는 데에서 쫓기듯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지만 역시 책을 양적으로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한권이라도 진득하고 지독하며 진지하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을 이 책이 아니었더라도 늘 하고 있던 터라,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의 독서방식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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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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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두발을 편히 딛기도 비좁은 공간. 앞에 서있는 여자가 넘기는 머리칼도, 옆에 선 남자의 팔꿈치도, 뒤꼭지를 자꾸만 밀어대는 뒷사람의 가방도 불편을 넘어 불쾌로 이어질 정도이다. 그처럼 비좁은 틈을 비집고 선 그들은 모두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이나 노트만한 패드를 꺼내들고 제마다 밀린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도 아니라면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개중에는 열심히 '팡'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같이 화난 표정으로 화면을 노려보는 그들의 얼굴에선 혹여 누가 자신의 발을 밟기라도 하면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비장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한 여자가 웃고 있다. 입꼬리를 격하게 올려가며 가끔은 '풋'하는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녀가 팔아프게 들고있는 패드에서는 노홍철의 노란머리와 커다란 입이 보인다. 나는 그녀가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히죽일때마다 힐끗거리며 그녀를 본다. 그때마다 내속에서는 어떤 경멸의 감정이 울컥 솟곤 한다.

 

화면에 머리를 박은채로 두팔과 두다리에 불끈 힘을 주고 선 그들은 어쩐지 모두 고독해 보인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흘겨보고 경멸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나조차도 숨쉬기 힘들만큼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고독을 느낀다. 그러나 바우만은 현대의 우리들은 고독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유동하는 세계에서 고독할 자유를 잃었다고.

만원전철의 사람들 속에서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장그르니에가 말한 '우리는 혼자 살다 혼자 죽을 수 밖에 없는 섬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느끼는 고독감과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다. 바우만의 표현으로 하자면 '유동하는 근대'를 사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건 접속할 수 있는 많은 네트워크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혀 혼자라고 느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고독하다. 개인의 사적인 비밀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같은 채널에 의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고독하다. 채널을 닫고나면, 접속을 끊고나면 우리는 여전히 혼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네트워크가 다양하지 않았던 그 시절보다 우리는 몇배는 더 외롭게 된다. 가상의 대중들에 둘러쌓였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의 가상세계는 실제 개인이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만나는 관계망에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주변인들을 확장시키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그들과의 관계는 지속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피상적인 관계속에서 각 개인은 외롭다고 느끼지 않지만, 실제의 자신은 외로움으로 몹시 고통스럽다. 그건 삶의 감미로운 기쁨과 이유모를 슬픔을 이해하기 위한 장 그르니에가 말하는 '절대고독'의 시간과는 다른 종류의 고독으로, 관계를 거듭할 수록 실제의 나는 더 외룁게 된다. 관계를 통한 만족감이 물건을 사들이는 순간의 기쁨처럼 반복되면서 온라인 속의 관계들은 손쉽게 무한 확장되지만 그 속에서 정작 나를 채워주는 친구를 만나기란 불가능하다. 재빨리 얻고 재빨리 버려지는 소비사회는 인간관계에서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에는 인터넷, 휴대전화, 아이팟, 게임기기라는 스피드와 편리함을 얻었지만, 대신 '절대고독'의 권리를 잃었으며, 기기들을 통한 다량의 다양한 즐거움을 얻었지만, 즐거움의 질을 놓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평범한 우리들은 대때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와 같은 괴물이 될 가능성이 깊어지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여기 실린 44통의 바우만의 편지는 2008년 부터 2009년까지 2년에 걸쳐 씌여진 것으로 세대차이, 신용카드, 신종 플루, 교육, 종교, 성격 등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것이지만 결국 주제는 '사적인 자유'를 암시하는 '고독'으로 귀속된다.

사적인 영역을 공적장소로 끌어냄으로서 고독의 시간을 거부하는데 익숙해진 우리는 이제와서 어떻게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에는 본질적인 것을 되찾자는 것일텐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자본을 좇아 돌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인 수레바퀴를 멈출수 없다면, 수레바퀴의 원심력에 휩쓸리지 않도록 각자가 강해지는 방법말고는 달리 해법이 없을 듯하다.  문명을 되돌릴 순 없지만 문화를 되돌리기는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닐까, 바우만을 통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의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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