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애란을 좋아한다. 처음 읽었던 그녀의 소설 <달려라 아비>부터 그녀의 글이 좋았다. 첫눈에 반했다고 할까, 톡톡 터지는 글투도 좋지만 알알이 알갱이가 터지고 난 후에 은은히 감도는 씁쓸한 맛에 묘하게 끌린다.

'비행운'.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그 의미가 궁금했다. 행운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飛行할 運數라는 뜻일지도 몰라.

 

 

내가 사는 동안, 내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누군가가 몹시 아팠을 수도 있겠다는 아픈 각성을 떠올리는 첫 이야기 '너의 여름은 어떠니'를 거쳐, 벌레가 살지 못하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지당한 이야기를 마치 내 팔뚝 위로 벌레가 기어가듯 절절하게 묘사해 낸 '벌레들'까지 읽고 났을 때, '비행운'의 제목을 가진 글은 언제쯤 등장할 지가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 목차를 살펴볼 때, 미처 '비행운'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기억났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살펴보았지만 역시 '비행운'의 제목을 가진 글은 없었다. 이쯤에서 飛行할 運數일지 모른다는 추측은 지워버렸고, 여기 실린 글 전체가 행운이 없는 혹은 행운을 놓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인가보다 싶었다.

 

 

'물속 골리앗'을 읽을 즈음엔 라오스의 고원으로부터 이름을 땄다는 태풍 '볼라벤'이 왔다.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태풍이 육지로 상륙할꺼라고 호들갑을 떨어가며 아이들 학교까지 휴교를 했던 바로 그날 이었다. 어마어마한 태풍이라던 볼라벤은 내가 사는 이곳 수도권에서는 그다지 큰 위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서남쪽 지역에서는 제법 큰 상흔을 남겼다고 했다.

도서관에 틀여박혀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때, 역시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는 '물속 골리앗'을 읽으며 창밖으로 골프장의 철골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책 속의 홍수와 바람에 흔들리는 철골 소리의 묘한 조화 속에서 나는 물 무덤 속으로 자꾸만 침잠해 가는 한편으로, 부모를 잃고 물에 떠내려가는 사춘기 소년은 죽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성우 속에서 수영을 가르쳐준 아버지와 녹색 테이프에 돌돌 말려 떠내려가며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던 어머니의 기억으로 그아이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때때로 '사랑의 기억'이 밥보다 더 큰 힘이 되니까.

김애란이 말하는 비행운의 의미는 非幸運도 飛行運도 아닌 飛行雲이라 생각한것은 50대의 청소 노동자가 등장하는 '하루의 축'을 읽으며 였다.

 

 

관제탑 너머론 이제 막 지상에서 발을 떼 비상하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중력을 극복하는 중일 테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얼마 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안도의 긴 한숨 자국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비행운이라 부르는 구름이었다.(176쪽)

 

특히나 마지막 이야기 '서른'을 읽으며 내가 이용당했다는 허탈보다, 내가 누군가를 이용했다는 아픔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서른 중에서)

 

 

김애란의 새로운 이야기 여덟편을 읽으며 깨닫은 것은 책 속엔 눈물이 있다는 것이였다. 울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않아도 도처에 울 일은 쌓이고 쌓였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이유는 위로 또한 책 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울지 않는 방법 또한 책 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자신이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캄보디아에 갔을 때 '나약 따'라는 호텔을 알았더라면 두려움없이 그곳에서 하룻밤 잘 수도 있었으련만. 그랬다면 나는 누구를 만났을까 를 생각할 즈음엔 김애란이 이 책에서 말하는 '비행운'은 飛行雲, 飛行運, 그리고 非幸運 모두라는 것을 알았다.

 

 

소설의 마무리는 때때로 해설가의 해설로 이어지곤 하는데, 그것이 왜 필요할까가 항상 궁금하다. 작가 자신도 해설하지 않는 것을 굳이 해설가가 나서서 해설해 줘야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해설가는 작가가 작품을 썼을 당시의 심리, 정황 등을 해석할 만큼 적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 따위가 나는 항상 궁금하다. 이 책의 해설편을 읽으며 건진 것 하나는 김애란 이야기의 중심이 '飛行雲을 동경할 수록 非幸運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기는 해설가도 부지런히 쓸 수있는 幸運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