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다루는 '교재'로는, 김수행 본, <자본론>이다. 

여러 번 읽을수록 더 좋다.  


다른 이외 번역가들은 뒤로하고, 따로 참조하면서, 참고하면서.

<자본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경제주의로부터 기초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아닌,

직접 읽고 정리한, <자본론>으로부터, 의의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해석자나 발언자들도, <자본론>에 대한 주관적인 편견에 기초해서, 

주장들을 드러내보일 수 있으므로, 수정, 폄훼하는 일은 없도록 자제하고, 억제하겠다. 


참고로, '4권', 카우츠키, <잉여가치 학설사>는 <초과가치 학설사>로 옮긴다.    

'잉여'가 주는 말의 어감 때문이기도 하고, 남긴다는 뜻보다는, 넘쳐난다는 뜻이 더 적절하다. 


자본가들은 판도 크고,이윤도 남길 수 있지만, 정작 몫을 제대로 분배해본 적도 잘 없으므로.


- 경제학 철학 수고. 


- 임노동과 자본. 


-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 <자본론>.  


칼 마르크스.


또한 레닌은 '교육적인' 자료로는, <칼 마르크스>를 집필하기도 했으므로,

19세기라, 마르크스에 대한 생애와 이론을, 그리고 실천에 대한 의의까지,

함축해서 다뤘다. 여기서는 칼 마르크스라는 인물에 대한 생애, 이론, 실천을 

종합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그리고 엥겔스는 같은 항목으로 두겠다. 


- 생애. 


- 이론. 


- 실천. 


- 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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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나, 서아시아에서는 활발한 내전이나 전쟁에서도 보이는, 제국주의 질서로부터 빠르게 흡수되거나, 미약한 투쟁들도 보이지만, 정작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한 계급 투쟁에 대한 과학적인 견해들이나, 소비에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일부만, 적용한다는 특징은 있다. 그리고 계급 투쟁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잘 보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두 국가 지역으로도, 훨씬 더 폭 넓은 혁명에 대한 수입이나, 수용을 이론적으로 전달해야 할 임무는 있어 보인다. 


바로 유럽이라는 국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동유럽과 서구식 문화를 혼합(융합)하거나, 받아들인 사람들로는, 자칫 동아시아에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움직임이 매우 빠르고, 특히나 중국, 베트남만이 아니라, 여러 국가들에서도, 독재에 대한 반대하고, 민중을 중심으로 한, 일부 계급 투쟁이나, 독재 정권에 대한 반발을 요구하거나, 민주화로부터, 착취를 고발하는 내용들도 있어왔다. 그러나 어느 국가든, 동아시아에서도 다음으로는, 혁명에 대한 전망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는 데, 특히 시베리아로부터, 시작한 마르크스주의 운동들은, 매우 척박한 환경에서도 옆 국가들로부터, 이론들을 수입하거나, 비록 대부분은 망명지였음에도, 혁명가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수입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특히 극동 아시아를 따로 다루는 이유란 바로,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들에 대한 주 활동지이자, 무대가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고, 공산주의 운동들도, 어떻게 확산할 수 있었고, 또한 계급 투쟁이라는 성과와,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었는가를 세부적으로도 고찰해보고자 한다. 또한 간과하기 쉽지만 일부 러시아 급진주의 운동과도 어떤 점에서, 무엇이 매우 달랐는지도 말할 수 있다. 


- 시베리아. 


- 동아시아. 


-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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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 


파시스트에 대한 여러 정의들도 많이 나왔다. 정작 제국주의 아래로부터 쉽게 결탁하거나, 파시스트를 매수할 수 있는 자본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중간 계급만이 아니라, 계급적인 층위로도, 어디서든 출몰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가진다. 그러나 같은 위험으로는 주로 교육받지 못하거나, 오래된 선입견들로 누적된 편견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이므로, 그들은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자본가들 가운데 하수인으로는 오랫동안 똑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주어진 자본이나 공돈들도, 그들의 배를 불리는 데도 넉넉했기 때문에 금융 업계로도, 정치적인 브로커를 도로 매수하기란 매우 쉽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덕분에 파시스트로 가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선택이지만, 지배가들은 잔머리를 잘 굴린다. 괜히 파시스트들이 출몰하면 사람들이 공포에도 쉽게 질리고는 대응하지도, 대책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로 무방비로 노출하는 이유들로 보더라도, 파시스트들에 대한 연구를 주로 심리적으로만 다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파로부터 추종된 견해가 아니라,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숨은 역사마저 있다. 따라서 너무 오랫동안 거드름을 피운 파시스트를 너무 일찍 상대하거나, 방해 공작에 휘말리기 보다는, 그들마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채로 오랫동안 다퉈왔다. 그리고 무력한 틈을 타서 히틀러는 다시 집권할 수 있었다. 때로는 역사를 보면 참 안타깝다. 


화를 품고는 화두를 던지고 만 말썽 꾸러기를 어찌할 줄 모르는 부모들에게 매가 꼭 처방이 될 순 없듯이, 때린다고 해서 쌓인 응석마저 그대로 풀렸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할 말도 참 많겠다. 

더 큰 폭력을 미리 막고자 한다면, 적어도 서로 다른 반경을 파악할 필요는 있겠다.

대응으로 제안하자면, 파시스트로부터 공포를 떨거나, 협박으로 사로잡히기보다, 

할 수 있는 혁명 활동으로 집중하는 게 더 알맞다고 본다.    


정치 깡패. 


민족 운동이 먼저였기 때문에 파시스트가 없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옛날 깡패들은 그러한 역할을 대신해서 수행하는 경우들도 참 많았다. 깡패라고 해서 꼭 파시스트는 아니겠지만, 정치로 가담한다면 말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치가들이 선동, 선전만으로는 그들에게 주적인 공산주의를 탄압하기란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리를 고용하거나, 민간인을 폭력하고, 학살하고, 협박하면서 모은 거액 금액을 탈취하거나, 고용한 정치가를 투표로로 부상하도록 돕고는, 권력을 찬탈해왔다. 그리고 매수할 수 있는 자본을 가졌으므로, 과거 행적들을 쉽게 숨긴다는 특징도 가진다. 이를테면 민중에게는 적이지만, 보수당에서는 내세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도 미군에 대한 원조를 늘 요구했었고, 친일 행적들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는 정치 깡패를 고용했기 때문이다. 괜히 자신들의 투표를 위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공직에 오른 인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란 그러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입장들을 반대하면, 자신들의 적으로 몰거나, 그들의 명분으로 삼아서는, 정작 자신마저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마저 간과하고는 몰랐으므로, 파시스트들은 어느 곳에서나, 심지어는 사상과도 무관하고, 정치적인 입지를 공고하도록 하거나, 더욱 확고하게 하고자, 단체들을 고용하고, 무리로도 뒤섞여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일본도 왜 제국주의이자 파시스트 국가로 규정할 수 있는가. 바로 해외로도 배운 유학파들은 정치 깡패들로부터 정계로도 쉽게 진출할 수 있었고, 곧바로 행적을 숨기고는 정치가로도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또한 간과하기 쉬운 점으로는, 행적을 버리고, 도피한 친일파였던 국내 파시스트들도 정치 무리에도 뒤섞여 있다는 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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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기 쉬운 점이 하나 있겠다.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파시스트들도 흥미로워할 수 있다.  


주사파. 


국내로는 북한을 심도 깊게 다루는 연구원들도 있다. 주로 국방부 연구원들이다. 그들은 주체 사상을 실은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게 아니었나 의문이 들 정도다. 때로는 북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국방부 연구진들은 주로 반공 교육을 위해 가담할 수 밖에 없는 오래된 관습이 남는다. 왜냐하면 전쟁에 대한 확전만이 아니라, 민족 해방이라는 명분을 둔 분쟁 국가들 사이에서 서방 국가에 대한 무기 지원이나 원조로부터 제시한 제안들에서도, 지도자를 설득하려 들지만, 맨 처음부터 주사파들은 일부로도 자신들의 반미, 반전에 대한 입장들은 잘 보여준다. 그러나 민족 해방(NL)이라는, 명분만으로는 실제로 분단이 일어났을 때, 세울 수 있는 구호는 아닌 듯 보인다. 외부로부터 침략을 당하거나, 내전으로부터 진영이나 양쪽 간 대립으로부터 심화된 양상을 보일 때는 주로 민족 해방을 내세우기 보다는, 국내로는 주로 '전체적인' 사상에 대한 입장으로 분명하게 가르거나, 편향된 선택을 강요하고, 한 쪽 입장을 지지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사파라고 해서, 북한을 추종한다거나, 그렇다고 지배자들과 타협하는 쪽을 꼭 택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부르주아들이라는 인식은 있고, 그들마저 내부로는 매우 날 서 있고, 또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주파. 


주로 같은 계열 사람들로 보기도 하지만, 주체에 대한 믿음에 기반했거나, 반미에 대한 입장을 더욱 명확하게 내세우는 쪽이긴 하다. 그러나, 국방부 연구원들 보다는, 주로 대학원 연구원들도 포진하거나 주를 이룬다. 그래서, 심각한 검열이나 탄압을 받더라도, 일부 연구비에 대한 개인적인 지원에서 멈추거나, 국가보안법에 따라 일부 제약을 받도록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란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지도자로부터도 폐기해야만 하는 수순을 절차로 밟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오래 전 민주화 운동에서도 행적이나, 고문에 대한 증거들에서도, 국가 보안법은 보다 강력하게 반미를 내세우고, 민족 해방으로부터 투쟁을 지지하던, 연구원들이나, 운동가들에게도 심각한 제약을 가해졌기 때문에, 주사파들로부터도 많은 분쟁들은 있어왔다. 그리고, 주로 학생이나 대학원생 계열들이었기 때문에, 소수 학생들이던 재야 운동권 인사들도 흩어졌고, 가담했다. 따라서 이제는 대학원생들을 이루는 지식인들이나, 연구진들일 수 있겠다.     


민족 해방.


민족 해방. 나라를 아끼는 좋은 말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르주아지로부터 노동 계급 탄압에도 앞잡이로 협력하기도 했었고, 부르주아지들도 내세우는 논리이다. 일부 지배 정당 내부를 보더라도, 주체 사상에 대해서는 이를 간다. 그러나, 주로 이를 가는 정치가들은 정작 주사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도 탄압이나, 착취로는 다시금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때로는 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일부 지배 정치가들은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내리고는, 일부 NL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감면해주거나, 지조를 지키고자 똑같이 노력해왔다. 노동 운동에서 오랜 기간 가담했던 선두로 나섰던 일부로는 고문을 받거나, 탄압을 받는 모임이나, 사람들도 대부분 흩어졌으므로, 주로 오래된 지면 간 논쟁이나, 학생 운동에서 주로 민족 해방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지식인, 대학생들 집단들은 훗날 부르주아지가 되어 결탁한 운동권 인사들이라는 뚜렷한 한계도 있으므로, 부르주아지들과도 쉽게 타협하는 관계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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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의. 


- 본격적으로는 개요로 드러나겠지만, 한국 자본주의 발전사에 대한 정치 경제학에 대한 모순들,경제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요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주요한 인민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개량화로부터 출발한 현대 경제학에서 속류화하고, 수정된 기회주의 경향(흐름)들에 대한 종합적인 비판으로 개설한다.    


수정주의와 반자본주의.


- 일부 경제학 지식인들이 보는 국내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그럴듯한 호황을 호언장담하는, 허항된 전망을 두고는 정작 체제 모순을 지적하지는 못하고, 일부 '수정주의' 관점들에서도 내세우는 반자본주의 경제관들이 실제로는 세계적인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만, 지배가들로 모인 체제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고 보고는 다시 자본주의를 수호하거나, 또 더욱 공고하도록 만드는 근거들이라는 점이다.


현대 부르주아지라는 대재벌들의 역사. 


- 각 정권 시기 별로, 혁명 투쟁을 무시한 역사로나, 착취한 역사로부터 자본주의는 국내에서도 

공업화, 철강 산업 시기, 해외 원조들에 대한 모순들로부터 진상에 있어서도, 노동가들에 대한 

구속과 감금을 보여줬으므로, 대재벌로 이뤄진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기여들, 소기업가들로부터

'그들이라는' 대 자본주의 역사를 꾸려 나갔는지를 검토해본다.       


각 정권들의 지배 탄압과 브로커들. 


- 레닌, <제국주의>에서 지적한 자본가 브로커들로 모여진 '카르텔'들이 현대로는 더욱 포악하고, 암묵적으로는 크고, 작은 은밀한 비밀들도 있어왔다. 그리고 독점적인 트러스트들과 자본 유착 관계도 따로 보고한다. 여러 예시들도 있지만, 작은 본보기로는 거대한 도시 건설로부터 건축업체, 시공사라는 공공 부문, 사익 비리로도 드러난 노동 역사와도 일치한다. 국내로는 지배적인 건축가들마저 부르주아지아와 결탁한 설계 부문에서도 해외 자본과는 오랫동안 기여해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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