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노년의 인구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부양 인구 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총 인구 수를 고려한다면, 여성과 돌봄 연구로만 한정한 매우 미시적인 분석에만 열중한 결과는 아닐지 의문이 드는 통계이다. 노인 인구 대비 출생률로 파악한다면,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1990년대부터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한 세대가 끝나는 만큼 서막이라 믿었던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끝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의료에서도 민영화를 추진했고, 병원 수는 늘어났지만, 정작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의사는 턱 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렇게 입시 제도로부터 정당한 시험이라 여겼던 의대 시험들도, 문턱 높은 전공의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를 제대로 돌볼 여건마저 있었는지는 자문 해보게 된다. 


한 의사는 환자 수는 늘어나지만, 감당할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의료 보험이라는 혜택을 받으면서도 환자는 늘 대기한다. 더욱 급한 의사들은 더 쉬운 전공을 택하고자 마음을 돌리고, 힘든 전공을 기피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후로도, 긴급 병원들에서는 의료법을 지키지도 않고, 불법 시술만 더 늘어나고 있다. 언젠가부터 건강이란 피부와 미용에만 해당하는 일이었고, 건강이란 신체 운동에만 해당하는 지키지도 못할 처방을 내려준다. 


있는 사람들은 걱정 하나 없는 국민들이 납부할 세금만큼이나 부담해야 할 건강보험료도 올랐다. 남들은 기나긴 토론을 해오는 국민 연금 제도를 보더라도, 앞으로는 연금 고갈을 먼저 우려하는 한국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먼저 재벌 자본가들의 배를 불러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초과 생산으로 쥐어 짜내고, 노동 임금을 착취하면서 고작 심심풀이에 불과한 자신들의 연금을 땅콩으로 늘려왔는지를 고려해보지도 않았다. 전공의들이 의사가 될 때도 같은 고민을 할까. 같은 연유로 한 대학에서는 교수가 강사들을 부려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반도체 노동자가 숨졌음에도, 기업들은 모두 노동 시간을 줄일 노력은 하나도 없고, 더 정치적으로 근무 제도에만 기댄다. 모두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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