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민주당의 상황을 보자면, 적절한 비판보다는 수 많은 비난 공세가 더 많다. 오히려 러시아의 상황에서 사회혁명당의 케렌스키와 입헌민주당이 많이 생각난다. 흥미롭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가진 영향력에 비해서, 생각보다 부담 요소가 더 많이 작용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케렌스키를 잘 아는 연구자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인사를 두고는 좌파 인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회타협주의이라는 한계를 잘 보여준 인물이 무려 20세기 러시아에서도 민주당의 인사들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중도주의에 대한 명확한 한계란, 바로 사적 유물론의 진가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질과 양, 개념의 객관적 통일이었다는 점을 보다 올바르게 파악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역사적 투쟁을 감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래 전 시민 혁명적 지침들에 대한 낡은 시대 정신이란, 계급 모순에 따른 창고 속의 보관된 소부르주아적 태도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깊이 우려하는 바이다.
수 많은 비난 공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 차리주의 아래에서 봉건적 러시아는 케렌스키와 입헌민주당의 사회타협주의가 가진 한계를 잘 읽어보는 것도 시사하는 바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일설들도 많았으므로, 제아무리 '좌파'라는 공세를 퍼붓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굳이 비교를 들자면 도대체 어떤 점에서 한국의 민주당은 좌파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나큰 의문점만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