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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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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멜버른, 이명세의 타일랜드,이병률의 산타 클로스 빌리지, 백영옥의 홍콩, 김훈의 미크로네시아, 박칼린의 뉴 칼레도니아, 박찬일의 큐슈, 장기하의 런던과 리버풀, 신경숙의 맨해튼, 이적의 퀘백까지.

 

특별한 예술가들의 여행 기록 혹은 여행 에세이라 두 말 할 것도 없이 특별하다!

게다가 10번의 여행에 동행한 이병률 작가의 예술적인 사진까지 더해지다니, 세상에 두 번 나오기 힘든 희귀한 책이 아닐까!

 

소설이나 방송, 음악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그들의 여행 중의 일상, 무척 사랑하는 와인에 흠뻑 취한 작가 은희경, 낮에는 온갖 맥주를 마시고 밤에는 음악을 찾아 다니는 뮤지션 장기하, 바다와 자연에 더 없는 호기심을 보이는 소설가 김훈,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를 즐겁게 유영하는 음악감독 박칼린. 그들의 아름다운 여행기가 쳇바퀴 돌 듯 지루하게 돌아가는 나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10개의 여행 에세이 중에서 제일 가보고 싶게 아름다웠던 곳은 이병률 시인의 핀란드 산타 클로스 빌리지. 그리고 가장 공감했던 에세이는 신경숙 작가의 맨해튼이다. 1년 여의 시간 동안 부지런히 드나들며 문지기와 눈도장 찍고 주변 상점과 익숙해질 알맞은 양의 시간. 그 곳을 떠나와 다시 그 시간을 그리워하던 일, 그리고 꿈만 같이 그 곳 그 시간을 다시 방문하는 것.

 

그녀의 글을 읽노라니 문득 나의 그 곳이 떠올랐다. 내가 1년 여 지내던 그곳 봄이 멀리에서 늦게야 도착하던 Fargo를 다시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맨해튼 같은 관광지라면야 언제고 한 번은 다시 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가 있겠지만 워낙 시골에 구경거리도 당시 사람들도 거의 남지 않은 그 곳은 내 평생 다시 가지 못할 꿈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슬프다.

 

 

 

 

<세계인의 정류장, ‘이방인을 부탁해’>

신경숙에게 여행은 친숙한 나와 낯선 세계가 합해져서 넓어지는 일.

나는 여전히 낯선 곳에 가면 그곳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장소를 옮겨다니며 글을 쓰는 일, 카페 같은 곳에서 글을 쓰는 건 내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 내가 문을 닫고 들어 앉으면 완벽히 혼자가 되지만 문만 열고 나서면 세계의 중심과 통하는 도시 뉴욕에 내 책상을 하나 놓아두고 싶어졌다.

뉴욕은 어느새 나에게 그런 곳이 되어 있었다. (p. 319)

 

달리는 작가 중의 대표 건강한 은희경 작가가 찾은 호주 와이너리와 한밤 중 별들도 숨 죽이며 고요히 지켜보는 펭귄 가족의 귀가. <애인 만나러 호주에 갔지요, 그의 이름은 와인이고요. 흠뻑 취했답니다. 저 풍경 때문에>

 

‘와인의 맛이 그렇듯 맛의 최후 조건은 역시 시간과의 접점에 있을까. (p. 44)’

‘나는 여행에서 그런 순간들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그렸던 이방의 세계가 멋지게 펼쳐지는 것보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의 저녁 바람이 불현듯 옷 속을 파고드는 것. (p. 43)’‘여행의 시간 속에서 나는 사람들을 만났다. 잊고 있었던 옛 사람들과 돌아가서 만나게 될 그리운 사람들, 그리고 나라는 사람까지. (p. 51)’

 

<오, 12월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병률에게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

내가 어딘가로 떠나가서 성냥을 한 통씩 들고 오는 이유도 그것과 닮았다. 성냥은 속수무책일 때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 (p. 93)

 

추운 나라에서 추운 시간을 살아보고픈 소망이 있었다. 그곳이 북극이었으면 했다. 오직 추위만을 느끼면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서서히 얼리는 것.내 지느러미는 그 방향을 원하고 있었다. (p. 111)

 

 

 

 

<홍콩에서 열아홉 살의 꿈을 맛보다>

홍콩은 한때 내게 어둠의 도시였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흔들리는 카메라처럼 불안하게 가라앉는 도시였고, 그런 정서는 내가 가진 균열들과 정확히 맞아떨어져 언제나 나를 흔들었다.

아마도 나는 막연히 늘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이민자들이 우글대는 ‘청킹맨션’의 어두운 복도를 걷고, 한밤의 더위에 웃통을 벗어제낀 시끄러운 목소리의 아저씨들이 후다닥 말아주는 국수를 먹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것이 겉멋이든 치기든 한때 내 감정의 일부를 꾸리고 있던 실체이므로 나는 이 도시와 어느 정도 감정적인 형제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 129-130)

 

워낙 유명한 관광지 맨해튼, 멜버른,홍콩, 타일랜드, 큐슈, 리버풀 또한 예술인들의 눈으로 보아 색달랐지만, 더 흥미로운 곳은 역시 생소한 여행지였다.

소설가 김훈은 원체 자연의 원래보다 더 아름답게 묘사하는 유려한 문체로 소문이 나 있지만, 그의 미크로네시아는 천해의 자연환경과 맞닿아 부럽기만 했다.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미크로네시아서 깨닫다>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

모든 것들이 느리고 진행되고 있다. 거기서는 새도 느리게 난다. (p. 161)

파브르는 <식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에게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면서도 이 세상 꽃들의 색깔과 향기의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브르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죽었다. (p. 168)


박칼린에게 여행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

난 어느 날 멋진 뉴칼레도니아 남자를 만났고 그의 멋진 등을 보며 상상의 세계를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그 아름다운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 게. (p. 222)

 

 

 

 

<나 돌아가면 얼마나 이곳을 그리워할까>

장기하에게 여행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타게 된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

난생처음 본 그 그림은 나의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추억은 언제나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가지고 있다. 좋은 기억도 추억이 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슬픔을 머금기 마련이고, 안 좋은 기억도 추억이 되면 세월의 길이만큼 아름다움을 덧입기 마련인 것이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서 부드럽게 솟아올랐다. (p. 277)

 

여행 넷째 날에 쓴 일기를 펴보니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런던에 있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자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동시에, 아, 돌아가면 이 도시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생각한다.” 과연, 참 그립다. (p. 287)

 

책의 제목 <안녕 다정한 사람>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일까. 여행지의 현지인, 두고 온 그리운 사람, 혹은 이방의 나일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의 나는 늘 새로우니까. 그래서 그러므로 사람들은 언제나 떠나는 것을 꿈꾼다. 물론 돌아온다는 분명한 전제 하에. 우리는 항상 다른 어딘가를 꿈꾸고 늘 떠나고 싶어하는 간질간질한 가슴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언젠가 나도 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오늘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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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리즈 머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거리에서 생활하던 15살 소녀가 하버드에 입학하기까지 감동 실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자주 많은 인용구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읽고 싶었다. 집이 없어 친구집을 전전하고 며칠씩 굶고도 지하철이며 철제계단이며 옮겨다니며 공부 한 대단한 그녀. 나는 절대 그럴 수 없기에 더 궁금한 이야기.

 

 

 

 

 

2. <모두 변화한다>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생각연구소

 

 

 

중국 작가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란다.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 등 중국 역사의 변혁기와 함께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가의 성장기를 더불어 읽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될 것 같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니만큼 글도 유려할 것으로 기대된다.

 

 

 

 

3. <내면 산책자의 시간> 김명인 지음 / 돌베개

 

 

80년대 학생운동부터 민중혁명과 민중혁명의 문학을 희망했던 '실천적 래디컬' 김명인. 그가 런던에서 홀로 보낸 2011년 가을과 겨울에 썼던 글이다.

'저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격동의 시간에서 30년 쯤 더 산 그는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제목도 참 좋다. <내면 산책자의 시간>

 

 

 

 

4.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윌 슈발브 지음, 전행선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기획한 출판업자가 그의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한 시간을 그린 책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어머니와 그 옆을 지키는 아들이 다양한 책을 읽으며 삶의 자세를 배우고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

인간의 마지막을 그린 이야기는 늘 감동과 교훈을 준다.

 

 

 

 

 

 

5.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세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기본적으로 좋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이지만 또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멋드러지는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혹자는 에세이가 더 좋다고 했다. 나는 아직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어보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걸작선 세트 무척 탐난다. 참 아름답다. 소장하고 싶은 책 1위!!!

신간평가단에서 이런 세트는 선정 안하겠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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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그르니에 서한집 1932~1960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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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제겐 정말이지 꼭 한 가지 야심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게 말입니다. (p. 26 카뮈)

 

열정을 다하여 산다고 하셨던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저를 추동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에게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극단적인 경우일 뿐입니다. 니체는 거기서 광기를 만납니다. (p. 98 카뮈)

 

편지 혹은 전보로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는 것. 때로는 엇갈리기도 하고 긴 시간 답장을 기다린다는 것.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하물며 요즘은 몇 시에 어디서 만나기로 하고서도 오는 동안 어디쯤인지 몇 시에 도착하는지 또 혼잡한 곳에서는 어디 있는지 쉴 새 없이 연락한다. 가끔은 그런 것이 신물 날 때도 있다. 어릴 적만 해도 친한 친구와 주고 받았던 편지나 쪽지가 수십 통 어쩌면 수백 통일 수도 있다. 손글씨가 그립다. 그리고 불과 몇 십 년 전의 몇 일 혹은 몇 주 간 답장을 기다리는 일상이 그리워 질 때도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말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음이, 그들 스승과 제자 혹은 문우 간의 우정 깊은 편지로의 대화가 그저 부럽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235통에 이른다. 카뮈가 112, 그르니에가 123통의 편지를 써 보냈다. (p. 13 책 머리에)

 

귀중한 친구이신 그르니에 선생님, 이제 와서 새삼스레 제가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은 자신을 키워주고 이끌어주신 분들에게는 감사의 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저 계속 그 모습 그대로 계셔달라고 부탁할 뿐이지요. 부디 저에 대한 선생님의 우정을 간직해주십시오. 그것은 제 삶과 제 노력을 위하여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제자로서는 불안스러운 저를, 그리고 친구로서는 낙관적인 저를 믿어주십시오. (p. 285 카뮈)

 

내가 이 책을 궁금해 한 건 물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란 작품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옮긴이(번역가) 김화영 교수의 덕분이다. (아쉽게도 장 그르니에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ㅜㅜ) 우리나라에서 카뮈의 번역도서를 접해본 독자라면 알 것이다. 카뮈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우리나라에서 알베르 카뮈란 작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꼽는다면 1위를 선뜻 내어줄 김화영 교수.

뭇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노라면 프랑스 남부지역 특유의 프로방스의 빛과 풍경이 느껴진다고 한다. ‘태양과 지중해의 작가카뮈 역시 어느 장소에 머물든 그리워하던 곳. 따뜻한 햇살과 온화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지 없이 화창하여 우울증을 앓던 이도 며칠이면 호전될 것만 같은 행복한 날씨. 문학동네 카페에서 <너무 짧았던 여름의 빛> <목신을 찾아서>를 연재하며 카뮈가 머물던 장소를 비롯한 프랑스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도 한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펴 들고 처음 마주하는 글 또한 옮긴이 서문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머리에 부쳐. 책을 출간하며 또다시 프로방스를 방문하여 서한집에 나오는 마을을 찾기도 하고 카뮈의 딸 카트린 카뮈를 만난 시간이 쓰여있다.

 

 

당신이 내게 보여주는 우정에서 큰 행복을 느껴요. 당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맛보았던 감탄의 느낌이 날로 커져가는 것에 더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 자신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이 합해집니다. 전에는 당신이 유아독존의 바리새인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빠른 속도로 젊은이 특유의 오만에서 벗어났고, 그리하여 진정한 위대함에 도달했어요. 당신은 이미 위대한 재능을 타고났었고 또 엄청난 장애물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러한 재능과 그 장애물들에 상응하는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런 재능을 타고나서 그런 장애물들을 만난 경우는 더욱 드문 일입니다. (p. 270 그르니에)

 

선생님께서는 솔직히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주 불안한 심정으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 저의 삶에 순수한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바로 그러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p. 46 카뮈)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읽으며 먼저 든 생각은 두서 없다는 것이다. 둘만 아는 이야기를 엿본다는 것, 게다가 흥미진진 로맨스나 고백도 아닌 그저 스승과 제자 혹은 문우(文友) 간의 사소한 편지를 엿본다는 것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비단 당사자가 그르니에-카뮈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카뮈-그르니에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흥미롭지 않은 사소한 것들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나 보다. 글쓰기에 관한 근원적 고민 외에도 읽는 책, 건강에 관한 이야기(카뮈의 폐결핵), 가족사, , 불안정한 공간, 공산당 입당 권유, 식량요청, 유럽, 남미 여행, 철학교사, 강연, 직업적 연극 배우, 회곡 작업, 신문기자 등 일상을 주고 받으며 1932~1960년 무려 28년 간 주고 받은 편지들이다. 전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80여 년 전 카뮈-그르니에의 편지, 엽서 때로는 전보를 읽는 다는 것은 어쩐지 그들과 가까워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더 작품이 궁금해 지기도 한다.

 

 

 

게다가 저는 요즈음 아주 이상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무감각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고 이 병이 오래가는 것이라면 그건 지옥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얌전한 회의주의자이므로 치유와 은혜와 맑은 이슬을 기다리면서 선생님에 대한 사랑으로 알렉상드르 뒤마를 읽고 있습니다. (p. 332 카뮈)

 

제가 생각하는 바를 선생님께 제대로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그러나 적어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이 광란 속에서 제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붙잡고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최소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가치들만이라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p. 61-62 카뮈)

 

카뮈 17세에 처음 만난 그들은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로,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편지는 마음이 잘 통하는 벗으로서 때로는 서로의 조언자로서 마음을 나눈다. 서로에게 카뮈의 저서 <안과 겉>, <반항하는 인간>, 그리고 그르니에의 <모래톱>을 헌정했다. 그리고 서로의 작품을 굉장히 사랑했다. 카뮈는 심지어 그르니에의 <섬>을 서른번도 넘게 읽었다!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작품을 생산한 데는 당시 척박한 환경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40년대 전쟁(2차 세계대전), 식량조차 부족한 그 광란의 틈바구니에서 거의 항상 재미없는 따분한 일상 속 폐결핵까지 앓은 카뮈는 많은 시간 회복을 위해 그저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시간 동안 글에 관한 신념과 결단력으로 이미 출간한 작품을 몇 년 간 고치며 작품의 완성에 공을 들였다.

 

 

 

우리는 항상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나와는 무관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생각도, 당신의 고독도. 유람스럽게도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이기적이었고 몰이해했습니다. 인간들이 서로 갈라지는 것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한계에 또다른 한계들을 덧보태기 때문이고, 자기 속에 웅크린 채 편협해져서 남이 뚫고 들어올 자리를 남겨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영에 찬 자기만족으로 보여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을 내맡겨놓을 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p. 144 그르니에)

 

이처럼 고전이 훌륭한 것은 당시 환경에서 기여된 것이 아닐까. 현대는 할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TV며 컴퓨터며 스마트폰까지. 당최 인간이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멍하니 받아들일 뿐이다. 혹자는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제발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지라며 생각 없이 빠르기만 한 현대인을 비판했다. 생각. 나 자신에 대해, 나의 시간들에 대해, 미래에 대해, 혹은 어느 하나에 대한 곰곰한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오늘 단 한 시간만이라도 오롯이 생각하였는가?

 

제겐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습니다. 아니, 차라리 고독은 제 개인적인 작업의 길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방책이었습니다. 그 외의 다른 방책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더 이상 제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미신일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는 안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p. 352 카뮈)

 

나는 작년에 노자의 책들을 읽었어요. 도가道家의 세계는 대단한 것입니다. <선택>의 후편-‘무위無爲’-을 쓸 때는 거기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동방사상은 유럽의 깊고 비극적인 허무주의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당신은 그걸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의 말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피츠제럴드가 그랬듯이 고독 속에서 낭비하는 한순간이랄까요! (p. 126 그르니에)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 자신의 독자적이고 다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실제에 있어서 제자는 언제나 자신이 모든 것을 얻어 가지기만 할 뿐 그 어느 것 하나 보답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던 그 시절에 대하여 변함없는 향수를 가지네 될 것이면서도-스승은 흐뭇해한다.”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의 서문 (p. 445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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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홀수다
김별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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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어 밥을 떠서 밥을 먹을 때, 삶은 비로소 뜨거워진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지어 누군가를 위해 밥을 떠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존비와 보상의 경계는 까무룩 사라진다. 먼 곳에서 떠돌던 햇살의 시간, 바람의 시간, 비와 풀벌레와 거름이 썩어가는 시간이 내 배 속에 그득하다. 그리움의 시간, 외로움의 시간, 홀로 거리를 헤매던 방황의 시간을 연민과 안도감으로 소화한다.

아아, 잘 먹었다! (p. 27)

 

김별아 작가의 이름은 자주 접했지만 막상 읽은 책은 없다.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미실>이란 소설을 알고 있었지만 <삶은 홀수다> 이번 산문집이 내겐 김별아 작가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녀의 첫인상은 참 좋다. 말하자면 운동권이란 80년대 이야기를 다루던 초기 공지영, 신경숙 작가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하고 낯선 단어들 틈바구니에서 어쩌면 故박완서 작가의 다채로운 순한글 단어들이 떠오르며 일순간 흐뭇하기도 했다.

 

방사능에 오염된 하늘에도, 죄 없는 소와 돼지가 생매장된 땅에도, 봄은 온다. 오고야 만다. 그리하여 분노와 슬픔을 다독이려는 듯 꽃이 핀다. 별꽃처럼 피어 난분분하다. … 햇살이 눈부시다. 젊은 다산(茶山)이 마음 맞는 벗들과 결성한 죽란시사(竹欄時仕)’처럼 꽃이 피었으니 한번 모이자고 소식이나 띄워볼까? (p. 136)

 

  

<삶은 홀수다>는 '어섯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기록들'이란 제목의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2008년 여름부터 4년 동안 <한겨레> 및 다른 신문 칼럼으로 게재되었던 글 모음이다. 신문 칼럼의 특성 상 시대상황이나 이슈가 소재로 다뤄진 부분이 있고 당연히 작가 개인적인 소재도 있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수다스럽다'고 생각하는 작가이지만 그녀와 정치적이든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뭐든 성향이 유사한 독자라면 충분히 사랑할 만한 책이다. 바로 나처럼.

 

삶은 어차피 홀수이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그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쓸쓸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충만한 자유로움을 흠뻑 즐길 수 있다면, 홀로 있을지언정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닐 테니까. (p. 17)

 

어려서부터 어둡고 소심한 혼자로 심지어 소아우울증을 앓기도 했고, 청소년기에는 문학병을 앓은 이력이 있는 그녀는 이 책을 통해 '홀로 있는 것'의 기쁨을 증명한다. 마흔이 넘어서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 엄마와 아버지께 -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라고 글로 고백할 만큼 진심의 감정표현에 서툰 그녀가 책으로 유쾌하고 깔끔한 생각을 정리해주어 독자로서 고맙게 생각한다.

 

어느 야물고 깔끔한 이의 글에서, 외출할 때마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속옷을 신경 써 갈아입는다는 대목을 읽었다. 그러한 만약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낡아 구멍이 난 속옷보다 무심히 남긴 마지막말들이다.

행여 미안해라는 말이 아닌 그만해라는 말을 남기지는 않을는지,

행여 고마워라는 말이 아닌 빨리해라는 말을 남기지는 않을는지,

행여 사랑해라는 말이 아닌 공부해라는 말을 남기지는 않을는지.

정말 두려운 것은 남아 있는 부끄러움보다 남기지 못한 용서와 감사와 사랑이다. 그 세 마디 말밖에는 더 남길 것도, 가져갈 것도 없으리니. (p. 22)

 

 

책을 읽다 보면 '언제까지고 성실한 학생으로 사는 것이 그녀의 가장 나종 지니인 소원'답게 작가로서 여름에는 대작을, 겨울에는 고전을 탐닉하며 인생을 열심히 배우는 태가 확연하게 난다. 고전 이를 테면 노자의 말과 공자의 논어를 자주 인용하고, T.S. 엘리엇이나 고리끼 선생의 '소설은 곧 인간학'이라는 둥 동서양을 불문한 작가도 그녀의 생각표현에 적절하게 쓰였다.

 

나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위로받는다. 아픈 만큼 성숙하고, 깊은 만큼 높아지고, 고통만큼 언젠가 행복해지길. 지금 심연에 갇혀 허우적대는 우리, 99퍼센트에게 그보다 더 큰 격려는 없다. (p. 75)

 

누군가는 '좌빨(좌파 빨갱이)'이라고 단정 짓지만 그녀 스스로는 '자파(自派)' 작가로 규정 짓는 그녀는 대중적으로 본다면 진보성향에 가깝다. 나 역시 들끓는 대한민국 이십대 청년으로서 책 속 그녀의 사회 정치적 생각을 읽으며 일정 부분 통쾌했다. 특히 2부에서는 소설가이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운동권에서 열렬히 활동하고 있는 박래군, 혼자의 생각을 고수하며 십 년째 아름다운 가사로 노래하고 있는 가수 강허달림, 무기징역수였다 소설가 혹은 번역가로 활동하던 필명 김백리의 故김은숙, 소외 받는 이웃의 옆에서 글 쓰는 시인 송경동 등 그녀 주변 아름다운 인물들에 대해 소개한다. 또 3부에서는 엄마로서 그녀의 개인적인 혹은 우리 사회 공동의 이야기를 말하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나는 아이로 인해 내가 얼마나 모성애가 강하고 희생적이며 헌신적인가를 확인했다기보다, 아이를 통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아이는 시시때때로 나를 시험에 들게 했고, 나는 지면서 배웠다. 그것은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 기꺼이 지기 위해 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p. 158)

 

 

'시가 천상의 예술이라면 소설은 천민의 예술'이라는 김별아 작가의 소설 작업에 대한 고통과 그것을 뛰어넘는 열망에 대해 마음 깊이 공감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독자로서 그녀의 산문에 여지 없이 반했고 새해의 독서계획에 그녀의 소설도 포함시킬 것이다.

 

그리고 나는 故박완서 선생님에 대한 글이 단박에 좋았다. 아래에 일부 소개한다.

인용구가 긴 것은 이를 테면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많은 것이라고 여겨주시면 좋겠다.

 

영정 속의 선생은 생전처럼 조쌀하고 숫접은 모습으로 웃고 계셨다. 가난한 문인들에게는 부의금을 받지 말고 대접하라는 유지를 기억해 선생께 마지막으로 얻어먹는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가, 문득 지금껏 한 번도 문인들의 장례식에서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분루를 삼키지 않는 한 좀처럼 울지 않는 건 냉심한 성정 탓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운명에 매였던 이들과의 이별은 단순히 슬픔이나 아쉬움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글쟁이의 삶은 고단하다. 운이 좋아 살아생전에 재능과 노고를 인정받은 이나 불운하여 보상도 받지 못한 이나, ‘필승을 외치며 폭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는 문학을, 예술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가난하다. ‘재수 없으면 100이라는 저주 어린 축복의 말이 유행하는 고령화 사회에서도 소설가들의 평균 수명은 64, 시인들은 한술 더 떠서 62세란다. 기진맥진한 듯 부랴부랴 떠나는 돌연한 영이별도 서럽지만, 부음이 들린 바로 그날 대형서점에서 설치한 박완서 특별전매대에서 평소보다 몇 배의 책이 팔렸느니 어쨌느니 하는 뉴스는 기막히다 못해 역겹다. 왜 작가가 살아 있을 때는 읽지 않던 책이 죽었다니까 갑자기 궁금해지는가? 박완서 선생이 그 천박하디천박한 생난리를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p. 150-151)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속이 되어야 한다.

정호승의 산문 <>(<정호승의 위안>, 열림원, 2003)의 일절을 가만히 되뇐다. 인간이라는 아름답고도 끔찍하며, 위대하고도 초라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손이 필요하다. 오직 그러한 인간을 재료이자 과제로 삼는 작가라는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빈손이 절실하다. 빈손은 현실을 재단하지 않는다. 인간을 심판하지 않는다. 소유의 움켜잡음을 위해 헛손질을 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자파인 작가로 살기에 이렇게 텅 빈 채로 충만하다. (p. 214)

 

상처만큼만 넓어지는 세상 속으로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에게, 나는 오직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한다. 여태껏 받아들과 한숨짓던 성적표의 등수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길. 지금은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로 행복은 성적순일 수 없다. 진짜 공부-세상 공부, 사람 공부, 인생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용되어 마땅한 지적 허영과 권장되어 마땅한 체험에 대한 탐욕으로 한껏 들썽들썽 걸신스럽게 공부해야 한다. 부디 그 큰 배움터에서 용맹 정진하기를! (p.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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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1825일의 기록 - 이동근 여행에세이
이동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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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글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할 때가 있다.

내 여행은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며,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본 것들을 당신이 본다고 하여,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없다. 나에겐 의미인데 당신에겐 하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것들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여유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여행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p. 163 scene #36. 당신이 남기고 가는 것들)

 

당신과 인연을 맺고 싶어요. 당신이 제게 다가와 주길 기다리기보다 제가 먼저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볼 생각이에요. 제가 당신에게 내민 손이 조금 떨리네요. 제 용기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겠죠?

(p. 160 scene #35. 매일 그대와)

 

 

이동근의 여행 에세이인 <너 1825일의 기록>은 여느 여행기와 다름없이 한결같이 아름답다.

 

시와 산문의 중간 그 어디쯤이라고 할 수 있겠는 이 책은 아시다시피 텍스트가 적고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마음먹기에 따라 금세 휘리릭 다 읽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읽는다면 자고로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들여 문장을 음미하고 곱씹으며 나의 그리운 어떤 생각들과 함께 감수성을 채워나가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몸서리치게 외로운 독자가 이 책을 만난다면 비슷한 처지의 작가로부터 공감 가능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한편으로는 꾹꾹 눌러 담고만 있었던 그리움이 폭발하여 눈물샘이 터질 수도 있겠다. 나로 말하자면 때때로 나의 그리운 시간과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지난 여름 혼자 떠난 여행을 추억하며 공감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몸서리치게 외롭진 않아서 눈물이 맺히진 않았다. 조금 더 후하게 수식하자면, 이동률 시인의 여행에세이 <끌림> 혹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와 비슷한 류의 책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아픈 기억을 가진 공황장애를 앓기도 했던 평범치 않은 작가가 5년이란 시간동안 골목으로 떠난 여행기이다. 사랑에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듯이, 나의 마음에도 절망과 희망이 공존했습니다. (p. 15) 누군가, 아마도 사랑했던 사람을 내려놓기 위해 떠난 쓸쓸한 여행길에서 작가는 더 쓸쓸한 이웃들의 생활을 엿보았고 때로는 공감했고 또 때로는 그들에 동화되었다. 그토록 감성적이므로 이렇게 진한 감성 돋는 에세이를 낼 수 있었으리라. 

 

나는 가끔 새벽 4시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람들이 모두 잠든 그 정적인 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차림과 양쪽 귀를 음악으로 감싼 채 동네를 서성거린다. …

하루 중 가장 밤이 깊은 시간 새벽 4, 슬픔에 잠겨 우는 사람도 없을 테고, 기쁨에 겨워 웃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p. 70 scene #14. 외로운 밤, 새벽 4)

 

골목도 그냥 골목이 아니라 재개발제한 구역 혹은 재개발이라는 명목의 벽화마을, 꼬불꼬불 버스를 타고 가다 마음에 드는 시골, 노인의 고독이 자리잡은 골목, 그리고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든 곳 이를테면 부산 영도다리와 사십계단 같은 오래된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다.

아이들이 가난한 마음을 안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p. 79 scene #16. 우연한 조우)

 

동네 주민들에게는 일상의 생활 공간인 골목이 여행가인 작가에게는 특별하게 보였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들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 그것이 여행임을 작가는 책 전반을 통해 어쩌면 여행을 꿈꾸고 있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보통의 단어도 일상의 글자도 유달리 멋있게 보이는 것은 여행지에서의 기록이라서일까?

 

고민이 어떤 것이 되었든, 그 무게는 결코 자신에게는 가벼울 수가 없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하는 고민이라고 어떻게 하찮은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p. 60 scene #12. 나의 슬픔에 관대하지도 못하면서)

 

책이 중간을 지나면서 꼭 여행지에서의 기록이 아닌 어릴 적 추억 혹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도 함께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5학년 때 첫 헤어짐을 겪었던 슬픔. 나 역시 5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되어 헤어짐을 겪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우스운 게 바로 옆 학교로의 전학이었다. 단짝과 이별선물을 나누기도 했는데 중학교 때 다시 만났었다. 다단계의 추억. 나도 이럴 뻔 했던 기막힌 추억이 있다. 다단계에 빠져 온갖 친구들에게 취업시켜주겠다며 연락하던 예뻤던 그 아이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이 그게 다단계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도리어 화를 내며 듣지 않았지만 설마 여전히 그 곳에 있진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나의 '쫄깃쎈타'를 떠올리게 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추억. 나 또한 다음 여행에는 엽서세트를 가지고 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짧은 마음 표현을 해 보리라.

세계의 모든 여행자들이 함께 하루를 쉬어 가는 자리, 오늘 이 방에 함께 머무는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한다. 2층 침대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지금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한 엽서세트를 꺼냈다. 첫 문장은 ‘DEAR’보다는 ..라는 말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낯선 곳으로 떠나오니, 문득 네 생각이 나서 몇 글자 적어 본다.

(p. 241 scene #55. 게스트하우스에서 쓰는 엽서)

 

사람이 그리우면 마음껏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여행이 필요하다면 하늘을 한번 쳐다보며 카메라의 셔터를 아끼지 않길 부탁한다. 먼 훗날 당신이 남긴 모든 기록들은 10년 후, 우연히 당신과 다시 조우하게 되는 순간 눈물이 날 만큼 애틋한 의 흔적이자 역사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 343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사실 <너 1825의 기록>에서의 '너'는 '나'일지도 모른다. 지나간 나, 그 시간 속의 나, 지금은 그리워져버린 그 때의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의 동반책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잠들지 않는 새벽, 감수성이 터질 듯 풍부한 시간, 뭔가를 끄적이고 싶은 시간에도 함께하면 좋을 책이다.

끝으로 이 책에는 작가에게 여행의 동반자였던 당신과 여행을 위한 노래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나는 혼자서 무언가를 제법 잘하는 사람이다. 처음은 겁이 났지만 살아갈수록 나는 그렇다는 믿음이 강해지고 있다. 내년에도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할 것이고 나중에도 시간을 내어 꼭 그러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혼자서 잘 해내야 겠다.

 

무언가를 꼭 어딘가에 흘려버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꾸만 멈칫하게 됩니다. 하지만 골목을 향한 발걸음이 있었기에 나는 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신선하게 불어오는 골목바람과 음악에 비루한 마음을 의지하며 무사히 모든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1825일의 순간이 만든 찰나의 기록이 내게 남았습니다. (p. 13)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지고 편해졌습니다. 대학 진학률이 80퍼센트가 넘습니다. 그런데 한해에 평균 200~300명의 대학생들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몇 백만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을 뚫고 취직을 해도 학자금대출 몇 천만 원의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당신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나요? (p. 308 scene #72. 내가 잃고 그대가 잃어 가는 것)

 

그냥 생각이 나서

우리가 서로에게 가벼운 안부를 건넬 수 있을 만큼 편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어.

예전에 네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나는 왜 네가 원한 대답을 알면서도 말해 주지 않았는지 후회가 돼.

길을 걷다 너와 닮은 사람을 보고 흠칫,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 있었어.

후회보다는 미련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걸.

그래서 비슷한 상황들에 생각이 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는 걸.

사랑하다 헤어지면 다들 그런 거니까.

(p. 336 scene #79. 생각이 나서)

 

너를 사랑한다.

너를 사랑했다.

끊임없이 걷다 보니 말로 꺼내지 못한 너를 향한 아쉬움과 미련들을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다.

그리고 꼭 한번은 진심을 담아 해주고 싶었던 한마디 나는 너를 온몸을 다해 사랑할 것이다.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하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안 되는 일인지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묻어두고 살아갑니다. (p. 220 scene #50. Sentimental Scen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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