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학교 1 - 이슬람의 탄생, 이슬람교 그리고 여성 ㅣ 이슬람 학교 1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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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아마 여성 저자가 썼으면 이 책의 톤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저자라 내용도 풍부하고 이야기하는 방식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서 - 그렇다고 다루는 내용 자체가 쉽다는 뜻은 아니다. - 익숙지 않은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술술 읽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몇몇 독자가 이슬람교의 매력을 마주하고 무슬림이 됐으면 좋겠다는 문장엔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 딴에는 이슬람교가 매우 믿어봄직한 종교라고 생각해서 한 발언일 테지만 나에겐 다소 섣부른 망언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이 책의 내용만으론 이슬람교가 그렇게 믿어봄직한 종교라고 설득되지 않았고 오히려 여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가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지 않는 것이 상책이란 확신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이슬람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버리자'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10몇 억 이상의 인구가 믿는 종교이며 그만한 인구의 사람들이 다 바보라서 이슬람교에 세뇌당한 게 아니라 다 그럴 만한 이유, 즉 이슬람교에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와는 다른 매력과 찬란한 문화적 깊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란 전제를 깔고 이슬람의 역사, 교리, 오해 등을 낱낱이 파헤친다. 나는 이 서두를 읽는 동안 10억 명 이상이 믿는 종교가 부정적인 요소만 있을 리가 없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단순히 10억 명 이상이 믿는다는 걸 근거로 이슬람교에 문제가 없으리란 건 다분히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의문과는 무관하게 저자가 풀어내는 이슬람 이야기는 대체로 흥미로웠고 특히 이슬람교의 유명한 계율,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되고 돼지를 먹으면 안 되고 일부다처제 등이 생긴 배경과 알라의 일대기는 전부터 관심이 있던 부분이라 재밌게 읽었다. 알라가 선택 받은 지도자가 아닌 현명하면서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란 것에 사람들이 매료됐다는 대목은 기독교나 불교와는 달라 신선했고 그런 평범함이 도리어 사람들로 하여금 맹목성을 자아낸다는 부분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었다. 의외로 인간은 자신과 별 차이가 없는 존재에 더욱 빠져든다는 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아, 그래서 이슬람교에서 우상화가 금지인 건가? 100% 와 닿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 논리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계율의 배경에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었다 한들 현재의 감각과 계율의 내용이 영 동떨어진 구석이 있다면 그 계율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히잡이나 할랄 음식, 일부다처제 등은 전세계에서 이슬람이 대놓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요소들일 텐데, 금방 말했듯 최초엔 좋은 의도가 있었다는 건 인정하겠으나 그 의도를 후대의 사람들이 자기 입맛대로 해석해 - <시녀 이야기>가 떠오른다. - 강요 및 세뇌에 이르렀다는 건 착잡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내 기억이 맞는 한 저자가 두 권에 달하는 책의 분량에서 그 착잡한 아이러니함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은 것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도쿄 올림픽 이집트 베드민턴 국가대표팀의 여성 선수가 다른 선수들은 다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과 달리 혼자서 머리와 팔다리 모두 싸맨 걸 보고서 그 착잡함이 더욱 배가됐다. 이집트의 더위가 너무 살인적이라 굳이 이슬람교의 계율이 아니더라도 히잡과 긴 옷이 필수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왜 습도 높은 도쿄에서도 중무장해야 된단 말인가. 지나친 반응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우스울 지경이었다. 물론 저자 말마따나 모든 무슬림이 이런 모순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변화의 기미가 덜 보인다는 게...... 


 이슬람교의 비판이 미흡하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책의 전문성과 이슬람 문화가 왜 이렇게까지 몰락했는지를 단순히 종교의 엄격함 때문이 아닌 이슬람 문화에 무지한 서양 국가들의 횡포와 - 주로 미국과 영국. 정말 깡패들이 따로 없다. - 그 횡포에 맞춰 이슬람교가 계율 면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 요지경,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을 되짚어볼 때 유대인들이 핍박받는 역사까지 살펴보는 등 전문적이고 유익한 내용은 차고 넘쳤다.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나 인구 수가 워낙 많아 겨우 두 권 분량으로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작가는 핵심적인 부분을 잘 간추려 가려운 부분은 대부분 잘 긁었다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팔이 안으로 굽는 듯한 문체를 감안하고 읽는다면 이슬람 문화 입문서로 적당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문화가 궁금했는데 그 책들은 따로 찾아봐야겠다. 그나마 소프트하다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는 어떤 양상일지 이 책에선 다뤄지지 않아 - 아무래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슬람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동남아 쪽은 살짝 마이너하다 보니까. - 그 부분에 관해선 추가적인 독서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 이런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에서 이 책의 취지는 꽤 성공을 거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입문서(첫술)로 배부를 생각은 금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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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2022-09-1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지나가다 적습니다. 동남아의 이슬람이라고 다르진 않습니다. 브루나이나 몰디브같은 나라는 오히려 샤리아법이 시행되는 국가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세속적일수록 이슬람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세속적이기에 바뀔수 있고 바뀌기때문에 더 극단적으로 치닿기도 하니까요.
괜히 KMF에서는 원리주의 이슬람을 받아들이는게 아닙니다.
이슬람이 퍼져나가면서 사우디에서 멀어질수록 약간씩 차이를 보이면서 변화하는데 그게 꼭 좋은변화만을 가져오지않고 그렇게 변화의 바람이불다가 결국 뭐하나 잘못되면 그게 다 변질되서 그런거라고 더 극단적으로 바뀝니다.
그러니 그냥 원리주의가 가장 나은듯 합니다.
이집트 여성이 긴팔을 입은게 좀 그렇다 하는데 그건 타문화 타인 타종교의 시선이고 무슬림으로써는 바람직한 복장인거죠.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ㅣ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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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3 




 


 시작은 괜찮지만 항상 끝에 가서 그놈의 무리수 때문에 아쉬움을 자아냈던 이시모치 아사미였으나 이번 작품은 무리수가 없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첫 번째 수록작과 마지막 수록작이 흡입력 있던 것치고 결말이 기대 이하였던 것을 제외하면 - 그래도 이전이었으면 이상한 무리수를 넣었을 법한데 안 넣었다. - 책의 수록작들의 전반적인 퀄리티는 고른 편인데,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살인청부업을 프로패셔널하게 처리하는 주인공의 '쿨함'이 끝까지 일관됐던 게 인상에 남았다. 

 살인청부업자에게 '쿨함'이란 단어를 쓴다는 게 망설여지긴 하지만, 그간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에선 주인공의 고뇌가 주로 다뤄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잠시도 고뇌라든지 신세 한탄을 하지 않아 이 일그러진 도덕성이 도리어 쿨하게 비쳐지기도 했다. 때문에 일그러진 도덕성이 거북할 분들에게 아무래도 이 책을 추천하긴 힘들 듯하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의 추리소설로써의 묘미는 저마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주인공의 타겟들이 왜 그런 행동을 보이며, 왜 그들은 살해당해야만 하는가를 주인공이 추리하는 것에 있다. 추리 끝엔 재밌는 결론이 나올 때도 있고 때론 타겟들이 안쓰러워지는 내막도 드러나지만 경우를 막론하고 주인공이 자신의 살인을 반성하거나 재고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유야 어떻든 자신은 의뢰를 받았으니 예외 없이 죽인다면서 철저히 일로써 타겟을 죽인다. 꽤 날카로운 추리력과 더불어 그럼에도 일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살인청부업을 행사하는 것에 조금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주인공 나름대로의 철학이 이 작품의 핵심 요소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의 철학은 그야말로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기에 가질 만한 철학이기에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오해해선 안 되는 것이 그 철학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살인 행위를 옹호한다는 뜻은 아니다. 주인공의 철학은 이렇다. 이 세상에 정말로 죽어야 할 이유로 죽는 사람은 없다. 다들 황당하거나 하찮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원한을 사고 살해당하거나 청부살인업자에게 제거당할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온 살인 의뢰에 왈가왈부하거나 사견을 넣어 결과를 바꾸는 것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위에 적은 주인공의 철학은 작중에 나온 주인공의 발언 중 핵심을 내가 자체적으로 짜깁기하거나 상상해서 풀어낸 것으로 실질적으로 작가가 설정한 주인공의 내면과는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매 청부살인마다 자신의 입장을 꺼내지 않으며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면 이 인간에게 애당초 죽어 마땅한 인간이나 반대로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의 기준 따윈 없어 보인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지는 철학이 아닐 수 없는데 - 심지어 주인공은 이러한 철학을 대개 자신의 의뢰 중개인과 맥주를 곁들이는 가벼운 분위기에서 말한다.;; - 한편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잘 지적한 것 같아서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까지 이해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추리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실로 드라마틱한 살인 동기들을 우회적으로 조롱하는 것도 같아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긴,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 죽어야 되는 이유로 죽었겠는가. 

 철학을 빙자한 궤변으로 무장한 채 사뭇 유쾌하고 프로패셔널한 자세로 살인청부업과 추리도 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엔 전에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 후속작이 나오면 고민 없이 챙겨볼 것 같다. 주인공과 의뢰 중개인과의 캐미, 여자친구와의 캐미 등 후속작에서 발전시킬 요소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단편도 좋지만 다음엔 장편이면 어떨까? 완성도가 약간 들쑥날쑥했던 단편들과 달리 작정하고 장편을 써내면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뭐가 됐든 부디 이번 한 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죽기 전에 죽임을 당할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 없다고 했겠지. - 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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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입니까 ㅣ 산하세계문학 14
리사 울림 셰블룸 지음, 이유진 옮김 / 산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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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에서는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투성이인 어렸을 적 기억의 이면을 추적하는 이 추리소설은 반전의 내용만큼이나 기억상실증 내지는 입양된 사람이 겪을 만한 정체성 혼란을 그린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나는 입양아가 아니기에 - 내가 아는 한 - 한 번도 뿌리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없어서 이처럼 뿌리를 찾으려는 심리가 완벽하게 와 닿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데에서 오는 절박함은 확실히 전달됐다. 

 스웨덴의 만화가이자 한국인 입양아인 리사 울림 셰블룸이 실제로 겪은 일을 다룬 <나는 누구입니까>는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로 확장되는 상당히 이상적인 작품이었다. 기억의 첫 페이지 무렵부터 스웨덴인 부모로부터 스웨덴어와 문화를 체득하며 스웨덴인으로서 살아가지만 겉모습은 영락없이 한국인이기에 - 자신의 기억 속에선 방문해본 적도 없음에도 - 주변 스웨덴인들로부터 차별과 멸시까지 당하는 고충들이 초반부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내 출산을 하면서 대체 자신은 무슨 연유로 고아가 돼 입양에 이르렀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며 부모를 찾으려는 전개도 개연성 있게 다가왔다. 이 1부까지는 적어도 희망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부모를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도 제대로 못 찾아주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 부모를 찾으려는 주인공을 귀찮아 하는 기색이나 대충 대충 일을 하는 모습은 분통 터지게 만들었다. 당사자인 주인공은 그런 공무원의 태도에도 의지해야 하지만 제3자인 내가 봤을 때는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안 찾고 만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어렵게 찾은 부모도 - 막판에 가면 과연 진짜 부모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 통역을 비롯한 여러 여건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 연출되지 않는다. 사연이 어떻든 간에 부모 자식의 만남은 감동적이어야 할 것 같지만 작품 속의 묘사는 감동적인 척을 하는 것에 훨씬 가까웠고 그마저도 흐지부지되거나 이쯤 했으니 됐다며 서로 갈 길 가자고 부모가 먼저 말하기까지 한다. 

 이 책은 자의든 타의든 자기 아이를 버리는 부모들이나 그 아이를 타국에 입양시키는 국가를 대놓고 비판하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누구 한 명을 제대로 탓하기 힘들 만큼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것이 있으니까. 이 작품에서의 주요 비판 대상은 여차저차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요청을 대하는 국가의 자세다.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어쨌든 입양을 보냈으니 더 이상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라는 건가. 입양된 사람들 입장에선 부모를 궁금해 하고 찾는 것은 충분히 가져봄직한 이야기기에 100% 공감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 좋아 입양을 보내는 것이지, 사실상 부모를 잃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타국에 떠넘겼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판국에 이 무슨 적반하장의 태도인지... 주인공의 씁쓸함이 실감나게 전해져 독자인 나까지 참담할 지경이었다. 이건 뭐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도 아니고. 


 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오기 한참 전에, 88 서울 올림픽 경기를 TV로 시청하며 저자와 저자의 같은 한국계 스웨덴인 아이들이 모여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작품 초반부의 장면은 참 만감이 교차하게 되는 장면이다. 스웨덴인 사이에서의 부적응을 한국, 자신들을 버린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달래려는 듯한 일종의 정체성 혼란은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과연 할 짓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모든 고아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특정 인종을 입양하기 원하는 부모들의 요구에 맞춰 해당 인종이 있는 국가에서 아이를 유괴하는 브로커도 있는 판국이란 대목을 읽었을 땐 이 세상엔 아이를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여기는 어른들이 적잖구나 하는 인상까지 받았다. 최근에 본 영화 <블랙 위도우>도 고아를 킬러 집단으로 만드는 무지막지한 비밀 조직이 등장하는데 현실 세계도 그에 못지않게 무지막지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가 아이들을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내용의 무거움과 달리 아기자기한 그림은 오히려 내용을 더욱 심각하게 돋보이게 해준 것 같고, 반대로 대놓고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듯 나레이션으로 점철된 전개 방식은 가독성을 떨어뜨려 아쉬움을 자아냈다. 추측이지만 이런 가독성의 아쉬움이 2017년 스웨덴만화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만화상' 후보작에 그친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만약 이 작품이 '올해의만화상'을 수상했다고 한들 과연 그것이 기뻐할 만한, 그러니까 한국인으로서 기뻐할 만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간혹 국적을 막론하고 한국계 외국인이 유명인으로 자라면 '국위선양'이라고 호들갑 떠는 경우가 있는데, 솔직히 이는 전혀 국위선양이 아니잖은가. 국위선양이란 말이야말로 정말이지 그분들을 두 번 죽이는 말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하자면 역시 이 작품이 '올해의만화상'을 탔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할 것 같다. 자랑스럽고 어쩌고 이전에, 그만큼 새겨 들을 만한 내용의 작품이니까 말이다. 

한국은 우리가 돌아올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한국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기도 전에 우리를 버렸다. 우리가 가족과 뿌리를 그리워하다가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입양 아동이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는 일에 대해 어떤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다. - 3부 ‘나에겐 나를 알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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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탓이야 ㅣ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1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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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2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네 탓이야>는 하무라 아키라가 단독으로 활약하는 탐정물이 아닌 두 명의 주인공이 번갈아 등장하는 추리소설 단편집이었다. 하무라 아키라와 고바야시 경위 두 인물이 주역으로 등장하는데 고바야시 경위라는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기억에 없었다. 후속작에 등장한 기억도 전혀 없는데... 아무튼 나름대로 개성이 있는 양반이지만 그래봤자 하무라 아키라의 개성에는 미치지 못해서 이 작품을 끝으로 그만 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얼빵한 척하다가 범인의 급소를 찔러 수갑을 채우는 형사 캐릭터가 일본 추리소설엔 정말 많은 것 같다. 당장 최근에 읽은 <거짓의 봄>에도 이런 형사가 나왔으니까. 

 반면 하무라 아키라는 탐정 캐릭터로 사뭇 독특한 면모를 갖고 있다. 단순히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프리터이자 하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봤으며 그럼에도 탐정 사무소에선 놀라울 정도의 소질을 보이며 1년 이상, 종국에는 거의 반평생을 탐정업에 종사하기에 이른다. <네 탓이야>에서는 하무라 아키라가 아직 탐정이 되기 전에 알바처에서 겪은 일과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전자는 이 시리즈 특유의 서늘함을, 후자는 하무라 아키라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의 대망의 첫 시작을 장식할 정도의 강렬함을 자랑한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범인들의 종류는 크게 두 부류인 듯하다. 누구도 예상 못할 악의를 갖고 완전 범죄를 달성하는 부류와 마찬가지로 악의로 똘똘 뭉쳤으나 실행력이나 생각이 짧아 허술한 부류. 뭐, 짜증을 유발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얘기하는 내내 각 단편의 스토리나 트릭보단 캐릭터들에 대해서만 살펴보는 데에는 아무래도 단편들의 완성도가 그리 고르지 못하고 인상적인 단편이 현저히 적음이 기인했을 것이다. 와카타케 나나미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지대한 팬이 아닌 이상 추천하기 어려운데, 오늘날의 시리즈 위상이 꽤 높아진 걸 떠올리면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사실상 냉소적인 분위기를 제외하면 다른 탐정물과 차별화할 요소나 손에 꼽게 완성도 있는 단편은 없기에 후속작이나 드라마를 먼저 보는 걸 추천한다. 작가의 대표작인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비해서도 단편 추리소설다운 묘미가 떨어지므로 - 끝마무리가 모호해 왜 벌써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다시 읽는 지금도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 번 읽으면 새로운 감상이 남을까 했더니, 과한 기대였던 것 같다. 시리즈 신작인 <녹슨 도르래>를 읽을 걸 그랬다. 

세상에는 자기가 멍청해서 저지른 짓거리의 책임을 아무 의심 없이 통째로 남에게 전가할 수 있는 행복한 인종이 존재한다. (중략)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이 싫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성가시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할 때도 있다. - 143p



행운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지금까지 무심했던 것을 사과하기로 했다, 같은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나중에 배분될 예정인 불행을 미리 변명해 두기 위해 인심 쓰는 것이다. - 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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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봄 ㅣ 가노 라이타 시리즈 1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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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서정적인 제목과 더불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 수상작이라는 소개 문구가 강렬했던 이 소문난 신간은 내게 기대보다 뛰어난 재미를 선사하진 못했다. 자백 전문가 가노의 매력이 덜 드러난 탓도 있을 테고, 그 이전에 범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도서 추리 스타일로만 채워진 단편집의 경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범인을 찾는다는 통상적인 추리소설의 전제를 뒤집고 범인(주인공)이 탐정(형사)에게 어떻게 뒷덜미를 어떻게 잡히는가, 바로 그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 바로 도서 추리물의 백미일 텐데 이 작품에선 그 백미가 덜 부각된 편이다. 다섯 편 연속으로 접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노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덜 부각돼서도 아니라, 그냥 다섯 명의 범인 중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너무 멍청한 나머지 '이걸 못 잡으면 경찰이 아니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범인들의 격이 떨어지니 그들을 잡는 형사가 대단해 보일 리가 없잖은가. 


 한마디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는 명성과는 달리, 반대로 아이러니하게도 대개 그 상을 받은 작품들이 그랬듯 이 작품 역시 추리소설적인 면모보단 문체나 다른 요소에 더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경우엔 단연 문체가 빛이 났는데, 특히 범인이나 숨겨진 인물의 어두운 내면을 묘사하는 데엔 남다른 흡입력을 과시해 수록작들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하나같이 모골이 송연해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유약한 인간들이 그 내면을 접하고서 타락하는 전개가 가히 이해가 가고도 남을 만한 문체였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수록작 '봉인된 빨강'과 마지막 수록작 '살로메의 유언'이 괜찮았고 중간에 세 작품은 그저 그랬다. 표제작이자 수상작이기도 한 '거짓의 봄'은 주인공의 직업(?)이 신선한 것에 비해 그 매력이나 깊이가 덜 살아난 것 같고 '이름 없는 장미'도 소재는 신선했지만 캐릭터들의 내면이 다소 피상적으로 그려진 감이 있고, '낯선 친구'의 경우엔 주인공의 어둡고 찌질한 심리, 일명 열등감이 작품 전체를 실감나게 지배한 것이 공감을 유발하기까지 해 나쁘지 않았지만 사건의 흐름이나 진범의 정체, 열등감의 대상인 주인공의 친구의 변명이 뜬금없거나 설득력이 떨어져 뒷맛이 별로 좋지 못했다. 


 '봉인된 빨강'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멍청한 범인이 등장해 - '이런 놈을 못 잡으면 경찰이 왜 있냐'는 말을 유발한 장본인이 바로 얘다. - 도서 추리물의 백미는 떨어졌으나 작품의 결말은 무척 강렬했다. '당신은 반드시 다섯 번 속게 된다!'는 출판사의 문구가 정말 딱 들어맞는 예상 외의 결말이 마련돼 그야말로 첫 번째로 수록되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었는데, 뒤의 수록작들이 분위기나, 사건의 긴장감, 반전 등이 이 작품에 미치지 못해서 '봉인된 빨강'이 더욱 돋보였다. 하긴 범인의 죄질도 가장 저질이었으니 다른 건 몰라도 몰입도 하나는 가장 뛰어날 수밖에. 

 '살로메의 유언'은 내가 예전에 구상한 추리소설의 반전과 닮아서 개인적으로 읽는 중에 질투가 났던 작품이다. 주인공의 목적과 개연성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가해자 유족의 남모를 고충과 좌절에 주목한 것이 좋았고, 마지막 수록작이 돼서야 가노 라이타라는 캐릭터의 윤곽이 드러나 간신히 시리즈물의 정체성을 확립시켰다는 느낌이 든 것도 눈길이 갔다. 이 작가들이 - 후루타 덴은 두 명의 작가가 콤비를 이룬 팀 이름이다. - 가노 라이타가 등장하는 장편을 집필 중이라는데 '살로메의 유언'에서도 가노가 짧게 등장했더라면 그 후속작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양심은 있지만 할 말은 하고 평소엔 실실 웃지만 알게 모르게 상대를 궁지로 모는 이 캐릭터의 진면모가 장편에서는 보다 잘 드러나길 바란다. 설마 장편도 도서 추리물인 건 아니겠지? 


 여담이지만 두 작가의 콤비라는 점 때문에 '일본 추리소설계의 차세대 엘러리 퀸'이라는 오해를 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엘러리 퀸에 비견될 만한 작가는 노리즈키 린타로와 아리스가와 아리스일 텐데 그 두 작가의 논리 구축과 비교하면 <거짓의 봄>은 그런 돌직구 스타일의 추리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체밖에 없는 어중이떠중이 추리소설은 아니고 나름대로 갖출 건 다 갖춘 형사물, 도서 추리물이지만... 판단은 직접 읽고 나서 해보시길 바란다. 

경찰이 돕는 건 약자가 아니라 옳은 사람이다. 옳지 못한 약자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저열한 범죄로만 인식한다. - 136p



아무리 노력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을 거머쥐어도 나는 만족할 수 없다,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이 그런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절망스럽고 허무한 지 당신들이 압니까? - 3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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