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9.3 




 


 시작은 괜찮지만 항상 끝에 가서 그놈의 무리수 때문에 아쉬움을 자아냈던 이시모치 아사미였으나 이번 작품은 무리수가 없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첫 번째 수록작과 마지막 수록작이 흡입력 있던 것치고 결말이 기대 이하였던 것을 제외하면 - 그래도 이전이었으면 이상한 무리수를 넣었을 법한데 안 넣었다. - 책의 수록작들의 전반적인 퀄리티는 고른 편인데,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살인청부업을 프로패셔널하게 처리하는 주인공의 '쿨함'이 끝까지 일관됐던 게 인상에 남았다. 

 살인청부업자에게 '쿨함'이란 단어를 쓴다는 게 망설여지긴 하지만, 그간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에선 주인공의 고뇌가 주로 다뤄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잠시도 고뇌라든지 신세 한탄을 하지 않아 이 일그러진 도덕성이 도리어 쿨하게 비쳐지기도 했다. 때문에 일그러진 도덕성이 거북할 분들에게 아무래도 이 책을 추천하긴 힘들 듯하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의 추리소설로써의 묘미는 저마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주인공의 타겟들이 왜 그런 행동을 보이며, 왜 그들은 살해당해야만 하는가를 주인공이 추리하는 것에 있다. 추리 끝엔 재밌는 결론이 나올 때도 있고 때론 타겟들이 안쓰러워지는 내막도 드러나지만 경우를 막론하고 주인공이 자신의 살인을 반성하거나 재고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유야 어떻든 자신은 의뢰를 받았으니 예외 없이 죽인다면서 철저히 일로써 타겟을 죽인다. 꽤 날카로운 추리력과 더불어 그럼에도 일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살인청부업을 행사하는 것에 조금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주인공 나름대로의 철학이 이 작품의 핵심 요소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의 철학은 그야말로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기에 가질 만한 철학이기에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오해해선 안 되는 것이 그 철학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살인 행위를 옹호한다는 뜻은 아니다. 주인공의 철학은 이렇다. 이 세상에 정말로 죽어야 할 이유로 죽는 사람은 없다. 다들 황당하거나 하찮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원한을 사고 살해당하거나 청부살인업자에게 제거당할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온 살인 의뢰에 왈가왈부하거나 사견을 넣어 결과를 바꾸는 것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위에 적은 주인공의 철학은 작중에 나온 주인공의 발언 중 핵심을 내가 자체적으로 짜깁기하거나 상상해서 풀어낸 것으로 실질적으로 작가가 설정한 주인공의 내면과는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매 청부살인마다 자신의 입장을 꺼내지 않으며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면 이 인간에게 애당초 죽어 마땅한 인간이나 반대로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의 기준 따윈 없어 보인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지는 철학이 아닐 수 없는데 - 심지어 주인공은 이러한 철학을 대개 자신의 의뢰 중개인과 맥주를 곁들이는 가벼운 분위기에서 말한다.;; - 한편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잘 지적한 것 같아서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까지 이해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추리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실로 드라마틱한 살인 동기들을 우회적으로 조롱하는 것도 같아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긴,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 죽어야 되는 이유로 죽었겠는가. 

 철학을 빙자한 궤변으로 무장한 채 사뭇 유쾌하고 프로패셔널한 자세로 살인청부업과 추리도 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엔 전에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 후속작이 나오면 고민 없이 챙겨볼 것 같다. 주인공과 의뢰 중개인과의 캐미, 여자친구와의 캐미 등 후속작에서 발전시킬 요소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단편도 좋지만 다음엔 장편이면 어떨까? 완성도가 약간 들쑥날쑥했던 단편들과 달리 작정하고 장편을 써내면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뭐가 됐든 부디 이번 한 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죽기 전에 죽임을 당할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 없다고 했겠지. - 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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