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덴마크 선생님 -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 배우기
정혜선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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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제목에서 나오는 덴마크 선생님은 특정 덴마크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저자가 덴마크에서 일종의 만학도로 지낸 경험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본래 우리나라의 대안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자신이 참된 교사인지 회의감 내지는 자괴감에 빠졌던 저자는 서른 아홉의 나이에 덴마크 세계시민학교, 약칭 IPC에 다니게 됐다. 참 거창한 이름의 학교가 아닐 수 없는데 저자가 이수한 수업 내용이나 그 학교의 교육의 최종 목표를 생각하면 전혀 생뚱맞은 이름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입시와 성적 위주의 수업이 아닌 학교인 터라 읽는 내내 영어 능력이 조금 더 뒷받침된다면 당장 입학 지원을 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시국이 시국인 터라 당장은 요원하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니, 사실 시국 운운하는 건 적절한 핑계일 뿐이고, 과연 코로나가 없었더라도 내가 입학 지원을 실행에 옮겼을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과 실천은 동전의 앞뒤처럼 거리가 멀다. 허나 저자처럼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의 학생도 받아주고 저자가 딱히 유별난 케이스가 아니었던 학교의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분명 지금 못지않게 적잖은 위로와 동기 부여가 됐을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건 교육엔 이르고 늦음이 없으며 완료가 없는 영원한 미완이란 것, 그것이 저자가 경험했고 또 독자들이 간접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문체가 크게 자극적이지 않고 여봐란 듯이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지만 내가 원체 유럽에서의 생활, 특히 덴마크란 나라에 대한 선망이 크기에 예상보다 흥미롭게 읽혔다. 한국 교육계에 몸담았던 저자가 상대적으로 느릿하고 어찌 보면 느슨하게도 느껴지는 이국의 교육에서 진정 선진적인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과 질문을 유도하는 자세, 얼마나 유익한 사람이냐 보다 얼마나 자신의 내면을 잘 이해하느냐가 삶의 지향점이란 것이 내가 작가의 글에서 느낀 대략적인 감상이었다. 자원도 국토도 빈약한 덴마크가 강소국으로 자리메김한 비결을 복지와 그 복지에 협조하며 누리는 시민들의 수준, 그 수준을 이끌어냈고 공고히 다지게끔 한 교육의 역할이 지대하다 들었는데, 역시 명성이 괜히 퍼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혹자는 그걸 누가 모르는 줄 아나, 다 알지만 삶이 각박해 우리네 교육 현장에 맞지 않는 것이라 절레절레할 수 있겠으나, 다시 말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동전의 앞뒤처럼 거리가 멀다. 적어도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여 유럽에서도 선진적인 교육으로 정평이 난 덴마크 학교에 간 저자의 말엔 남다른 무게감이 느껴졌음을 강조하겠다. 저자가 말하듯 성적보단 성취에 우선을 두기에 관점에 따라선 굉장히 느슨하게 교육이 진행되나 그렇게 능동성을 유도하고 또한 교육이란 결코 일방적인 주입이 아닌 교사와 학생의 이인삼각으로 이뤄지는 개념임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 온 학생들과 역사 인식 문제로 갈등이 빚어진다거나 여름 방학을 맞아 유럽의 다른 나라로 수학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보다 이런 교육의 개념을 되짚어보게 되는 일련의 경험들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보람을 느끼게 해줬다. 보통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가고 기억이 남는 법인데 신기하게 이 책에선 순수하게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인상에 남았다. 


 덴마크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고향에서 부모나 이웃에게 노처녀 취급을 받는 것에 쓴웃음을 짓는 이야기 등이 담긴 후기를 끝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교육의 본질이란 것에 고민해본 사람들, 특히 덴마크란 나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좋을 책일 텐데 반대로 사유가 유달리 돋보이는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생각보다 심심하게 진행되는 내용을 따분하게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기본적으로 분위기가 어째 처져있는 터라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덴마크란 나라가 노르웨이와 비슷하게 멜랑꼴리함이 있는 나라라면 - 여담이지만 실제로 노르웨이에 가봤던 사람으로서 겨울 특유의 멜랑꼴리함이야말로 그 나라의 매력이다. - 이것도 퍽 현장감을 잘 전달하지 않았나 하고 변호를 하고 싶다. 

 덴마크... 여행으로든 학교로든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예전엔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간절히 바란다면 이뤄질 날이 꼭 오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과 실천은 거리가 멀지만 이렇게 실천이 강제되는 시국이니 종식이 머잖았을 때 실천은 폭발하듯 이뤄질 테지. 꼭 그 날이 오길 고대한다. 

선생님은 자기와 다른 의견을 수업 시간에 표현하는 학생이 있다는 데에 감사해야 해. - 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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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의 여름
미쓰하라 유리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9.6 






 미쓰하라 유리의 숨은 걸작 추리소설 단편집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표제작인 '열여덟의 여름'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이고 일본에서 단편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얌전한 자식이 연달아 규모 있는 대회에서 주목을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지만 다른 수록작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비교적 얌전하지 않은 편에 속한다. '자그마한 기적'과 '형의 순정'은 독자에 따라선 추리소설로 보기에 시시하다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소소한 이야기니까. 마지막 수록작인 '이노센트 데이즈'는 작가가 공인할 정도로 어두운 이야기였고 표제작은 일본식 성장물에 추리소설적 요소가 몇 숟갈 첨가한 수작이다. 

 전체적으로 수록작들의 완성도가 높고 고른 단편집이다. 추리소설로나 일반 순수 문학으로나 나무랄 데 없기에 일본에서 '다음 작품이 궁금한 작가' 1위에 선정됐다는 게 결코 과한 평가로 여겨지지 않는다. 정작 작가가 작품 활동을 그리 활발하게 하지 못한 편이고 국내에도 이 작품밖에 출간되지 않아 아쉽지만... 



 '열여덟의 여름' 


 일본식 청춘물, 성장물의 전형이자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결말의 쌉싸름하고 아련한 느낌이 일품이다. 드라마로도 나왔다지만 딱히 보고 싶지 않은 이유는 괜히 어설프게 만들었을까봐 실망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드라마로 나왔다고 하면 찾아볼까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그만큼 분위기나 캐릭터들의 매력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엄연히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만큼 장르적인 재미도 얕볼 수 없는 작품이다. 저 상이 이름에 비해 그다지 추리소설답지 않은 작품이 수상한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이 작품은 이만하면 추리소설의 요소를 잘 충족하지 않았나 싶다. 반전이 비교적 쉽게 유추가 가능하나 복선과 개연성이 탄탄했고 막판에 어떤 비극적인 전개가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순간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도 기대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일본 추리소설계의 숨은 명작 단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자그마한 기적' 


 첫 번째 수록작이 호불호가 정말 없는 수작이라면 '자그마한 기적'은 잠시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이다. 화자가 초반에 과연 자신이 겪은 일을 기적이라 불러도 되는가 하고 말했는데, 확실히 기적이라기엔 유난을 떠는 감이 있지만, 또 작품의 반전이 쉽게 유추 가능하고 복선도 미흡한 편이지만 듣기만 해도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인 터라 그 이상 어깃장 놓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이 있음에도 재혼을 하려는 사람이 읽기에 가장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실로 감성 충만해지는 작품이었는데 이런 감상과는 별개로 역자에겐 번역하기 가장 까다로운 작품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읽는 입장에선 실감난 사투리들이 흥미를 돋우지만, 어디서 읽은 건데 사투리 번역이 의외로 까다롭다고 하니 사투리 비중이 아주 많은 이 작품도 적잖이 까다로웠으리라 본다. 아님 말고. 



 '형의 순정' 


 작가 공인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로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난이도가 있는 반전이 나오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반전을 알고 난 직후에 어떤 캐릭터가 취한 태도다. 무엇보다 그 캐릭터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은 화자의 따뜻한 마음씨까지 전해져 개인적으로 직전 수록작인 '자그마한 기적'보다 더 감성이 충만해졌다. 이야기의 규모에서 차이가 크지만 반전이 드러나는 부분 다음부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아,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까 그 영화도 갑자기 다시 보고 싶어지는군. 이 소설도 그렇고 그 영화도 그렇고 따뜻한 작품은 주기적으로 챙겨보고 싶다. 



 '이노센트 데이즈' 


 제목과 달리 정말 살 떨릴 정도로 악한 인간들의 모습을 다루는 작품이다. 과연 악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순진하게, 혹은 순수하게 사는 것이 맞는 태도일까? 그리고 순수한 것과 순진하다는 말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처음엔 주변 모든 캐릭터들에게 순진한 인물로 취급받는 주인공이 종래에는 순수한 인물로 격상된 느낌이었는데, 순진하다는 말에 세상물정에 어두움을 비꼬는 뉘앙스가 있다면 순수하다는 말엔 그런 뉘앙스가 적다는 걸 생각하면 주인공의 한결 같은 올곧음은 더욱 빛나 보인다. 

 책의 수록작들 중 가장 추리소설 같은 작품이었고 짧은 분량 속에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인과 관계도 복잡해 처음엔 바로 파악이 힘들고 설상가상 인물들의 이름이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을 정도로 헷갈려 안 그래도 어두운 내용인 데다가 독해력도 요구돼 그리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뒤의 뿌듯함이 가장 큰 작품이고 무엇보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얘기할 때 '희망'을 빼놓을 수 없어 더욱 뿌듯함이 배가된다. 작가가 히로시마 출신이라 그런지 원폭 이후에도 끈질기게 자란 협죽도란 꽃을 아주 비중있게 다뤄 주인공의 순수함이 더욱 진솔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특히 협죽도는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성이 있는 꽃이지만 그 독성은 관점만 바꾸면 끈질김과 희망으로 인간의 시야 안에서 재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부정적인 요소들도 관점만 달리하면 정반대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볼 수 있단 점에서 정말 마음 따뜻해지는 작품이었다. 물론 상투적인 말이긴 하나 그 상투적인 말을 얼마나 진솔하고 와 닿게 전달하느냐는 또 전혀 다른 문제인데, 그 문제를 멋들어지게 극복한 '이노센트 데이즈'는 유독 완성도가 높고 고른 이 단편집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아주 어울리는 작품이자 순서 배치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 책의 수록작들의 내용을 다시 곱씹으니 작가의 다른 작품이 더 읽고 싶어졌다. 언젠가 출간되리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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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의 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7.7 






 내가 이 작품을 10년 전에 읽었을 땐 주인공이 나와 연령대가 비슷했고 또 아직까지 감수성이 살아있을 때라 좋은 인상이 남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읽자고 책장에 남겨뒀겠지. 지금은 복잡한 인과 관계가 얽혀서 매사에 자기 탓을 하는 등장인물들과 지지부진한 전개 때문에 상당히 더디게 읽혔는데, 그럼에도 제목의 '구체의 뱀'에 대한 저자 미치오 슈스케의 해석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저런 식으로 해석할 사람은 이 세상에 미치오 슈스케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신선한 시각이었다. 

 물론 누군가가 그 해석 하나 맛보자고 이 책을 펼치려고 하면 약간 고심해볼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미치오 슈스케라는 이름이 주는 재기발랄한 추리소설의 묘미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작가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는 그 어떤 작품보다, 대표작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상회할 정도로 그득한데 작품 전개가 지루하고 지지부진한 것에 비해 인물들이나 세계관의 음울한 감정선은 충분한 분량을 들여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숙지한다면 이 책을 펼쳐도 무방할 듯하다. 문제는 표현에 공을 들이다 못해 넘치는 감이 있어 주인공의 선택이 이해가 되다가도 답답해 끝맛이 텁텁할 수도 있으리란 것이다. 


 소설의 집필 연도나 소설 속 배경이 90년대 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개가 많이 펼쳐지는 편이다. 간략히 열거하자면 관음, 무단 침입, 그리고 협박으로 전제된 관계다. 현실에선 이보다 더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작중에서도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근거로 들며 개연성 있게 묘사하지만 어느 것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난 이러한 불편한 이야길 주인공의 가정 환경과 살고 있는 시대상이 결합된 골때리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해하고 읽었는데, 결말부에 이르러선 주인공의 행동이 너무 감정적이고 자기비하적이고 조금 무책임하기도 해 '아,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함 일색인 작품이구나'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결말에선 인상이 적잖이 달라졌다. 처음엔 결말이 전형적인 '사족'이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제목의 의미를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반전이 담긴 내용이 아닐 수 없어 다 읽고서 혀를 내둘러야 했다. 특히 사건의 전말을 확실하진 않아도 찰나에 거의 간파한 주인공이 그 이후에 취한 태도는 지금 나이의 내가 봐도 감동적인 데가 있어 제법 여운이 남았다. 타인의 거짓말을 단순히 거짓을 말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지 않고 거짓말을 한 이유에 주목하며 기꺼이 그에 응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그렇고 자꾸만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이면 덕분에 불쾌함이 극심해지지 않게 배려한 작가에게도 뜻밖에 호감이 갔다. 작품 초반에 받은 인상을 생각하면 이것도 참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춘과 성장을 주제로 한 일본 소설을 한때 즐기며 읽었지만 지금의 내겐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이 작품도 그렇고 다른 작품도 예전에 좋게 읽은 기억을 안고 다시 읽으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체의 뱀>도 그럴 줄 알았고 거의 그대로 맞아 떨어질 뻔했지만 작가의 감수성과 신선한 해석이 요번에도 내 가슴에 와 닿았고 마지막 주인공의 행동은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공감이 가 역시 다시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미치오 슈스케 최고의 작품이라 여기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무시 못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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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9.0 







 2편에서 드러난 이 작품의 전개 방식을 생각하면 1편은 사실상 캐릭터 소개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다음 작품인 <벌집을 발로 찬 소녀>를 생각한다면 1권의 내용은 이질적인 편이다. 1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약간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느낌을 선사했다면 2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부터 하드보일드 그 자체다. 물론 기자 출신인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사회 문제,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묘사는 건재하다. 오히려 더욱 진화한 느낌이다. 특히 미카엘이 아닌 리스베트가 이야기의 주역으로 본격적으로 교체됨으로써 그러한 경향이 훨씬 짙어졌다. 

 이 소설의 배경, 그러니까 작가가 소설을 집필하던 당시는 2000년대 초반으로 아직까지 스웨덴이 매춘과 관련된 사회 문제와 전쟁을 벌이던 시점이었다. 역자의 주에 따르면 현재에 이르러선 포주들과 성매매 남성들을 철저히 벌하면서 제법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지만 - 그런데 이 말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는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성매매 산업은 남성의 그 죽일 놈의 성욕 때문에 필요악이랍시고 자취를 감추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자가 말한 '현재'란 2010년대다. 지금은 어떠려나. - 어쨌든 저자가 집필하던 당시엔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정부의 정책의 성공 여부에 회의적인 사람도 적잖았고 저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총 세 가지 종류의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리스베트가 누명을 쓰는 사건이 벌어짐으로써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 리스베트의 무고함을 믿는 지인들과 리스베트를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정부의 기록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수사에 임하는 경찰들 사이의 대립, 그리고 주변에서 부는 피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홀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는 리스베트의 독주가 흥미롭게 얽히며 전개된다. 이야기의 발동은 전편보다 더 늦게 걸려 인내심이 요구됐지만 그래도 중반부부터, 1권 후반부부터는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저자가 초반에 지루하게 전개시킨 초반부가 대단히 촘촘했다거나 필수불가결했다거나 하다 못해 빌드 업이 잘 이뤄졌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만회를 잘하지 않았나 싶다. 결말은 대놓고 3편을 읽고는 못 베길 정도로 감질나지만 3편의 분량이 2편보다 긴 걸 떠올리면 오히려 적절한 끝맺음이란 생각도 든다. 3편도 다시 읽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읽을 날이 기다려진다. 

 대놓고 감질나는 결말이었다는 말은 사실상 본편에서의 갈등이 상당수 갈무리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리스베트는 누명을 벗지 못하고 사건의 진상을 쫓는 리스베트의 지인이나 경찰들은 아직까지 이야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실상 리스베트의 원맨쇼에 가까운 등 단일 작품으로서 아쉬운 결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 아무튼 전편의 주역인 미카엘조차 이 작품에선 완벽한 조연에 머무르는데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묘하게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인 터라 - 기자 정신을 강조하는 모습은 그래도 멋지긴 하다. - 이러한 작가의 취급이 퍽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이럴 거면 1편에서부터 리스베트 단독 주인공으로 설정하면 어땠을까 싶지만, 작가가 강조하고픈 기자 정신이라든가 사건을 합법적인 부분에서 접근하려는 어딘지 순진하지만 정의롭기 그지없는 캐릭터 역시 이 세계관엔 필요한 터라 묘하게 정이 가지 않는 것과 별개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오는 여자 막지 않고 여자들이 알아서 달라붙는 마성의 남자라는 캐릭터성은 10년 전에나 10년이 지난 지금에나 헛웃음을 유발하지만 말이다. 


 한때 '성인들의 해리 포터'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밀레니엄' 시리즈는 미카엘이나 리스베트나 성인은 돼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파격적인 캐릭터성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에서라면 몰라도 아시아권에선 여자 주인공이 양성애자라거나 남자 주인공은 불륜을 저질러 이혼당했다는 설정은 2000년대 초반에선 쉽게 접하기 힘들었고 지금이라고 아주 쉽게 받아들여지는 설정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시리즈의 분위기나 컨셉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야말로 모두가 쉬쉬하지만 어쨌든지 간에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많은 아웃사이더들, 사회 부적응자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국가 최대 규모의 범죄 집단, 성매매라는 이름의 비즈니스에 맞서 싸운다는 시리즈의 컨셉은 그 자체로 정제되지 않았으면서 독한 기운의 주제의식으로 중무장했다. 그렇기에 호불호를 떠나 일정 수준 이상의 쾌감이 보장되고 선사되는 것일 테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 두껍고 진입 장벽 높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지루한 도입부의 소설이 큰 인기를 끈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단순히 노벨상 수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비롯해 수많은 독자가 추천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따라 읽었다기엔 이 작품만의 분위기나 설정, 주제의식은 확실히 독보적인 구석이 있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얕볼 수 없는 시리즈란 생각이 들었다. 


 자꾸 얕볼 수 없다느니 설명이 안 된다느니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이번 2편의 도입부가 참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 아마 1편을 건너뛰고 2편 먼저 읽은 것이었다면 50페이지 안에 때려쳤을 정도로 지루했다. 내가 원체 싫증을 잘 느끼는 편이지만 이건 좀... - 그에 반해 결말은 후속작 기대하기 딱 좋은 결말인 터라 어지간하면 포기하지 않고 완독하길 바란다. 게다가 중반부부터 액션, 가령 권투 장면이나 총격 장면도 많이 묘사되는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다. 물론 액션 때문에 보는 작품도 아니고 그 장면들도 곰곰이 생각하면 허술하고 개연성 떨어지게 전개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은 점에서나 예측 불허한 부분도 많았기에 이래저래 실보다 득이 많았다. 내 기억엔 이런 액션 장면이 3권에선 더 적어지는데... 작가가 표현하고픈 하드보일드한 액션을 이 작품 중후반부에 몰아서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3편 <벌집을 발로 찬 소녀>에선 국가 규모의 압박과 고통이 쉴 틈 없이 리스베트를 향해 끊임없이 쏟아진다. 태생적으로 거기에 아랑곳할 리스베트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도 홀로 살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힘을 가진 사람은 극히 적은 법. 리스베트는 지인들에게 큰 도움을 받고 성매매로 인한 피해자들도 완벽하지 않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구원을 받는다. 2권 중반부부터 미흡하게 묘사된 감이 있던 주제의식,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더욱 직접적으로 잘 드러난 수작인 터라 다시 읽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3편은 꼭 스웨덴에 여행갔을 때 읽고 싶은데... 이런 낙관적인 바람을 언급하는 것도 점점 지친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미래는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설마 코로나 이상으로 절망적인 시국이 펼쳐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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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ㅣ 욜로욜로 시리즈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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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시녀들>에 등장하는 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소설이다. <시녀들>은 언젠가 꼭 직관하고픈 그림 중 하나인데 이렇게 소설로나마 간접적으로 그 그림의 탄생 배경을 접할 수 있던 게 흥미로웠다. 더불어 작가의 상상력이나 소재를 찾는 능력, 그리고 17세기의 스페인 마드리드라는 무대를 실감 나게 재현한 필력도 즐겁기 그지없는 요소였다. 작가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던데, 작가 입장에서 외국인 스페인을 배경으로 삼았으니 소설 집필을 끝마치기까지 적잖은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다. 자국의 사극도 힘든데 외국의 사극이라니... 나로서는 정말 엄두도 나지 않는 작업이다. 

 장애가 곧 죄나 다름없던 시대에 태어난 꼽추 바르톨로메가 더 나은 미래로 향한 실마릴 찾는 여정이 담긴 이 소설은 총 2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바르톨로메가 엘 프리모 같은 서기가 되기 위해 자신을 없는 자식 취급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글을 배우는 이야기가, 2부에선 비참하게도 '개'로 취급당하는 수모를 겪던 바르톨로메가 그의 재능을 인정는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기사회생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포일러를 극도로 제한하는 이유는 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남의 입이 아닌 직접 읽으며 감상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장애인의 형편이 유달리 나아졌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극소수의 장애인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장애인이 광대 아니면 놀림감, 그걸 거부하면 남는 것은 비참한 여생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시대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바르톨로메의 처지는 나로 하여금 참으로 복잡미묘한 감정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일단 동정이 앞섰지만, 직장에서 장애인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꾀를 부리는 사람도 떠올라 장애인이 사회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한 번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장애인도 갖고 있는 장애의 성질이 다 다르잖은가. 단순히 장애의 힘겨움이나 또는 '장애인'이라는 호칭으로는 묶어내기 힘들 만큼 개개인마다 성정과 능력도 다르고 말이다. 이 작품의 바르톨로메 같은 경우엔 인체 비율에 능통한 벨라스케스 같은 화가가 보기에도 헉 소리가 나올 만큼 흉측한 외관의 꼽추이지만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티 없이 맑은 눈동자와 목소리를 갖고 있고 지적 능력, 예술적 능력도 탁월하다. 그 덕분에 온갖 수모를 겪었지만 재능도 인정받았고 앞으로도 비장애인에 비하면 아주 밝지만은 않은 미래가 예상됨에도 어쨌든 당대 장애인의 처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꽃길이 펼쳐지리라는 기대 역시 가능한 것일 터다. 

 하지만 모든 장애인이 다 바르톨로메처럼 티 없이 맑거나 재능이 남다른 것은 아니다. 장애 때문이든 그냥 기본적인 능력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든 간에 작금의 장애인은 가족이나 사회의 관용적인 시선, 장애인 할당제 같은 제도가 아니면 살아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이 제아무리 비장애인들보다 배로 노력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외면당하기 십상이고 때론 장애인들 전체를 선입견 갖고 바라보게끔 만드는 몰상식하고 그 자체로 짐이 될 뿐인 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가족이 단지 가족이란 이유로 강요당하기도 하는 장애인에 대한 사랑, 헌신, 주변으로부터 받는 시선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어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꼭 답보 상태에 그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모든 장애인이 바르톨로메처럼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장애인을 바르톨로메처럼 대우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장애인이 편한 사회가 곧 모든 사람이 편한 사회라지만, 비장애인들끼리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각박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장애인 예술가가 등장하지 않으면 장애인에 대해 생각하기 힘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민낯이 아닐까 싶다. 


 17세기를 배경이란 걸 감안한다면 주인공 바르톨로메는 아버지나 막내 동생을 제외한 다른 가족 모두로부터 비호를 많이 받았고 그 덕에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인 고등 교육이랄 수 있는 글과 그림을 공부하게 된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무게가 느껴졌던 것, 그리고 17세기에서의 글과 그림의 위상이 지금과 완전히 판이하다는 것도 제법 감동적이고 신선했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거의 0%이고 물감도 옛날처럼 고가가 아니니 간과하기 쉬운데 글과 그림이 17세기 사람들 사이에서 갖는 위상과 중요도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 - 비유하자면 글을 알고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것이 컴퓨터를 어마어마하게 잘하는 수준의 재능으로 여겨진다. - 이 소설의 내용이 참으로 가슴 설렌 기분으로 읽혀졌다.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그들이 당하는 폭력과 외면의 수위가 약해졌을 뿐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져 씁쓸함이 감돌았다면 글과 그림이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살기 좋아졌고 소중한 것들로 가득하다는 걸 깨닫게 해 막판엔 심지어 감사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게 됐다. 

 이 작품이 얼마나 고증이 잘 이뤄졌는지 모르겠지만 뒤로 갈수록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흥미진진해 아주 만족하며 읽은 작품이다. 벨라스케스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었고 장애인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이래저래 가능성이 제한되는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재능처럼 무형의 가치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보다 훨씬 높이 평가받는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진 것도 인상적이었다. 희로애락과 더불어 인간이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안목엔 시공을 초월하는 구석이 있음을 깨달을 즈음에 작가 나름대로 재구성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다뤄진다. 장애인의 인권을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타협하되 그 안에서 개연성 있게, 또 최선이자 최고의 방식으로 표현해낸 전개가 아닐 수 없었는데, '<시녀들>의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라는 설명에선 도저히 연상되지 않는 감동이 담겨 있어 꽤나 감탄했다. 엉뚱한 발상에서 출발한 이 소설의 만듦새가 실로 예사롭지 않아 새삼스럽지만 소설은 정말 대단한 예술이란 탄식을 뱉기에 이르렀다. 여느 좋은 소설이 그렇듯 이 소설도 나를 채찍질하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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