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욜로욜로 시리즈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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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시녀들>에 등장하는 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소설이다. <시녀들>은 언젠가 꼭 직관하고픈 그림 중 하나인데 이렇게 소설로나마 간접적으로 그 그림의 탄생 배경을 접할 수 있던 게 흥미로웠다. 더불어 작가의 상상력이나 소재를 찾는 능력, 그리고 17세기의 스페인 마드리드라는 무대를 실감 나게 재현한 필력도 즐겁기 그지없는 요소였다. 작가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던데, 작가 입장에서 외국인 스페인을 배경으로 삼았으니 소설 집필을 끝마치기까지 적잖은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다. 자국의 사극도 힘든데 외국의 사극이라니... 나로서는 정말 엄두도 나지 않는 작업이다. 

 장애가 곧 죄나 다름없던 시대에 태어난 꼽추 바르톨로메가 더 나은 미래로 향한 실마릴 찾는 여정이 담긴 이 소설은 총 2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바르톨로메가 엘 프리모 같은 서기가 되기 위해 자신을 없는 자식 취급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글을 배우는 이야기가, 2부에선 비참하게도 '개'로 취급당하는 수모를 겪던 바르톨로메가 그의 재능을 인정는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기사회생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포일러를 극도로 제한하는 이유는 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남의 입이 아닌 직접 읽으며 감상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장애인의 형편이 유달리 나아졌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극소수의 장애인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장애인이 광대 아니면 놀림감, 그걸 거부하면 남는 것은 비참한 여생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시대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바르톨로메의 처지는 나로 하여금 참으로 복잡미묘한 감정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일단 동정이 앞섰지만, 직장에서 장애인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꾀를 부리는 사람도 떠올라 장애인이 사회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한 번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장애인도 갖고 있는 장애의 성질이 다 다르잖은가. 단순히 장애의 힘겨움이나 또는 '장애인'이라는 호칭으로는 묶어내기 힘들 만큼 개개인마다 성정과 능력도 다르고 말이다. 이 작품의 바르톨로메 같은 경우엔 인체 비율에 능통한 벨라스케스 같은 화가가 보기에도 헉 소리가 나올 만큼 흉측한 외관의 꼽추이지만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티 없이 맑은 눈동자와 목소리를 갖고 있고 지적 능력, 예술적 능력도 탁월하다. 그 덕분에 온갖 수모를 겪었지만 재능도 인정받았고 앞으로도 비장애인에 비하면 아주 밝지만은 않은 미래가 예상됨에도 어쨌든 당대 장애인의 처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꽃길이 펼쳐지리라는 기대 역시 가능한 것일 터다. 

 하지만 모든 장애인이 다 바르톨로메처럼 티 없이 맑거나 재능이 남다른 것은 아니다. 장애 때문이든 그냥 기본적인 능력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든 간에 작금의 장애인은 가족이나 사회의 관용적인 시선, 장애인 할당제 같은 제도가 아니면 살아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이 제아무리 비장애인들보다 배로 노력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외면당하기 십상이고 때론 장애인들 전체를 선입견 갖고 바라보게끔 만드는 몰상식하고 그 자체로 짐이 될 뿐인 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가족이 단지 가족이란 이유로 강요당하기도 하는 장애인에 대한 사랑, 헌신, 주변으로부터 받는 시선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어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꼭 답보 상태에 그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모든 장애인이 바르톨로메처럼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장애인을 바르톨로메처럼 대우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장애인이 편한 사회가 곧 모든 사람이 편한 사회라지만, 비장애인들끼리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고 각박해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거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장애인 예술가가 등장하지 않으면 장애인에 대해 생각하기 힘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민낯이 아닐까 싶다. 


 17세기를 배경이란 걸 감안한다면 주인공 바르톨로메는 아버지나 막내 동생을 제외한 다른 가족 모두로부터 비호를 많이 받았고 그 덕에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인 고등 교육이랄 수 있는 글과 그림을 공부하게 된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무게가 느껴졌던 것, 그리고 17세기에서의 글과 그림의 위상이 지금과 완전히 판이하다는 것도 제법 감동적이고 신선했다.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거의 0%이고 물감도 옛날처럼 고가가 아니니 간과하기 쉬운데 글과 그림이 17세기 사람들 사이에서 갖는 위상과 중요도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 - 비유하자면 글을 알고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것이 컴퓨터를 어마어마하게 잘하는 수준의 재능으로 여겨진다. - 이 소설의 내용이 참으로 가슴 설렌 기분으로 읽혀졌다.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그들이 당하는 폭력과 외면의 수위가 약해졌을 뿐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져 씁쓸함이 감돌았다면 글과 그림이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살기 좋아졌고 소중한 것들로 가득하다는 걸 깨닫게 해 막판엔 심지어 감사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게 됐다. 

 이 작품이 얼마나 고증이 잘 이뤄졌는지 모르겠지만 뒤로 갈수록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흥미진진해 아주 만족하며 읽은 작품이다. 벨라스케스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었고 장애인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왕족이나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이래저래 가능성이 제한되는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재능처럼 무형의 가치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보다 훨씬 높이 평가받는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진 것도 인상적이었다. 희로애락과 더불어 인간이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안목엔 시공을 초월하는 구석이 있음을 깨달을 즈음에 작가 나름대로 재구성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다뤄진다. 장애인의 인권을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타협하되 그 안에서 개연성 있게, 또 최선이자 최고의 방식으로 표현해낸 전개가 아닐 수 없었는데, '<시녀들>의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라는 설명에선 도저히 연상되지 않는 감동이 담겨 있어 꽤나 감탄했다. 엉뚱한 발상에서 출발한 이 소설의 만듦새가 실로 예사롭지 않아 새삼스럽지만 소설은 정말 대단한 예술이란 탄식을 뱉기에 이르렀다. 여느 좋은 소설이 그렇듯 이 소설도 나를 채찍질하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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