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덴마크 선생님 -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 배우기
정혜선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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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제목에서 나오는 덴마크 선생님은 특정 덴마크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저자가 덴마크에서 일종의 만학도로 지낸 경험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본래 우리나라의 대안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자신이 참된 교사인지 회의감 내지는 자괴감에 빠졌던 저자는 서른 아홉의 나이에 덴마크 세계시민학교, 약칭 IPC에 다니게 됐다. 참 거창한 이름의 학교가 아닐 수 없는데 저자가 이수한 수업 내용이나 그 학교의 교육의 최종 목표를 생각하면 전혀 생뚱맞은 이름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입시와 성적 위주의 수업이 아닌 학교인 터라 읽는 내내 영어 능력이 조금 더 뒷받침된다면 당장 입학 지원을 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시국이 시국인 터라 당장은 요원하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니, 사실 시국 운운하는 건 적절한 핑계일 뿐이고, 과연 코로나가 없었더라도 내가 입학 지원을 실행에 옮겼을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과 실천은 동전의 앞뒤처럼 거리가 멀다. 허나 저자처럼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의 학생도 받아주고 저자가 딱히 유별난 케이스가 아니었던 학교의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분명 지금 못지않게 적잖은 위로와 동기 부여가 됐을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건 교육엔 이르고 늦음이 없으며 완료가 없는 영원한 미완이란 것, 그것이 저자가 경험했고 또 독자들이 간접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문체가 크게 자극적이지 않고 여봐란 듯이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지만 내가 원체 유럽에서의 생활, 특히 덴마크란 나라에 대한 선망이 크기에 예상보다 흥미롭게 읽혔다. 한국 교육계에 몸담았던 저자가 상대적으로 느릿하고 어찌 보면 느슨하게도 느껴지는 이국의 교육에서 진정 선진적인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과 질문을 유도하는 자세, 얼마나 유익한 사람이냐 보다 얼마나 자신의 내면을 잘 이해하느냐가 삶의 지향점이란 것이 내가 작가의 글에서 느낀 대략적인 감상이었다. 자원도 국토도 빈약한 덴마크가 강소국으로 자리메김한 비결을 복지와 그 복지에 협조하며 누리는 시민들의 수준, 그 수준을 이끌어냈고 공고히 다지게끔 한 교육의 역할이 지대하다 들었는데, 역시 명성이 괜히 퍼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혹자는 그걸 누가 모르는 줄 아나, 다 알지만 삶이 각박해 우리네 교육 현장에 맞지 않는 것이라 절레절레할 수 있겠으나, 다시 말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동전의 앞뒤처럼 거리가 멀다. 적어도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여 유럽에서도 선진적인 교육으로 정평이 난 덴마크 학교에 간 저자의 말엔 남다른 무게감이 느껴졌음을 강조하겠다. 저자가 말하듯 성적보단 성취에 우선을 두기에 관점에 따라선 굉장히 느슨하게 교육이 진행되나 그렇게 능동성을 유도하고 또한 교육이란 결코 일방적인 주입이 아닌 교사와 학생의 이인삼각으로 이뤄지는 개념임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 온 학생들과 역사 인식 문제로 갈등이 빚어진다거나 여름 방학을 맞아 유럽의 다른 나라로 수학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보다 이런 교육의 개념을 되짚어보게 되는 일련의 경험들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보람을 느끼게 해줬다. 보통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가고 기억이 남는 법인데 신기하게 이 책에선 순수하게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인상에 남았다. 


 덴마크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고향에서 부모나 이웃에게 노처녀 취급을 받는 것에 쓴웃음을 짓는 이야기 등이 담긴 후기를 끝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교육의 본질이란 것에 고민해본 사람들, 특히 덴마크란 나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좋을 책일 텐데 반대로 사유가 유달리 돋보이는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생각보다 심심하게 진행되는 내용을 따분하게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기본적으로 분위기가 어째 처져있는 터라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덴마크란 나라가 노르웨이와 비슷하게 멜랑꼴리함이 있는 나라라면 - 여담이지만 실제로 노르웨이에 가봤던 사람으로서 겨울 특유의 멜랑꼴리함이야말로 그 나라의 매력이다. - 이것도 퍽 현장감을 잘 전달하지 않았나 하고 변호를 하고 싶다. 

 덴마크... 여행으로든 학교로든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예전엔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간절히 바란다면 이뤄질 날이 꼭 오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과 실천은 거리가 멀지만 이렇게 실천이 강제되는 시국이니 종식이 머잖았을 때 실천은 폭발하듯 이뤄질 테지. 꼭 그 날이 오길 고대한다. 

선생님은 자기와 다른 의견을 수업 시간에 표현하는 학생이 있다는 데에 감사해야 해. - 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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