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스페인
최지수 지음 / 참좋은날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3 






 내가 마침 서른 살이기도 하고, 올해 3월에 진지하게 스페인 여행을 생각했었기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던 책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의 온갖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화풍이 완벽하게 녹아든 20일간의 스페인 여행기였는데, 비록 그림에 비해 인문학적 깊이는 떨어진 건 아쉬웠으나 오히려 그런 부족함이 개성으로 작용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꼭 남들 다 가는 여행지, 역사적 의미가 큰 관광지가 아니라, 꼭 극적인 전개가 아니더라도 크게 멋부리지 않은 - 멋부린 것은 오직 그림뿐 - 일상적인 여행기였던 터라 참 편하게 읽혔다. 내가 과연 다음에 해외여행을 간다면 이렇게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어느 나라가 됐든 해외의 공기가 적잖이 갈증났던 만큼 뽕을 뽑으려고 마구 돌아다니려고 할 것 같다. 처음 해외여행에 재미를 붙였던 20대 초반과는 달리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 

 책을 다 읽은 직후엔 특별히 '서른'이란 나이가 주는 느낌을 잘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일찍이 서른을 경험한 작가가 그 나이대의 여행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20대 초반엔 '다음은 없다'는 생각에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돌아다녔지만 서른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은 여유롭게 일정을 짜고 언젠가 다시 오겠지 란 생각에 오히려 지금 놓친 것을 다음 여행을 위한 일종의 계기로 여기곤 했다. 아까 말했듯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지 3년째라서 다음 해외여행 때 이런 태도가 그대로 유지될는지 미지수지만... 전보다 여유롭고 서두르지 않는 여행법을 고수하게 될 듯하다. 어쩌면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할 지라도 말이다. 


 이 책을 읽은 어떤 독자는 나처럼 텍스트와 깊이의 부족함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한편으론 스페인이란 나라를 표현하는 일에 있어서 그림의 힘을, 시각 매체를 활용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스페인에 가고 싶은 사람보다 스페인에 가본 적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책인 듯하다.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백 번 효과적인 나라라니, 그전까지 미술관이나 요리에 더 관심이 갔었는데, 이젠 아예 스페인이란 나라의 풍경 그 자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참 안타까운 것은, 풍경이란 내 경험에 의하면 TV나 인터넷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성질의 요소가 아니란 것이다. 현장감. 그 현장에 직접 있어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언젠가 꼭 스페인에 가서 직접 풍경을 봐야겠다. 그날이 왠지 이젠 머지않아 보이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련다. 

흑인 아이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만든 테이블이 있다. 정성껏 만들었다는 점이 그 테이블을 더 낡아 보이게 했다. 창작물은 시간의 흐름을 붙잡아 놓는다. 그 점이 무섭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다시 돌아본 내 작업도 어딘가 부끄러운 꼴을 할 것이다.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어렵다. - 2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 - Novel Engine POP
미아키 스가루 지음, 현정수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8.8 







 어딘지 오글거리는 제목, 달달한 분위기의 표지, 적당히 힐링을 표방한 라이트노벨을 연상시키는 외관과는 달리 피와 절망이 난무하는 작품이었다. 미아키 스가루의 작품은 <3일간의 행복>과 <스타팅 오버>에 이어 세 번째 접했는데 주인공과 설정이 지금까지 중 가장 어두웠다. 만성적으로 무기력한 주인공이 중2병의 기로에 놓인 듯한 언행을 보이는 게 역시 거부감이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상처의 깊이와 치유의 위대함에 주목한 아주 진지한 작품이기에 개인적인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뜻밖의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사기적인 능력이나 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보다 -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반전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진 않으나 그럼에도 무리수였다고 생각한다. - 절망은 절망 그대로 해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성취감이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최후반부 연출이 더 인상적이었다. 

 흔히 카타리스시를 세간에는 '사이다' 감성이라고 흔히들 오해하던데, 나도 아주 똑부러지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카타르시스는 사이다와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상당히 고차원적인 개념이라고 전공 수업 때 배웠고, 내가 대략이나마 이해한 것이 맞다면 권선징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독자들이 그 나름대로 해소된 느낌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 작품이 바로 그 예시로 적절한 작품일 듯하고 비슷한 작품이 있다면 두 달 전에 읽었던 만화 <올해의 미숙>도 이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을 선사했다. 차이가 있다면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는 절망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고 두 주인공이 그토록 열망했던 복수는 모두 없었던 일로 돌아갈 테지만 그럼에도 복수의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이미 정해진 절망적인 결말따윈 아랑곳 않고 행동하는 모습이 참 절묘하게 가슴 아프면서 한편으론 속시원하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뒤를 생각하지 않고 여한 없이 움직인다니, 그것만 놓고 보면 참 부러운 일이었다. 


 소설의 판타지적인 설정인 '미루기'가 이해하기 난해한데 오히려 그 부분이 신의 한 수로 작용됐다. 죽었지만 죽음을 미룬 다음 미루기가 끝날 예정인 열흘 뒤까지 닥치는 대로 복수를 해나간다는 설정이 아주 극단적인 시한부 인생이란 긴장감과 씁쓸함을 자아내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야기의 화자이기도 한 남자 주인공이 무기력하면서 일그러진 일면도 있어 단조롭고 식상할 수도 있을 복수극을 시종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 쉽사리 다음 전개가 예측이 가지 않는 것도 흥미로웠다. 작품의 분위기나 설정이 취향에 맞지 않는 독자라도 몰입도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반전이 무리수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해 최후반부에선 몰입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그전까지 의문으로 남았던 요소들을 어쨌든 논리적으로 말이 되게끔 풀어낸 것과 제목이 주는 오글거림을 걷어내고 따뜻함만을 한없이 강조해 작품 전반에 녹여낸 것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여자 주인공이 자라온 환경이 워낙에 막장인 터라 제목에 있는 말이 위로가 되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싶지만 결국 진정성 있는 묘사가 동반된다면 아주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상 캐릭터들의 매력과 진정성 있는 면모 덕에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일그러졌고 냉소적이고 어둡기 그지없지만 - 그리고 모두 언행이 중2병의 기로에 놓여 있다... - 죽음이나 복수 등 천편일률적인 반응을 낳을 수 있는 단어들에 색다른 감상과 태도를 겸비하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 모두가 뚜렷하게 구별하며 등장시킨 작가의 솜씨가 작품의 그 어떤 요소보다 감탄을 자아내는 요소였다. <3일간의 행복>과 비교하면 수위도 너무 세고 호불호가 갈리지만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은 이 작품이 훨씬 뛰어났다고 본다. <3일간의 행복> 다음에 집필된 작품이라 그런지 스토리텔링이 더 무르익었구나 싶었다. 

 작가의 작품이 제법 많이 출간됐던데 앞으로도 계속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뿌리는 라이트노벨에 두고 있지만 가장 연령대를 타지 않고 진지하고 개성적인 필력과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이므로 다른 작품이 더욱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덴마크 선생님 -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 배우기
정혜선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5 







 제목에서 나오는 덴마크 선생님은 특정 덴마크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저자가 덴마크에서 일종의 만학도로 지낸 경험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본래 우리나라의 대안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가 자신이 참된 교사인지 회의감 내지는 자괴감에 빠졌던 저자는 서른 아홉의 나이에 덴마크 세계시민학교, 약칭 IPC에 다니게 됐다. 참 거창한 이름의 학교가 아닐 수 없는데 저자가 이수한 수업 내용이나 그 학교의 교육의 최종 목표를 생각하면 전혀 생뚱맞은 이름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입시와 성적 위주의 수업이 아닌 학교인 터라 읽는 내내 영어 능력이 조금 더 뒷받침된다면 당장 입학 지원을 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시국이 시국인 터라 당장은 요원하다는 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니, 사실 시국 운운하는 건 적절한 핑계일 뿐이고, 과연 코로나가 없었더라도 내가 입학 지원을 실행에 옮겼을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과 실천은 동전의 앞뒤처럼 거리가 멀다. 허나 저자처럼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의 학생도 받아주고 저자가 딱히 유별난 케이스가 아니었던 학교의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분명 지금 못지않게 적잖은 위로와 동기 부여가 됐을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건 교육엔 이르고 늦음이 없으며 완료가 없는 영원한 미완이란 것, 그것이 저자가 경험했고 또 독자들이 간접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문체가 크게 자극적이지 않고 여봐란 듯이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지만 내가 원체 유럽에서의 생활, 특히 덴마크란 나라에 대한 선망이 크기에 예상보다 흥미롭게 읽혔다. 한국 교육계에 몸담았던 저자가 상대적으로 느릿하고 어찌 보면 느슨하게도 느껴지는 이국의 교육에서 진정 선진적인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과 질문을 유도하는 자세, 얼마나 유익한 사람이냐 보다 얼마나 자신의 내면을 잘 이해하느냐가 삶의 지향점이란 것이 내가 작가의 글에서 느낀 대략적인 감상이었다. 자원도 국토도 빈약한 덴마크가 강소국으로 자리메김한 비결을 복지와 그 복지에 협조하며 누리는 시민들의 수준, 그 수준을 이끌어냈고 공고히 다지게끔 한 교육의 역할이 지대하다 들었는데, 역시 명성이 괜히 퍼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혹자는 그걸 누가 모르는 줄 아나, 다 알지만 삶이 각박해 우리네 교육 현장에 맞지 않는 것이라 절레절레할 수 있겠으나, 다시 말하지만 생각과 실천은 동전의 앞뒤처럼 거리가 멀다. 적어도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여 유럽에서도 선진적인 교육으로 정평이 난 덴마크 학교에 간 저자의 말엔 남다른 무게감이 느껴졌음을 강조하겠다. 저자가 말하듯 성적보단 성취에 우선을 두기에 관점에 따라선 굉장히 느슨하게 교육이 진행되나 그렇게 능동성을 유도하고 또한 교육이란 결코 일방적인 주입이 아닌 교사와 학생의 이인삼각으로 이뤄지는 개념임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 온 학생들과 역사 인식 문제로 갈등이 빚어진다거나 여름 방학을 맞아 유럽의 다른 나라로 수학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보다 이런 교육의 개념을 되짚어보게 되는 일련의 경험들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보람을 느끼게 해줬다. 보통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가고 기억이 남는 법인데 신기하게 이 책에선 순수하게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인상에 남았다. 


 덴마크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고향에서 부모나 이웃에게 노처녀 취급을 받는 것에 쓴웃음을 짓는 이야기 등이 담긴 후기를 끝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교육의 본질이란 것에 고민해본 사람들, 특히 덴마크란 나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좋을 책일 텐데 반대로 사유가 유달리 돋보이는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생각보다 심심하게 진행되는 내용을 따분하게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기본적으로 분위기가 어째 처져있는 터라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덴마크란 나라가 노르웨이와 비슷하게 멜랑꼴리함이 있는 나라라면 - 여담이지만 실제로 노르웨이에 가봤던 사람으로서 겨울 특유의 멜랑꼴리함이야말로 그 나라의 매력이다. - 이것도 퍽 현장감을 잘 전달하지 않았나 하고 변호를 하고 싶다. 

 덴마크... 여행으로든 학교로든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예전엔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간절히 바란다면 이뤄질 날이 꼭 오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과 실천은 거리가 멀지만 이렇게 실천이 강제되는 시국이니 종식이 머잖았을 때 실천은 폭발하듯 이뤄질 테지. 꼭 그 날이 오길 고대한다. 

선생님은 자기와 다른 의견을 수업 시간에 표현하는 학생이 있다는 데에 감사해야 해. - 9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여덟의 여름
미쓰하라 유리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9.6 






 미쓰하라 유리의 숨은 걸작 추리소설 단편집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표제작인 '열여덟의 여름'은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이고 일본에서 단편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얌전한 자식이 연달아 규모 있는 대회에서 주목을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지만 다른 수록작과 비교하면 이 작품은 비교적 얌전하지 않은 편에 속한다. '자그마한 기적'과 '형의 순정'은 독자에 따라선 추리소설로 보기에 시시하다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소소한 이야기니까. 마지막 수록작인 '이노센트 데이즈'는 작가가 공인할 정도로 어두운 이야기였고 표제작은 일본식 성장물에 추리소설적 요소가 몇 숟갈 첨가한 수작이다. 

 전체적으로 수록작들의 완성도가 높고 고른 단편집이다. 추리소설로나 일반 순수 문학으로나 나무랄 데 없기에 일본에서 '다음 작품이 궁금한 작가' 1위에 선정됐다는 게 결코 과한 평가로 여겨지지 않는다. 정작 작가가 작품 활동을 그리 활발하게 하지 못한 편이고 국내에도 이 작품밖에 출간되지 않아 아쉽지만... 



 '열여덟의 여름' 


 일본식 청춘물, 성장물의 전형이자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결말의 쌉싸름하고 아련한 느낌이 일품이다. 드라마로도 나왔다지만 딱히 보고 싶지 않은 이유는 괜히 어설프게 만들었을까봐 실망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드라마로 나왔다고 하면 찾아볼까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그만큼 분위기나 캐릭터들의 매력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엄연히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만큼 장르적인 재미도 얕볼 수 없는 작품이다. 저 상이 이름에 비해 그다지 추리소설답지 않은 작품이 수상한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이 작품은 이만하면 추리소설의 요소를 잘 충족하지 않았나 싶다. 반전이 비교적 쉽게 유추가 가능하나 복선과 개연성이 탄탄했고 막판에 어떤 비극적인 전개가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순간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도 기대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일본 추리소설계의 숨은 명작 단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자그마한 기적' 


 첫 번째 수록작이 호불호가 정말 없는 수작이라면 '자그마한 기적'은 잠시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이다. 화자가 초반에 과연 자신이 겪은 일을 기적이라 불러도 되는가 하고 말했는데, 확실히 기적이라기엔 유난을 떠는 감이 있지만, 또 작품의 반전이 쉽게 유추 가능하고 복선도 미흡한 편이지만 듣기만 해도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인 터라 그 이상 어깃장 놓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식이 있음에도 재혼을 하려는 사람이 읽기에 가장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실로 감성 충만해지는 작품이었는데 이런 감상과는 별개로 역자에겐 번역하기 가장 까다로운 작품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읽는 입장에선 실감난 사투리들이 흥미를 돋우지만, 어디서 읽은 건데 사투리 번역이 의외로 까다롭다고 하니 사투리 비중이 아주 많은 이 작품도 적잖이 까다로웠으리라 본다. 아님 말고. 



 '형의 순정' 


 작가 공인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로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난이도가 있는 반전이 나오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반전을 알고 난 직후에 어떤 캐릭터가 취한 태도다. 무엇보다 그 캐릭터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은 화자의 따뜻한 마음씨까지 전해져 개인적으로 직전 수록작인 '자그마한 기적'보다 더 감성이 충만해졌다. 이야기의 규모에서 차이가 크지만 반전이 드러나는 부분 다음부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아,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까 그 영화도 갑자기 다시 보고 싶어지는군. 이 소설도 그렇고 그 영화도 그렇고 따뜻한 작품은 주기적으로 챙겨보고 싶다. 



 '이노센트 데이즈' 


 제목과 달리 정말 살 떨릴 정도로 악한 인간들의 모습을 다루는 작품이다. 과연 악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순진하게, 혹은 순수하게 사는 것이 맞는 태도일까? 그리고 순수한 것과 순진하다는 말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처음엔 주변 모든 캐릭터들에게 순진한 인물로 취급받는 주인공이 종래에는 순수한 인물로 격상된 느낌이었는데, 순진하다는 말에 세상물정에 어두움을 비꼬는 뉘앙스가 있다면 순수하다는 말엔 그런 뉘앙스가 적다는 걸 생각하면 주인공의 한결 같은 올곧음은 더욱 빛나 보인다. 

 책의 수록작들 중 가장 추리소설 같은 작품이었고 짧은 분량 속에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인과 관계도 복잡해 처음엔 바로 파악이 힘들고 설상가상 인물들의 이름이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을 정도로 헷갈려 안 그래도 어두운 내용인 데다가 독해력도 요구돼 그리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뒤의 뿌듯함이 가장 큰 작품이고 무엇보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얘기할 때 '희망'을 빼놓을 수 없어 더욱 뿌듯함이 배가된다. 작가가 히로시마 출신이라 그런지 원폭 이후에도 끈질기게 자란 협죽도란 꽃을 아주 비중있게 다뤄 주인공의 순수함이 더욱 진솔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특히 협죽도는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성이 있는 꽃이지만 그 독성은 관점만 바꾸면 끈질김과 희망으로 인간의 시야 안에서 재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부정적인 요소들도 관점만 달리하면 정반대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볼 수 있단 점에서 정말 마음 따뜻해지는 작품이었다. 물론 상투적인 말이긴 하나 그 상투적인 말을 얼마나 진솔하고 와 닿게 전달하느냐는 또 전혀 다른 문제인데, 그 문제를 멋들어지게 극복한 '이노센트 데이즈'는 유독 완성도가 높고 고른 이 단편집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아주 어울리는 작품이자 순서 배치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 책의 수록작들의 내용을 다시 곱씹으니 작가의 다른 작품이 더 읽고 싶어졌다. 언젠가 출간되리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체의 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7.7 






 내가 이 작품을 10년 전에 읽었을 땐 주인공이 나와 연령대가 비슷했고 또 아직까지 감수성이 살아있을 때라 좋은 인상이 남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읽자고 책장에 남겨뒀겠지. 지금은 복잡한 인과 관계가 얽혀서 매사에 자기 탓을 하는 등장인물들과 지지부진한 전개 때문에 상당히 더디게 읽혔는데, 그럼에도 제목의 '구체의 뱀'에 대한 저자 미치오 슈스케의 해석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저런 식으로 해석할 사람은 이 세상에 미치오 슈스케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신선한 시각이었다. 

 물론 누군가가 그 해석 하나 맛보자고 이 책을 펼치려고 하면 약간 고심해볼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미치오 슈스케라는 이름이 주는 재기발랄한 추리소설의 묘미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작가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는 그 어떤 작품보다, 대표작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상회할 정도로 그득한데 작품 전개가 지루하고 지지부진한 것에 비해 인물들이나 세계관의 음울한 감정선은 충분한 분량을 들여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숙지한다면 이 책을 펼쳐도 무방할 듯하다. 문제는 표현에 공을 들이다 못해 넘치는 감이 있어 주인공의 선택이 이해가 되다가도 답답해 끝맛이 텁텁할 수도 있으리란 것이다. 


 소설의 집필 연도나 소설 속 배경이 90년대 초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개가 많이 펼쳐지는 편이다. 간략히 열거하자면 관음, 무단 침입, 그리고 협박으로 전제된 관계다. 현실에선 이보다 더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작중에서도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근거로 들며 개연성 있게 묘사하지만 어느 것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난 이러한 불편한 이야길 주인공의 가정 환경과 살고 있는 시대상이 결합된 골때리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해하고 읽었는데, 결말부에 이르러선 주인공의 행동이 너무 감정적이고 자기비하적이고 조금 무책임하기도 해 '아,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함 일색인 작품이구나'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결말에선 인상이 적잖이 달라졌다. 처음엔 결말이 전형적인 '사족'이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제목의 의미를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반전이 담긴 내용이 아닐 수 없어 다 읽고서 혀를 내둘러야 했다. 특히 사건의 전말을 확실하진 않아도 찰나에 거의 간파한 주인공이 그 이후에 취한 태도는 지금 나이의 내가 봐도 감동적인 데가 있어 제법 여운이 남았다. 타인의 거짓말을 단순히 거짓을 말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지 않고 거짓말을 한 이유에 주목하며 기꺼이 그에 응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그렇고 자꾸만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이면 덕분에 불쾌함이 극심해지지 않게 배려한 작가에게도 뜻밖에 호감이 갔다. 작품 초반에 받은 인상을 생각하면 이것도 참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춘과 성장을 주제로 한 일본 소설을 한때 즐기며 읽었지만 지금의 내겐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이 작품도 그렇고 다른 작품도 예전에 좋게 읽은 기억을 안고 다시 읽으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체의 뱀>도 그럴 줄 알았고 거의 그대로 맞아 떨어질 뻔했지만 작가의 감수성과 신선한 해석이 요번에도 내 가슴에 와 닿았고 마지막 주인공의 행동은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공감이 가 역시 다시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미치오 슈스케 최고의 작품이라 여기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무시 못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