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 - Novel Engine POP
미아키 스가루 지음, 현정수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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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어딘지 오글거리는 제목, 달달한 분위기의 표지, 적당히 힐링을 표방한 라이트노벨을 연상시키는 외관과는 달리 피와 절망이 난무하는 작품이었다. 미아키 스가루의 작품은 <3일간의 행복>과 <스타팅 오버>에 이어 세 번째 접했는데 주인공과 설정이 지금까지 중 가장 어두웠다. 만성적으로 무기력한 주인공이 중2병의 기로에 놓인 듯한 언행을 보이는 게 역시 거부감이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상처의 깊이와 치유의 위대함에 주목한 아주 진지한 작품이기에 개인적인 호불호와는 무관하게 뜻밖의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사기적인 능력이나 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보다 -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반전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진 않으나 그럼에도 무리수였다고 생각한다. - 절망은 절망 그대로 해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성취감이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최후반부 연출이 더 인상적이었다. 

 흔히 카타리스시를 세간에는 '사이다' 감성이라고 흔히들 오해하던데, 나도 아주 똑부러지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카타르시스는 사이다와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상당히 고차원적인 개념이라고 전공 수업 때 배웠고, 내가 대략이나마 이해한 것이 맞다면 권선징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독자들이 그 나름대로 해소된 느낌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 작품이 바로 그 예시로 적절한 작품일 듯하고 비슷한 작품이 있다면 두 달 전에 읽었던 만화 <올해의 미숙>도 이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을 선사했다. 차이가 있다면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는 절망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고 두 주인공이 그토록 열망했던 복수는 모두 없었던 일로 돌아갈 테지만 그럼에도 복수의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이미 정해진 절망적인 결말따윈 아랑곳 않고 행동하는 모습이 참 절묘하게 가슴 아프면서 한편으론 속시원하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뒤를 생각하지 않고 여한 없이 움직인다니, 그것만 놓고 보면 참 부러운 일이었다. 


 소설의 판타지적인 설정인 '미루기'가 이해하기 난해한데 오히려 그 부분이 신의 한 수로 작용됐다. 죽었지만 죽음을 미룬 다음 미루기가 끝날 예정인 열흘 뒤까지 닥치는 대로 복수를 해나간다는 설정이 아주 극단적인 시한부 인생이란 긴장감과 씁쓸함을 자아내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야기의 화자이기도 한 남자 주인공이 무기력하면서 일그러진 일면도 있어 단조롭고 식상할 수도 있을 복수극을 시종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 쉽사리 다음 전개가 예측이 가지 않는 것도 흥미로웠다. 작품의 분위기나 설정이 취향에 맞지 않는 독자라도 몰입도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반전이 무리수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해 최후반부에선 몰입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그전까지 의문으로 남았던 요소들을 어쨌든 논리적으로 말이 되게끔 풀어낸 것과 제목이 주는 오글거림을 걷어내고 따뜻함만을 한없이 강조해 작품 전반에 녹여낸 것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여자 주인공이 자라온 환경이 워낙에 막장인 터라 제목에 있는 말이 위로가 되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싶지만 결국 진정성 있는 묘사가 동반된다면 아주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상 캐릭터들의 매력과 진정성 있는 면모 덕에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일그러졌고 냉소적이고 어둡기 그지없지만 - 그리고 모두 언행이 중2병의 기로에 놓여 있다... - 죽음이나 복수 등 천편일률적인 반응을 낳을 수 있는 단어들에 색다른 감상과 태도를 겸비하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들 모두가 뚜렷하게 구별하며 등장시킨 작가의 솜씨가 작품의 그 어떤 요소보다 감탄을 자아내는 요소였다. <3일간의 행복>과 비교하면 수위도 너무 세고 호불호가 갈리지만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은 이 작품이 훨씬 뛰어났다고 본다. <3일간의 행복> 다음에 집필된 작품이라 그런지 스토리텔링이 더 무르익었구나 싶었다. 

 작가의 작품이 제법 많이 출간됐던데 앞으로도 계속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뿌리는 라이트노벨에 두고 있지만 가장 연령대를 타지 않고 진지하고 개성적인 필력과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이므로 다른 작품이 더욱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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