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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의 사내 ㅣ 필립 K. 딕 걸작선 4
필립 K. 딕 지음, 남명성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9월
평점 :
8.4
만약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겼다면 세계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대체 역사 소설의 대명사격인 작품. 이 작품은 단순히 소재만 독특한 게 아니라 대체 역사 소설의 존재 의의에 대해 살펴본다는 점에서 꽤나 남다르게 다가왔다.
듣기만 해도 흥미로운 설정에 비해 막상 내용은 난해한 편이었는데, 처음엔 내가 독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여겼지만 얘길 들어보니까 원래 필립 K. 딕이 소재는 기가 막히게 뽑지만 문체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은 - 생활고를 위해 글을 빨리 써야 했던 작가라 퇴고를 많이 못했다고 한다. - 작가라고 한다. 글쎄, 난해함과 문체의 부족함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저번에 읽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 작품도 한 번은 더 읽을 가치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작품도 제법 난해했는데...
추축국이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양분한다는 설정을 처음 들었을 땐 정말 어마어마한 디스토피아물이겠거니 하고 예상했다.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추축국이 인류에 끼친 악영향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데 승전까지 했더라면 그보다 더한 생지옥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중 묘사되는 세계는 생각보다 암울하지 않다. 패권을 잡은 국가가 다를 뿐 흘러가는 방향은 별반 다르지 않았달까. 이 책이 집필된 시기가 한창 미국과 소련이 냉전을 치를 때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 대치 상황을 독일과 일본이 대신하는 양상으로 대체됐다. 역시 예상한 대로 작중 세계에선 인종 말살 정책과 식민지 파괴는 일상이 됐지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적응을 했다는 게 충격이면 충격이었다.
나름대로 적응을 했을 뿐더러 역시 그 안에서 기득권이 있고 그 기득권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엔 아우슈비츠행을 피해 골격 자체를 수술한 유대인들도 존재했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만 바뀐 채 큰 틀에서 보면 세계가 흘러가는 방향은 엇비슷했는데 - 60년대 SF 소설답게 뜬금없이 우주로의 진출 운운하는 건 사뭇 달랐지만. - 그런 와중에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 라는 소설이 존재 자체만으로 등장인물들 사이에 크게 화두에 오른다. 그 소설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추축국으로부터 승리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체 역사 소설 속의 대체 역사 소설이라니, 마치 거울 속에 있는 거울을 마주한 - 꼭 <이갈리아의 딸들>의 결말이 연상됐다. - 느낌이었다. 그 소설은 작중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시대 자체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하고 세계의 패권을 잡는다는 내용에 매료되고 나치는 물론 일본은 소설 속 내용에 분노하고 수수께끼의 저자를 잡으려고 안달이다. 하지만 그 기득권 안에서도 현재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역시 그 소설에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매료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가장 최선의 세상'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이 있다. 이 말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한 것 같아도 사람 마음이란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풀리는 것이 아니다. 대체 역사 소설이 그냥 역사 소설보다 흥미로운 이유는 소설의 내용을 통해 현실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이상을, 혹은 까딱 잘못했다간 마주했을지 모를 재난을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바뀌지 않는 현실에 때로는 더 큰 실망이나 허탈감을 금치 못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이 다소 난해하게 읽히는 이유는 대체 역사 소설이 현실에 안기는 박탈감을 읽는 사람 마음에 따라 해석이 갈리게끔 결말을 맺었기 때문이 클 것이다. 사실 나도 아직까지 헷갈리는데, 결국엔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서 끝나지 뭔가. 어떻게 보면 등장인물들 중 그 누구의 욕망도 실현되지 못한 채 끝나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는 다르게 보면 우리가 흔히 대체 역사 소설에 기대하는 바를 철저하게 외면한 작품에 대한 반감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흔히 대체 역사 소설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를 좀 더 긍정하기 위해 읽는 것 같은데 이 소설은 어떤 역사적 변수가 있었든지 간에 지금 현재와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말해 여러모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60년 전에도 물론이고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서간 주제의식인데, 참 답도 없는 허무주의긴 해도 대체 역사 소설에 대한 통찰이 정말 허를 찌른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 시대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이게 정말로 60년 전 통찰이란 말인가.
최근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데 그 드라마도 봐야겠다. 그 드라마도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블레이드 러너>처럼 큰 틀만 같고 별개의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지만 - 아니나 다를까 리들리 스콧이 연출을 했다고 한다. - 그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