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의 눈 3
미치오 슈스케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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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7.9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한때 국내에 많이 출간됐는데 요즘은 그의 이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 작가가 신선하지만 드문드문 무리수가 있는 작품을 종종 썼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초창기에 발표한 작품들을 읽었을 때 그런 경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본격미스터리대상을 받았다는 <섀도우>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작가, 거품이네 했을 정도로.

 <등의 눈>은 미치오 슈스케의 데뷔작으로 왠지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정발되지 않았다. 더 의문인 건 만화로는 출간됐다는 점인데,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하고 호러서스펜스 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고 해 궁금하던 참에 잘된 일이다. 만화를 보면서 그림체가 그닥이라고 생각해보긴 오랜만이었지만 그래도 코이케 노쿠토 작가의 나름 개성적인 그림체는 작품이 지향하고 있는 공포소설의 느낌을 잘 연출하고 있어 짧은 분량 동안에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을 읽으면 교고쿠 나츠히코의 데뷔작 <우부메의 여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어느 뭐로 보나 <등의 눈>이 한 수 아래였다고 본다. 소설가 미치오와 심령현상 탐구가인 마키비의 조합이 '교고쿠도' 시리즈의 주요 인물과 판박이였고 불가사의한 현상을 대하는 자세도 엇비슷한데 그래봤자 잘 따라한 아류라는 생각밖엔 안 들었다. 이는 소설이 아닌 만화로 접했기에 나온 감상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드문드문 독자적인 시점에서 전개되던 주인공네 주변 인물들의 비중이나 중요도도 애매했고 범인의 정체는 놀라웠지만 후반부의 전개가 너무 급작스러워 아쉬웠고 작품의 제목인 '등의 눈'의 정체도 거의 맥거핀 수준이었던 터라 허무함이 들었다. 되데 독특하고 섬뜩한 설정이라 내심 궁금했었는데 그저 인과관계를 착각한 것으로 넘긴다는 게 약간 성의없다고까지 생각됐다. 이 작품도 미치오 슈스케 데뷔 초창기 때 느낌이 적잖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데뷔작이라 그런지 무리수 혹은 과욕이 느껴졌다. 이게 그래도 언뜻 곱씹어보면 아주 허무맹랑하진 않아서... 그래, 복선도 그만하면 교묘하고 충분했으니까 추리물의 도리는 지켰다고 봐야겠지.


 심령 현상에 대한 통찰은 '교고쿠도' 시리즈에 못 미치고, 작품 내적으로 그렇게 두 번 돌아볼 부분도 딱히 없어 따로 덧붙일 말은 없다. 소설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하긴 하지만 출간이 돼야 읽든가 말든가 하지... 요즘 국내에서의 미치오 슈스케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가능성은 적지만 나중에 정발이 된다면 읽어보지 않을까 싶다. 물론 터무니없는 가격이 책정되면 고민 좀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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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안송이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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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목만 보면 페미니즘 도서인 것 같은데 의외로(?) 저자의 스웨덴 적응기를 그린 내용이었다. 한국에서 스웨덴어를 전공하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스웨덴에서 살고 있는 작가의 짤막한 일기를 엮은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스웨덴이란 나름 신선한 배경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보통의 책이라면 스웨덴이라는 특이점을 큼지막하게 어필하겠지만 이 책에선 배경이 스웨덴일 뿐 결국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려는 작가의 뜻에 맞게 겉보기엔 심심해 보이는 제목과 표지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요즘 같이 소설이건 에세이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시대에 참 보기 드문 책이었다.

 간간이 스웨덴과 한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쓴 글도 있긴 하지만 만약 이 책을 스웨덴 문화를 알고 싶어서 펼쳤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 나 같은 독자를 말하는 거다. 저자가 느꼈을 컬쳐쇼크나 스웨덴 문화 길라잡이 같은 걸 기대했던 나는 심심하게 전개되는 글에 약간 당황했고 개인적으로 이런 글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 살짝 후회도 했지만 저자가 워낙에 진정성 있게 글을 써서 그런대로 몰입하며 읽을 만했다. 단, 출판 목적으로 집필되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 사이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간극이 있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후자에 가까웠던 지라 확실히 글의 밀도가 좀 낮은 편이긴 했다. 글의 방향성을 탓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심심하게 읽히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과시하듯, 또는 무언가를 어필하려고 안달이 난 글과는 거리가 있어 그에 걸맞게 편하게 읽힌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저자의 딸 선물이가 자폐아 판정을 받고 남편과 이혼하고 직장 사람들과 교류를 나누는 등의 내용이, 저자로선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이 과장되지 않게 편안하게 스며들었다. 근래 겪어본 적 없는 편안하기 이를 데 없는 독서였는데 그래서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덤덤하게 술술 읽을 수 있을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할 거 같다. 스웨덴 관련 책으로는 말고. 개인적으로 따로 한 번 더 언급하고 싶을 만큼 인상 깊은 내용은 없었지만 - 저자의 길이 꽃길인 건 아니지만 저자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잘 정리하고 용기를 내고 있어서 끼어들 틈이 적기 때문인 것 같다.  - 편안한 문체만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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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꼬마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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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예전에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될 때 꽤 재밌게 봤던 작품인데 단행본으로 나온 줄은 최근에야 알았다. 같은 작가의 <PTSD>를 읽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꼬마비의 작품은 단행본으로 접했을 때 더 구성이 알차다는 느낌이 든다. 동료 작가들의 후기를 수록된 것도 재밌고 이 책의 경우엔 작품의 주인공 노조기의 일기가 별책으로 수록돼 기대 이상으로 작품의 여운을 짙게 만끽할 수 있었다. 작품이 10화 안팎으로 완결이 나는 지라 주인공 노조기나 나카무라 후미히메의 내면을 단편적으로밖에 엿볼 수 있었는데 일기까지 접하니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스며들었다. 초판 한정으로 수록됐다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꼭 찾아 읽길 바란다.

 작품의 제목대로 이 책은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형식의 작품이다. 적어도 작중에선 노조기의 내면은 극히 적게 묘사되고 대체로 그의 친구 종원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종원의 시점에서 봤을 때 노조기는 자기만의 도덕적 틀에 갇혀 융통성도 없고 그래서 때로는 타인에게 기만적이기까지 한 인물로 비춰진다. 나도 그러한 시선에 동의하고 노조기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인정한다. 이는 노조기가 나카무라 후미히메에게 푹 빠졌다는 방증일 텐데 일이 이쯤 되니 나는 사랑이란 감정이 꽤 무섭게 느껴졌다. 흔히 사랑은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지만 경우에 따라선 이해불가한 공포를 낳는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현상임을 시사해주는 사례겠다.


 글쎄, 작중 사랑의 형태가 극히 드문 종류의 것이란 걸 확실히 해두고 싶다. <데스노트>로 유명한 오바 츠구미/오바타 타케시 콤비의 또 다른 작품 <바쿠만>에서도 이보단 건전하지만 역시 극단적인 형태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남주와 여주가 10년 가까이 거의 만나지 않다가 서로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 - 모리타카의 만화가 애니메이션화하면 아즈키가 그 작품의 여주를 연기하는 것. - 결혼한다는 건 픽션으로는 아름다울지언정 현실적으로 보면 심히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사랑이다. 픽션 속 트루 러브를 너무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 딴지를 걸 듯한데 트루 러브를 너무 강조하는 픽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건 현실을 등지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싶다.

 물론 <바쿠만>에서도 그렇고 이 작품 <3인칭>도 그렇고 작중 사랑의 형태를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못을 박아두긴 한다. 하지만 <3인칭>이 주제적인 면에서, 그리고 제목에서부터 타인의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잘 강조했다고 본다. 사랑을 떠나서,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그래봤자 3인칭의 관찰자 시점에선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개인적이란 것, 그래서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단 것을 말이다.


 노조기가 AV 배우를 AV 배우인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졌건, 그럼에도 무모하게 도쿄까지 와서 찾아 헤매건 - 자기 기분 나쁘다고 애먼 친구한테 4가지 없게 말한 건 문제지만;; - 그 둘이 결국 만나 단기간이라도 연인 관계였건 간에 노조기를 문제적 인물이라 잣대를 들이대는 게 과연 가당한 일인지 생각해봐야만 한다. 아무래도 별책으로 수록된 노조기의 일기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 일단 처음엔 그림이 없고 글만 있어서 당혹스러웠으나 꼬마비 작가가 문체도 좋아 술술 읽혔다. - 아까도 말했듯 노조기의 일기인 만큼 본편에선 미처 와 닿지 못했던 것과 달리 노조기의 내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진실됨은 물론이고 실제로 AV 배우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유난히 천시당하는 직업군의 사람과 연애를 할 때의 정서적 고충이나 외국에서의 외국인과 살아가는 고충 등을 - 여담이지만 노조기는 돈이 많기도 한 모양이다. 그녀를 찾기 위해 도대체 일본을 몇 번이나... - 현실적으로 잘 그려낸 편이었다.

 본편만 봤을 때는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졌던 이야기가 일기까지 접하니 정말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로 다가왔다. 원래도 나쁘지 않게 본 작품인데 이 일기를 기준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개연성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 설득력을 부여하는 작품인데 <3인칭>이 그에 아주 부합했다. 아직도 노조기의 행보와 그가 일시적으로 맺은 결실이 판타지에 근거했을 뿐이란 건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처음엔 부정적으로 느껴졌던 노조기란 인물의 변화와 성장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끝까지 단편적인 정보만 남긴 채 퇴장했음에도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 나카지마 후미히메의 존재감 덕에 이 이야기는 연재할 때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런 형태의 트루 러브가 아직도 일각에선 잘해봤자 흥밋거리로 소비되고 말 거란 걸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접한 꼬마비 작가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많이 출간됐던데 이 작품을 보니 그 단행본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품들도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수정되거나 덧붙인 내용이 있다면 꼭 다시 접할 가치가 있을 테니까.

그 일방통행이란 말, 들어도 그 사람한테 듣고 싶어. - 9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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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의 사내 필립 K. 딕 걸작선 4
필립 K. 딕 지음, 남명성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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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만약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겼다면 세계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대체 역사 소설의 대명사격인 작품. 이 작품은 단순히 소재만 독특한 게 아니라 대체 역사 소설의 존재 의의에 대해 살펴본다는 점에서 꽤나 남다르게 다가왔다.

 듣기만 해도 흥미로운 설정에 비해 막상 내용은 난해한 편이었는데, 처음엔 내가 독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여겼지만 얘길 들어보니까 원래 필립 K. 딕이 소재는 기가 막히게 뽑지만 문체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은 - 생활고를 위해 글을 빨리 써야 했던 작가라 퇴고를 많이 못했다고 한다. - 작가라고 한다. 글쎄, 난해함과 문체의 부족함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저번에 읽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 작품도 한 번은 더 읽을 가치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작품도 제법 난해했는데...


 추축국이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양분한다는 설정을 처음 들었을 땐 정말 어마어마한 디스토피아물이겠거니 하고 예상했다.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추축국이 인류에 끼친 악영향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데 승전까지 했더라면 그보다 더한 생지옥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중 묘사되는 세계는 생각보다 암울하지 않다. 패권을 잡은 국가가 다를 뿐 흘러가는 방향은 별반 다르지 않았달까. 이 책이 집필된 시기가 한창 미국과 소련이 냉전을 치를 때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 대치 상황을 독일과 일본이 대신하는 양상으로 대체됐다. 역시 예상한 대로 작중 세계에선 인종 말살 정책과 식민지 파괴는 일상이 됐지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적응을 했다는 게 충격이면 충격이었다.

 나름대로 적응을 했을 뿐더러 역시 그 안에서 기득권이 있고 그 기득권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엔 아우슈비츠행을 피해 골격 자체를 수술한 유대인들도 존재했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만 바뀐 채 큰 틀에서 보면 세계가 흘러가는 방향은 엇비슷했는데 - 60년대 SF 소설답게 뜬금없이 우주로의 진출 운운하는 건 사뭇 달랐지만. - 그런 와중에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 라는 소설이 존재 자체만으로 등장인물들 사이에 크게 화두에 오른다. 그 소설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추축국으로부터 승리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체 역사 소설 속의 대체 역사 소설이라니, 마치 거울 속에 있는 거울을 마주한 - 꼭 <이갈리아의 딸들>의 결말이 연상됐다. - 느낌이었다. 그 소설은 작중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시대 자체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하고 세계의 패권을 잡는다는 내용에 매료되고 나치는 물론 일본은 소설 속 내용에 분노하고 수수께끼의 저자를 잡으려고 안달이다. 하지만 그 기득권 안에서도 현재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역시 그 소설에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매료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가장 최선의 세상'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이 있다. 이 말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한 것 같아도 사람 마음이란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풀리는 것이 아니다. 대체 역사 소설이 그냥 역사 소설보다 흥미로운 이유는 소설의 내용을 통해 현실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이상을, 혹은 까딱 잘못했다간 마주했을지 모를 재난을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바뀌지 않는 현실에 때로는 더 큰 실망이나 허탈감을 금치 못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이 다소 난해하게 읽히는 이유는 대체 역사 소설이 현실에 안기는 박탈감을 읽는 사람 마음에 따라 해석이 갈리게끔 결말을 맺었기 때문이 클 것이다. 사실 나도 아직까지 헷갈리는데, 결국엔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서 끝나지 뭔가. 어떻게 보면 등장인물들 중 그 누구의 욕망도 실현되지 못한 채 끝나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는 다르게 보면 우리가 흔히 대체 역사 소설에 기대하는 바를 철저하게 외면한 작품에 대한 반감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흔히 대체 역사 소설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를 좀 더 긍정하기 위해 읽는 것 같은데 이 소설은 어떤 역사적 변수가 있었든지 간에 지금 현재와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말해 여러모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60년 전에도 물론이고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서간 주제의식인데, 참 답도 없는 허무주의긴 해도 대체 역사 소설에 대한 통찰이 정말 허를 찌른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 시대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이게 정말로 60년 전 통찰이란 말인가.


 최근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데 그 드라마도 봐야겠다. 그 드라마도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블레이드 러너>처럼 큰 틀만 같고 별개의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지만 - 아니나 다를까 리들리 스콧이 연출을 했다고 한다. - 그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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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은 채식주의자 짧아도 괜찮아 4
구병모 외 지음 / 걷는사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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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는 특정 주제에 관한 작가들의 짧은 소설을 모은 엔셀로지 시리즈로 이번에 읽은 <무민은 채식주의자> 이외에도 4권이 더 출간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짧은 글은 쓰기도 쉽지 않고 읽는 입장에서도 크게 감명을 받기도 힘들어 경쟁력도 약하고 책이라는 상품으로 만들 만큼의 분량으로 엮어내기도 힘들어 경제적이지도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이런 시도 자체에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글쎄, 좋은 시도이며 엔솔로지의 취지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늘 얘기하는 수록작들의 완성도가 고르지 못하다는 것은 역시나 아쉬운 지점이다.

 그래도 작가 구성이 화려한 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인데 그런 것치고 이 책이 당초 기대했을 성과를 낼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권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야기들이 너무 짧아서 기대에 비해 퍽 와 닿지 못하는 느낌이니까 말이다. 물론 이 부분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구병모 '날아라, 오딘'


 작가가 작가인 지라 수록작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문체였다. 구병모의 글은 오랜만에 읽는데, 이전엔 과대평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 이게 다 데뷔작이 너무나 멋들어진 탓이다. - 실망을 줬지만 이렇게 다른 작가들의 글과 비교를 하니까 확실히 독보적이긴 하다. 전쟁의 도구로 전락한 동물들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는 찰나의 분량임에도 강렬하게 읽혔다. 오랜만에 작가의 다른 글도 읽고 싶어졌다.



 권지예 '미래의 일생'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단어를 바꾸는 추세를 설명함에 있어 꽤 괜찮은 예시가 될 만한 작품을 꼽으라면 난 이 작품의 제목을 댈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내용이었는데 특히 인간과 동물의 수명에 차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잘 시사해줬다. 아마 작가의 경험이 짙게 녹아든 작품이 아닐까 싶다.



 김봄 '살아 있는 건 다 신기해'


 예상과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나 다행이었던 작품. 생명의 무게는 종의 다름이나 크기의 다름과는 무관하다는 교과서적인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것도 햄스터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쓸 수 없는 글일 것 같다.



 김서령 '퐁당'


 이 작품의 경우 분량이 좀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등장인물이나 담겨진 내용도 많고 분량이 평균적인 단편소설 정도였다면 결말의 충격이 배로 컸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용만 따지면 가장 만족도가 높은 수록작이었다. 안락사가 동물은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크나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걸 극명히 표현해낸 수작이다.



 이장욱 '무민은 채식주의자'


 표제작. 이 표제에 끌려 이 책을 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 여담이지만 결국 핀란드로 가기로 했다. - 정작 무민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다. 무민은 그저 이름일 뿐이었다. 아무튼, 무민이고 자시고 간에 작중에서 묘사된 육식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부정적인데 잘못 읽으면 식인을 연상시키기도 해 뒷맛이 아주 나쁘다. 이야기가 하도 기이하게 읽혀서 동물권을 주제로 했다는 느낌까지 희미해질 정도다. 육식을 비판한다고 그게 곧 동물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닐 텐데, 이 글은 너무 앞서 나간 느낌이다.



 정세랑 '7교시'


 육식이 먼 과거의 일이 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소설. 분량에 비해 규모가 상당한 세계관은 인상적인데 그게 다였다. 착안은 좋았지만 표제작처럼 이것도 너무 혼자 앞서 나간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엔솔로지에서 정해진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먼 미래의 이야기는 솔직히 말해 황당했다. 이 작품도 분량이 더 길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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