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클래식 오디세이 5
헤르만 헤세 지음, 뉴트랜스레이션 옮김 / 다상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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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부터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해놓고 이런저런 상황을 핑계로 묵혀두다 이제서야 읽은 책이다.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대표적 작가로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비롯한 많은 저작을 남겼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간한 작품이며 당시 유럽이 겪고 있던 사상적 혼란과 제1차 세계대전의 사회적 혼란기에 발표되었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10살 무렵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선'과 '악'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온하고 온화한 가족 분위기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는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을 느낀다.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삶과 하인들이나 천민들의 삶이 풍기는 공기가 다름을 인지하고 성근 철학적 고민을 시작한다.

 자신을 비롯한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던 라틴어 학교와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던 공립학교,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어울리다 무심코 던진 거짓말은 크로머라는 악의 지배자를 만들고 싱클레어는 크로머에게 끌려다니는 처지에 놓인다. 도둑질을 했다는 거짓말이 불러온 이후의 삶은 싱클레어를 절망에 빠뜨렸으며 크로머의 지배에 저항하지 못한 채 도덕적으로 옮지 않은 행동을 이어가게 된다. 거짓말로부터 시작된 부정행위가 쌓일수록 고민은 깊어지고 평화롭던 가족관계 조차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크로머의 지배로부터 끌려다니며 늘어가는 부정한 행위에 대해 절망하던 시기, 같은 학교에 전학온 '데미안'을 만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동급생들에 비해 나이가 몇 살 많아 였지만 나이보다도 그의 행동거지와 이미지에 매료된다. 우연히 어쩌면 데미안의 의지로, 싱클레어와 크로머의 관계를 눈치챈 데미안은 그만의 방법으로 싱클레어를 크로머로부터 구원해 준다.

 종교 수업을 들으며 데미안과 가까워진 싱클레어, 데미안이 바라보는 종교나 세상은 싱클레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들에 대해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내고 싱클레어는 성장한다.

 김나지움에 입학한 후 방황기를 거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술과 의미없는 무리짓기에 휩쓸려 다니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만난 이름도 모르는 어떤 여인에 대한 사랑을 느끼자 방황을 끝내고 사랑에 집중한다. 그녀를 상상하며 한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완성하고 보니 그녀를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데미안을 닮은 듯, 아니면 자신을 닮은 듯한 야릇한 감상을 느낀다. 그림 속의 대상과 대화를 하거나 꿈에서 만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싱클레어는 차츰 무엇인가를 깨달아 간다.

 피스토리우스, 그는 유명한 목사의 아들로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깊은 사색을 통해 종교적 맹신의 불편한 단면과 이해불가함에 부딪혀 번뇌하고 결국 자신은 목사로서 누군가에게 신앙을 전파할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음을 깨닫고 음악가로 전향한다. 싱클레어에게 피스토리우스는 겉모습만 바뀐 데미안이었고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서 배운 내면을 보는 법과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다시 배운다.
 아브락사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고결함과 불결함을 동시에 지닌, 그런 신의 존재를 깨우친다. 싱클레어는 점차적으로 데미안이 제시한 낱말(아브락시스)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선다.

 싱클레어는 사색이 깊어지고 내면을 바라보는 힘을 키워갈수록 피스토리우스가 이야기하는 가르침의 공허함을 깨닫는다. 피스토리우스에게 지식은 있지만 깨달음은 없음을 간파한 것이다.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를 들여다보고, 그를 지나쳐 더 높은 무엇인가로 진화하기 위해 세계를 뚫는다.
 피스토리우스라는 안내자를 만나 보다 깊은 내면을 통찰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지만 싱클레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명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어두운 심연에서 고독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한차례 여행을 다녀온 후 대학에 입학하지만 대학 수업과 동급생들의 모습은 무료하고 한심했다.

 그런 차에 다시 데미안과 조우한다. 
 그리고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에바부인)을 만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자유, 영혼, 행복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대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지한 짓인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란 완전히 자기 자신을 느끼고, 알고, 내면의 소리에 몰입하여 사는 것에서 비롯됨을 알게된다.

 이러한 깨달음을 인지한 자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이끌린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싱클레어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의 쪽지'는 카인의 표적과 함께 소설 <데미안>에 흐르는 주제란 생각이 든다. 싱클레어가 10살 소년에서 청소년으로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인으로의 정신적 성장은 하나의 세계를 뚫고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카인의 표적'을 지닌 자들을 만나 자신과 세상의 본질을 알아가는 과정이되기도 한다.

 꿈속에서 보고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삼았던 성별도,나이도 불분명한 대상은 싱클레어가 만나본 적도 없는 데미안의 어머니 모습이었고 그것은 싱클레어도 '카인의 표적'을 지닌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그림에서 느껴졌던 대상들 데미안, 데미안의 어머니, 싱클레어 자신 등 모두가 카인의 표적으로 엮인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공유했으며 상대에게 전달하거나 전달받을 수 있는 지적 성숙을 이룬 자들이었다.

 데미안이란 책에 대해 처음 들었던 건 고등학생 때였으니, 내가 이 책을 읽는데 20년이 넘게 걸렸지만 다른 분들은 좀 더 일찍 접했으면 좋겠다. 헤르만 헤세 자신의 자전적 요소를 가미한 이 소설에서 나는 지적 깨달음을 얻은 어떤 철학자가 제시한 교훈과 같은 가르침을 받았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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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 스티븐 투겔 밀스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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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로부터 언어란 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축복으로 간주되었고 인간만의 특징이라 생각되었다. 유인원이 추상적 사고를 하고 필요한 경우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실험을 통해 여러차례 밝혀졌지만 '언어'는 별개의 영역으로 치부되었고 인간 외의 종이 언어를 구사한다는 믿음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저자 로저 파우츠도 마찬가지 견해를 품고 있던 상태에서 워쇼를 만났고 인간과 유인원의 경계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됐으며 평가절하된 유인원의 능력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유명한 실험 과학자 앨런 가드너 부부가 기르는 어린 침팬지 '워쇼'를 만난 것을 계기로 로저 파우츠의 침팬지 사랑은 시작된다. 로저가 워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워쇼)는 두 살에 불과했고 인간 아이와 같은 성장 과정을 겪고 있었다. 생후 1년 무렵부터 시행된 가드너 부부의 수화교육으로 로저가 워쇼를 처음 만났을 무렵 워쇼는 간단한 몇개 단어와 단문을 수화로 말할 수 있었고,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표현가능한 단어와 문장은 다양해지고 있었다. 워쇼는 인간 아이처럼 배변 훈련을 통과하고 각종 놀이를 할 수 있었으며 상대의 마음을 예측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보였다.


 가드너 부부는 인간이 어렸을 적 언어를 배우듯 조작적 조건화 기법을 사용해 워쇼에게 수화의 기본을 가르친 후, 실험자들이 워쇼 주변에서 수화로만 대화함으로써 워쇼에게 수화노출을 증대시키는 환경을 조성했다. 영민한 유인원 워쇼는 가드너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습득했으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대화에 응용하는 요령을 터득한다. 반복을 통해 단순히 특정 동작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혼자 있을 때나, 잡지를 읽을 때, 대화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인간이 말을 사용하듯 워쇼는 수화를 사용했다. 인간의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고 성장하면서 창조적 사고를 키워나가듯 워쇼도 기본적 수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장을 사용했고 경우에 따라 인간보다 뛰어난 사고를 보이기도 한다(예를 들어 '냅킨'이라는 수화를 배운 적이 없음에도 추리를 통해 '냅킨'이란 수화를 맞춘다).


 비록 수화, 얼굴 표정, 몸짓 등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워쇼의 언어는 분명 대화가능한 상태까지 발전했고 인간만의 축복이라 여겨지던 언어에 대한 편견을 지우게 했다. 워쇼는 다섯 살이 되자 132개의 수화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 그보다 훨신 많은 수화를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를 조합하여 배운 적이 없는 창조적 문장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단어를 배우고, 주어구(저 열쇠)와 동사구(나 열어)를 거친 후 수식어구(검은 개)가 뒤따랐으며 마지막으로 경험이나 감각을 나타내는 구(꽃 냄새)가 뒤따랐다. 이는 인간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한 경로로 수화를 익혀나가는 것이었고, '노엄 촘스키'같은 언어학자들이 (유인원이 아닌) '인간은 언어 습득 장치(언어 기관)가 뇌에 내장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란 주장을 반박하는 결과였다.


 워쇼가 5살이 되자 통제가 힘들어졌으며, 워쇼의 거주지 근처에 쇼핑몰이 들어설 계획이 수립되는 등 적잖은 변화가 일자 앨런 가드너는 워쇼를 오클라호마 대학의 유인원 연구소로 보낼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동반자(보호자)로 로저를 택한다(가드너 박사가 택한 것인지 워쇼가 택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유인원 연구소의 총책임자였던 레먼은 로저가 생각했던 학자의 모습이 아닌 폭군이었고 상업적이였다. 그로부터 워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로저는 워쇼와 어린 침팬지 4마리를 작은 섬으로 이동시킨다.


 4마리 침팬지는 고집 센 셀마, 가여운 신디, 당당한 브루노, 뇌가 두 개인 부이였다. 워쇼는 이들과 어울리며 수화를 가르치기도 하고, 본인이 침팬지의 몸짓 언어를 습득하기도 했으며, 영어로 된 음성언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그리고 7개의 수화동작을 요하는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로저는 이 어린 침팬지 무리를 돌보며 워쇼가 특출난 천재 침팬지여서가 아니라 다른 침팬지들도 수화를 배울 수 있으리란 가설을 세우고 수화를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결과는 로저의 예상대로 (개인차가 있긴 했지만) 침팬지들은 수화를 습득할 수 있었으며, 습득 속도와 방법은 성격, 성장 환경 등의 요인에 의해 다양하게 나타났다.


 로저는 근처에 있는 '침팬지를 교차양육 중인 가정'을 방문해 수화를 가르치는 시도를 추가한다. 로저의 바램과 예상대로 침팬지는 확실히 수화를 이용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며 단순 정보의 전달을 넘어 감정표현, 논리적 사고, 필요에 따라 거짓말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로저가 워쇼와 4마리 친구들이 사는 섬에 다른 침팬지(교차양육을 하다 사정에 의해 파양당한 경우 등)를 데려왔을 때, 침팬지들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자기들끼리 있을 때조차 수화로 의사소통 하는 모습을 보였다. 분명 언어는 인간만의 도구가 아니었다. 인간이 자만했거나 무지해서 다른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침팬지들은 인간처럼 상대방에 따라 대화의 형태, 즉 격식을 갖출 줄 알았고 선생님 앞에서, 친구 사이에, 자신보다 높은 위계를 가진 침팬지에게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였다.


 침팬지와 교감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과학자로서의 입장'과 '침팬지를 사랑하는 양부모로서의 입장' 사이에서 갈등한다. 레먼과 같은 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드너 부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과학자로서의 위상에 가중치를 뒀지만 로저는 그럴 수 없었고 침팬지들의 처우 개선과 이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사회에서 자란 워쇼와 같은 침팬지들이 아프리카 밀림에서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접하고 단념하게 된다.
 차선책으로 침팬지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싶어했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고 원치않는 현실과 타협해야하는 자신에 무력감과 회의감을 느끼고 침팬지들에 강한 연민을 느낀다.

 워쇼는 두 차례 출산을 했지만 불운하게도 두 아기 침팬지는 생존하지 못했고, 두 번째 아이가 죽자 워쇼는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로저는 워쇼에게 힘을 주고자 다른 연구소에서 생후 10개월된 아기 침팬지 '롤리스'를 입양한다.

 "수화를 할 수 있는 침팬지는 자녀에게 수화를 가르칠까? 그리고 그런 부모밑에서 자란 어린 침팬지가 수화를 배우게 될까?" 라는 의문이 뒤따랐고 이것은 롤리스를 통해 풀리게 된다. 양부모인 워쇼와 앨리는 롤리스에게 수화를 가르쳤고 롤리스는 수화를 배우고 이를 응용해 의사표현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인원에게서 언어가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는 중요한 발견이 확인되었고 역시 언어는 인간만이 것이 아니란 방증이었다.


 철저한 상업주의자인 레먼의 마수를 벗어나 워쇼와 롤리스에게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주를 준비할 무렵 모자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합류했고 CWU(Cetral Washington University)에서 제공한 안락한 공간으로 이주한 후 다시 다르와 타투가 합류함으로써 총 5마리로 구성된 침팬지 사회가 구성되었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고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했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고 존중하는 작은 사회공간이 형성되었다. 인간처럼 침팬지 또한 사회적 동물이고 공동체 내에서 화합해 살 수 있는 지적 생명체임이 드러났고, 이들의 의사소통에 수화, 즉 언어가 사용되었다.


 침팬지가 인간의 예상보다 높은 지적 수준과 언어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사회적 동물임이 증명되었지만 동물 실험(특히 의학적 용도로 시행된)은 꾸준히 증가했고 침팬지의 권리는 보통 무시당했다. 그저 실험용 도구로 여겨졌으며 열악한 실험실 감옥에서 침팬지들은 정신 질환을 비롯한 질병과 공포에 시달렸다. 제인 구달과 로저는 이런 침팬지의 권리를 주장하고 침팬지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해 보지만 이해관계자(국립 보건원, 제약 회사, 기타 연구 시설)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히 좌절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유인원의 권리 따위보다 당장 소요될 '돈'에 훨신 큰 의미를 뒀다.


 CWU에서 제공한 우리는 안전하긴 했지만 실내공간이라는 제한점이 있었기 때문에 워쇼 가족에게 실외생활을 겸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로저는 15년이란 긴 시간을 들여 기금 마련과 공사를 거쳐 실외 우리를 만들어 워쇼 가족을 이주시킨다. 그리고 그 공간의 이름을 <침팬지 인간 커뮤니케이션 센터>라 정한다.

 

 로저가 침팬지를 연구하며 이들이 '인간의 친척이고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진 후로, 점차적으로 침팬지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고, 침팬지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사회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친척인 침팬지를 위한 합법적 보호 규범이 만들어지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적절한 우리가 만들어져야 하며, 침팬지가 여생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동물을 학대하고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성과, 윤리적 차원에서 허용 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할 때라고 말한다.

 자신이 침팬지 연구에서 지대한 업적을 쌓은 학자로 불리기보다 침팬지를 사랑한 인간으로 대우받기를 원한 것이다.





 로저 파우츠의 <침팬지와의 대화>를 접하기 전까지 침팬지에 대해 내가 알고있는 수준은 아프리카 열대 우림, 타잔의 치타, 영리한 동물, 영장류, 원시 인류의 형제, 사회적 동물이란 정도였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쓰며 다시 바라본 침팬지는 인간과 지적 능력을 공유하는 인간의 친구 혹은 다른 형태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추가할 수 밖에 없었다. 침팬지(Chimpanzee)라는 단어의 어원이 '가짜인간'이라는 콩고 방언에서 왔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서아프리카 열대 우림에 사는 원주민들은 유전자 분석이 이루어지기 수천 년 앞서 이미 침팬지가 인간의 조상이나 형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ABC방송 기획으로 로저가 13년 전 헤어졌던 침팬지 친구, 부이를 만났을 때 부이는 로저가 기억하지 못했던 사소한 추억까지도 기억하고 있었고 이것이 로저에게 한없는 무력감과 자책감을 안겨주었듯,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는 침팬지들의 처우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공유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주항공 과학이나 의학적 실험을 위해 필요한 어린 침팬지를 얻는 방법,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이송하는 과정, 실험실의 상태, 실험자의 태도 등을 접하며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운 생각이 앞섰지만, 동물 실험이 필수적인 분야가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기에 동물실험의 허용범위에 대한 고민을 같이하게 된다. 인체에 가해지는 실험에 대해 발표된 헬싱키 선언(Declaration of Helsinki)처럼 실험동물에 관한 윤리 강령이 마련돼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한 점검과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열린책들' 출판사와 <침팬지와의 대화>란 제목을 보며 침팬지와 대화를 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까, 어떤 방법으로 교육시켰을까 등 객관적 지식에 대한 욕구를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로저 파우츠가 의도한 바는 내가 기대했던 지적 보고서가 아닌 '가족으로서의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와 '인간의 친척들'에 대한 윤리와 도덕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로저 파우츠에게 존경과, 2007년 세상을 떠난 워쇼에게 명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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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앞에서 떨지 않고 말하게 해주는 책 - 상대방을 사로잡는 강력한 화술!
카나이 히데유키 지음, 최현숙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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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었다. 공부는 곧잘 했음에도 모든 발표 자리는 내게 가시방석 이상이었다. 혼자 있거나 가족과 있을 때는 증상이 없거나 덜하다가, 낯선 이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하거나 발표를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여지없이 더듬거리거나 말문이 막히고 긴장감은 극에 달해 심장은 쿵쾅거렸다.

 나이를 먹으면 좋아지겠지란 막연한 희망도 있었지만 직업적 이유로 말을, 특히 정보전달을 잘해야하는 처지였던 내게 말더듬증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교 재학 중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말더듬을 개선시키려 시도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위안이 되었을 뿐 실질적으로 말더듬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이제 40대에 들어선 지금, 이전에 비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남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정보전달을 할 때 더듬고 떨게 된다. 특히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의 발표는 더욱 그렇다.  
 
 책의 제목을 보며 지난 30년이 떠올랐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콤플렉스가 다시 떠올랐고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며 펼쳐 보았다. 
 <남앞에서 떨지않고 말하게 해주는 책>은 말더듬을 교정하는 목적보다 발표, 사회, 축사 등의 자리에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요령을 담고 있지만 책을 읽다 보니 말더듬에 적용해도 효과가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는 기능상의 문제는 없으나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말더듬, 홍조, 떨림 등의 증상이 생기고 저자는 이런 증상을 '심장신경증'이라고 표현했지만 의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사회불안증'이 더 적절하다. 심리적 영향으로 기능적 이상이 초래되는 경우로, 남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발표에 대한 두려움이 과도하게 작용하여 평소에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거나 평소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쉽게 하지 못하는 상황을 야기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 증상은 다양하지만 메커니즘을 따져보면 지나친 긴장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저자는 쉽게 할 수 있는 8가지 긴장완화훈련을 추천한다. 
 1.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켜라.
 2. 누구나 긴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3. 다른 사람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라.
 4. 발표자리를 의도적으로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도전하라.
 5. 남과 비교하지 말라.
 6. 발표 준비를 철저히 하라.
 7. 긴급하게 발표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템포를 찾아라.
 8. 경험이 중요하다. 반복 훈련을 통해 긴장도를 낮춰라.

 이 8가지 사항을 3개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첫째, 발표할 주제에 대하여 공부하고 준비한 뒤 소리내어 연습해라.
 둘째,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을 믿어라.
 셋째, 연습을 반복해라.

 발표를 잘하기 위해, 긴장도를 낮추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발표 방법 또한 중요한 역활을 한다. 보통 3단계 화법(서론, 본론, 결론)을 사용하는 것이 쉽고 그 중에도 전후결형(주제가 서론부와 결론부에 등장하는 형태)이 유용하다. 일상에서 대화나 발표의 주제가 될만한 소재를 찾는 노력(관찰, 메모 등)이 필요하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말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소재를 찾고 줄거리가 잡았다면 반복적인 리허설을 해봄으로써 긴장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말의 속도도 중요한데 한 마디, 한 마디를 천천히 분명하게 내뱉어야 한다. 말을 더듬는 사람 중에는 자신감이 없고 높은 긴장 상태에서의 두려움 때문에 말을 빨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수록 말은 더 막히고 더 더듬게 되며 자신의 리듬을 상실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 좋은 발성과 발음, 그리고 음성표현(억양, 간격, 악센트, 리듬)에 대한 연습을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말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수없이 반복훈련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좋은 발표를 할 수 없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인위적으로라도 긍정적 자기 암시를 심어주는 것이 발표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두려움으로 회피만 거듭한다면 결코 현재보다 나아질 수 없으며 도전에 직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남앞에서 떨지않고 말하게 해주는 책>을 다 읽었음에도 내게 어떤 변화가 있으리란 확신은 없다. 그럼에도 본문에 등장했던 긴장완화훈련은 적잖은 도움이 될거같은 기대가 남는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온라인 공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결국 실생활(특히 직장생활)에서 발표와 대화는 그 사람의 능력치를 반영하고 인성을 드러내는 척도라 여겨진다. 일상 생활에서 남들과, 남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말을 잘하는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반대되는 경우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의 노력이 필요하다.

 난 매일 20여명의 사람들과 대화나 면담을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의도적으로 피하곤 하지만 발표를 해야하는 자리도 종종 생긴다.
 내 상태를 다시 한번 직시하고 내게 발표가 주어졌을 때 도망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준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한다.
<남앞에서 떨지않고 말하게 해주는 책>을 읽음으로써 첫술에 배부를리 없다는 것을 알고 꾸준한 반복과 노력을 이어가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나와 같은 고민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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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세기의 종언 - 아시아의 전쟁 위험 및 경제·무역·정치·인구 문제 대해부
마이클 오슬린 지음, 김성윤 옮김 / 오르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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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전문가인 저자는 최근 아시아에 감도는 긴장감을 분석하고 현명한 위기대처법을 제안한다. 북핵의 위협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싸드를 빌미로 중국의 경제 보복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서양 문명이 세계를 지배한 이래로 아시아는 세계무대의 변방으로 여겨졌지만 1970년대 일본의 비약적 성장은 세계에 아시아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으며 한국, 싱가폴, 대만 등이 일본의 뒤를 이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고  최근 20여 년은 중국이 아시아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아시아는 전세계의 절반의 면적, 60%의 인구, 전세계 생산량의 40%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중요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이 발전 중이고 향후 더 큰 발전을 거듭하리란 낙관적 전망에 가려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은 아시아가  안고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이다. 전쟁의 위험, 경제 침체의 위험, 정치적 대변동의 위험 등이 그것이다.

 아시아가 안고 있는 위험을 지도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치명적 위험은 전쟁가능성이다. 최근 중국이 세계의 강자로 급부상하며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고, 과거 아시아 대륙을 지배했던 것처럼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재편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당연히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으며 영토와 영해를 둘러싼 갈등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전쟁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중이다.
 아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아시아 대륙 내 국가 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내전이나 국지적 분쟁 정도는 수차례 있었지만 이것들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국가발전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최근 중국의 부상과 함께 중국에서 비롯된 이웃국가들과의 국경분쟁은 아시아 국가들의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더 많은 무기를 축적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는 국간 간 긴장감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역사를 토대로 서로 신뢰하지 않으며, 특히 중국에 대한 신뢰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잦은 분쟁은 최악의 경우 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은 아시아의 안보에 커다란 위협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은 중국을 제외하고는 친구라고 부를만한 국가가 없으며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폭탄 소형화 성공을 실현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간 북한이 저질러온 만행으로 인해 주변국들의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을 제외하고도 인도와 중국, 중국과 대만,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과 필리핀,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일본 등 영토와 영해에 대한 분쟁의 실마리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갈등만 쌓이고 있다.


 갈등관계를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나토(NATO)나 EU같은 정치적 합의체의 부재는 아시아 대륙의 갈등해결이 어렵고 오히려 점점 깊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시아에는 왜 이런 실질적인 국제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역사를 돌아봤을 때 볼 수 있는 전쟁과 식민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상호불신과 아시아 대륙의 각 나라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형태에 기인한다. 아시아의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을 예로 들자면 일본은 20세기 초중반 잔혹한 침략행위를 자행했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사과가 없는 형편이고, 국가 성장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의 입김이 약해졌다. 중국의 경우 주변국과 영토, 영해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특히 경제적 성장을 이루며 힘을 획득하자 노골적인 횡포를 부리고 있으며, 중화사상에 기초해 주변의 소국을 무시하고 윽박지르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내에서 신임을 기대할 수 없다. 아세안이란 연합체가 구성되고 정기모임을 갖고 있으나 실효성은 미비한 상태이므로 명목상의 기구라 볼 수 있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서양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지 1세기도 지나지 않은 정치적 미성숙 또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기구의 부재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지난 반세기와 달리 현재 아시아의 경제성장은 둔화되거나 정체되고 있다. 고성장의 시대는 끝났으며 어떤 국가들에게서는 현대화가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불균형 성장, 자산 거품, 잘못된 투자, 노동 문제,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 등에서 기인한다.
 아시아의 성장을 이끌었던 일본과 중국의 고성장은 이미 끝났거나 끝나고 있다는 점,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안정적인 중산층을 형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인도 경제성장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현실로 다가왔다. 수십년 평화의 시기에 쌓아올린 경제적 성장은 한계의 벽에 부딪쳤고 각 나라는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는 풍부한 노동력, 즉 인구를 바탕으로 급성장을 이루었지만 현재 일본과 한국같은 나라는 인구감소와 노령화가 문제가 되고, 인도나 동남아 국가는 인구 급증이 문제가 된다. 각 국가들은 인구를 부양할 시스템이 부족하거나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한 위기에 처해 있고, 이에 대한 해결은 쉽지않아 보인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의 선진국은 인구 감소, 특히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노령인구 증가로 고민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가 짊어져야할 사회비용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킨다. 중국 또한 인구 감소와 노령화 사회를 걱정하는 형편이며 국가 규모와 변화 속도로 비춰볼 때 충격 또한 클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이 국가 발전을 핑계로 방치해온 심각한 환경오염은 추가적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인도나 동남아 국가의 대부분은 증가하는 인구를 고민하고 있다. 젊은층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교육제도와 직장의 부족은 인구 증가로 인한 국가 불안정성을 높인다.
 인구문제로 고민하는(과잉이든 부족이든 상관없이) 아시아 국가들은 필요한 수준의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국가적 빈곤과 정치적 불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불안정성도 아시아가 안고 있는 위험 요인이다. 독재국가인 중국과 북한을 비롯한 태국 베트남 등이 정치적 불안정에 기여하고 있고 국가 성장률이 하락했을 때 혁명적 시위로 이어져 정권 붕괴로까지 이어질 소지가 있다.
 중국은 외적인 성장에 가려진 정치적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 약간의 자유민주주의의를 가미했지만 실상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며 소수 권력자에 의한 통치 하에서 민중은 통제와 억압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이다. 정부의 투명성, 사법권의 독립, 성숙한 시민의식이 맞물려 사회적 신뢰가 쌓일 수 있는데 중국은 어느것 하나 제대로 갖고있지 못하다. 중국과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하에 있는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는 중국의 정치불안정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중국의 정치적 불안정이 표출되었을 때의 파장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
 일본은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았지만 버블이 붕괴된 후 장기적 경기침체를 겪고 있으며 국민들은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거나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자민당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정책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사그라들 것이고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로부터 무관심해지는 동기가 될 수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상태이다.
 한국의 경우 민주주의가 정착하긴 했으나 국론 분열과 사회갈등은 높은 수준으로 남아 있다. 특히 정치와 경제의 부패는 국민의 신뢰를 갉아 먹고 사회 불안을 가중시킨다. 게다가 북한이라는 시한폭탄의 존재는 언제고 한국을 뒤흔들 수있는 위험요소로 꼽힌다. 청년층은 역동성을 잃고 회의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부의 대물림이나 신분상승의 차단과 같은 현상은 한국의 국민들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정치적 안정성과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분쟁의 위협, 정치공동체의 부재, 경제개혁의 실패, 인구학적 압력, 그리고 미성숙한 정치체제는 향후 아시아 세기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의 불안은 세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미국은 기존의 아시아 동맹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군사력 보강을 선보임으로써 분쟁의 불씨를 억제하고 새로운 동맹국을 참여시킴으로써 아시아의 안정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아시아 여러나라와 분쟁을 일으키는 중국을 견재하는 수단이 될 것이고 나아가 상호교류를 촉진해 아시아 여러나라가 부강해지는 첩경이 될 수 있다.
 전쟁이 갑작스런 붕괴와 파괴를 일으키는 요인이라면 경제는 중기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은 아시아의 중심 국가의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현대화조차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의 합심과 국가의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의 정착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경제적 불안이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불안정을 예방할 수 있다. 물론 자국의 이익증진과 아시아의 안정화를 위해 다른 국가와의 긴밀한 공조도 필요하다.
 자유무역협정의 확대는 장기적으로 참여국 대부분에 수혜를 가져온다. 근시안적 접근으로 인한 보호무역이나 부정부패, 부당한 세제 등은 생산성과 효율을 떨어뜨리고 결국 국가성장을 저해한다.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적 교류를 활성화 시킴으로써 국가발전을 이루게되면 정치적 불안요소도 줄일 수 있다.
 아시아 국가들에 내재된 정치적 혼란은 장기적 위험요인으로 꼽을 수 있고 역사에서 정치적 혁명이 불러일으킨 참사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1933년 나치의 부상, 1949년 중국 공산당 혁명 등을 돌아봤을 때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민주주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민주주의의 확산은 평화적 분쟁해결을 가능케하고 건강한 협력을 통한 위기대처능력을 향상시킨다. 민주주의의 성숙을 경험한 한국, 일본, 인도 등이 앞장서 아시아 사회의 민주주의 확산을 촉진하고 민간에서도 활발한 NGO 활동과 국적을 뛰어넘는 교류를 통해 자유화를 보급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아시아 세기의 종언은 현재 아시아의 위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최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동반자는 없다는 진부한 격언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자국을 수호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현명한 치정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의 성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한 이기심의 표출은 <지리의힘>에서 팀 마샬이 제시한 것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며 이를 견제하기 위한 효율적 수단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라 보여진다.
 전작권 회수나 자주국방을 부르짖는 이상론자의 선동에 휘말리지 않고 냉철한 시각으로 상황을 관찰하고 한국만으로 한계가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굳건한 한미일 동맹과 기타 주변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중국의 이기적 팽창과 북핵의 위협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난 책을 읽고 인상깊다고 여겨질 때면 출판사와 옮긴이를 알아본다(물론 제목과 저자는 그전에 살핀다). 내가 널리 알려진 고전을 생각할 때 민음사를, 무게있는 고전은 비봉출판사를, 근현대 인문학은 김영사를, 쉽고 가벼운 주제는 열린책들을, 문학에 관해 문학동네를 떠올리게 되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오르마출판사의 서적은 이 책을 포함해 겨우 두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전문가와 강적들>이나 <아시아세기의 종언> 모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현대 인문사회 분야를 다루는 더많은 책이 출간되기를 기대하고 몇 년 뒤 현대 인문사회를 논하는 책을 생각할 때 오르마출판사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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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2 서양철학사 2
군나르 시르베크.닐스 길리에 지음, 윤형식 옮김 / 이학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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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읽었던 <서양철학사 1권>에 이은 <서양철학사 2권>을 이제야 소개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책들을 읽느라 몇번의 다음을 기약한 후 최근에야 다 읽게 되었다.

 동양 철학은 한국 사회의 윤리의식에 대한 기초를 제공하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접하는 많은 '인간다움'을 논하는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근본으로 남아 있어 친숙하게 다가서고 이해할 수 있지만, 서양철학은 중등 교육 이후로 꾸준히 접한 철학자와 철학사조임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깊이가 낮고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어보고자 구매했을 때 두터운 두께가 암시하는 분량과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에 지레 겁먹고 대안으로 택했던 것이 이번에 소개하는 군나르 시르베크와 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백 명이 넘는 철학자들은 내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이 책이 전달해준 서양철학에 대한 개괄적인 느낌은 내가 다른 서양 철학을 접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 것 같다.


 다른 역사서도 그렇지만 철학사를 논하는 많은 책들은 나와 같은 뜨내기 독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따로 놓고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고 철학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얻기도 하지만 몇 일, 몇 주가 흘렀을 때 남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내가 <서양철학사 1권>을 읽은 지 몇 개월 정도가 흘렀지만 솔직히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만큼 단편적 지식만이 남아있다. <서양철학사 2권>을 읽은 직후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몽테스키외로부터 하버마스까지 많은 철학자가 스쳐갔고 읽는 도중에는 그들 하나하나를 눈여겨 봤고 이해했다고 착각했지만 책을 덮고 나니 안개 속이다.


 내가 철학사를 꿰뚫고 철학자의 모든 사상을 이해하고자 철학서를 읽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허무함과 무력감을 느끼긴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멀리하자는 생각보다는 학생 때부터 반복학습의 위대함을 느껴왔던 우둔한 나의 경험에 비추어 여러 번의 정독을 통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란 기대를 품고 올해가 가기 전에 한차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이 서양철학사에 관심은 있으나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군나르 시르베크 등이 지은 <서양철학사>는 좋은 안내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주제의 특성상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0세기 중후반 까지의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쉽게 정리했기 때문에 '적어도' 책을 읽는 그 순간에는 철학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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