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개념 따라잡기 : 미적분의 핵심 - 지식 제로에서 시작하는 지식 제로에서 시작하는 개념 따라잡기 시리즈
Newton Press 지음, 이선주 옮김, 다카하시 슈유 감수 / 청어람e(청어람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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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의 핵심>은 수학 문제를 나열한 책도 아니고 수학 문제를 쉽게 풀도록 유도하는 책도 아니다. 대부분의 지면을 미분과 적분의 정의와 원리를 소개하는데 사용하고 미적분의 탄생 배경과 현실 응용에 남는 부분을 할애한다. 떄문에 원리를 이해한다면 1시간 내에도 완독할 수 있다. 


아이작 뉴턴(1642-1727)은 1665년 런던에 유행하던 페스트를 피해 고향으로 돌아가 연구하던 1년 가량의 기간동안 미적분학, 만유인력의 법칙, 빛의 이론을 연이어 발견했다. 뉴턴의 이름 앞에 붙곤하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위대한 업적들을 단기간에 쌓인 것이다. 


16-17세기 유럽은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전쟁이 빈발하던 시기로 총탄이나 포탄의 궤적을 미리 파악해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해 고민하던 때였다. 발사된 포탄의 궤적은 전체적으로 포물선을 그리는데 포탄의 진행방향은 중력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게 된다. 단순히 포탄의 궤적을 나타내는 함수를 발견하는 것으로는 특정 순간에 포탄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설명하지 못했다. 운동하는 물체의 매순간의 이동방향을 알려면 접선에 대한 개념이 필요했는데 데카르트와 페르마도 이 '접선 문제'를 생각하긴 했으나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 점을 지나는 접선을 긋기 위해서는 접선의 기울기를 알아야 하는데 원(circle)이라면 원 위의 한 점을 지나는 직선 가운데 원의 중심으로부터 직각인 직선이 접선이 되지만 포물선의 접선은 그런 방식으로 구할 수 없었다. 뉴턴은 좌표에 그려진 '곡선이나 직선은 시간에 따라 작은 점이 움직이는 자취'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극히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오미크론이란 기호를 고안해(나중에 극한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곡선 위를 움직이는 점이 어느 순간에 점 A에 있고 오미크론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움직이는 점은 A'에 위치하기 때문에 직선 A-A'의 기울기를 알면 점 A에서의 접선을 구할 수 있었다. 즉 곡선을 한 없이 점에 가까운 직선의 모임으로 생각하고 접근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곡선의 함수를 알면 곡선 위의 점 A의 좌표(x, y)를 알 수 있고 오미크론(O에 가까운 한없이 짧은 시간)이 지난 후의 점의 위치인 A'의 좌표(x+op, y+oq)도 구할 수 있으므로 기울기를 얻어 접선을 구할 수 있다.  


뉴턴의 방법으로 기울기를 구하면 접선의 함수를 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생긴 함수를 '도함수'라고 하고 도함수를 구하는 것을 '함수를 미분한다'라고 한다. 함수를 미분할 때 '(프라임)을 사용하고 대신 dy/dx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표기는 뉴턴과 함께 미적분법의 창시자로 알려진 라이프니츠가 고인한 것이며 여기서 d는 differential의 머리글자다.  


적분법 개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BC 287-212)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키메데스는 소진법(method of exhaustion)을 사용해 포물선과 직선이 만나는 영역의 넓이를 구했다. 독일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도 적분개념을 사용해 '케플러의 제2법칙(행성이 태양을 공전할 때 일정한 시간 동안 만드는 공전궤도의 면적은 항상 같다)'을 찾아냈다. 케플러는 아르키메데스가 한 것과 유사하게 부채꼴의 면적을 작은 삼각형으로 무한히 나누었다가 다시 더하는 방법으로 계산했다. 


17세기 들어 카발리에리와 토리첼리가 적분법의 개념을 발전시켜 직선이나 곡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의 넓이를 구하거나 입체의 부피를 구하는데 활용했지만 어떠한 곡선에나 적용가능한 일반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뉴턴은 적분이 미분과 역의 관계임을 알아냈고 미분법과 마찬가지로 적분법도 일반적 적용이 가능해졌다. 적분과 미분이 서로 역의 관계이므로 만약 f(x)라는 함수를 적분한다는 것은 미분해서 f(x)가 만들어지는 함수를 찾는 과정과 마찬가지가 된다. 즉, F(x)를 미분하면 f(x)가 될 때  f(x)는 F(x)의 도함수이고 f(x)를 적분하면 F(x)가 되는데 F(x)를 f(x)의 원시함수라고 한다. 


적분에는 긴 'S'자 모양의 인티그럴(∫)이라는 기호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합계를 의미하는 summa의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며 미분법의 dy/dx와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에 의해 고안되었다. ∫ydx는 가늘고 긴 사각형의 넓이[y(세로축) x dx(가로축)]의 합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적분이 어떤 함수의 만들어내는 면적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범위를 지정하여 그 범위의 면적을 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x축의 a와 b 지점(a<b)과 함수가 이루는 면적을 구하는 것은 원시함수인 F(b)에서 F(a)를 뺀 것과 같다. 이 때 'F(b)-F(a)'를 a서 b까지의 정적분이라고 한다. 




영특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또는 나처럼 뇌가 정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 미적분법의 탄생과 원리를 아주 쉽게 설명한 책이다. 개념과 원리에 치중하여 미적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 쓰여졌으며 여기서 얻은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미적분학으로 건너가길 소망하는 책이라 느껴졌다. 


수험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수학은 참 오묘한 학문이었다. 한 문제에 붙들려 낑낑대던 수고는 해답을 발견해냈을 때 얻는 희열로 씻어지고 새로운 문제를 찾게 만들었다. 수학을 잘하고 못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모든 인간은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다. 수학이란 숫자라는 문자를 사용해 논리적 사고를 펼쳐 자신과 대화를 주고받는 학문이라고 느낀다. 마치 철학처럼. 수학과 철학은 동떨어져 보이지만 사용하는 도구(말, 글, 숫자 등)만 다를 뿐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해답(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적분의 핵심>은 수학에 관심이 없었던 초심자가 읽어도 이해할만큼 친절하게 쓰여있다. 미적분에 대한 개념을 얻기에 아주 유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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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최신 완역판) -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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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 예술 분야의 천재가 시대를 넘어 영향을 끼치듯이 역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순간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역사를 결정짓는다."



역사를 읽다 보면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해 역사에 길이 남을 획을 긋거나 흐름을 바꾸는 일을 하곤 한다. 이런 중요한 순간이 개인의 초월적 능력에 힘입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운명이라고 해야할 지, 우연이라고 해야할 지 애매한 경우도 있다. 우리가 접하는 역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승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고 사가의 주관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없는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해석함에 이견이 존재하고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옮고 그름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세계사를 좌우할만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말해보라 한다면 각자의 지식에 기반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폭넓은 세계사적 지식을 기반으로 누구나 공감할만한 위인과 대사건을 제시할 수도 있을테고 어떤 사람은 지엽적이고 자기중심적(민족, 국가, 가문 등)인 것들에 치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실린 14가지의 에피소드는 '누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답이며, 역사를 뒤흔든 영웅을 선택하기 보다는 자칫 무심코 지나치거나 간과될 수 있는 위인들에 가중치를 둔 것이라 보인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쓰여진 글을 읽다 보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간결한 문장들을 쌓고 쌓아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몰입감을 부여한다. 츠바이크가 극적이라 생각해 포함시킨 역사적 사건(인물)에 대한 '역사가의 기록'은 분명 건조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츠바이크의 글들은 '건조한 역사적 사실'에 건강한 근육을 붙이고 생기있는 피부를 입혀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감상을 자아낸다. 이런 것이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헨델의 재기를 표현하는 츠바이크의 묘사는 츠바이크의 글이 갖는 생명력의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반신불구가 된 그가 재활에 힘써 다시 건강을 회복했을 때 처음으로 마주한 오르간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헨델이 느끼는 환희를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완전희 치유된 몸으로 아헨을 떠나던 날, 헨델은 교회 앞에 멈춰 섰다. 지금껏 그다지 독실한 신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은총을 입어 전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대형 오르간이 설치된 합창대 석으로 올라가려니,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자신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왼손으로 시험 삼아 건반을 눌렀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제 주저하며 오른손을 시험해 보았다. 오랫동안 꼼짝 못하고 마비되어 있던 손이었다. 아, 이럴수가! 오른손이 건반을 누르자 은빛 샘처럼 소리가 솟아나지 않는가! 서서히 그는 연주를 시작했다. 즉흥곡이었다. 그는 거대한 흐름에 빨려 들어갔다. 울려 나온 소리는 차곡차곡 벽돌처럼 쌓이며 보이지 않는 탑이 되어갔다. 천재가 짓는 투명한 건물은 그림자 하나 없이 찬란하게 위로 쑥쑥 솟아올랐다. 빛과 소리가 하나가 된 듯 주위가 졸지에 환해졌다. 

운명이 힘 있는 자를 응원하고 섬겨 그가 역사를 끌어가도록 안내하지만 가끔 운명이란 미묘한 존재는 변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역사의 주인공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며 조연조차 되지 못할 법한 사람을 메인 무대로 불러오기도 한다.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서술되는 인물들은 광기나 우연이나 운명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자들, 주연에 가려 마땅히 받았어야 할 조명을 받지 못한 조연들을 주연으로 승화시킨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남긴 업적이 결코 작지 않지만 객관적 시선을 견지하고 봤을 때 해당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칭하긴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츠바이크의 관심과 글이 가미되자 이들과 이들의 업적이 불멸의 것으로 자리매김 한다. 


츠바이크 자신이 작가임을 드러내듯 14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예술적 성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순간으로써 키케로, 헨델, 루제, 괴테,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을 불러와 시대를 초월한 작품을 남긴 이들이 어떤 순간에 어떤 감정으로 걸작을 남기게 됐는지를 조명한다. (개인적으로) 뛰어난 예술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공통의 환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결정에 일부 헌신하는 바가 있을 수 있지만 합리적으로 바라보면 예술 작품은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불멸하는 것이지 인간의 삶 자체를 가르는 바는 아니라 여기지만, 츠바이크의 시선에서 아름다운 작품이란 다른 어떤 것들보다 빛나는 역사의 결정체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다루는 글임에도 소설처럼 읽히는 책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주어진 역사적 사실에 살과 감정을 붙여 단순한 역사 이상의 가치를 뿜어내는 것 같다. 이런 점이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역사든, 철학이든, 어려운 주제를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데 재미까지 더하니 참 매력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츠바이크 선집1'로 발간된 책이다. 때문에 츠바이크 선집 시리즈가 연이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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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것들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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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무엇인가! 단순히 생각하기에 '인간이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 만들고 변화시켜 온 모든 것'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문화에 대한 견해는 시대와 학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는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획득한 그 밖의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총체"를 문화라고 정의한다. 네델란드의 현대 문화철학자인 반 퍼슨(C.A. van Peursen)은 "좁은 의미의 문화는 예술, 철학, 과학, 윤리, 정치, 종교 같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산물이며, 넓은 의미의 문화는 자연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연을 객관화하고 연구대상으로 삼아 이를 변화, 발전시킨다."라고 정의했다. 


문화의 정의를 생각해보면 인간이 지나온 역사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과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삶에 필수재라 생각되는 의식주는 문화의 중심에 놓일 수 밖에 없는데, 저자 김대웅은  의, 식, 주와 관련된 소재를 끌어와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살피고 있다.


의(衣)의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인 청바지의 기원은 1850년대 골드러쉬 행렬에 합류한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가 광부들에게 견고한 옷을 만들어주기 위해 포장마차 덮개용 천으로 쓰이던 캔버스 천을 활용해 오버올(overall, 아래위가 한데 붙은 작업복)을 만들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더러워져도 눈에 덜 띠도록 청색으로 염색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광부들의 수요를 고려해 실용적으로 말들어졌던 청바지는 대중적 사랑을 받아 패션 아이템으로 거듭나게 된다. 리바이스에 이어 1977년 출시된 캘빈 클라인이 대히트를 치면서 청바지는 더욱 유명해지고 대중화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라코스테라는 브랜드의 탄생도 흥미롭다. 프랑스 테니스 선수였던 르네 라코스트(Rene Lacoste)는 1923년 프랑스 대표로 미국에서 열린 테스니 경기에 참가했다. 한 가게의 쇼윈도에 있던 악어가죽 가방을 보고 시합에 이기면 저 가방을 살 것이라고 얘기했으나 시합에 졌고 그 가방을 사지 못했다. 동료들은 그를 '악어'라고 놀려댔다. 1929년 테니스계를 은퇴한 후 테니스 셔츠를 디자인하며 자신의 별명이었던 악어를 상표로 등록했고 악어 마크로 상징되는 라코스테 브랜드가 탄생했다.


식(食)으로 넘어오면 인간의 삶을 수렵채집에서 정주형으로의 이동을 가능케했던 작물들(밀, 보리, 벼 등)의 기원을 알려주고 각종 과일이나 기호식품의 유래와 전파에 대해 설명한다. 대부분 현대인에게도 친숙한 것들을 다루기 때문에 해당 식품의 역사를 읽다보면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다. 사과를 예로 들자면 현재 애플(apple)은 사과를 뜻하는 영어로 쓰이지만 원래 'apple' 이라는 단어가 모든 과일을 아우르는 범주의 단어였다. 나무딸기는 an apple of Cain, 석류는 Carthaginian apple, 토마토는 an apple of love 등처럼 과일 이라는 의미로 쓰이던 'apple'이 11세기 프랑스에서 들어온 fruit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apple'은 '사과'라는 자리로 이동했다. 


음식물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소개되기도 하는데, 12세기 파리에는 거리를 활보하는 돼지가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며 각종 음식물 찌꺼기와 시민들의 용변을 치우는 청부부로서 돼지가 이용됐다. 그러던 어느날 거리를 거닐던 돼지가 사람을 태운 말에게 달려들면서 말이 놀라는 바람에 말에 타고 있던 사람이 낙마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람은 이튿날 숨을 거둔다. 공교롭게도 낙마로 죽은 사람이 황태자였기에, 화가 난 국왕은 해당 돼지를 사형에 처하고 파리 거리에서 돼지 사육을 금지했다.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돼지가 시내에서 사라짐에 따라 파리 시민들은 돼지고기를 부패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고 그 결과로 햄과 소시지 등이 발전하게 된다. 햄의 원시적인 형태는 기원전 1000년경의 그리스로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12세기 파리에서의 소동으로 인해 햄의 가공법이 크게 발전됐다. 


주(宙)는 신전과 궁궐에서부터 일반적인 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소개한다. 더불어 건축에 사용된 공법이나 재료의 발전사도 언급하는데 현대 건축에서 핵심적 역활을 수행하는 철근 콘크리트가 19세기 파리의 정원사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점은 의외였다. 조제프 모니에(Joseph Monier)는 정원사로 일하던 중 깨지지 않는 화분을 만들고자 고심했고 철망에 시멘트를 바름으로써 아주 튼튼한 화분을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으로 특허를 받은 후 철도의 침목 따위를 만들어 팔았다. 철근 콘크리트의 발명은 거대 토목사업과 고층건물을 가능하게 한 주역이었다.

현대 한국인에게 가장 보편적 주거수단인 아파트의 기원은 로마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수의 부유층은 단독주택에 살았던 반면, 대다수의 평민은 인슐라(insula)라고 불리는 공동주택에 거주했다. 5층에서 10층 높이의 공동주택인 insula는 아파트의 원조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발전을 거듭해 현대의 주상복합식 아파트의 개념은 1953년 르코르뷔지에(Le Corbuisier)에 의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아파트의 개념은 분양형 공동주택이지만 미국의 apartment는 임대형 공동주택으로 차이가 있으며 미국에서 분양형 공동주택을 칭할 때는 condominium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의식주와 관련된 130여 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최초의 것들>은 제목에 보이는 '잘난 척하기 좋은 수준'을 넘는다고 생각된다. 각 소주제가 담고 있는 역사와 어원에 대한 설명은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것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각 장의 인과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언제든 편안히 접근할 수 있다. 


간혹 상식사전의 형태로 작성된 책을 접하게 되는데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최초의 것들> 또한 그런 류의 책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담고 있는 바는 토막 상식 이상이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요소는 주제를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형태로 잠깐의 쉬는 시간이나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기 좋은 점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읽다보면 3페이지짜리 책 150권을 읽는 느낌을 받는다. 


제목은 재밌게도 '잘난 척하기 딱 좋은'이라고 쓰여졌지만 잘난 척하기 위함이 아닌 일반상식을 넓히고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으면 다른 독서에서 접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지적 영역을 조금은 더 확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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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 수업 -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대니얼 클라인.토마스 캐스카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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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렌 키르케고르(Soren Kierkegaard)

"인생을 이해하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하지만,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자연스레 의문을 갖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나는 무엇이며 왜 살아가는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세상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등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현인들 또한 이런 질문을 마주해 깊고 깊은 사고를 거침으로써 다양한 답을 내놓았다. 어떤 것이 정답이고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 영역에 남겨지는데, 이 주관적 견해를 키우기 위해서는 과거의 철학자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다. 


<서양철학사>와 같은 책을 통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에 등장한 철학자들의 사고를 알아보는 것은 삶과 존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많은 철학서들은 어렵고 딱딱해 독자들에게 친밀하게 닿기 힘든 면이 있는데다다 철학이란 학문이 일상 생활과 동떨어져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는 일반으로부터 철학을 소외시키게 된다. 


<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수업>은 철학서가 어렵고 이질적이라는 일반의 선입견을 부수고 철학과 인생의 결합을 증명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라 생각한다.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있어 어려운 이론과 사상을 배제하고 일생 생활의 예시와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풀어가고 있다. "철학과 만화에는 인생이 담겨있다."는 머리말로 시작해 자신을 생각하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고찰과 함께 실제 삶에서 철학적 사유가 갖는 의미를 전달한다. 


특히 <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수업>의 매 장에 실린 만화를 보고있노라면 텍스트에 언급되는 철학자들의 사고와 별개로 주관적 생각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위 그림은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이기" 장에서 분석주의 철학자인 '윌러드 밴 오먼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이 제시한 '완전한 번역의 불확정성(indeterminacy of radical translation)'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과 콰인의 주장이 적절하게 매칭되어 절대적 이해가 불가함을 설명하고 있다. 

본문을 읽기 전 그림을 먼저 봤을 때, 내가 느낀 바는 고립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여러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이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으로 아무리 공감각이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남'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른 뜻을 전달하는 경우도 빈번하며 남들로부터 내가 얻은 정보 또한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삷을 이어가야 하고 좋은 관계도 맺어야 하기에 남들을 보다 더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내가 의도한 바를 명확히 전달하고자 노력할 따름이다.


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남긴 '사유의 산물'을 살펴보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호소력이라 생각한다. 해당 사상이 갖는 학문적 어려움이나 전달하는 자의 한계 등으로 호소력은 떨어지고 독자의 몰입감을 흩뜨린다. <하버드 철학자의 인생수업>은 이런 결점을 보완하고자 신경쓴 듯 하고 만화와 철학이라는 언뜻보면 이질적인 것을 같이 드러내 철학의 역치를 낮추었다고 느껴진다. 




철학자들의 저작을 읽다보면 어렵고 어지럽고 막혀 답답할 때가 많다. 시대를 뛰어넘는 탁월한 식견을 가진 철학자들의 생각을 들여다봄으로써 나라는 존재와 삶의 본질을 깨달아 더 행복하고 바람직한 삶을 영위하고 싶지만 철학적 사상을 이해하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철학사를 읽고 철학자의 저서를 가까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나와 나의 인생에 대한 반성과 발전을 위함이다. 


어릴적 독서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노는 게 즐거웠던 시절, '나'라는 존재나 '인생의 의미' 등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또래와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고,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것들에 과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본능적 즐거움을 좇던 시절에 철학은 우정, 사랑, 본능 정도를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의 연수가 쌓이다 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의미, 옳은 것에 대한 판단, 세상에 대한 호기심, 존재에 대한 실상 등에 궁금증이 일었고 그것이 내가 철학 서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철학서가 담고 있는 깊은 속뜻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글을 읽으면서도 부족한 머리를 탓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수업>은 어려운 철학을 쉽게 풀어쓰고 있다. 각 장에 담긴 그림은 해당 장이 설명하고자 하는 주제의 이해를 돕는다. 철학적 사상에 깊이 몰입하기 보다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적당한 수준에서 설명을 맺는다. 또한 실생활과 연관해 생각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지루함을 덜었다. 


이 책은 철학사나 사조를 읊는 것이 아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그 생각을 현실에 연장할 수 있는 가교로 작동하여 우리가 철학에 친숙해지도록 돕는다. 어떤 울림이 있는 학자나 사상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깊이를 더하기 위해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안내 역활에 만족하는 듯 하다. 어렵다고 생각하고 지레 겁먹게 하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친근감을 더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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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 흑선의 내항으로 개항을 시작하여 근대적 개혁을 이루기까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다나카 아키라 지음, 김정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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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돼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었다. 산업화를 통해 생산력이 높아진 열강은 재료의 수급과 생산품의 판매를 위해 앞다투어 식민지 공략에 나섰다.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일본에 나타나 개항요구를 했을 때, 에도시대를 겪고 있던(서구 열강에 비해 산업화가 덜 돼 있던) 일본으로서는 그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었고 1858년 미국과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일부 항구를 개방했다. 미일수호통상조약은 영사재판권(치외법권), 관세자주권의 결여, 최혜국조관 등 일본측에 불리한 불평등조약이였으나 당시 중국이 두 차례 아편전쟁을 겪으며 영국에 수모를 당하는 모습은 일본의 조인을 강요했다. 


미일수호통상조약은 서구 열강의 압력에 의해 체결되긴 했지만, 조약으로 개항된 3개 항구(요코하마, 나가사키, 하코다테)는 수출입이 급격히 증가해 가파른 성장을 보였다. 무역의 발달로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신흥거대상인이 등장해 지방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부루주아적 경제가 성장하고 막부 중심의 경제 체제는 힘을 잃었다.


자본주의의 쇄도는 계층의 변화와 분화를 불러왔고 빈부격차를 증대시켜 민중의 반발을 야기했다. 곳곳에서 민란이 발생했으며 두 세기 넘게 유지돼 온 막부체제를 흔들었다. 기존의 막번체제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이 더 주목을 받았다. 천황은 존왕양이 사상의 중심으로 외압의 위기극복을 위한 민족적 상징으로 여겨졌다. 


존왕양이 체제(천황을 표면에 내세우고 외세에 맞서고자 했던)는 조정과 막부의 관계를 재구성했다. 조정과 막부, 조정과 웅번(비유적으로 소출량이 만 석 이상인 막부를 일컫는 말로 세력이 큰 막부를 의미)의 세력이 생겨나고 이들은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했다. 대외적 기치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들은 천황을 이용해 자신들의 입지와 이득을 채우려 했다. 천황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존양파와 천황을 상대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공무합체파 사이의 대립도 정국 혼란에 기여했다.


1867년 쇼군인 요시노부가 권력을 다시 천황에게 돌려준다는 의미의 '대정봉환 '이 일어난다. 막번제는 형식적으로나마 천황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나라를 통치한다는 이념으로 정당성을 확보했는데 이 전권을 다시 천황에게 돌려줌으로써 막부제의 약화와 혼란스런 상태를 드러내게 된다. 실제 요시노부는 대정봉환을 진심으로 행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요시노부는 권력을 재탈환하지 못했고 천황 중심의 체제가 더 힘을 받게 됐다.


1868(메이지원)년 메이지정부 수립과 함께 5개조의 서약문을 발표한다.

하나, 널리 회의를 부흥시켜 정치상의 중요한 일을 공론으로 결정한다

하나, 위 아래가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활발하게 경륜을 행해야 한다. 

하나, 문무백관이 한결같이, 서민에 이르기까지 각기 그 뜻을 이루고 불만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나, 구래의 누습을 타파하고 천하의 공도를 따른다. 

하나, 세계에서 지식을 구하고 천황이 국가를 통치하는 기반을 굳건히 다진다. 

이 서약문은 얼핏보면 막번체제를 뒤로하고 민주주의에 다가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막부의 그림자를 청산하고 신정부의 권력 집중(천황의 권위 강화)을 위해 널리 활용되었다.


메이지 정부가 들어섰지만 제도가 정립되지 않아 갈피를 못잡는 사이 피폐해진 민중들은 전국 도처에서 민란을 일으켰고 막번제의 잔존세력은 신정부와의 전쟁을 도모했다. 보신전쟁(신정부와 막번의 전쟁)은 막부의 경제부담을 가중시켜 번체제의 해체를 가속화시키고 판적봉환과 폐번치현을 통해 신정부의 중앙집권력은 강화된다. 


1871(메이지4)년 신정부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파견한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임무는 미국과 유럽을 방문하여 그동안 외국과 맺은 조약의 개정에 대한 예비 교섭을 하고 근대 국가의 선진문물을 조사 연구하는 것이었다. 선진국과 동등한 관계에서 교섭을 진행하고 이들의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국제공법(국제법)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제도, 재정, 경제, 산업, 군사, 사회, 교육 등 국가 전반에 걸친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신정부는 알고 있었다.   


1873년 일본으로 돌아온 이와쿠라 사절단은 '10월의 정변'을 통해 당시 일본을 장악하고 있던 세력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후 자본주의의 육성과 보호, 산업화, 치안의 강화, 교육제도 개편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추진했다. 일본의 서구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어느 정도 내치가 진행되자 시선을 조선으로 돌렸다. 1875년 일본의 군함이 조선의 강화도를 침범한 것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의 분쟁이 시작됐고 조선으로부터 조일수호조약을 조인받았다. 이는 과거 페리 함대가 일본에서 미일통상수호조약을 받은 것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이후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을 겪으며 조선은 지배체계와 국정운영은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일본과 청나라 뿐 아닌 서구 열강들에게까지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미국과 영국과 같은 대국 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소국(네델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을 둘러보며 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를 두루 살펴보고 돌아왔다. 유신정부의 실권을 장악한 이들이 나아가고자 한 방향은 천왕을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제로, 조선 침략과 청일전쟁의 승리가 지렛대가 되어 유신정부의 제국주의로 부추기게 된다. 주변국과의 전쟁은 국내의 소요를 잠재우는 점에서도 이득이었고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얻는 혜택 또한 컸기 때문에 제국주의/군국주의는 지속된다.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인권과 자유를 강조하며 흘러나왔지만 강력히 탄압되었으며 인권과 자유가 중심이 된 새로운 체제는 1945년 패전을 기점으로 재부상하게 된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서구 열강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급속도로 적용해 20세기 초반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나라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쇄국을 고집하거나 열강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의지를 불태울 때 세계사적 흐름에 동조하여 국가를 개혁하고 발전시켜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이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담당한 것이 '메이지 유신(명치유신)'이다. <메이지 유신>을 읽기 전 막연히 예상하기를, 일본은 19세기 중엽 흑선을 보고 반강제적으로 개국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함으로써 새로운 열강으로 성장해 결국 제국주의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에 담긴 내용을 보니 메이지 유신 또한 격동의 시기에 굉장히 많은 잡음과 혼란을 뚫고 이루어진 혁명적 과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은 우리와 밀접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사에 관한 지식이 매우 부족함을 느꼈다. 전체적인 역사적 흐름에 대한 무지와 함께 일본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나 지명 그리고 용어조차 낯설게만 느껴져 <메이지 유신>을 읽으면서도 다른 역사서와 달리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기회를 잡아 일본사 전반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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