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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것들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ㅣ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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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무엇인가! 단순히 생각하기에 '인간이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 만들고 변화시켜 온 모든 것'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문화에 대한 견해는 시대와 학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는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그리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획득한 그 밖의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총체"를 문화라고 정의한다. 네델란드의 현대 문화철학자인 반 퍼슨(C.A. van Peursen)은 "좁은 의미의 문화는 예술, 철학, 과학, 윤리, 정치, 종교 같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산물이며, 넓은 의미의 문화는 자연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연을 객관화하고 연구대상으로 삼아 이를 변화, 발전시킨다."라고 정의했다.
문화의 정의를 생각해보면 인간이 지나온 역사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과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삶에 필수재라 생각되는 의식주는 문화의 중심에 놓일 수 밖에 없는데, 저자 김대웅은 의, 식, 주와 관련된 소재를 끌어와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살피고 있다.
의(衣)의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인 청바지의 기원은 1850년대 골드러쉬 행렬에 합류한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가 광부들에게 견고한 옷을 만들어주기 위해 포장마차 덮개용 천으로 쓰이던 캔버스 천을 활용해 오버올(overall, 아래위가 한데 붙은 작업복)을 만들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더러워져도 눈에 덜 띠도록 청색으로 염색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광부들의 수요를 고려해 실용적으로 말들어졌던 청바지는 대중적 사랑을 받아 패션 아이템으로 거듭나게 된다. 리바이스에 이어 1977년 출시된 캘빈 클라인이 대히트를 치면서 청바지는 더욱 유명해지고 대중화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라코스테라는 브랜드의 탄생도 흥미롭다. 프랑스 테니스 선수였던 르네 라코스트(Rene Lacoste)는 1923년 프랑스 대표로 미국에서 열린 테스니 경기에 참가했다. 한 가게의 쇼윈도에 있던 악어가죽 가방을 보고 시합에 이기면 저 가방을 살 것이라고 얘기했으나 시합에 졌고 그 가방을 사지 못했다. 동료들은 그를 '악어'라고 놀려댔다. 1929년 테니스계를 은퇴한 후 테니스 셔츠를 디자인하며 자신의 별명이었던 악어를 상표로 등록했고 악어 마크로 상징되는 라코스테 브랜드가 탄생했다.
식(食)으로 넘어오면 인간의 삶을 수렵채집에서 정주형으로의 이동을 가능케했던 작물들(밀, 보리, 벼 등)의 기원을 알려주고 각종 과일이나 기호식품의 유래와 전파에 대해 설명한다. 대부분 현대인에게도 친숙한 것들을 다루기 때문에 해당 식품의 역사를 읽다보면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다. 사과를 예로 들자면 현재 애플(apple)은 사과를 뜻하는 영어로 쓰이지만 원래 'apple' 이라는 단어가 모든 과일을 아우르는 범주의 단어였다. 나무딸기는 an apple of Cain, 석류는 Carthaginian apple, 토마토는 an apple of love 등처럼 과일 이라는 의미로 쓰이던 'apple'이 11세기 프랑스에서 들어온 fruit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apple'은 '사과'라는 자리로 이동했다.
음식물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소개되기도 하는데, 12세기 파리에는 거리를 활보하는 돼지가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며 각종 음식물 찌꺼기와 시민들의 용변을 치우는 청부부로서 돼지가 이용됐다. 그러던 어느날 거리를 거닐던 돼지가 사람을 태운 말에게 달려들면서 말이 놀라는 바람에 말에 타고 있던 사람이 낙마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람은 이튿날 숨을 거둔다. 공교롭게도 낙마로 죽은 사람이 황태자였기에, 화가 난 국왕은 해당 돼지를 사형에 처하고 파리 거리에서 돼지 사육을 금지했다.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돼지가 시내에서 사라짐에 따라 파리 시민들은 돼지고기를 부패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고 그 결과로 햄과 소시지 등이 발전하게 된다. 햄의 원시적인 형태는 기원전 1000년경의 그리스로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12세기 파리에서의 소동으로 인해 햄의 가공법이 크게 발전됐다.
주(宙)는 신전과 궁궐에서부터 일반적인 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소개한다. 더불어 건축에 사용된 공법이나 재료의 발전사도 언급하는데 현대 건축에서 핵심적 역활을 수행하는 철근 콘크리트가 19세기 파리의 정원사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점은 의외였다. 조제프 모니에(Joseph Monier)는 정원사로 일하던 중 깨지지 않는 화분을 만들고자 고심했고 철망에 시멘트를 바름으로써 아주 튼튼한 화분을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으로 특허를 받은 후 철도의 침목 따위를 만들어 팔았다. 철근 콘크리트의 발명은 거대 토목사업과 고층건물을 가능하게 한 주역이었다.
현대 한국인에게 가장 보편적 주거수단인 아파트의 기원은 로마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수의 부유층은 단독주택에 살았던 반면, 대다수의 평민은 인슐라(insula)라고 불리는 공동주택에 거주했다. 5층에서 10층 높이의 공동주택인 insula는 아파트의 원조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발전을 거듭해 현대의 주상복합식 아파트의 개념은 1953년 르코르뷔지에(Le Corbuisier)에 의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아파트의 개념은 분양형 공동주택이지만 미국의 apartment는 임대형 공동주택으로 차이가 있으며 미국에서 분양형 공동주택을 칭할 때는 condominium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의식주와 관련된 130여 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최초의 것들>은 제목에 보이는 '잘난 척하기 좋은 수준'을 넘는다고 생각된다. 각 소주제가 담고 있는 역사와 어원에 대한 설명은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것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각 장의 인과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언제든 편안히 접근할 수 있다.
간혹 상식사전의 형태로 작성된 책을 접하게 되는데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최초의 것들> 또한 그런 류의 책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담고 있는 바는 토막 상식 이상이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요소는 주제를 짧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형태로 잠깐의 쉬는 시간이나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기 좋은 점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읽다보면 3페이지짜리 책 150권을 읽는 느낌을 받는다.
제목은 재밌게도 '잘난 척하기 딱 좋은'이라고 쓰여졌지만 잘난 척하기 위함이 아닌 일반상식을 넓히고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으면 다른 독서에서 접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지적 영역을 조금은 더 확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