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에 대해 덜 배워서 이득을 본 여성은 지금껏 한 명도 없었다.˝ -19p
첫 문장부터 목차, 저자 이력, 의학정보를 대하는 태도까지 멋지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과 아끼고 사랑하는 이가 여성이어서 그들과 더 잘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목차를 보면, 여성신체, 음식, 속옷, 위생, 월경과 폐경, 약물, 시술, 성매개감염, 질환 등이 있다. 과연 이중 하나라도 궁금하지 않은 주제 있을까.
저자는 제니퍼 건터, 35년차 의사이자 산부인과 전문의로 24년 경력이 있다. 자신도 오래 건강한 성생활 유지하는 것이 꿈인 여성이다. 그런 시각으로 여성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우리는 월경을 금기시하는 문화와 터무니없는 사회적 결벽성도 모자라 잘못된 정보의 온상에 노출돼 있다.
다행히 내게는 해독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진실이다.˝-175p
의학 정보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자료를 언급하면서도 연구의 객관성, 연구 방식의 신뢰성까지 고려하고 있다. 특히나 영양제나 시술 분야에서 홍보를 위해 내세우는 잘못된 연구들을 꼬집는다. 유사과학이나 미신으로 여성은 억압받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 굴레를 쓴고 있진않은지 점검하게 된다.
˝유일한 연구는 질환의 철자도 반복해서 틀릴 정도로 허술하고 형편없는 수준이라 종이째 파쇄해서 새장 바닥에 깔아주기 딱이다.˝-272p

읽으면서 정말 놀란 부분 중 하나는 성전환과 건강을 다룬 챕터였다. 생각도 못한 분야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가장 가까운 주제들 아닌가. 그들이 진료실과 일상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들이 확 다가들었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지 못한 지점은 언제나 있는 걸 보면 과신은 금물이구나 싶다.

하미나 작가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에서 여성임이 질환으로 여겨지는 상황, 여성의 질환이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 상황을 처음 접했었다.
˝반대로 여성의 우울은 그 원인이 여성의 ‘비정상적인 몸 안에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곧 여성이 아픈 것은 ‘원래 그렇게 태어나서‘이다.˝-24p
˝어떤 지식이 다른 집단의 고통을 설명하는 데에 계속해서 실패해 왔다면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지식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가?˝-39p
그리고 이 책에서 다시 확인했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듯 남성 의사들이 여성을 내진하거나 여성의 시신을 해부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여성 의사가 없었기에, 고대 의학교본에 최초로 실려 의사들이 보고 배운 여체에 관한 정보는 여성과 조산사들이 알려준 정보를 남자들이 이해되는 대로 해석한 내용이었다.˝-20-21p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 그것의 작동 방식과 원리에 대한 무지는 여성의 역량을 빼앗고 성적인 관계에서 여성을 불리한 위치에 놓이도록 만든다. 많은 이성애 여성이 여성의 오르가슴 기제에 대해 제대로, 심지어 전혀 교육받지 못한 남성 파트너에게 섹스를 배운다.˝-52p

이외에도 다루고 싶은 구체적인 정보들이 한 가득이다.
˝자기 몸이 가부장제가 만들어놓은 불가능한 이상에 맞지 않을 때 여성들은 수치심을 느낀다.˝-67p
˝솔직히 말해 음경이 진통을 촉발할 정도로 위대하다는 발상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69p
˝외음은 대소변과 혈액을 감당할 수 있고 질은 혈액과 정액은 물론 아기까지 감당해내는 마당에 검은색 레이스 끈 팬티따위가 질이나 외음에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발상은 말이 안된다.˝-105p
˝일부는 가부장제가 덧씌운 성기에 대한 수치심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놀라운 효과들을 약속한다.˝-266p

한 번쯤 궁금해했던 주제들을 다룬다는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의료정보를 대하는 자세를 정하게 된 것이 큰 소득이다. 정보가 어떤 이익구조나 관념강화에 이바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실험 설계와 실행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려진 진실을 합리적 근거로 밝혀주는 책. 시야를 넓히는 즐거움을 주는 책.
곁에 두고 오래오래 읽을 책을 만난 즐거움을 알려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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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가부장제가 덧씌운 성기에 대한 수치심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놀라운 효과들을 약속한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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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이 가부장제가 만들어놓은 불가능한 이상에 맞지 않을 때 여성들은 수치심을 느낀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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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Life지의 모토를 접하고는 매료되어 한동안 지니고 다녔었다. 영화 ost와 함께 이 문구가 독서 내내 곁에 있었다.

-일상이 아니라 길 위여야 인생을 조망할 시야가 트여서일까, 길 위에서의 삶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것이어서일까, 인생은 여정이라서 일까. 여행서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이 책 또한 오랜 시간 길 위에서 인생을 고민한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는 즐거움을 준다.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찾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답은 길 위에 있는 것도 생활터전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서든 최선을 다해 존재하는 데에 있다고 작가는 적고있다.
˝삶이란 페르시아 양탄자의 무늬처럼 의미가 없다는 것, 다만 아름다움 그 자체로 존재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97p

-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짐을 싼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가방 꾸리다보면 짐에 짓눌리게되는 경험은 나에게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존재의 기쁨을 추구하라고 권한다. ‘가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존재를 추구하는 나에게는 상황을 멋있게 포장할 말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슬몃 든다. 유비무환과 가벼운 배낭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고. 한도 없는 신용카드만 있다면. 대도시 한정이지만.)
˝사람들아, 소유에서 오는 만족을 추구하지 말고 존재에서 오는 기쁨을 추구하라.˝ -85p

- 저자는 신선의 낙을 꿈꾼다. 기본적인 것만 해결하고 나머지는 여행과 자유로 채우는 인생. 코로나 시국에 이런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꿈을 응원하며 나도 은밀히 소망으로 적어두어 본다.
˝내 치열함의 최대치는 밥벌이와
노잣돈까지고, 그것만 해결되면
여행이나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싶다.˝ -220p

- 일상의 공간은 한정적이다. 한정성이 주는 편함과 안락도 있지만, 제한된 경험이 답답할 때가 있다. 특히나 음식과 언어 생활을 들며 저자는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쁨을 전한다. ‘이 여행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은 순간을 돌아본다. 역시 음식과 사람들이다. 내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경계짓는 일.
˝세상을 여행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기본적인 것을 떠난다는얘기고, 거기서 우리는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자신이 집착하던 맛과 언어를 넘어선 다른 세계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나의 세계가 끝없이 확장되는 기쁨!˝ -107p

김광석의 <바람과 나>라는 노래가 있다.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 여행하는 그대여˝
마음에 바람이 분다. 길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이.
삶은 하나의 여정이니 길은 시작된 셈이고, 바람처럼 자유롭기만 하면 될까.


삶의 진리는 인도에 있지도 않고 한국에 있지도 않으며 아프리카에도 유럽에도 중국에도 동남아에도 중남미에도 없다.
그건 땅 위에 잠시 만들어진 환상일뿐, 결국 그곳을여행하면서 끊임없이 사유하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만이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 그 무엇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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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섬의 현지인들은 돈을 쓰며 뒹구는 여행자들을 부러워하며 한국이란 나라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들이 살고 싶어하는한국에서 사는 나는 종종 보라카이를 생각한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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